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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끌시끌 상담소

하은이 전하는 8주간의 상담소 인턴 후기

하은이 전하는 8주간의 상담소 인턴 후기



안녕하세요, 인턴 손하은입니다. 12월부터 2월까지, 8주간의 상담소 인턴 기간이 끝났습니다. 첫 출근 날, 상담소 위치를 지도에 찍고 찾아가면서 설레던 마음이 생생한데 어느새, 끝났어요. 이 글은 그간 상담소에서 함께했던 일들을 활동별로 묶어서, 가장 기억에 많이 남는 순서대로 정리해보았습니다.






 

제일 먼저 <그건 강간입니다> 캠페인이에요. 경희-씨티 NGO 인턴십 프로그램에서 한국성폭력상담소로 배정받기 전에, 저는 이미 기획단으로 활동을 시작한 상태였어요. 인턴으로 활동하게 되면서부터 캠페인이 인턴 활동의 일환으로 합쳐지게 되었고요. 아직도 기억이 나는 에피소드가, 이 인턴십 프로그램에서는 배정된 NGO가 어디인지 출근하기 이틀 전에 알려주었어요. 그런데 저는 배정 단체가 발표되는 날 하루 전에, 상담소에서 기획단 회의를 하다가 이곳으로 인턴십 배정을 받았다는 사실을 전해 듣게 되었어요. 내가 홈페이지에 종종 (사실 자주) 들어가곤 하는, 한국성폭력상담소에서 인턴을 하게 되었다니! 마치 선물처럼 미리 그 사실을 알게 되었던 그 때, 정말 놀라기도 했고 기뻤었는데, 지금 떠올려도 기분 좋은 기억이네요.


<그건 강간입니다> 기획단은 처음에 만나서 많은 회의를 했어요. 초반에는 한꺼번에 회의를 하다가 대략적인 개요를 이야기하기 시작하면서 목요일에는 간담회 팀, 토요일에는 자료조사팀으로 회의 시간을 나누었어요. 우리가 이 캠페인을 통해 목소리 높여 말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어떤 방향으로 그것을 풀어나갈 것인지, 달성 가능한 가시적인 목표 설정 등 많은 이야기들이 오갔어요. 개인적으로 이런 행사나 캠페인을 기획하는 과정에 참여한 것이 처음이었기에 초반에 회의할 때는 참 어리바리했던 것 같아요. 처음에는 다들 이것저것 아이디어를 많이 내고 이야기하면서 방향을 잡아가는데, 그 상황에서 저는 감이 하나도 안 오는 거예요. 지금 사람들이 어디쯤 이야기하는지도 모르겠고, 지금 이 시점에서 나는 무슨 얘기를 해야 할지도 모르겠고, 그러다 보니 내가 분명히 이 캠페인의 취지에 전적으로 동의하고 이와 관련에서 할 말이 있어서 지원한 건데 딱히 머릿속에 할 말도 없어지는 것 같고, 그랬어요. 생각나는 것이 있어도 이런 얘기를 해도 되는 건지 망설여지기도 했고요. 또 기획단들이 여성주의에 대한 논의를 할 때는 어느 정도까지는 알아듣지만 어느 선부터는 알아듣지 못하는 부분도 있었어요. 그러니까, 그분들이 말하는 여성주의적 문제의식을 제가 이해하지 못했기에 알아듣지 못했던 것이겠죠. 하지만 혼란스러운 와중에서도, 제가 회의 때 두세 마디 밖에 안 해도 기획단으로서 계속 참여할 수 있었고, 회의에 지속적으로 참여하고 이야기해나가면서 점점 감이 잡힌 것 같아요. 이렇게 일을 기획하고 이렇게 실행에 옮기고 이렇게 진행해나가는 것이구나, 하고 볼 수 있고 참여할 수 있어서 정말 좋은 경험이었어요. 무엇보다 이 주제에 관심을 가지고, 거기에서 그치지 않고 활동을 하는 열정 있는 사람들을 만나게 된 소중한 기회이기도 했고요.



