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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를 말하다

‘성폭력 사건’ 국민참여재판 지원 : 13시간의 공판과정

 

 

‘성폭력 사건’ 국민참여재판 지원 : 13시간의 공판과정

 

보듬이 (본 상담소 책임상담활동가)

 

 

   국민참여재판이 시작된 지 1년이 넘었다. 일반인이 배심원으로 참여한 국민참여재판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고 있다. 특히 첫 재판에서 강도, 상해 피고인에게 이례적으로 집행유예 판결이 내려져 향후 형량을 줄이려는 피고인들의 신청이 이어지고 있다.  

  오늘의 재판을 보기위해 모인 70여 명의 방청객 인원을 봐도 그 관심을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우리나라에서의 배심원제는 2008년 1월 1일부터 시작되었고, 배심재판은 형사사건 중 살인․강도․성범죄 등 법정형이 중한 범죄에 한해서 신청할 수 있다.  

  본 사건의 피해자와의 첫 만남은 상담소에서 이루어졌다. 상담소에서 만난 피해자는 경찰서에 고소 직후 눈물을 펑펑 쏟으며 남자친구와 같이 상담소를 찾아왔다. 화장기 없이 바들바들 떨고 있는 모습으로 울면서 말하고, 또 울면서 힘겨워 하는 모습은 작고 하얀 비둘기 같아서 손을 잡아 볼 수도, 잠시 동안 말을 건넬 수도 없었다. 꼭 안아주고 싶었다. 우리는 그렇게 만났고, 길고 긴 경찰조사가 시작되었다.  

  경찰조사에서 피해자는 또 한 번 눈물을 쏟아야 했다. 가해자는 조사를 자꾸 미루었고, 경찰은 ‘가해자가 지방에 내려 가야한다는데, 술 약속이 있다는데 내가 어떻게 하느냐’는 등 가해자 조사를 서둘러 주지 않았다. 피해자를 힘들게 하는 말도 서슴치 않았다. ‘녹음 잘 하시는데, 이 말도 녹음을 하겠네요?’ 등의 말을 듣기도 하는 등 피해자는 2차 피해를 호소하며 경찰에 대한 불신은 점점 커져갔다. 

  그 사이에 가해자가 어떻게 집을 알았는지 피해자의 집에 찾아왔고, 다시 112에 신고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이처럼 가해자가 밖에서 활개치고 다니며 피해자에게 2차 가해를 가하는 동안 피해자는 집안에서 커튼을 내리고 문을 꼭꼭 잠그고 불을 끄고 지내는 생활이 시작되었다. 그렇게 경찰조사, 검찰조사가 8개월 동안 진행되었다. 전과 14범인 가해자는 본 사건이 진행되는 동안 다른 사건으로 실형을 선고 받았고, 국민참여재판을 신청하는 뻔뻔함을 실행하였다. 그렇게 국민참여재판은 열리게 되었다.  

 
 국민참여재판은 재판 당일 오전 11시 30분에 배심원을 선정하는 일부터 시작되었다. 비공개로 배심원을 결정하였는데 인터뷰를 통해 40명 중 9명의 배심원과 예비배심원 1명을 선출하였고, 점심식사를 한 후 2시에 피해자가 증인이 되어 재판이 시작되었다. 법원에서 비공개로 피해자에 대한 질문이 이어졌다. 공판검사와 수사검사가 참석했고, 검사와 변호인은 배심원과 피고인석의 중앙에 서서 질문을 시작하였다.

 
   배심원들은 본 사건에 대해서 전혀 알지 못 한 상황에서 배심원 자리에 앉았고, 판사는 배심원들에게 강간과 폭행․협박에 대한 부분을 설명하고, 상해가 있었는지를 판단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배심원들은 본 사건에 대해 사전에 어떠한 설명도 듣지 못 한 채 긴 시간을 집중해야 했다.

