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성폭력상담소는 성폭력 문제가 나와 멀리 떨어져 있는 뉴스 속 끔찍한 사건이 아니라 나와 내 주변의 일이라는 것을 생각해보기 위해 총 10회에 걸쳐 'Upgrade! 反 성폭력 감수성!'을 연재합니다. 성폭력을 둘러싼 고민과 궁금한 점, 그리고 시민들의 일상적인 경험을 나누며 우리의 인식을 점검했으면 합니다. 더불어 성폭력은 사회 구성원 모두가 함께 해결해야 할 문제라는 걸 공유하고 싶습니다. 본 기사는 '성추행 당한 그녀, 왜 침묵했을까'라는 제목으로 7월 11일자 오마이뉴스에 실린 글입니다.

 

 

[Upgrade! 反성폭력 감수성!]

 

③ 성폭력 가해자들이 피해자 앞에서 당당한 이유

 

 

직장인 A씨는 최근 출근길 지하철에서 불쾌한 일을 경험했다. A씨는 도착역이 다가왔을 무렵, 자신의 몸에 한 남성이 의도적으로 밀착해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는 지하철 안이 매우 붐비는 상황이었기에 자신이 성추행 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빨리 눈치 채지 못했다.

 

가해자는 양복을 입은 평범한 중년의 남성이었다. 그는 A씨가 자리를 조금씩 옮길 때마다 따라오며 성추행 행동을 멈추지 않았다. 주변 사람들은 눈치 채지 못했거나 못 본 척 하는 듯했다. 평범해 보이는 가해자 앞에서 자신이 소리를 지른다면 도리어 이상한 여성이 될 것만 같았다.

 

결국 A씨는 아무 조치도 취하지 않은 채 도착역에서 내렸다. 출근 후 사무실에서 누구에게 말하지 못한 채 속앓이를 하던 A씨는 결국 휴가를 내고 집으로 돌아갔다. 그는 지하철에서 성폭력 가해자를 만나면 경찰에 신고하지 않는 여성들의 심리를 알 것 같았다.

 

A씨는 며칠 후 성폭력상담소로 전화했다. 이어 자신처럼 성폭력을 경험하고 빠른 조치를 취하지 못하는 여성들이 많다는 사실에 놀랐다. 성폭력 대처가 자신에게 매우 어려운 일이라는 사실에도 당황했다.

 

A씨처럼 전화 상담으로 성폭력 피해 경험을 말하는 여성들의 다수는 "성폭력이 나에게 일어날 거라 상상하지 못했다"고 호소한다. 노출이 적은 옷차림을 즐기고 보수적인 연애관을 가졌으며, 성경험이 없을 만큼 조신하게 살아왔음에도 성폭력을 겪은 게 억울하다는 것이다. 성폭력 당한 피해자임에도 '나의 잘못은 없었는가'를 생각하며 끊임없이 자책하기도 한다.

 

성폭력 가해자에게 대항하기 어려워하는 피해자들. 반대로 당당하고 거침없이 성폭력을 반복하는 가해자들. 대체 무엇이 문제일까.

 

성폭력 순간에 여성들이 위축되는 이유는 가해자 때문만이 아니다

 

성폭력 피해 경험자들의 목소리는, 성폭력을 부르는 한국사회 성문화의 문제를 그대로 반영한다. 성차별이 심각하고 여성 혐오가 일상화된 사회에서 여성들은 '성폭력 당할 만한 여성'과 그렇지 않은 여성으로 구분한다. 문제는 이러한 잘못된 인식을 없애는 방법을 사회적으로 고민하기보다, 여성들 스스로 자기 행동을 검열하고 통제 하는 것이 더욱 일상적인 성폭력예방법으로 작동한다는 점이다. 