며칠 전, 2월 14일 밸런타인데이에는 연세로에서 <동의하고 하는 행진>이 있었습니다. 기획단이 초반에 했던 이야기 중, 측정 가능한 목표로서 우리의 캠페인 활동이 보도되는 매체의 수를 세자고 이야기했었는데요. <동의하고 하는 행진>이 끝난 뒤 여러 매체들을 통해 보도가 되는 것을 보면서 초반에 기획단들과 했던 그 이야기가 생각이 나더라고요. 언제 여기까지 행진을 진행해왔나, 하는 벅찬 감정이 먼저 들었고요. 여러모로 보람되고 유의미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우리가 지하철에 타서 아무 생각 없이 스마트폰으로 접속하는, 또는 사무실이나 집에서 별 생각 없이 접속하는 포털 사이트에서 ‘댓글이 가장 많이 달린 뉴스’ 1위에 랭크되고, 메인 화면에 보여지고, 여러 매체들을 통해 한 번이라도 더 보도되고, 아무 생각 없이 스크롤을 내리는 페이스북에서 한 번이라도 더 접할 수 있게 됨으로서 사람들이 동의와 성관계, 강간에 대한 문제의식을 단 한번이라도 들을 수 있는, 처음일지라도 그 문제의식을 접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냈다는 부분이 참 중요하고 중요한, 이번 캠페인의 성과 중 하나라고 생각해요.





 두 번째로는 수요시위를 꼽았어요. 출근 첫 주에 인턴십 프로그램 담당자인 감이활동가와 O.T.를 하면서 제가 수요시위를 기획/진행한다고 해서 진짜 속으로 '헉' 했어요. "기대돼요"하고 말은 했는데, 속으로는 ‘진짜 내가 이걸 어떻게 하지’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근데 못한다고, 안 하겠다고 할 수도 없는 일이고요. 무엇보다 내가 그 동안 한 번도 있어보지 않았던 자리, 시도해보지 않았던 활동이라서 ‘내가 잘 할 수 있을까?’ 라는 막연한 두려움이 컸던 것 같아요. 하지만 그런 두려움이 드는 동시에 ‘내가 한 번도 해보지 않은 일인데, 잘할지 못할지 어떻게 알아? 한번 시도해보면 안되나? 잘 해낼 수도 있을 것 같아‘, 하는 어떠한 기대감과 자신감이 생겼던 것도 사실이었어요. 그래서 그냥 했어요. 전체 기획과 진행은 감이와 함께했고, 저는 성명서를 열심히 쓰고, 피켓 문구를 열심히 떠올리고 손 피켓을 열심히 만들었어요.




시위 당일, 평화로에 갔는데 속으로 꽤 떨렸어요. 그래도 ‘그냥 열심히 해보자, 수요시위의 의미를 되새기며 힘차게 진행해보자’하고 했어요. 그날은 꽤나 추웠는데, 긴장해서 그랬는지 추운지도 잘 몰랐어요. 그 날의 문화공연 순서로 세월호 유가족들과 시민들로 구성된 <4.16 합창단>이 와서 노래를 해 주셨는데, 국가로부터 외면당하고 상상하지 못할 아픔을 겪은 분들이, 일본군’위안부‘의 아픔을 공유하고 함께하고 있음을 이야기하셨어요. 이곳에 계신 할머니들이 결코 혼자가 아니며 우리가 함께하고 있고 많은 시민들이 함께하고 있다고 말씀하신 그 연대의 의미가 마음을 저릿하게 했습니다. 수요시위의 마지막 순서로 성명서를 낭독하는데, 같이 낭독하기 위해 옆에 계신 지리산이 너무 든든했고요. 성명서를 읽다 보니 가슴 안에서부터 불이 올라오는 그런 느낌이 들었어요. 큰 소리를 내어 읽다보니 이 이슈가 점점 마음으로 이해되고 이 이슈에 마음으로 접근하게 된다는 느낌이었어요. 제가 성명서의 앞부분을 읽고 뒷부분을 지리산이 읽으셨는데, 어쩜 그렇게 힘차고 당당하고 무게 있게 읽으시던지, 본받고 싶었던 시간이었습니다. 수요시위를 마친 후 밥을 먹고 지리산이 소감이 어떤지 물어보셨는데, 일단 속이 후련하고, 기회가 있다면 다음에 또 하고 싶다고 답했던 기억이 나요. 사실 이번 수요시위에 참여하기 전까지 일본군’위안부‘ 이슈를 그렇게 관심 있게 지켜보지 않았어요. 수요시위에 대해서도 잘 몰랐고요. 그런데 인턴으로 근무하는 기간 동안 12.28 한일외교장관회담이 벌어지면서 군’위안부‘ 이슈가 매우 부정적인 방향으로 불거졌습니다. 따라서 그에 대한 문제점을 진단하는 긴급 토론회에 참석하고, 그에 대응하는 일본군’위안부‘ 합의 무효를 주장하는 여성계 기자회견에 참석하고, 수요시위를 기획하고 진행하고 성명서의 초안을 작성하게 되면서, 여러 기사와 성명서들을 찾아보고 읽게 되었어요. 그런 과정 속에서 군’위안부‘ 이슈를 더 알게 되고 피해 여성들이 진정으로 외치고 있는 것은 무엇인지를 이해하게 되는 감사한 계기가 되었습니다.





