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고도 짧았던 상담소에서의 인턴 두 달
* 2015년 하계 인턴 정고은 님의 후기입니다.
△ 인턴활동발표
2015년 6월 22일, 인턴 첫 출근이 벌써 어제 같은데, 길고도 짧았던 상담소에서의 인턴 두 달이 지났습니다.
첫 출근 날, 상담소 건물 앞에서 ‘과연 이 건물이 상담소 건물인가..? 내가 잘 찾아온건가..?’라며 고민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지금은 예쁘게 지은 새 건물로 이전하였지만, 저의 첫 출근을 맞이했던 구 건물의 출근길도 기억에 많이 남습니다.
인턴 초반에는 상담소에서 출간한 다양한 책들을 많이 읽었습니다. 이 책들로 인해, 상담소에서 중요하게 다루는 반성폭력 운동과, 상담소의 역사, 상담소의 이념 전반에 관한 이야기들을 빠르게 이해할 수 있어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성폭력 뒤집기’는 상담소의 역사를 기록한 책이기에, 읽는 내내 가슴이 벅찼습니다. 저도 앞으로의 상담소의 역사에서 아주 작은 부분이라도 함께할 수 있어 무척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또한 ‘우리들의 삶은 동사다’를 읽으며 친족성폭력피해생존자들의 이야기도 들을 수 있었습니다. 제 나이 또래의 친구들처럼 고민하고, 방황하는 모습을 바라볼 수 있었습니다. 이 이야기가 ‘감추어야 할, 금기시되어야 할’ 이야기가 아니라, ‘이겨낼 수 있는, 치유할 수 있는’ 이야기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인턴기간 중에 발매된 ‘그것은 썸도 데이트도 섹스도 아니다’를 읽고 쓴 감상문은 ‘뛴다’ 블로그에 올라가기도 했습니다. 독서를 통해 평소 생각하지 못했던 다양한 이야기들을 배울 수 있어 무척이나 유익한 시간이었습니다.
인턴 기간 내내 저는 한 번의 포럼과 한 번의 집담회, 한 번의 축제, 한 번의 기자회견을 다녀왔습니다.
6월 28일 서울 시청에서 열린 ‘퀴어문화축제’와 7월 3일 인권재단 사람에서 열린 ‘장애/여성 재생산권 새로운 패러다임 만들기’ 1차 포럼, 7월 23일 한국 여성의전화에서 열린 데이트폭력 집담회 ‘친밀한 그러나/ 그래서 치명적인’, 8월 13일 서울 광화문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열린 ‘여성가족부 규탄 기자회견’까지 상담소 인턴을 통해 다양한 외부활동을 할 수 있어 즐거웠습니다.
특히 처음 참여한 퀴어문화축제는 더운 날씨에 많이 힘들었지만, 다양한 볼거리를 볼 수 있어서 무척이나 인상적이었습니다. ‘퀴어’라는 이름이 대표하듯 그들은 별나고, 독특한 사람들로서 스스로가 그를 재전유하고 있고 사람들은 이에 대한 혐오감을 표출하기도 합니다. 나와 다르기에, 혹은 ‘독특하고 별난 사람들’이라는 이유만으로요. 그러나 ‘퀴어’라는 단어의 맥락을 이해하면 퍼레이드나 옷차림, 행동까지 이르는 외면의 모습들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안타깝게도 현 사회는 ‘이해’하기보다는 ‘배척’하는 방식을 택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퀴어’는 주변화되고, 이해하기 어려운, 이해할 수 없는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가까이서 바라본 그들은 평범한 일상의 보통의 사람들입니다. 축제에 참가하며 저의 내면 속 깊은 편견들이 사라지는 것을 느꼈습니다. 다양한 사람들과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낸 것 같아 저에게는 무척 좋은 기억으로 남을 것 같습니다.
재생산권 포럼은 개인적으로 제가 참석한 세 번의 기회 중 가장 유익했던 것 같습니다. 여성에게 전가되는 낙태의 책임과 국가가 통제하는 여성의 재생산권과 몸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본 시간이었습니다. 누구나 할 수 있지만, 혹은 누구나 하고 있지만, 수면위로 드러나기 어려운 주제인 ‘성관계와 재생산’에 대해 올바른 담론을 형성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아쉽습니다. 모든 피임은 완벽하지 않기에 저 또한 예비 범죄자가 될 수 있는 것이겠죠. 여성이기에, 재생산이 가능한 몸이기에. 섹슈얼리티와 재생산의 이중규범을 강요당하는 여성들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데이트폭력 집담회에 참석해 피해자들을 보며, 사회학을 공부하는 학생으로서 ‘진짜 진보는 무엇인가’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진보, 특히나 운동권 내에 퍼져있는 여성혐오의 실태를 바라보며 이를 ‘진보’라는 이름으로 포장할 수 있는 것인가 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페미니스트를 자처하는 남성들이 데이트폭력의 가해자가 되고, 페미니스트들이 피해자가 되는 이 현실, 운동사회 내에서 오랜기간 지속된 여성혐오의 목소리를 바라보며 한국사회에서 ‘진보’는 과연 존재하는가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강한 마초이즘을 동반하는 현 한국사회의 진보, 겉으로는 페미니즘을 주창하며 은근한 남성우월주의를 포방하는 그들의 모습을 바라보며 참으로 답답함을 많이 느끼게 된 것 같습니다. 또한 마초이즘과 가부장적 분위기가 사회에 은밀하고 교묘한 방식으로 변화되어 전가되는 것을 바라보며, ‘여성학’이라는 길을 걷는 제 자신에게 단단한 동기를 부여해주었습니다. 저 하나가 공부를 시작한다고 세상이 변하지는 않겠지만, 세상을 변화시킬 사람들을 만들어 가고 싶다는 다짐을 하게 되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인턴 마지막 날 다녀온 ‘여성가족부 규탄 기자회견’은 여성가족부가 대전시 성평등조례에서 ‘성소수자’ 관련 내용을 삭제하도록 요구한 것을 규탄하기 위해 열렸습니다. 한 나라의 대표부처가 성소수자를 포괄하지 못한 협소한 개념으로 ‘양성평등’을 추진하는 것은 사회에 존재하는 성소수자들을 인정하지 않는 것입니다. 진보하는 사회 속에서, 후진적인 법 정책을 펼치는 여성가족부의 대전시 성평등조례 개정 요구를 바라보며 안타까운 마음이 많이 들었습니다.
두 달의 인턴 기간동안, 상담소는 이사를 준비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신축건물로 이사를 하게 되었습니다. 상담소는 이 장소에서 새로운 시작을 하게 되겠지요. 그리고 그 새로운 시작에 저도 함께 할 수 있어서 무척이나 기뻤습니다. 상담소의 긴 역사에 점이라도 하나 찍을 수 있겠지요?! :)
인턴 기간동안 친절하게 잘 챙겨주신 모든 선생님들에게 감사드립니다. 여기서 끝이 아니라 더 좋은 인연으로 다시 한 번 만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정말로 감사했습니다 선생님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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