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젠더감수성과 성교육/Upgrade! 反성폭력 감수성!

[Upgrade! 反성폭력 감수성! ⑦] '피해자 답지' 않으면 성폭력이 아니라고?

[Upgrade! 反성폭력 감수성!⑦]

'피해자 답지' 않으면 성폭력이 아니라고?

 : 피해자에 대한 고정관념으로 인한 또 다른 피해

 

 

한국성폭력상담소는 성폭력 문제가 나와 멀리 떨어져 있는 뉴스 속 끔찍한 사건이 아니라 나와 내 주변의 일이라는 것을 생각해보기 위해 총 10회에 걸쳐 'Upgrade! 反 성폭력 감수성!'을 연재합니다. 성폭력을 둘러싼 고민과 궁금한 점, 그리고 시민들의 일상적인 경험을 나누며 우리의 인식을 점검했으면 합니다. 더불어 성폭력은 사회 구성원 모두가 함께 해결해야 할 문제라는 걸 공유하고 싶습니다. 본 기사는 싫다는데도 ' 성폭력 당한 제가 왜 욕을 먹나요' 라는 제목으로 2012년 09월 27일자 오마이뉴스에 실린 글입니다.

 

 

 

 <눈물도 빛을 만나면 반짝인다>. 이 책은 생존자 본인이 말하는 성폭력과 치유, 생존에 관한 이야기이다.
ⓒ 이매진

올 여름 한국성폭력상담소에 <눈물도 빛을 만나면 반짝인다>라는 제목의 책이 배달되었다. 하얀 바탕에 반짝이는 표지를 가진 이 책의 부제는 '어느 성폭력 생존자의 빛나는 치유 일기'였다. 지은이는 친족 성폭력 생존자로 본인의 경험과 치유의 과정을 한국성폭력상담소 소식지에 4년간 연재했던 은수연씨(가명)다. 은수연씨는 친족 성폭력 피해 생존자로 책을 통해 본인의 경험과 치유의 과정을 담담하고도 용기 있게 밝히고 있다.

성폭력이 일어났을 때 대부분의 피해자는 수많은 의심과 비난, 자책에 시달린다. 지은이 역시 피해를 겪는 과정에서 주위의 도움을 요청하지만 의심하고 비난하는 시선으로 또 다른 고통을 겪는다.

그러나 이러한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지은이는 다른 생존자들처럼 삶의 주체성과 생명력을 놓지 않고 사건을 해결하고 삶의 희망을 되찾고자 노력한다.

이 책은 그동안 언론이 선별적으로 불러내는 성폭력 피해자로서가 아니라 생존자로서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는 점에서 남다른 의미를 가지고 있다.

성폭력 '생존자'란 고통과 좌절, 무력감에 사로잡혀 있는 '피해자'라는 말에 갇히지 않고 시시각각 변화하여 삶을 일구어 나가는 적극적인 주체임을 가리키는 말이다. 실제 성폭력 생존자들은 훨씬 많지만, 우리 사회는 여전히 성폭력 피해 경험을 가진 사람을 나약하고 수동적인 이미지로만 고정시키고 싶어한다.

 

 

비난과 의심에 시달리는 성폭력 피해자

 

성폭력은 오래전부터 있어왔던 범죄임에도 아직까지도 10% 미만의 신고율을 보이며 성폭력 피해를 입었을 경우에도 주위에 말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 이유는 성폭력을 바라보는 사회의 시선 때문이다.

한국 사회는 기본적으로 성폭력 피해를 숨겨야 하는 수치로 바라본다. 법적으로는 강간 뿐 아니라 강제추행, 성희롱 역시 범죄로 신고하고 가해자를 처벌할 수 있는 조문이 규정되어 있지만 막상 피해자가 자신이 성폭력 피해를 입었다고 얘기할 경우 오히려 가장 먼저 듣는 반응은 '고소할 정도는 아니다'라거나 '비밀로 해라'라는 말이다.

사회가 성폭력을 사소하고 개인적인 범죄로 치부하기 때문에 이러한 반응을 이겨내고 생존자가 고소를 결심할 경우 사람들은 피해자가 독하고 행실이 의심스럽다고 비난하기 시작한다.

이러한 시각은 성폭력 범죄에서 2차 피해를 필연적으로 동반할 수밖에 없다. 2004년 밀양지역 집단 강간 사건에서 수사 경찰이 피해자들에게 "밀양의 물을 다 흐려놓았다"라고 폭언을 한 경우나 2011년 고려대학교 의대생 성추행 사건에서 가해자의 어머니가 피해자의 사생활이 문란하다는 내용을 포함한 설문조사를 한 것이 대표적이다.