 

                  ▲ 내가 성폭력한 이유 성폭력가해자들의 발언에서 성폭력이 발생하는

                          원인들을 추적해볼 수 있다. 성폭력은 피해자의 탓이 아니다

                          ⓒ 한국성폭력상담소

 

 

지난 5월 17일 법무부가 발표한 지하철 성폭력 기소 사건 100건 분석에 따르면, 가해자들은 직장인, 학생 등 주변의 평범한 남성들이었다. 이 사례에서도 나타나듯이 성폭력 가해자는 '정신이상자' 또는 '전과자'가 아니다. 또 성폭력은 어두운 밤거리보다 주변의 '평범한 지인'에 의해 발생하는 비율이 훨씬 높다.

 

 

'여성다움' 강요하는 사회의 성폭력

 

결국 사회의 성문화를 바꾸는 일이, 성폭력 처벌 형량 강화보다 실질적인 성폭력 예방법이라는 얘기다.

 

성폭력 발생 배경이 되는 성문화의 가장 큰 핵심은 성별 고정관념이다. 성폭력 사건 발생 맥락을 보면 '여자다움'과 '남자다움'에 대한 기대, 그 기대를 위반하는 사람에 대한 처벌 행위, 젠더화된(성별에 따라 다른 역할을 기대하는) 소통구조와 문화 등을 발견할 수 있다. 성폭력 발생 이후 사건을 해결하는 과정에서 적용되는 '여자다움' 또는 '성폭력 피해자다움의 잣대와 기준'은 "피해자가 성폭력을 유발했다"는 가해자 주장의 근거로 활용된다.

 

남성은 적극적이고 공격적인 반면, 여성은 소극적이고 방어적인 게 본성이라고 이해하는 성별 고정관념은 성폭력 상황에서 어떻게 작동할까.

 

만약 자기 주변 십대 여성들에게 "조신하고 얌전한 여자가 되어야 한다"거나 "여자도 당차야 하지만 남자 같아선 안 된다"는 말을 계속 한다면 어떨까? 그 여성들은 성폭력이 발생할 수 있는 상황을 미연에 방지하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아이들은 점점 성폭력을 비롯한 여러 부당한 폭력에 적극적으로 대처 못할 가능성이 크다. 결국 자기 몸의 무력함을 '여성스러운 몸'으로 칭송하는 사회를 비판하지 못하고 '내가 과연 정숙했는가, 얼마나 더 정숙해야하는가'를 되새기게 된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5월 보도된 '지하철 성희롱 할아버지'을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지하철에서 한 남성 노인에게 폭언과 성희롱을 겪은 여성이 현장에서 대응하지 못하고, 사건 이후 SNS상에 가해자를 찾는 글을 게시하여 며칠 뒤 가해자가 경찰에 검거됐다.

 

사건 당시 가해자는 피해 당사자에게 윤간을 뜻하는 말을 하는 등 위협적인 행동을 했다. 피해 당사자는 그 상황으로 공포심과 모욕감을 느꼈다고 전하며 "그냥 눈 감고 넘어 갈 일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검거된 가해자는 "그 여성이 짧은 반바지를 입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자기 행위를 변명했다. 신체 노출이 많은 옷을 입을수록 정숙하지 못한 여성이기 비난받아 마땅하다는 논리. 성별 고정관념에 근거한 전형적인 여성혐오와 성폭력 사례이다. 

 

이 사건은 당시 정황이 동영상으로 유포되어 많은 사람이 피해자의 처지에 공감할 수 있었다. 하지만 유사한 다른 성폭력 사건에 대한 언론 태도와 시민 반응은 성폭력 피해 당사자의 '행실' 즉, 얼마나 '여성다움'을 잘 지켰는가에 더욱 집중할 때가 많다.

