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성폭력상담소에서 매년 상반기, 하반기에 회원놀이터를 진행한다는 사실, 알고 계셨나요? 회원놀이터는 소중한 회원분들과 늘 상담소 활동에 관심 가져주시는 분들을 만나고 다양한 활동을 함께 하기 위해 준비된 행사입니다.
이번 주제는 "청년여성"
2016-2018년 서울시여성가족재단이 진행한 "청년여성 영상제작 프로젝트"를 통해 완성된 단편영화 중 4편을 선정하여 함께 보고, 오늘날 여성운동으로 활약하고 있는 청년여성 활동가들과 함께 '대한민국에서 청년여성으로 살아가는 이야기'를 나누고자 했습니다.
(홍보물을 만들 때만해도 이렇게 우여곡절이 많은 행사가 될 줄 아무도 상상하지 못했습니다)
먼저 영화소개부터 해볼까요?
총 25편의 청년여성 단편영화(극영화 8편, 다큐멘터리 17편) 중에서 활동가들이 오랜 논의 끝에 고른 영화는 다음과 같았습니다.
▶ 영화학개론
감독 최서윤 / 장르 극영화 / 러닝타임 13'33 / 제작연도 2016
주인공 여성은 어느 날, 자신을 스토킹하던 전남자친구가 자신들의 관계를 소재로 만든 영화를 보게 된다. 그의 기억으로 짜집기된 내용에 불편함을 느낀 그녀는 자신도 영화를 찍기로 결심한다
#데이트폭력
▶ 육체미소동
감독 정서인(도이니) / 장르 다큐 / 러닝타임 18'20 / 제작연도 2016
최약체 여성 4명의 축구 도전기. 격정적인 운동에 대한 로망으로 축구를 시작했지만, 훈련은 쉽지 않다. 그럼에도 운동을 이어가는 이들의 속내
#여자축구 #운동하는여자
▶ 자밍아웃
감독 김예지 / 장르 다큐 / 러닝타임 18'32 / 제작연도 2017
어릴 적 자위하다 들켜 혼이 났던 '나'는 그 후에는 아무에게도 들키지 않으리라 다짐한다. 그러다 문득 드는 생각. 왜 숨겨야 하는 거지?
감독 인터뷰 보기 : http://omn.kr/ovhs
#자위 #엄마_할머니_세대의_경험
▶ 나는 엄마가 주인공이었으면 좋겠어
감독 임지영 / 장르 다큐 / 러닝타임 26'27 / 제작연도 2017
1980년대 사회운동에 열심이었던 엄마와 2010년대를 살아가는 딸의 이야기. 모녀는 함께 어떤 세상을 만들어갈 수 있을까?
#엄마와딸 #페미니스트 #세대이해
위와 같이 4편의 영화를 통해 1) 젠더에 기반한 폭력, 2) 여성의 몸, 3) 섹슈얼리티, 4) 세대이해에 관한 이슈를 청년여성의 시선으로 함께 보기로 하였어요. 비록 시간 관계상 모든 영화를 볼 수는 없었지만, 기회가 된다면 다른 영화들도 함께 보고 싶은 마음이 컸습니다!
(청년여성 영상제작 프로젝트 및 영화 소개는 https://sfwf-film.weebly.com)
이어지는 관객과의 대화 시간에는 불꽃페미액션 가현,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 여파, 두 청년여성 활동가를 초대 손님으로 모셨습니다.
→ 가현(불꽃페미액션)
불꽃여자농구팀으로 시작해 탈코르셋, 찌찌해방 시위, 천하제일 겨털대회, 페미들의 성교육 등 여성의 몸과 섹슈얼리티를 주제로 여성해방을 위해 운동하는 "불꽃페미액션"의 활동가!
← 여파(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
노동운동하는 부모님, 특히 어머니의 삶을 보며 기존 사회운동의 남성중심주의를 느낀 페미니스트 딸. 지금은 불법촬영·유포, 성적 이미지합성 등 사이버 성폭력에 대응하는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에서 활동하고 있다
각 영화 주제에 대해서도 여러가지 경험과 고민을 나눠주실 수 있을 것 같아 홍보를 시작하기 전부터 설레고 기대가 되었어요.
그. 런. 데.
