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1월 29일, 한국성폭력상담소 부설연구소 울림의 주최로 창비서교빌딩 50주년홀에서 <‘미투’가 말한 것, 말하지 못한 것 – 성폭력피해상담과 지원과정 분석 연구포럼 ->이 열렸습니다. 이 연구포럼은 울림에서 여성가족부 연구용역으로 수행한 “성폭력피해상담 분석 및 피해자 지원방안 연구”의 결과를 발표하는 자리였습니다. 이 자리에서 한국성폭력상담소 부설연구소 울림 김보화 책임연구원은 ‘성폭력피해 상담일지의 의미와 분석’을 주제로, 천주교성폭력상담소 김미순 소장은 ‘전국 성폭력상담소 10년간 상담현황과 피해자 지원과정’을 주제로 발제하였으며, 부산성폭력상담소 이재희 소장, 서울대학교 사회학과 추지현 교수, 경찰청 생활안전국 성폭력대책과 이기범 경정, 서울중앙지검 여성아동범죄조사부 우옥영 검사, 여성가족부 권익지원과 권혜은 사무관이 이에 대한 토론을 진행해주셨습니다.
토론 가운데 서울중앙지검 여성아동범죄조사부 우옥영 검사의 성폭력피해자 조사과정에 관한 토론문에 기재된 “우리법원은 강간죄의 유죄율이 통계상 90% 이상으로 확인되었다”라는 부분의 출처를 명확히 밝혀달라는 참석자의 요청이 있었습니다. 해당 출처는 2015-2017 사법연감으로, 이를 확인한 결과 강간과추행의죄, 성폭력범죄의처벌등에관한특례법, 성폭력범죄의처벌및피해자보호등에관한법률에 대한 형사공판에서 유죄가 선고되는 비율이 90% 이상인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그런데 참석자가 이 부분에 관해 질문한 것은 통계의 출처를 확인하고 싶다는 단순한 요청이 아니라, 이를 넘어서 “현실에서 체감하는 것과 통계적 수치의 괴리”에 대해 말하고자 하신 것은 아닐까 생각이 듭니다. ‘미투운동’을 통해 피해경험을 수면 위로 드러내는 것이 본격화되었지만, 피해자들이 자신의 피해를 드러내고 이것을 사회적으로 해결하거나 사법적으로 해결하기 여전히 어려운 상황에서 ‘강간죄 유죄율 90%’는 우리에게 와닿지 않는 수치이기 때문입니다. 이에 이 글에서는 ‘강간죄 유죄율 90%’에 대해 뜯어보고, 또 현실과의 괴리에 대해서 이야기해보고자 합니다.
‘유죄율 90% 이상’ 해부하기
앞서 말한 것과 같이 사법연감에서는 성폭력과 관련된 죄목에서 유죄율이 90% 이상임을 볼 수 있습니다.
<표 1> 2017년 형사공판사건 재판인원(2018 사법연감)
단위: 명(%)
| 합계 | 유죄 | 무죄 | 기타 | ||||
강간과추행의죄 | 5,818 (100.0) | 5,347 (91.9) | 203 (3.5) | 268 (4.6) | ||||
성폭력범죄의처벌등에관한특례법 | 5,093 (100.0) | 4,690 (92.1) | 128 (2.5) | 275 (5.4) | ||||
성폭력범죄의처벌및피해자보호등에관한법률 | 75 (100.0) | 54 (72.0) | 7 (9.3) | 14 (18.7) | ||||
전체 | 10,986 (100.0) | 10,091 (91.9) | 338 (3.1) | 557 (5.1) |
*유죄: 무기징역, 유기징역, 집행유예, 자격형, 재산형, 선고유예 등
그러나 주의해야할 것은 위의 통계가 기소되어 재판이 행해진 사건에 한정된 것이라는 점입니다. 그렇다면 유죄율을 살펴볼 때 경·검찰에 신고·접수된 성폭력 사건들이 얼마나 기소되는지 역시 중요하게 고려하여야 할 것입니다. 성폭력 사건의 기소율에 대한 통계는 범죄분석 및 검찰연감에서 살펴볼 수 있습니다.
<표 2> 2017년 성폭력 범죄자 처분결과(2018 범죄분석)
단위: 명(%)
전체 | 기소 | 불기소 | 기타 |
31,190 (100.0) | 14,365 (46.1) | 15,902 (51.0) | 923 (3.0) |
<표 3> 2017년 죄명별 처리인원(2018 검찰연감)
단위: 명(%)
| 전체 | 기소 | 불기소 | 기타 |
강간과추행의죄 | 20,120 (100.0) | 6,975 (34.7) | 11,449 (56.9) | 1,696 (8.4) |
특별범계中 성폭력관련죄명 | 18,812 (100.0) | 7,415 (39.4) | 8,076 (42.9) | 3,321 (17.7) |
전체 | 38,932 (100.0) | 14,390 (37.0) | 19,525 (50.2) | 5,017 (12.9) |
위의 표들을 통해 신고·접수된 성폭력 사건의 절반도 채 기소되지 않음을 살펴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대략 40% 정도의 사건만이 기소된다고 보았을 때 실제 접수된 건의 36%만이 유죄판결을 받는 것입니다.