다음으로는 외부행사입니다. 먼저 이화여대 아시아여성학센터가 주관한 <아홉 번째 EGEP(Ewha Global Empowerment Program) 워크샵>은 제게 굉장히 흥분되는 시간이었어요. 작년 여름부터 여성주의의 언어를 알게 되고 여성주의에 깊은 관심을 가지게 되면서 인터넷을 뒤지고 책을 읽고 하면서, 저작으로만 접했던 선생님들을 직접 볼 수 있었거든요. 또 EGEP의 존재는 대충 알고 있었지만 상담소의 인턴으로서 열린 워크샵에 참석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 것도 참 감사했고요.



금요일부터 토요일까지 이루어지는 워크샵에서 많은 논의들이 이루어졌지만,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이 두 가지예요. 한국의 발제자가 빨아 쓰는 천 대안 생리대를 소개했어요. 그러자 질의응답 시간에 방글라데시 참가자가, 방글라데시에서 특히 교외 지역에서는 물이 부족해 천 생리대를 세탁할 수 없다는 이야기였어요. 부탄 참가자는 한 가족이 한 집에 모여 사는 부탄의 거주형태에서 생리대를 빨아도 마음 놓고 널어둘 장소가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또 다른 것은, 제가 참관했던 젠더 폭력에 대한 세션에서 발표된 주제들이었어요. 인도에서 온 참가자가 여성을 향해 하루가 멀다 하고 가해지는 염산 테러에 대해, 케냐에서 온 참가자가 여성 할례에 대해 발표를 했어요. 생리대 발제와 젠더폭력세션의 발제를 보면서, 각 나라가 속한 문화권과 각 사회, 상황에 따라 수면으로 드러나는 현상이 다 다르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생리대에 대해 이야기하면, 한 사회에서 대안적이라고 여겨지는 것이 다른 문화권과 사회적 맥락 속으로 편입되면 결코 동일한 의미를 지닐 수 없다는 것이요. 또, 그 기저에 깔린 문제라고 해야 할까요, 원인이라고 해야 할까요, 예를 들면 젠더에 기반한 폭력이라는 점은 같지만 그것이 발현된 결과는 사회마다, 문화마다 다 달라진다는 생각도 들었고요. 그렇기에, <EGEP 워크샵>처럼 우선 각각의 지역과 문화권에서 일어나는 여성들의 이슈를 말할 수 있고 공유할 수 있는 장을 만드는 것이 참 중요하다고 느꼈습니다. 최소한, 다른 곳에서는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게 되니까요. 동시에 여성주의 시각을 가지면서 자신의 문화권과 사회를 가장 잘 이해하는 현지 활동가들이 너무나 귀중한 사람들이라는 생각도 들었고요. 한편 각자 다른 문화와 사회에서 온 여성주의자들이 모여 어떤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을까, 어떤 것을 만들어갈 수 있을까에 대해 생각했을 때 그에 대한 대답이 머릿속에 딱 떠오르지는 않았어요. 하지만 어떤 답을 가지는지도 중요하지만 좋은 질문을 던지는 것이 더 중요하니까요, 질문이 많아지는 시간이었음에 감사했습니다.




