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성폭력상담소는 성폭력 문제가 나와 멀리 떨어져 있는 뉴스 속 끔찍한 사건이 아니라 나와 내 주변의 일이라는 것을 생각해보기 위해 총 10회에 걸쳐 'Upgrade! 反 성폭력 감수성!'을 연재합니다. 성폭력을 둘러싼 고민과 궁금한 점, 그리고 시민들의 일상적인 경험을 나누며 우리의 인식을 점검했으면 합니다. 더불어 성폭력은 사회 구성원 모두가 함께 해결해야 할 문제라는 걸 공유하고 싶습니다. 본 기사는 '10대 딸이 집에서 성관계를... 이렇게 대처하세요 '라는 제목으로 08월 02일자 오마이뉴스에 실린 글입니다.

 

[Upgrade! 反성폭력 감수성!]

 

④ 내아이가 연애를? 성폭력이 발생할까 불안해요!

   : 십대의 성적자기결정권과 성폭력

 

 

정부는 지난 2월부터 학교폭력 척결을 선포하고 대대적인 '학교폭력철퇴' 정책 홍보에 나섰다. 범죄신고 전화뿐만 아니라 '스마트폰 메신저'와 같이 10대들에게 친숙한 학교폭력 신고 망을 개설하기도 했다.

 

그러나 학교폭력철퇴 정책의 한계는 뚜렷하다. 10대들이 왜 폭력 행동을 하고, 피해를 경험한 아이가 어떤 생활을 하는가에 대한 고민과 관심이 아닌 '학교 안 공권력 개입' 중심으로 마련됐기 때문이다. 학교는 아이들이 성장과 교육을 함께 경험하는 곳이다. '10대 범죄자 색출'을 연상시키는 이번 정책은 교육현장에서 실천하기엔 매우 단편적인 생각이다.  

 

그렇다면 왜 이런 정책이 등장한 것일까. 10대는 스스로 주체적인 판단을 못한다는 성인들의 불신 탓은 아닐까?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10대들의 폭력행동이 다시 반복되지 않도록 설명하는 것과, 먼저 엄벌 방침을 세우고 10대 행동을 규제하는 것은 차원이 다르다. 10대들의 폭력에 대한 모든 규정과 접근이 성인의 시각에서 이루어지면 오히려 많은 갈등이 생길 수 있다. 

 

특히 10대의 성적행동을 이야기할 때 '건강한 성' 개념을 미리 설정하고, 이에 맞지 않으면 폭력과 비행으로 규정하는 것은 적절한 성교육 방침이 아니다. 물론 10대들에게 타인의 의사에 반하는 성적 행동·성폭력 예방 교육은 확실하게 이뤄져야 한다. 그러나 이런 교육에 앞서 10대 스스로 본인의 정확한 욕구를 파악하는 훈련과 어른들이 만들어놓은 그릇된 성 가치관을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연습이 필요하다.

 

 

10대의 성행동을 상상하기 힘든 어른들

 

10대의 임신을 소재로 다뤘던 영화 <제니, 주노>(2005년 개봉)의 한 장면. 영화에서 제니가 자신의 임신 사실을 알고 고민을 하고 있는 모습.
www.JJ2005.com

 

A씨 사례는 10대 성폭력 예방을 위해 선행되어야 할 성적자기결정권 확립 교육이 어떻게 이뤄져야 하는지 돌아보게 한다. 

 

A씨는 외출하고 집에 돌아와 딸이 어떤 남자아이와 한 방에 있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그가 두 아이에게 왜 함께 있었는지 다그쳐 묻자, 남자아이가 성관계 사실을 털어놓았다.

 

A씨는 딸이 강간피해를 입었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무너지는 것만 같았다. A씨는 남자아이에게 사과를 받고 돌려보낸 후 산부인과에서 딸을 진찰받게 했다. 다음날 딸을 학교에 보내지 않은 A씨는 상담소로 전화를 걸어 고소 방법과 학교 규정상 징계방법을 물어왔다.