비록 이들에 대한 손해배상청구와 명예훼손 혐의가 인정되었다고는 하나 이들이 가지고 있는 시각이 한국 사회 전체의 시각과 특별히 다르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이에 피해자들은 고소를 하고 싶어도 가해자 측뿐 아니라 수사재판기관 담당자에게서도 보이는 피해자에 대한 모욕, 의심, 그리고 합의 종용 등의 부담감을 떨칠 수 없게 된다.

성폭력 피해자의 행실을 비난하는 시각은 피해자가 노래방 도우미이거나 성매매 종사자일 경우 성폭력을 인정하지 않는 데서 극명히 드러난다.

해당 업종에 종사하는 것과 성폭력 피해를 입는 것은 별개의 건인데도 이를 이해하지 못하는 사회로 인해 피해자가 자살로 자신의 결백을 주장한 작년 사건은 한국 사회의 참담한 현실을 알려준다. 당시 피해자는 재판 과정에서 자신의 행실을 묻는 심문에 충격을 받고 판사로부터 모욕감을 느꼈다며 자살했다.

피해자가 자살로 자신의 결백을 주장했던 다른 배경은, 충분히 저항하면 강간은 일어나지 않는다는 생각 때문이다. 강간신화가 널리 퍼져있는 한국 사회에서 올바른 강간 피해자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죽을 만큼 저항을 했어야 한다. 그런데 이것이 확인되지 않으면 피해자로 인정받을 수 없는 것이다.

실질적으로 가해자로부터 살해 위협을 느끼는 경우 강간만으로 최소한으로 피해를 줄이는 것이 현실적이고 현명한 판단일 수 있다. 사회에서 여성의 강간을 살인보다 더 큰 피해로 바라보는 시각을 견지할 경우 생존한 피해자의 피해는 의심받는다.

실제로 강간 피해를 입은 피해자에게 "강간 피해자는 정신병원에 입원할 정도로 정신이 이상해지고 충격을 받는다는데 당신은 왜 멀쩡한가?"라고 의심하는 판사가 있었다. 강간 피해를 입은 피해자는 평생을 평범하게 영위할 수 없으리라 믿는 주변인들 역시 존재한다.


성폭력 피해자에 대한 고정관념 깨야

 

 한국성폭력상담소는 성폭력에 대한 이해를 높이고 성폭력 피해자에 대한 고정관념을 변화시키기 위해 매년 <성폭력생존자말하기대회>를 개최하고 있다.
ⓒ 한국성폭력상담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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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피해자들은 다양한 반응을 보일 수 있다. 피해 상황에서 극렬히 저항할 수도 있고 더 큰 피해를 막기 위해 전략적으로 저항을 멈출 수도 있다. 또한 공포와 불안으로 일상적인 생활을 보내는데 어려움을 겪을 수도 있지만 적극적으로 사건 해결을 위해 상담소에 전화를 걸고 신변 보호를 요청 할 수도 있다.


또한 무기력할 수도 있지만 화를 내고 분노할 수도 있고, 사건해결과정에서 시혜자로서가 아니라 사건 당사자로서 불쾌감을 표현할 수도 있다. 실제 상담을 하다보면 커다란 감정기복을 보이는 피해자도 있고 담담하게 사건해결에 집중하는 피해자도 있다. 피해자들은 한 시점에서는 피해에 함몰되어 있을 수도 있지만 변화 가능한 주체이고 피해 경험과 무관한 삶을 이어나가기도 한다. 이 모든 것은 자연스러운 반응이다. 특정한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고 해서 피해가 없다고 볼 수는 없는 것이다.

따라서 피해자를 순결하고 무기력한 피해자로 과도하게 이미지화하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이다. 성폭력은 비일상적이고 통제 불가능한 범죄라기보다 매우 일상적으로 일어나는 사회문화적인 범죄이다.

한국성폭력상담소는 매년 '성폭력생존자말하기대회'를 연다. 안전한 공간에서 말하기를 통해 자신의 피해 경험을 공감 받고 지지받는다는 것은 당사자에게 치유의 장이 된다. 또한, 사람들에게 성폭력 피해와 생존자에 대한 이해를 높이고 고정된 상을 변화시키는 적극적인 장소가 되기도 한다.

올해로 9회째를 맞는 성폭력생존자말하기대회는 10월 말에 열린다. 피해자에 대한 고정된 이미지 상에서 벗어나는 것, 그것이야말로 성폭력을 이해하는 첫걸음이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는 최영지는 한국성폭력상담소 성문화운동팀 활동가입니다.


 

출처: 성폭행 당한 제가 왜 욕을 먹나요?

       [Upgrade! 反성폭력 감수성!⑦] 피해자에 대한 고정관념으로 더 큰 피해   (오마이뉴스 2012, 09,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