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성폭력상담소 25주년 기념 허핑턴포스트코리아 공동기획_
우리가 성폭력에 대해 알아야 할 8가지
7) '도둑촬영', '남성이라면 그럴수도 있는' 게 절대 아니다
글 | 최란 (한국성폭력상담소 사무국장)
많은 사람들이 이용하는 공중화장실. 느닷없이 옆 칸에서 찰칵 소리가 들린다. 위를 쳐다보니 나를 찍고 있는 카메라. 사생활이 보호될 것이라 기대했던 공공장소가 나의 의사에 반하는 촬영의 공간으로 둔갑한다.
몰래 타인의 신체를 찍는 이른바 몰래카메라/도둑촬영(盜撮, hidden camera, 이하 '도촬') 피해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한국 내 휴대전화 이용자만 약 2천만 명. 도처에서 누구나 쉽게 자신의 휴대전화 기기를 사용하여 타인을 촬영할 수 있다는 사실은 '도촬' 피해가 너무나 빈번하게 우리일상에서 발생할 수 있음을 시사하고 있다.
기존 휴대전화 기기에 설치된 카메라는 촬영 시에 반드시 촬영음이 나도록 되어있지만, 음소거가 가능한 카메라어플이 나오면서 누가 나를 찍고 있는지 더는 알지 못한다. 뿐만 아니다. USB크기의 캠코더부터 액자 캠코더, 자동차 키 캠코더, 탁상시계 캠코더, 벽 스위치형 캠코더까지 초소형 크기의 촬영기기가 즐비하다. 마음만 먹으면 누구든지 초소형 크기의 촬영기기를 손쉽게 구매할 수 있고, 설치하여 이른바 '도촬'을 할 수 있다.
'도촬'행위는 성폭력이다.
'도촬' 행위는 현행법 상 성폭력처벌법 제14조 카메라이용촬영죄에 해당하여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천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되어있다. 성적 욕망 또는 수치심을 유발할 수 있는 다른 사람의 신체를 의사에 반하여 카메라 등 기계장치를 사용하여 촬영하는 행위(성폭력 처벌법 제14조 1항)와 촬영 당시 동의했다 하더라도, 이후에 의사에 반하여 촬영물을 유포하거나 판매, 전시하는 행위(성폭력 처벌법 제 14조 2항)를 규율한다. 그러나 동의 없이 타인의 신체를 촬영하거나 그 촬영물을 유포시켜 실제로 타인의 인격권이나 사생활 침해가 발생하더라도 위 요건을 충족하지 않으면 처벌되지 않는다.
경찰청 범죄통계(2014년)에 따르면, 2010년 1,134건이던 카메라이용촬영죄 신고율이 2014년에는 6,623건으로 지난 5년간 6배 정도 증가하였다. 하지만 기소율은 32.1%에 불과해 제대로 된 처벌은 이뤄지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2015년 12월 국회 여성가족위원회 소속 남인순 의원이 법무부로부터 제출 받은 자료에 따르면, 2012년 1940건 가운데 69.7%가 기소됐는데 해마다 기소율이 낮아져 2013년 54.5%, 2014년 44.8%, 2015년 7월 32.1%로 3년간 절반 이상 떨어졌다. 이는 카메라이용촬영죄를 다른 성폭력 범죄에 비교하여 다소 가벼운 피해라고 여기는 사회문화적 태도와 판단기준이 일정치 못한 법적용으로 인한 처벌상의 공백, 여성의 경험과 언어를 반영하지 못하는 법 현실이 다층적으로 작용하고 있다.
그래도, 법으로 하면 되...지?!
2015년 9월 여자화장실에서 '도촬'을 한 가해자가 피해자의 사진이 제대로 찍히지 않았다는 이유로 항소심에서 선고유예판결을 받은 사건이 언론에 보도되었다. 한 대학교 여자화장실에서 화장실 칸막이 위로 손을 뻗어 휴대전화 카메라로 용변을 보던 피해자를 찍어 기소된 사안에서 항소심 재판부는 실제 촬영된 사진이 검은색으로 나와 피해자의 신체 영상정보가 입력되지 않았다는 가해자의 주장을 받아들였다.
7개월간 49번이나 촬영하고도 노출이 거의 없고 성적인 부위를 부각시키지 않은 사진이라는 이유의 무죄 판결과 짧은 바지와 치마를 입고 앉아있는 여성들을 12차례나 찍은 혐의에 대해 '예쁜 여자'를 촬영한 것으로 이해된다며 무죄를 선고한 판결도 있다.
한편, 포털사이트에 '몰카 무죄'를 검색하면 '도촬'로 판결을 앞두고 있는 가해자들에게 도움이 될 만한 법률 정보가 쏟아진다. 벌금형, 선고유예, 아니 기소조차 되지 않게 하기 위해서 동원할 수 있는 갖가지 방법을 안내하는 변호사들의 영업 글이 넘쳐난다. 그들은 '예쁜 여자'를 촬영하거나 바라보는 것은 죄가 아니라고 가해자들을 위로한다.
하지만 피해자들은 촬영하고 있음을 알게 된 순간 느끼는 모멸감과 분노, 그리고 피해 이후에 길을 걷다가도 누군가 자신의 얼굴을 알아볼 수 있다는 두려움 때문에 일상생활을 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 촬영물이 한번 유포된 이후에는 정도를 가늠하기 힘들 만큼 피해가 확산된다는 측면에서 '도촬'은 단순한 호기심으로 치부할 수 없는 심각한 인권침해이다.
'도촬' 피해는 결코 가볍거나 사소하지 않다.
동의없는 촬영행위는 가볍고 사소하게 여겨지고 있다. TV방송에서 이뤄지는 '몰카'촬영은 웃음거리로 제공되고, 포털사이트에서 '길거리'만 검색해도 수많은 여성들의 뒷모습을 '도촬'한 이미지가 검색되는 현실에서 타인의 신체를 몰래 찍는 행위는 성적인 폭력행위로 인지되지 않는다. 여전히 한국사회는 성폭력을 위계적으로 나눠 강간은 가장 큰 죄, '도촬'은 '남성이라면' 예쁜 여자를 보고 그냥 지나칠 수 없어 자신도 모르게 카메라 셔터를 누르는, 마치 자연적이고 당연한 문제쯤으로 여기고 있다.
지난 8월 9일 국무회의에서 통과된 '성폭력범죄의처벌등에관한특례법개정안'에는 카메라이용촬영죄로 벌금형을 선고받은 경우 성범죄자 신상정보에서 등록에 제외되는 내용이 포함되었다. 문제는 카메라이용촬영죄로 기소된 가해자 중 1심에서 벌금형을 받는 비율이 68%에 달한다는 점이다. '도촬'을 하고도 기소되는 사람은 10명 중 3명, 그 중 1심에서 벌금형을 받는 사람은 10명 중 7명에 불과하다.
높은 형량이 필요하다는 것이 아니다. 있는 법 안에서 제대로 처벌한다면 재차 같은 행위를 저지르는 것을 예방하는 데 충분하다. '도촬'이 결코 가볍거나 사소한 행위가 아님을 알게 하려면, 이 같은 행위를 제대로 처벌하면 된다. 찍지 않고, 보지 않고, 신고하고, 제대로 처벌하는 상식이 통용되는 사회가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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