 

일례로 "늦은 밤 술에 취해 택시 타고 집에 가던 20대 여성이 성폭력을 당한" 상황을 가정해 보자. 언론이 이 성폭력 사건을 보도하면 많은 시민은 피해 여성의 '행실'을 꼬집으며 "밤늦게 술 먹고 혼자 택시 탔으니 피해자에게도 문제가 있다"는 식으로 생각한다. 이러한 여론은 '여성도 남성처럼 술 마시고 밤늦게 다닐 수 있다'와 같은 기계적인 성평등 논리로는 속 시원하게 설명할 수 없는 현상이다.

 

 

성별고정관념 깊은 사회가 만들어내는 젠더폭력

 

 

                               ▲ 영화 <더 스토닝> 영화 <더 스토닝>은 이란 여성 '소라야'의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소라야의 죽음을 애도하며 마을

                                  외부로 이 사건을 말해낸 사람은 그의 이모 자흐라뿐이었다.

                                  ⓒ 에스와이코마드

 
 

지난 6월 개봉한 영화 <더 스토닝>은 이슬람 문화권에서 행해지는 '투석형(죄인에게 여러 사람들이 돌을 던져 죽음에 이르게 하는 사형제)' 문제를 고발한다. 영화는 이란 여성 소라야가 투석형 당하는 과정을 통해 신의 이름으로 행해지는 이슬람 문화의 가족제도가 얼마나 반인권적인가를 보여준다.

 

영화에서 남편과 아버지는 '신'과 다름없고, 여성들은 '신'의 말 한마디면 하루아침에 죽음을 맞이할 수도 있다. 소라야의 남편은 자신의 의사대로 행동하지 않는 아내를 투석형 시키기 위해 음모를 꾸미고, 아내의 죽음 후에도 아무런 감흥이 없는 듯 보인다. 영화 배경인 이란의 가족 문화에 비춰보면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니다.

 

남편이 바람을 피우거나 폭력을 행사할 때 아내들이 반격하면 그것은 '남편을 존중하지 않는 행동'이 된다. 소라야의 아들 역시 남성이므로 그들의 어머니가 마을 사람들에게 비난받고 투석형에 처해지는 순간에도 아버지의 편에 서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아버지에게 '여성에게 존중받는 법'을 배우며 마을 남성들과 유대감을 형성해 나간다. 

 

아마도 <더 스토닝>을 접한 한국 관객들은 이란의 인권 실태에 문제가 있다고 판단할 것이다. 영화 속 여성들은 남성의 삶을 위해 필요한 존재일 뿐, 자신의 목소리로 살아갈 수 없다. 그러나 한국의 상황은 이란과 전혀 다르지 않다. 가정폭력 가해자들이 범행 이후 가장 많이 하는 변명은 자신의 아내가 "아내답게, 며느리답게, 엄마답게 행동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소라야의 남편과 다를 바 없이 신과 같은 '심판자' 입장에서 여성들의 삶을 재단하는 행동이다.

 

 

성폭력 근절, ‘차별과 권력’을 말하기부터 시작해야

 

최근 몇년간 성폭력범 처벌에 관한 법들이 무수히 많이 개정되었다. 시민의 공분이 일어나는 사건이 발생한 후엔 어김없이 관련법이 개정되곤 했다. 물론 이러한 법적인 사후 조치를 긍정적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법제도 개선이 바로 우리 주변의 무수한 성폭력 사건들을 근절할 묘안이 아님을 기억해야 한다. 성폭력은 성별 고정관념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 '성폭력 피해를 경험할 만한 여성'과 그렇지 않은 여성을 구분하는 시각이 존재한다는 것만으로도 한국사회는 성폭력의 심각성에 무감한 공간이다. 이 공간에서 한 개인의 젠더를 둘러싼 차별과 권력에 대한 말하기가 풍부해지고 존중된다면 성폭력은 예방될 수 있다. 이 공간의 성문화를 바꾸는 일이 나를 포함한 시민 모두의 몫임을 기억하자. 

 

 

 

덧붙이는 글 | 글쓴이 최지나는 한국성폭력상담소의 성문화운동팀 활동가입니다

 

 

 

Posted by 한국성폭력상담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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