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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존자 편지 두 번째] “살아남은 자들을 보호하려 하지 마십시오.살아남은 자들이 권리를 찾아갈 수 있도록 길을 열어주는 것이 국가가 할 일입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눈물도 빛을 만나면 반짝인다’의 저자인 김영서입니다. 초등학교 5학년부터 대학생이 되기까지, 9년간 일상의 안전이 무너진 가족 안에서 가정폭력과 친족성폭력을 겪으며 홀로 살아남았습니다. 목숨 걸고 힘겹게 살아낸 자들을 당신들은 보호할 수 없습니다. 

단지 국가는 살아남은 자들이 존엄한 인간으로서 권리를 회복하고, 살아갈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지원해주시기 바랍니다.

지금도 어디선가 홀로 죽음의 위험과 안전한 일상과는 거리가 먼 시간을 살아내고 있는 분들의 권리를 열어가기 위해 저는 폭력예방전문강사로 강의를 하고, 심리상담을 하고 있습니다. 또한 친족성폭력 공소시효 폐지를 위한 모임 ‘공폐단단’에서 친족성폭력생존자들과 함께 우리의 권리를 위해 함께 하고 있습니다. 

이런 제가 요즘은 편안하게 물도 못 마시며 지내게 되었습니다. 저는 물을 많이 마시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요즘은 지하철을 타거나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 물을 마음껏 마실 수 없습니다. 공공화장실을 안전하게 이용할 권리를 잃게 되면서 저는 물을 마음껏 마실 권리도 잃게 되었습니다. 화장실은 언제부턴가 불법촬영을 당할지도 모르는 공간, 살인을 당할지도 모르는 끔찍한 곳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당신들의 보호를 원하지 않습니다.
편안하게 물을 마시고, 안전한 일상을 누릴 수 있는 권리를 원합니다.

그런 우리의 일상이 안전할 권리를 인정하지 않고, 젠더폭력이 아니라고 당당하게 말하는 여성가족부 장관을 더 이상 마주하고 싶지 않습니다. 매일 지하철로 출퇴근은 해보셨는지, 출근하다 급하게 지하철 화장실을 이용해본 적은 있는지 궁금합니다. 우리의 일상이 안전하고 싶다는 우리의 권리, 우리의 목소리를 당신이 어떻게 그렇게 막아설 수 있습니까? 우리의 일상을 알지도 못하면서, 우리의 공간을 살지도 않으면서 감히 우리가 겪고 있는 안전권이 침해당하고 있는 상황에 대해 함부로 말하지 말아주십시오. 

저는 그런 보호라면 거부하겠습니다. 우리의 권리를 지켜내기 위해 여성가족부 폐지에 반대하겠습니다. 또한 현 여성가족부 장관의 퇴진을 요구합니다. 

가정폭력과 친족성폭력을 겪던 10대의 제가 살아냈던 삶을 감히 지금 와서 보호하겠다는 무례를 범하지 마십시오.
치열하게 생존하기 위해, 생존자로서 권리를 찾기 위해 싸워왔던 그 시간을 멈춰 세우지 마십시오.

지금까지 생존자들과 연대하며 우리의 자리를 겨우 한 뼘 만들었습니다. 그 자리에서 목소리를 내고, 용기를 내어 거리에서 친족성폭력 공소시효 폐지를 외치는 우리를 당신들이 보호하겠다는 만용을 부리지 마십시오.



우리는 우리가 안전한 삶을 살아갈 권리가 있음을 계속해서 말하고, 계속해서 연대자로 살아갈 것입니다. 우리는 자발적으로 우리가 살아남았던 것처럼 다른 이들도 살아남을 수 있도록 우리들의 손을 계속해서 내밀 겁니다. 길거리에서 당신들이 우리의 목소리에 귀기울이지 않아도 함께 손잡고 살아내자고, 다같이 우리의 안전한 일상이 당연한 권리임을 세상에 외칠 겁니다. 

 


인구가족양성평등본부는 우리에게 필요 없습니다!
살아남은 자들이 권리를 찾아갈 수 있도록 길을 열어주는 것이 국가가 할 일입니다.

 


2022. 10. 25.

<눈물도 빛을 만나면 반짝인다 - 어느 성폭력 생존자의 빛나는 치유 일기> 저자, 김영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