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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담소는 지금

[후기] 2019.04.11. 낙태죄 헌법불합치 선고 방청 후기

 

출처: 허핑턴포스트코리아

주문, 형법 제2691, 2701항 중 의사에 관한 부분은 모두 헌법에 합치되지 아니한다. 위 조항들은 20201231일을 시한으로 입법자가 개정할 때까지 계속 적용된다.”

 

주문이 나왔을 때, 현장에 있던 사람들의 술렁거림이 기억납니다. 소리죽여 기뻐하는 사람들을 끌어안고 소리라도 지르고 싶은 심정이었습니다. 낙태죄가 시작된지 66년만에 거둔 승리였습니다.

 

온라인 방청에 당첨되었다는 문자를 받았을 때, 사실 좀 얼떨떨했습니다. 상담소에서는 저 혼자 방청에 가게 되었습니다. 기쁨도 잠시, 평생 뽑기운이라고는 타고난 적도 없었는데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만 들었습니다. 살면서 단 한 번도 운이 실력이었던 적이 없어서, 내일 좋지 않은 결과가 나오는 건 아닌가 싶을 정도였습니다. 주변에 물어보니 온라인 방청 당첨자가 거의 없었습니다. 방청 축하한다며, 역사적 순간을 직접 볼 수 있을 거라고 말해주는 활동가들의 응원에도 어쩐지 초조한 마음부터 들었습니다.

 

설렘 반, 불안 반의 마음으로 도착한 헌법재판소 앞은 그야말로 인산인해였습니다. 낙태죄 선고를 기다리는 수많은 사람들이 헌법재판소 앞을 가득 메웠습니다. 건너편 길가에까지 늘어선 사람들을 보면서 점점 현실감이 들었습니다.

 

방청권을 받고 재판정으로 들어가 앉았을 때에야 실감이 나기 시작했습니다. 오늘 선고 예정인 다른 재판 목록과 담당 활동가 앎이 공유해준 낙태죄 관련 헌법재판소의 예상 시나리오 목록을 닳도록 읽으며 형법 269조 판결을 기다렸습니다. 혹시나 모자보건법만 개정해야 하는 상황이 되어 사회경제적 사유 추가에 그치는 판결이 나는 건 아닌지 얼마나 초조했는 지 모릅니다.

 

그러다 선고가 난 후, (앞서 적었지만,) 주문이 나왔을 때 낙태죄 폐지를 간절히 바라는 사람들의 숨죽인 탄성이 기억납니다. 기뻐할 시간도 없이 제 업무인 SNS 업로드를 하느라 현장에 있는 사람들에게 바로 소식을 전하지 못했지만 일희일비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지켜보는 재미가 있었습니다. 표정에서 드러나는 복잡한 감정의 교차가 짜릿하게 느껴졌습니다. 아쉽게도 제 양 옆에 앉은 분들은 낙태죄 폐지에 반대하는 분들이라 기쁨을 나누긴 어려웠지만요.

 

7년 전 판결에서 여성은 빠져있었습니다. 2012년 판결 뿐만 아니라, ‘낙태죄와 관련된 논쟁에서 여성의 인생은 생명의 존엄성과의 납작한 대결구도에 휘말려 제대로 논의된 바가 없었습니다. 이번엔 달랐습니다. 헌법불합치 4, 단순위헌 3, 합헌 2명으로 헌법불합치 결정이 되었다는 말을 들었을 때의 기분은 글로 다 표현하기 어려울 만큼 행복했습니다.

 

헌법불합치 의견에서도 인상 깊은 대목이 많이 나왔지만, 단순위헌 의견은 인상깊은 걸 넘어 감동적이었습니다. 헌법재판소에서 임신한 여성이 자신의 판단과 숙고를 통해 낙태할 수 있어야 한다는 말을 들을 수 있을 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습니다.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언급하며, 스스로 임신 유지 여부에 대한 결정권이 기본권임에도 불구하고 단 한번도 보장받지 못한 그간의 상황에 대해 지적하기도 했습니다. 태아의 생명보호와 관련된 관점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지만, 태아의 생명권은 결국 여성의 생존권과 맞닿아 있다고 말하며 태아 생명보호를 위해 형벌적 제재를 부과하는 것 이전에 성교육 강화, 상담 실시, 임신/출산/육아 등에 대한 국가적 지원, 출산/육아에 관련된 제도적/사회구조적 불합리의 개선이 선행되어야 한다는 의견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임신한 여성이야말로 낙태를 가장 진지하게 고려하는 당사자임을 헌법재판소에서 인정한 셈입니다.

 

재판정을 나오며 기쁨에 서로를 얼싸안는 사람들, 기뻐하는 사람들을 촬영하는 기자들이 헌법재판소 마당 가득 늘어서 있었습니다. 이번 선고는 2019년 헌법재판소 내부의 분위기가 2012년과 얼마나 달라졌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선고였습니다. ‘낙태죄폐지를 누구보다 간절히 바랐던 사람들이야말로 이번 승리의 주역 아닐까요. 많은 사람들과 연결되어 있다는 감각이 그 어느 때보다 소중한 411일이었습니다.

 

20201231일이 지나고 형법 269조를 대체할 만한 좋은 법안이 제정되면, 그 때에는 간절한 마음으로 한국성폭력상담소의 문을 두드리는 사람들에게 필요한 의료적 조치들을 안내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이제야 조심스럽게 말해봅니다.

 

"이제 우리도 낙태죄 없어진다!!!"

 

 

<이 글은 한국성폭력상담소 사무국 닻별 활동가가 작성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