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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담소는 지금/국제연대활동

아홉 번째 EGEP워크숍을 다녀와서

아홉 번째 EGEP워크숍을 다녀와서



2016년 1월 8일 아침 10시, 이화여대 컨벤션 홀은 들뜨고 활기찬 사람들로 북적였습니다. 제 9차 EGEP의 워크숍이 열리는 첫 날이었기 때문입니다. EGEP란 Ewha Global Empowerment Program의 약자로, 아시아와 아프리카의 여성 활동가들의 교육과 역량강화를 목표로 진행되는 프로그램입니다. “변화를 만드는 초국적 여성연대 (Voices from Feminist Activism in Asia and Africa)를 주제로, 이번 9차 EGEP에 참가한 아시아, 아프리카와 한국의 여성 활동가들과 여성학자들, 젠더 전문가, 정책 전문가들이 모여 8일부터 9일까지 워크숍을 열었습니다. 워크숍에서는 각 나라의 여성인권 이슈와 여성운동의 현장을 공유하고, 각국의 이슈에 대해, 그리고 각국의 이슈를 넘어 연대하는 것에 대한 토론이 이뤄졌습니다. 개인적으로 여성학 책을 통해 접했던 필자들을 직접 만나 이야기도 나눌 수 있는 흥분된 시간이었습니다.


<사진 설명: 9th EGEP Workshop의 개회선언>


<사진 설명: 9th EGEP 참가자들 (제공: 아시아여성학센터 ACWS)>

<사진설명: 상담소 인턴 하은과 지리산 (제공: 아시아여성학센터 ACWS)>


첫 날은 세 개의 세션으로 나뉘어 진행되었습니다. 첫번째 그룹의 주제는 Gender Based Violence, 두 번째 그룹의 주제는 Peace and Women, 세번째 그룹의 주제는 Gender Equality였습니다. 저는 이 중 첫번째 세션을 참관했는데, 첫 세션의 마지막 순서로 한국성폭력상담소의 발표가 있었습니다. 그 외에도 인도 참가자의 염산 테러 생존자들에 대한 연구, 중국 참가자의 현대 중국에서의 성매매와 여성의 성적 권리, 케냐 참가자의 케냐 공동체에서의 여성 할례에 대한 발표가 이뤄졌습니다.


<사진 설명: 발표 내용을 경청하는 참가자들 (제공: 아시아여성학센터 ACWS)>


염산 테러는 한국에서는 간혹 뉴스를 통해 접하는 끔찍한 사건 정도였지만 인도에서는 여성들에게 행해지는 너무도 만연한 폭력이었습니다. 또 여성 할례의 경우, 대부분의 아프리카 나라들에서는 여전히 여아들에게 일어나는 폭력이지만, 한국 사회에서는 자주 접하지 못했던 폭력의 형태였습니다. 

인도 참가자와 케냐 참가자 그리고 한국성폭력상담소의 발표를 들으며, 여성에 대한 폭력, 젠더에 기반한 폭력은 어느 사회에서나 공통적으로 발생하고 있는 전세계적 이슈임을 다시 한 번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한편으로 젠더에 기반한 폭력은 각 나라와 사회, 문화권마다 그 양상이 다르게 나타나고 있다는 것을 새롭게 깨닫기도 했습니다. 젠더는 사회의 모든 영역에 걸쳐 있는 이슈임을 다시 한 번 생각하며, 각 사회와 문화권에서 다르게 표출되는 여성 폭력을 멈추기 위한 근본적인 대책은 무엇일까, 나는 어떤 일을 할 수 있을까 등 많은 고민을 할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각 사회 구석구석, 여성들의 숨겨진 이야기들을 드러내놓고 이야기할 수 있는 장이 마련되고, 다양한 문화권의 사람들이 “그녀들의” 이야기를 “우리들의” 이야기로 나누고, 알아가는 과정이 참 의미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사진 설명: 한국성폭력상담소의 역사와 활동을 발표하는 영서>



첫 세션의 마지막 순서로 한국성폭력상담소의 발표가 있었습니다. 김영서 활동가의 시원시원한 발표 시간을 통해 상담소의 시작과 "herstory", 상담소가 지금까지 해온 일들과 현재 하는 일들, 더 나아가 상담소가 한국 사회에 미친 영향들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1991년, 한국 최초의 ‘성폭력 전문 상담기관’이라는 이름을 내걸고 설립된 상담소의 출발부터 그 이후로 2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숨 가쁘게, 열정적으로 달려온 과정은 다시 들어도 벅찬 순간이었습니다. 처음 상담소를 개소했을 때 상담 전화가 올지 걱정했지만 첫날부터 폭주했던 상담전화 에피소드부터 한국 사회의 크고 작은 성희롱/성폭력 사건들, 상담소의 지원과 연대, ‘성폭력’이라는 단어 자체가 없었던 시절에 성폭력이라는 개념을 계속해서 형성해가고 성폭력에 대한 남성중심적인 통념을 해체해 온 것까지, 상담소에 대한 알찬 소개를 한 자리에서 들을 수 있었습니다. 상담소의 여성주의상담팀, 성문화운동팀, 사무국, 부설 피해자보호시설 <열림터>와 연구소 <울림>이 어떤 활동을 하고 있는지 상세히 들을 수 있는 기회였습니다. 발표가 끝난 뒤 질문과 토론 시간에 EGEP 참가자 중 한 분이 성폭력의 개념에 대한 좋은 질문을 해 주셔서, 우리가 성폭력의 정의와 범주를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지 생각해볼 수 있는 시간도 가졌습니다.


워크숍에서는 공용어로 영어를 사용했는데, 미국식 영어에만 익숙했던 저는 아시아의 다른 지역과 아프리카에서 온 활동가들이 쓰는 영어를 알아듣기 힘든 부분도 있었습니다. 그렇기에 더욱 열심히 귀기울여 참가자들의 발표를 들었습니다. 지금까지 책으로 접해오던 여성에 대한 논의들을 현장 활동을 토대로 한 발표와 질문들, 토론하는 것을 보니, ‘탁상공론이 아닌 현장에 기반한 여성운동가들의 논의들이 현실적인 상황을 토대로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구나.’ 싶어 감동을 받았습니다.


<사진 설명: 9th EGEP 참가자들 2(제공: 아시아여성학센터 ACWS)>


또한 한 나라의 해결책이 다른 나라들에 그대로 적용될 수 없는 상황들도 토론을 통해 알게 되면서 각 문화권에 따른 차이와 그에 따른 다양한 연구가 더 많이 이뤄져야할 필요를 깨닫기도 했습니다. 이와 같은 문제제기와 질문이 오갈 수 있는 장이 더 많이 형성돼야 하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장에서 상담소를 소개하고 나누는 발표를 들으며, 다른 나라에는 성폭력상담소가 존재하는지, 운영되고 있는지, 운영된다면 어디서 어떻게 일을 하는지도 궁금했습니다. 앞으로 이러한 나눔의 장이 더 커지고, 성폭력상담소들의 국제연대의 장이 만들어진다면 더욱 많은 여성들과 그들의 상황이 공유될 것이라는 기대도 가져봅니다.


그때, 그 자리에 저는 또 어떤 모습, 어떤 역할로 함께 하게 될지 기대해주세요.



이상 한국성폭력상담소 인턴 손하은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