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랍인으로 보이는 남성과 함께 있는 한국인여성에 대한 당신의 반응은?
1. 둘이 무슨 사이인지 애인인지, 친구인지 유심히 관찰하고 대화를 엿듣는다.
2. 한국남성이 뭐가 모자라서 외국인남성하고 사귀느냐고 쯧쯧 혀를 찬다.
3. 이왕 외국인하고 사귈 거라면 멋있는 금발의 백인남성이랑 사귀지하고 안타까워한다.
4. 아랍인은 테러리스트라고 욕하면서, 같이 있는 여성에게도 욕설을 퍼붓는다.
혹시 당신도 위 리스트의 하나에 해당한다면, 당신의 인종차별감수성에 대해서 심각하게 의심해보아야 한다. 인종차별이란 하얀 두건을 뒤집어쓰고 막무가내로 흑인에게 테러를 가하는 KKK단 같은 극단적인 행위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유색인종으로 보이는 외국인에 대한 비난과 욕설, 발로 툭툭 치는 행위 등이 모두 인종차별에 해당할 수 있으며, 이는 우리 생각보다 훨씬 더 자주 발생하는 일이다.
2009년 한국, 인종차별과 성차별의 불순한 만남
인도인남성이 한국인여성과 버스 안에서 영어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그런데 양복을 차려입고 “멀쩡하게 보이는” 30대 회사원 남성이 “더러워, 너 더러워 이 개새끼야”, “Arab!”이라고 느닷없이 욕설을 퍼붓는다. 그리고 같이 있던 한국인여성에게는 “조선년이 새까만 자식이랑 사귀니까 기분 좋으냐?”라고 발로 찬다.
당신은 이런 일이 현실에서 일어난다고 상상할 수 있는가? 그러나 이는 2009년 7월, 서울의 한복판에서 버젓이 일어난 일이다. 사실 인도인남성은 아랍인도 아니었고, 한국인여성과는 동료일뿐 연인사이도 아니었다. 그러나 두 사람은 졸지에 ‘냄새나는 아랍인’과 ‘(한국남자들 두고) 아랍인과 사귀는 조선년’으로 호명당하며 느닷없이 테러를 당했다. 그러나 이 사건을 조사하던 경찰은 인도인남성에게 고압적인 자세로 반말을 하거나, 이 한국인남성이 경찰서에서까지 두사람을 괴롭히는 행위를 수수방관하였다.
만약 이 인도인남성이 유색인종이 아니라 서구의 백인처럼 보였더라도 역시 같은 일이 벌어졌을까? 확실한 대답은 누구도 알 수 없다. 하지만 적어도 이렇게 심각한 모욕과 학대는 이루어지지 않았을 것이라는 것이 피해자들의 주장이다.
또한 이 인도인남성에 대한 편견과 학대는 그의 일행이었던 한국인여성에게도 고스란히 옮겨와서, 인도인남성과 함께 있는 한국인여성은 모욕당해도 되는 ‘불순한 여성’이 된다. 친구이든, 동료이든, 애인이든, 부인이든 가릴 것 없이 그 여성은 한국인남성이 아닌 외국인남성, 그것도 유색인종 남성과 놀아난 타락한 여성이 되는 것이다.
이렇게 2009년 7월, 서울 한복판에서 인종차별과 성차별의 ‘불순한 만남’이 이루어졌다.
다문화사회로 가고 있다는 글로벌한국, 그러나 한국사회의 인종차별 감수성을 되묻다
이 사건의 해결을 위해서 ‘성인종차별대책위(가칭)’가 긴급하게 결성되어서 활동하고 있으며, 성인종차별대책위에서는 지난 8월19일 국가인권위원회에 이 사건에 대한 진정을 접수하였다. 당초 예정되었던 기자회견은 김대중 前대통령의 서거 때문에 취소되었지만, 진정을 접수하고 국가인권위원회 담당자와 면담하면서 여러 가지 의견을 나누었다.
이 자리에서는 여러 가지 의견들이 오고갔는데, 「다문화가정지원법」 및 이주관련정책 등 많은 분야에서 인종차별적 발상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비판적 의견이 대부분이었다. 국가에서 지원하는 ‘다문화가정’의 대상자들은 이주노동자, 결혼이주민여성으로서 이들은 대부분 제3세계 출신들인, 서구 출신 백인들은 이 ‘다문화가정’에 포함되지 않는다. 모두가 외국인이지만 누구는 서구 선진국 시민으로, 누구는 다문화가정으로 분류되는 기준이야말로 한국사회의 인종차별감수성이 얼마나 취약한가를 여실히 보여준다.
성인종차별대책위에서는 오는 26일 2시부터 외국인이주노동자대책협의회 강당에서 성차별/인종차별과 관련된 토론회를 개최한다. 토론회에서는 이주노동자, 결혼이주자, 난민망명자들의 차별사례 발표와 이에 대한 토론을 통해, 한국사회의 성/인종차별의 실태를 점검하며 이에 대한 대안을 모색하는 자리를 갖는다.
다문화사회로 가고 있다는 글로벌한국. 그러나 다문화는 100가지의 문화들을 뒤섞거나 나열한다고 해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각자의 문화를 어떻게 존중하고, 차별에 대한 감수성을 어떻게 높여갈 것인가에 대한 치열한 고민이 뒷받침될 때만이 다문화사회로 한 걸음 더 다가가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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