험난한 여성해방의 길. 홍보물을 올린지 2시간 만에 페이스북이 홍보 게시글을 삭제하는 상황이 발생하였습니다. 가현님의 유두해방 시위를 '나체 이미지 또는 성적 콘텐츠'로 판단하고 차단한 것입니다. 확인해보니 페이스북은 "여성의 유두"를 '나체 이미지 또는 성적 콘텐츠'로 규정하고 "모유 수유, 출산 및 출산 직후 장면, 유방 절제 수술 후, 유방암 식별, 성 확정 수술 등 건강 또는 시위 행위와 관련된 경우는 제외"한다고 명시하고 있었습니다. 남성의 유두는 괜찮지만 '여성의 유두'만을 성적인 신체 부위라고 전제하는 남성중심적 규정에 상담소는 문제의식을 느끼고 즉시 항의하였습니다.
⚠️ 경고! 페이스북은 여성단체 행사 홍보물을 함부로 지우지 마시오 ⚠️ 오늘 오전, 본 상담소에서 아래 홍보물을 게시하고 2시간 만에 페이스북은 아래 홍보물이 '나체 이미지 또는 성적 행위'에 관한 규정 위반이라고 통보하며 일방적으로 삭제하였습니다. 해당 규정을 확인한 결과, 페이스북은 '여성의 유두(모유 수유, 출산 후, 건강 및 시위 행위와 관련된 경우를 제외)'가 나체 이미지 또는 성적인 콘텐츠에 포함된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첫째, 본 행사 홍보물에 게시된 사진은 불꽃페미액션 가현 활동가가 찌찌해방 시위를 하는 사진으로, '시위 행위와 관련된 경우를 제외'하는 예외규정이 적용되어야 마땅함에도 페이스북은 충분한 검토 없이 해당 홍보물을 삭제하였습니다. 그런데 정작 여성을 성적대상화하고 성폭력을 희화화하거나 강간문화를 조장하는 콘텐츠는 오래도록 버젓이 남아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페이스북은 정말 문제가 되는 여성혐오적 콘텐츠나 제대로 규제하십시오. 둘째, 왜 남성의 유두는 포함되지 않고 '여성의 유두'만 성적인 콘텐츠에 포함됩니까? 그리고 '모유 수유, 출산 후, 건강 및 시위 행위와 관련된 경우'만 제외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여성의 몸을 기본적으로 성적인 대상으로 바라보고, '모성'과 관련이 있거나 '시위'라는 특수한 상황만 성적이지 않다고 판단하는 시선은 누구를 중심으로 한 판단 기준입니까? 페이스북은 해당 규정에서 '여성의유두' 부분을 삭제하십시오. #페이스북_여성유두규정_바꿔라 #여성의_가슴은_음란물이_아니다 |
이어서 홍보물을 다시 게시하였지만, 페이스북은 해당 사진이 유두 해방 시위의 일환으로 촬영된 사진임을 제대로 구별하지 않았고 막무가내로 홍보물 삭제를 반복하였습니다. 상담소의 페이스북 페이지가 공개 취소될 수 있다는 경고문을 읽으면서 분노했지만, 회원놀이터를 제대로 홍보하지 못하는 초조함과 상담소의 공식 계정이 사라질 수 있다는 불안도 동시에 느낄 수밖에 없었습니다.
가능한 소통창구를 모두 동원하여 페이스북에 항의했지만, 페이스북은 응답하지 않았습니다. 이에 상담소는 성명서, 언론 기고 등을 통해 입장을 발표하였습니다.
[성명] 페이스북, 성차별 플랫폼에서 성평등 플랫폼으로 거듭나야 할 때
전문 보기 : http://sisters.or.kr/load.asp?sub_p=board/board&b_code=2&page=1&f_cate=&idx=5138&board_md=view
[기고] '여성 유두'라 삭제? 페이스북이 정작 해야 할 일은
기사 보기 : http://www.pressian.com/m/m_article/?no=252634#08gq
관련 자료를 조사하는 과정에서 해외에서 진행되고 있는 다양한 유두해방 운동들을 찾아보며 영감을 얻기도 하였어요.
(사진 출처 및 관련 기사 : https://www.theguardian.com/technology/2015/nov/03/facebook-instagram-do-i-have-boobs-now)
한 트랜스여성은 유방 개발 전후의 사진을 페이스북에 게시하였더니 동일인물의 사진임에도 가슴이 편편한 이전 사진은 삭제되지 않았고, 가슴이 봉긋한 이후 사진은 삭제되었다고 밝혔습니다. 사람마다 제각기 다른 가슴 크기와 모양, 성정체성을 가지고 있음에도 페이스북은 성별이분법과 획일화된 '여성의 몸' 판단기준으로 무엇이 '여성의 유두'인지 판별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사진 출처 및 관련 기사 : https://www.theguardian.com/lifeandstyle/shortcuts/2015/jul/07/instagram-facebook-female-nipple-ban-use-male-nipples-instead)
여성의 상의 탈의 사진에 남성의 유두를 합성하여 해당 규정을 비꼬는 #freethenipplecampaign 온라인 캠페인도 무척 재치있는 활동이라고 생각했어요.