  검사와 국선 변호인의 질문, 그리고 피해자의 진술까지 4시간 걸렸다. 검사와 변호인의 질문은 비교적 짧고 간결했지만 배심원들이 있고, 대법정에서 느껴지는 위압감을 피해자는 잘 이겨내며 하고자 하는 말을 잘 했다. 피해자에게 피해상황을 다시 떠올리기에 충분 할 만큼 시간을 넉넉히 준다는 생각도 들었다. 비디오실에서 공판과정을 지켜보는 상담자도 피해당시의 공포를 느끼게 하였고 눈시울을 붉히게 했다. 심문 도중 눈물을 훔치는 배심원도 보였다.

  하지만 상담자가 느끼기에 진술이 다소 길어진다는 불안감이 생겼다. 일반 형사재판에서 피해자는 짧게 진술하고 ‘예’, ‘아니오’라고 대답하는 상황이 대부분이다. 그리고 권위적이고 위압적인 법원 분위기에서 피해자들은 하고자 하는 말을 충분히 하지 못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을 경험적으로 알고 있었다. 혹시나 오늘도 그런 상황이 오면 피해자가 진술하는 데 있어 위축감이 들 것이라는 걱정이 있었다. 중간에 피해자의 말을 멈추게 하거나 반복적인 진술을 지적하는 상황이 오면 위축감이 들고 피해자의 진술에 어려운 고비가 되지 않을까 걱정도 들기 시작했다.

  다행스럽게도 상담자가 우려하던 상황은 오지 않았고, 피해자의 진술은 가슴 아프게도 하고 눈물을 흘리게도 했다. 수치심을 느끼게 하는 변호인의 질문에 피해자는 ‘그런 질문에 대답해야 하느냐, 질문의 의도를 알려달라’고 당당하게 판사님에게 이의를 제기했고, 판사님도 이를 수용했다.

  4시간의 진술시간은 피해자를 힘들게 하기도 했지만, 피해자의 감정적인 부분까지 충분히 말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판사님은 재판과정에서 피해자가 충분히 대답할 수 있도록 들어주고 기다려 주었다. 눈물을 닦을 수 있도록 티슈를 가져다주는 배려도 있었다. 또한 채택된 증거는 배심원들이 함께 검토하였는데, 증거로 제출한 카메라 촬영과 녹음을 피해자가 직접 설명하며 배심원들에게 듣게 하였다.

   피해자는 떨리는 목소리와 울음 섞인 목소리, 때로는 야무진 목소리로 진술을 너무 잘 해주었다. 얼마나 가슴이 벅찬 시간이었는지, 얼마나 가슴 졸이는 시간이었는지, 본 상담자의 솔직한 마음은 딸을 혼자 보내고 지켜보기만 해야 하는 엄마의 마음, 그런 심정이었다.

 
  오후 2시에 시작한 재판은 피해자 심문, 가해자 심문을 마치고 배심원 판결 이후 최종 선고까지 진행되어 다음날 새벽 3시에 끝을 냈다. 8개월 동안의 경찰조사와 검찰조사에 지쳐가고 갑작스레 수사검사가 교체되면서 재판 1주일 전에 다시 증거제출을 해야 하는 어려움을 겪으면서 배심재판 13시간 30분 만에 실형선고까지 받게 한 위대한 결과였다.

  배심원들의 만장일치로 ‘강간 치상’으로 적용되었고 배심원들이 준 형량을 평균화하여 실형4년을 받았다. 유사 사건에 비해 형량이 많이 나온 편이라 가해자는 항소할 것이고, 그러면 형량이 조금 감해질 수도 있다는 걱정은 아직 남아 있지만 두렵지 않다. 피해자는 본 과정을 통해 자신이 왜 그토록 가해자를 고소하고 싶어했는지 다시 한 번 확인했고 분명 더 강해졌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 본 포스트는 한국성폭력상담소 계간지 <나눔터> 64호의 원고를 발췌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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