<표 4> 2017년 형사공판사건 재판인원
단위: 명(%)
| 합계 | 무기 | 유기 | 집행유예 | 재산형 | 선고유예 | ||||
강간과추행의죄 | 5,347 (100.0) | 1 (0.02) | 1,197 (22.4) | 2,238 (41.9) | 1,769 (33.1) | 142 (2.7) | ||||
성폭력범죄의처벌등에관한특례법 | 4,690 (100.0) | 2 (0.04) | 1257 (26.8) | 1661 (35.4) | 1636 (34.9) | 134 (2.9) | ||||
성폭력범죄의처벌및피해자보호등에관한법률 | 54 (100.0) | 1 (1.9) | 39 (72.2) | 12 (22.2) | 2 (3.7) | - | ||||
전체 | 10,091 (100.0) | 4 (0.04) | 2493 (22.7) | 3911 (35.6) | 3407 (31.0) | 276 (2.5) |
또한 유죄판결 가운데 약 38%가 집행유예 및 선고유예에 해당합니다. 집행유예나 선고유예 역시 유죄이지만, 신체적 구속이나 금전적 대가가 동반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이러한 판결이 날 경우 사람들이 가해자가 합당한 처벌을 받지 않았다고 여기기도 합니다. 또한 성폭력 가해자들을 변호하는 소위 ‘성범죄전문변호사’ 역시 집행유예·선고유예를 이끌어낸 것을 승소사례로 홍보할 만큼, 집행유예·선고유예가 유죄로서 가지는 의미는 한정적입니다.
수사기관에 신고되지 않는 성폭력 사건도 다수
또한 경찰에 신고되는 성폭력 사건은 극소수입니다. 2016년 성폭력실태조사에서는 성폭력을 경험한 사람들 중 2.2%만이 경찰에 도움을 요청했다고 답했습니다. 경찰에 도움을 요청하지 않은 이유에 대해서는 여성응답자의 21.3%, 남성응답자의 17.7%가 ‘신고해도 소용없을 거 같아서’라고 응답했습니다.
사람들이 경찰을 통한 성폭력 사건 처리에 불신감을 갖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 단초는 여러 경로를 통해서 발견할 수 있겠지만, 이 글에서는 대검찰청의 『범죄분석』을 살펴보는 것으로 갈음하려고 합니다.
『범죄분석』에서는 주요 범죄유형들에 대해 분석하고 있으며, 여기에는 성폭력도 포함됩니다. 이 자료에서 제시하는 성폭력에 대한 분석은 주로 여름에 발생하고, 20대의 피해자가 가장 많으며, 타인에 의한 성폭력이 주로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분석은 데이터를 기반으로 하고 있기에 언뜻 중립적으로 사실을 제시한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분석항목의 설정과 분석된 결과에 대해 보다 자세히 들여다볼 필요가 있습니다.
분석항목의 설정에 있어서 우선, 성폭력 외에 다른 범죄에 대해서는 범죄가 일어나는 ‘계절’에 대해 조사하고 있지 않습니다. 또한 가해자(범죄자)의 연령을 배제하고 피해자의 연령에 대해서만 분석하는 것도 성폭력에 한정되어 있습니다. 다른 범죄에 대해서는 피해자와 범죄자의 연령을 함께 분석하거나, 범죄자의 연령에 대해서만 분석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이 성폭력에 대해서만 다른 분석방식을 적용한 것은 성폭력은 특정 계절과 관련이 있고, 또 피해자가 유발하는 것이라는 통념이 적용된 결과라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이는 단순히 분석의 문제점 뿐 아니라, 사실상 수사/사법 절차 내에 이러한 통념이 뿌리 깊이 스며들어 있다는 상징일 수 있습니다.
또한 분석결과에 있어서 이 데이터가 다른 데이터와 특히 차이를 보이는 부분은 성폭력 피해자와 가해자의 관계에 관한 것입니다. 『2018 범죄분석』에서는 피해자와 가해자의 관계에 있어서 타인에 의한 성폭력의 비율은 68.7%로 제시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매년 전국의 성폭력상담소를 통해 보고되는 『성폭력상담소 운영실적』에 따르면 모르는 사람에 의한 성폭력은 평균적으로 15.9%에 불과합니다. 이러한 간극은 성폭력상담소에 상담을 요청하는 사례들은 친밀한 관계나 아는 관계에서 일어난 성폭력이 많고, 이 경우 가해자와의 관계나 처해있는 조건상 형사고소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거나, 형사고소했어도 인정되지 않는 비율이 높다는 것을 의미할 수 있습니다. 즉, 형사·사법절차에 미처 닿지 못하거나, 이 절차 안에서 성폭력 피해로서 인정되지 못하는 피해들이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결국 ‘성폭력은 주로 여름에 발생하고, 20대의 피해자가 가장 많으며, 타인에 의한 성폭력이 주로 일어난다’는 분석은 성폭력의 특징에 대한 분석이라기보다는 통념에 일치하는 성폭력만이 사건으로 접수되고, 성폭력으로 인정되고 있는 현실을 역으로 드러내는 것입니다. 이러한 현실은 피해자로 하여금 성폭력 피해를 신고하는 것을 어렵게 하고 신고하더라도 사건이 제대로 처리되지 않을 수 있다는 생각을 갖게 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성폭력을 제대로 신고할 수 없는 상황, 신고하더라도 일부의 사건만이 기소되는 상황, 기소되더라도 가해자들이 응당한 처벌을 받지 않는 상황에서 “유죄율 90%”라는 통계에 대해서 의아함을 느낄 수 밖에 없지 않을까요?
<이 글은 부설연구소 울림 연구원 주리가 작성하였습니다.>
본 포럼의 자료집 및 연구보고서는 다음의 링크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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