 

상담에서 A씨는, 딸이 남자친구라며 '가해 학생'을 두둔한 사실을 의아하게 여겼다. 그는 중학생인 딸이 어떤 마음으로 성관계를 했을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고 했다. 성에 대한 요즘 아이들의 사고가 많이 달라졌다지만, A씨는 내 아이가 합의하에 성관계를 할 것이라는 상상은 한 번도 해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성폭력 예방과 대처에 대한 인식이 확산되면서 성폭력 사건을 피해자 관점에서 적극적으로 해석하는 일의 중요성도 커졌다. 그러나 성폭력 사건의 피해자가 10대라면 상황은 달라진다.

 

성폭력 피해자의 인권 존중은 피해 당사자의 이야기를 경청하는 일에서부터 시작한다. 하지만 10대의 성폭력은 주변 어른들의 견해로 미리 재단되거나 침묵될 가능성이 있다. A씨의 사례는 자녀의 성경험을 알게 된 부모가 미리 성폭력이라고 판단하면서 시작된 갈등을 보여준다.

 

물론 A씨의 딸이 강간 피해자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10대는 부모님이 걱정할 것을 염려하는 등 여러 이유로 부모에게 성폭력 피해 사실을 숨길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10대들의 폭력과 성경험이 어른들에게 예측 불가능한 불안이라 해도, 그 불안이 사건을 경험한 10대 당사자들의 감정과 판단을 앞서 나가서는 안 된다.

 

▲ 중학생이 생각하는 연애상대와의 신체접촉 2010년 9월에서 11월까지 보건복지부와 인구보건복지협회에서 중학생 1290명을 대상으로 '중학생이 생각하는 이성친구와의 신체접촉 가능 범위'를 조사한 통계이다.(복수응답) 2011년 7월 발간 <중학교 교사를 위한 성교육 메뉴얼>p.107
ⓒ 인구보건복지협회

 

만약 내가 A씨와 같은 경험을 했다면, 가장 걱정되고 두려운 점은 무엇인지 스스로의 판단과정을 돌아보자. 당사자인 10대들이 (동의하에) 성관계를 했다고 말했는데, 왜 굳이 성폭력이 발생했다고 생각하는지 말이다. 

 

혹시 자녀들의 연애와 성경험을 '내 아이의 자유의지일 리 없다'고 판단하고 무조건 '성폭력'으로 설명하고 싶은 마음, 즉 자녀를 성적인 존재로 보지 않으려는 욕구 때문이 아닐까? 성폭력뿐만 아니라 다른 성적인 문제에서 10대들을 무기력한 존재로 규정한다면, 그 사건에 대한 적합한 판단 기회를 놓치게 된다. 

 

2010년 보건복지부 조사에 따르면 당시 성경험이 있는 중고생은 5.3%였다. 이처럼 이미 10대들이 성관계를 경험하고 있다면, 10대들의 성경험을 절대로 막아야 한다는 식의 발상은 실현 불가능하다. 오히려 10대들 스스로 자신의 성경험에 대해 올바른 판단을 내릴 수 있도록 조력하는 것이 어른들의 역할이다. 또한 또래 간에 발생할 수 있는 성폭력 상황을 단호하게 거절하고 벗어날 수 있는 내공을 키워주어야 한다.

 

사람은 누구나 성적인 존재다. 10대들은 자신이 성적인 존재인 것을 깨닫고, 목격하며, 경험하는 과정을 겪는다. 10대들의 성경험은 어른들의 언어로 '장난' '실수'일 수 있지만, 당사자에겐 선택이고 모험이며 놀이이기도 하다. '성폭력이다, 아니다' '자율이니까 괜찮다' '무조건 보호해야 한다'와 같은 '찬반'식의 논쟁을 벗어나, 10대 당사자의 연애와 성에 대한 이야기가 더욱 활발하게 이루어지는 문화가 만들어져야 한다. 

 

도덕적 잣대가 우선이 된 10대 성교육의 문제

 

 

한국의 성교육, 특히 10대 여성 대상 성교육은 도덕적인 가치판단을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사진은 10대의 임신을 소재로 다뤘던 영화 <제니, 주노>(2005년 개봉)의 한 장면으로 제니가 임신 사실을 알고 임신과 관련된 내용을 몰래 찾아보고 있는 장면.

www.JJ2005.com

 

 

그러나 한국의 성교육, 특히 10대 여성 대상 성교육은 도덕적인 가치판단을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이런 방식의 성교육은 성폭력 피해를 겪었음에도 '(나는) 도덕적으로 훼손되었다'는 생각을 갖게 해 성폭력 피해 사실을 말하지 못하게 한다.