마지막으로는 상담소 행사입니다. 일 년에 한번 있는 제일 공식적인 상담소 총회를 준비하면서 할 일이 정말 많으신 활동가 쌤들을 보며 ‘여러모로 정말 많은 수고를 하시는구나’생각했고요. 총회라는 것이 어떤 사안을 논의하고 어떻게 진행되는지 볼 수 있었던 좋은 기회였어요. 총회 준비부터 총회를 마칠 때까지, NGO가, 사단법인이 정관에 따라 공식적인 절차들을 밟아나가는 실무적인 부분을 볼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이러한 실무적인 부분은 NGO 안으로 들어와서 접해보지 않으면 전혀 모를 일이잖아요. 총회에 참석한 전 활동가들과 정회원들이 함께 모여 인사를 나누고 대화를 하는 즐거운 모습도 볼 수 있었습니다.



열린 포럼의 사스키아 선생님의 <인도네시아 대학살과 국제법정 사례를 통해 본 여성폭력과 인권> 강의는 충격적이었습니다. 인도네시아의 숨겨지고 왜곡된 역사를 알게 되면서요. 그리고 그 역사를 추적해내고 공론화하고 기록으로 남기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고요. 제일 기억에 남는 부분은 인도네시아 참가자의 질문에 대한 답변이었습니다. 인도네시아 참가자는 대학에서 아무도 이 사실을 말하지 않고 가르치지 않는데, 학생들이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이냐고 물었습니다. 사스키아 선생님 대답이, 계속 질문하라는 거였어요. 그 사건에 대해 계속 말하고, 계속 파헤치고 계속 자료를 찾으라는 것이었습니다. 정경자 선생님의 <호주의 반성폭력운동과 제도화의 교훈>에 대해 들으면서는, 여성운동과 국가정책, NGO의 재정적 자립과 정부와의 관계에 대해 밑그림을 그릴 수 있게 된 기회였습니다. 여성운동에 지속적인 관심을 가지고 참여해나갈 때에 예의주시해야 할 이슈임을 알게 되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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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까지, 8주 동안 상담소에서 했던 활동과 느낀 점을 정리했습니다. 가장 먼저, 상담소와 인연을 맺게 되고 활동가 선생님들을 만나게 되어 반갑고 기쁘고 감사한 마음이 제일 큽니다. 무엇보다 인턴 활동은 여러 이슈들을 보고, 듣고, 알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주어, 여성운동을 이해할 수 있는 제 기반을 넓혀주었어요. 또한 내가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긍정적인 자신감과 태도를 더욱 다질 수 있었던, 마음이 좀 더 따듯해지고 좀 더 여물 수 있었던 감사한 시간도 되었고요. 개인적으로는 활동을 하며 이전에 시도해보지 않았던 것, 경험해보지 않았던 것을 해야 할 때가 종종 있었는데요, 그 때마다 두려움이 많았습니다. 해보지 않았던 것들에 대해, 내가 과연 이걸 할 수 있을지에 대한 두려움이요. ‘난 못할 거야’, ‘저 이거 몰라요’, ‘저 이런 거 못해요’와 같은 말들이 입 밖으로 튀어나오려고 자꾸 준비를 했어요. 하지만 동시에 ‘모르면 뭐 어때, 할 수 있는 데까지 일단 해보는거지’, ‘이런 일을 해본 적도 없으면서 왜 못한다고 생각하는거야?’, ‘에이 몰라, 그냥 시도해보자’, ‘내가 꼭 이러이러 사람일 필요는 없잖아, 이 것도 할 수 있고, 저 것도 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도 되잖아, 나의 영역을 넓혀가도 되는 거잖아’하는, 무엇이든 해보자는 행동력과 기대감이 고개를 들었어요. 그래서 일부러 ‘나는 할 수 없다’는 말이 입에서 나오고 싶어 해도, ‘나는 할 수 있을거야’하고 대답하려고 노력했던 것 같아요. 나의 태도를 바꿀 수 있는 시간과 기회를 허락해준 상담소에 감사를 표하고 싶습니다. 상담소, 앞으로도 자주 볼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감사합니다. 






*이 글은 8주간 인턴으로 활동한 손하은님이 작성하였습니다. 하은님, 너무 고생하셨고 감사하고, 자주 만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