(사진 출처 및 관련 기사 : https://www.theguardian.com/technology/2019/jun/03/facebook-nude-nipple-protest-wethenipple)
지난 6월에는 페이스북 뉴욕시 본부 앞에서 백여 명의 사람들이 남성의 유두 스티커로 몸을 감싼 채 나체 시위를 하는 #wethenipple 퍼포먼스도 진행되었다고 해요. 한국에서도 2018년 불꽃페미액션이 '찌찌해방만세' 시위 사진을 차단한 페이스북을 규탄하여 페이스북코리아 사옥 앞에서 상의 탈의 시위를 벌였었죠.
비록 페이스북은 끝까지 불통으로 일관하였으나, 이번 사건을 계기로 '여성의 유두'와 섹슈얼리티를 둘러싼 상담소의 입장을 논의하고 정리할 수 있었습니다. 8월 26일은 세계 토플리스의 날이기도 했어요. 앞으로도 여성의 섹슈얼리티에만 가해지는 억압과 성차별적 시선을 없애기 위한 '유두 해방 시위'에 많은 지지와 관심을 부탁드립니다.
어느덧 행사일이 다가왔습니다.
홍보상의 어려움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많은 참여자들이 관심 갖고 오셔서 이안젤라홀을 채워주셨어요. 함께 영화를 보면서 웃고, 화내고, 눈물이 그렁그렁하기도 하는 시간을 보냈습니다. 모두가 똑같은 장면에서 웃음을 터뜨리거나, 똑같은 대사에 혀를 찰 때 '우리가 공감하고 있구나' 느낄 수 있었어요. (여담이지만, "자밍아웃"을 볼 때 가장 반응이 뜨거웠습니다. 그동안 대놓고 말하지 못했던 섹슈얼리티를 발화하는 통쾌함이 다들 컸던 것 같아요.)
관객과의 대화 시간에는 탈코르셋, 탈브라, 기존 사회운동 내 남성중심주의, 세대 간 소통, 성평등 교육에 관한 이야기들이 쏟아져나왔습니다. 예를 들면 가현님은 불꽃여자농구팀으로 활동하던 당시, 옆 코트에서 상의 탈의하고 운동하는 남성들을 보며 '언젠가는 우리도 편하게 상의 탈의하고 운동하리라' 다짐했던 이야기를 해주셨고요. 여파님은 노동운동으로 만난 부모님이 출산 이후 어떻게 각자 삶이 달라졌는지는 중심으로 운동 사회 내에서도 존재하는 성차별에 대해 말씀해주셨어요. 서로 서로 할 얘기가 너무 많은데 시간이 부족해 아쉬웠습니다.
아래는 참여자들이 적어주고 가신 참여 소감이에요!
▷ 여성의 삶에 주목한 영화들을 볼 기회가 별로 없었는데 다양한 주제의 단편을 볼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감사해요! ▷ 웃고, 울고, 화나고, 공감하고, 많은 것들을 생각해 볼 수 있는 영화였습니다. 좋은 영화제 개최해주셔서 다시 한 번 감사합니다.
▷ 나는 배구왕이 될 겁니다...!
▷ 역시 젊은 여성이 미래다
▷ 나도 단체 운동을 해야지, 나도 토이샵에 가봐야지, 나도 시나리오를 써야지, 나도 주인공이 되어야지! 생각할 수 있었던 영화들이었어요. 너어무 좋았습니다♡
▷ 오랜만에 영화 보면서 너무 웃었어요
▷ ‘청년 여성 영화제’ 또 다른 나를 이해하게 된 시간들 |
회원 및 여성, 페미니스트들과 소통하는 장이기도 하고, 성폭력 이외에도 다양한 이슈와 담론을 나누는 장이기도 한 회원놀이터. 청년여성의 관점으로 제작된 영화를 함께 보고, 현장에서 직접 여성해방을 이루고 있는 청년여성 활동가들과 이야기 나눌 수 있어 행복했습니다. 비록 페이스북 사태는 의도했던 것은 아니지만, 덕분에 탈코르셋-탈브라-유두해방으로 이어지는 이슈에 대해 한 번 더 생각해보고 여러분과 공유할 수 있었기도 하고요.
다음 회원놀이터는 11월에 진행될 예정이오니, 앞으로도 회원놀이터 많이많이 함께 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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