 

예를 들어, 어떤 10대 여성이 남자친구와 성관계를 한 사실이 주변에 알려질 경우, 그 10대여성은 '비윤리적인' 사람이 되어 10대들 사이에서 따돌림과 성폭력, 괴롭힘을 경험하기도 한다.

 

성관계 사실만으로 그 여성을 괴롭힌 가해 학생들의 잘못도 있으나, 그에 앞서 도덕적 가치판단에만 집중된 성교육이 주는 폐해가 있었다는 걸 인지해야 한다. 10대들에게 한국사회 성문화와 성차별 문화에 대한 전반적인 설명 없이 '10대의 성적 경험은 나쁘다'는 판단만 주입한 결과이다.

 

A씨에게도 딸에게 어제와 오늘 사이에 발생한 갈등은 무엇이며, 그 갈등 해결 방법은 무엇인지 직접 떠올려 볼 것을 권유하고 경청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A씨의 우려는, 딸의 '혼전 순결'을 걱정하는 소위 '보수적'인 판단 때문일 수도 있다. 여기서 보수적이라는 것은 딸이 여성이기 때문에 더 '성'과 관련된 것들을 몰라야 하고, 결혼과 관계된 성경험만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을 말한다.

 

이러한 생각들은 단순히 보수적이라서가 아니라, 여성들의 성적 의지와 실천에만 엄격한 잣대를 가하는 성불평등 사회의 산물이자 원인이기에 잘못된 것이다. 이렇게 여성과 남성에게 다르게 적용하는 '윤리적 잣대'는 (피해자의 95% 이상이 여성인) 성폭력을 발생시키는 원인이기도 하다. 아직도 한국사회에서 성폭력 사건이 발생했을 때 "피해자가 유발했다"는 논리가 팽배한 것도 같은 맥락에서 나오는 현상이다.

 

 

솔직하게 성을 이야기하는 연습이 성폭력 예방 지름길

 

 

 

▲ 영화 <주노> 10대인 '주노'는 임신 이후 출산을 어떻게 할것인지 고민을 시작한다. 10대 여성의 임신과 출산에 대한 고민을 가족들이 함께 나누는 장면들이 인상적인 영화이다.
ⓒ 미로비젼

 

 

'야동'이든 친구 이야기든 어떤 경로로 '섹스' 정보를 접한다고 하더라도, 10대들에게 섹스는 '금기'처럼 여겨진다. 특히 10대 여성들에겐 임신 가능성(비혼모 되기)은 섹스와 함께 고민되는 문제다.

그렇다면 A씨 딸의 사례에서 '강간이 아닐까'라는 의문을 잠시 미뤄두고, 딸이 여러 고민 끝에 남자친구와 성관계를 하겠다는 결심을 왜 하게 되었는지 물어보는 일이 중요하다. 그녀가 고민하는 과정에서 느낀 감정들을 함께 이야기해보는 일은, 앞으로 경험하게 될 연애와 그 속에서 발생할 자기 몸과 관련된 선택들에서 더욱 현명해지는 밑거름이 된다. 

 

물론 자유로운 결정이더라도 연애관계에서 발생하는 세세한 권력의 맥락 안에서는 폭력일 수 있음을 분명히 알려주어야 한다. 성차별적인 성문화 안에서는 A씨의 딸뿐만 아닌 성인 여성도, 연애관계에서 상대방의 강요에 의한 성관계를 '폭력'으로 인식하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따라서 연애관계에서 조금이라도 이상한 느낌이 들고 내키지 않는 선택을 하는 순간이 온다면, 좋아하고 신뢰하는 사람의 제안일지라도 성적인 요구를 거절하는 용기를 갖도록 독려해주어야 한다. 물론 그만큼 연애관계에서 자신의 판단과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하기를 바라야 한다. 

 

 

* 본 기사에 등장한 A씨의 사례는 상담 사례를 각색한 내용입니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 최지나는 한국성폭력상담소의 성문화운동팀 활동가입니다

 

 

출처: 10대 딸이 집에서 성관계를... 이렇게 대처하세요.

 

 

 

 

Posted by 한국성폭력상담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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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줄리엣 2018.09.30 19:4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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