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친구가 모텔 앞까지 정말 질질 끌고 갔는데 간신히 탈출했어요. 죄명이 뭔가요?"
"직장 상사가 자판기 앞에서, 네 젖을 먹지 뭘 우유를 먹냐고 했어요. 죄명이 뭔가요?"
"사람이 제 위에서 씩씩대고 있는 것만 기억날 뿐 전혀 기억이 없어요. 죄명이 뭔가요?"
"아빠가 자꾸 목욕할 때 같이 하자고 하고, 본인 성기를 만지게 해요. 죄명이 뭔가요?"
오늘 하루도 내가 경험한 일이 ‘성폭력피해’라는 것이 감지되는 순간,
"죄명이 뭔가요?"를 질문하는 상담이 몰려옵니다.
너무나 당연합니다.
피해자들은 헷갈립니다.
강간은 ‘남성의 성기가 여성의 성기에 삽입되는 것’이라고 했는데,
삽입이 되었는지 아닌지도 확실하지 않고,
내가 미친 듯 반항을 한 것 같지도 않고,
가해자도 무섭게 협박한 것도 아니고,
그렇다면 만지기만 한 성추행인가?
가슴, 엉덩이를 만져야만 성추행인가?
그렇다고 하기에는 너무나 빈약한데 그렇다면 강간미수인가?
미수는 강간 직전까지를 말한다고 하던데, 그 직전은 뭘 말하는 거지?
내가 경험한 이 성폭력피해를
법에서는 어떠한 죄명으로 처벌하고 있고,
사회에서는 어떠한 개념으로 부르고 있는지
궁금한 것이 너무나 당연합니다.
이것이 정해지면 형량도 대충 가늠해 볼 수 있고,
어느 정도의 책임을 가해자에게 물을 수 있는지도 예측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변호사에게 물어보기도 하고,
여성청소년계에 상담을 하기도 하고,
인터넷 게시판의 여러 수사대에 도움을 청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어째 더 복잡하게 모두들
‘말이 다릅니다.’
이거 대체 누구 말을 믿어야 하는지 더 복잡하기만 합니다.
보통 이런 경우 상담소에 전화를 하게 됩니다.
"대체 누구 말을 믿어야 하나요?"
여기서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물론 법에는 기준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이 ‘법’이라는 것을 만든 것도 사람,
집행하는 것도 사람인 관계로
‘사람의 판단’이 들어갑니다.
예를 들어 동일한 사건의 경우도 판사에 따라 판결이 바뀌는 경우들이 있는데,
피해내용을 어떠한 관점에서 판단하느냐에 따라 죄명도 다양하게 구상될 수 있습니다.
즉 피해자가 경험한 각각의 세부적인 상황에 따라 죄명이라는 것은 변화무쌍합니다.
강간이라도 피해자의 나이, 가해자의 동기, 가해자와의 관계에 따라 다르고,
폭행과 협박도 정도와 빈도에 따라 다르고,
피해자와 가해자의 장애여부와 서로의 역할, 특수한 상황 등에 따라
죄명은 다르게 적용되고,
이는 형량과도 직접적인 연관이 있습니다.
또한
크게 고소의 경우와 고소가 아닌 경우를 생각할 수 있는데,
▲ 당장 고소를 하겠다는 것은 아니지만
‘내가 경험한 성폭력피해를 어떻게 규정할 수 있는가?’가 궁금하다면,
형법과 성폭력특별법에 처벌조항이 없는 스토킹, 성희롱 등도 개념규정에 포함됩니다.
예를 들어 스토킹은 법적용어가 아니고, 사회적으로 합의된 하나의 개념 입니다.
스토킹의 행위를 구성하는 ‘협박, 폭행, 업무방해, 주거침입’ 등이 죄명이 됩니다.
이처럼 좀 더 폭넓은 의미에서 성폭력피해를 규정하고,
이를 성폭력가해자와 성폭력이 발생한 조직에 책임을 물을 수 있습니다.
▲‘고소’가 목적이라면
고소장에 죄명을 쓰지 않고 고소장을 접수하고,
담당형사와 어떠한 죄명이 적용되는지를 의논할 수 있습니다.
죄명을 알고 있어야 고소가 가능한 것으로 생각하고,
정확한 죄명을 몰라 답답해하시는 분들이 많은데
이는 꼭 그렇지 않습니다.
특히 죄명은 담당형사와 검찰의 시각에 따라 다양하게 적용됩니다.
예를 들어 강간을 시도하면서 가슴을 만진 가해자가 있다면
강간동기의 정황을 보고 ‘강간미수’를 적용할 수 있지만,
가해자의 동기와 정황보다 가슴을 만진 사실에 집중하여
강간미수보다 약한 ‘강제추행(성추행의 법적 용어)’을 적용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정답이 없는 죄명을 혼자 고민하지 말고,
상담자 혹은 경찰에게 상담 받는 것이 좋습니다.
하지만 여기서 중요한 것!
성폭력의 경우 조사관들이 법적으로 조언하는 부분에 관해
성폭력전문상담기관에서 확인하는 것이 좋습니다.
변호사든, 형사든, 판사든 아무리 법을 공부했다고 하여도
본인들이 자주 다루지 않는 분야에 대해서는 잘 모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안타깝지만 아직도 성폭력 고소기간이 6개월인 줄 알거나(성폭력특별법에 의거 1년입니다.),
증거가 없으면 고소 자체가 안된다고 하거나(증인․증거를 남기는 가해자는 정말 잘 없습니다.),
이정도로 고소를 하려고 하느냐며 훈계하거나
(사소한 일로 시간과 노력을 들여 경찰서에 가는 피해자는 잘 없습니다.),
성폭력특별법의 적용에 대해 잘 모르는 경우도 많기 때문에
징검다리를 두드리는 의미로 한번 확인하는 것이 좋습니다.
(물론 이것은 단순히 죄명을 알고, 모르고의 문제가 아니라
‘성폭력피해 인식’의 문제임이 분명한데, 이는 앞으로의 이야기에서 나누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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