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21년 3월 18일(목) 오후 7시 온라인 화상회의를 통해 회원소모임 "페미니스트 아무말대잔치(이하 '페미말대잔치')" 3월 모임을 진행했습니다. 이번 모임은 앎, 다운, 보라, 명아, 똑부진, 예이예 총 6명이 참여했습니다. 소모임 참여자 보라님의 후기를 공유합니다.
안녕하세요. 1월과 2월에 이어 세번째 참여한 보라라고 합니다.
간단히 요즘 어떻게 지내는지 근황 이야기를 한 후, 제가 최근 겪은 일을 말했습니다.
최근 제 친구가 한 남성에게 성추행을 당했는데, 피해자인 친구가 성추행을 한 가해자를 오히려 옹호해 주었습니다. "남자는 성욕을 제어할 수 없다, 술 취해서 그런거다…" 이러면서요.
저는 "너는 왜 저항하지 않았냐, 나같으면 그 자식을 막 때리고 당장 이 집을 나갔을거다" 라며 친구를 탓하는 발언을 하였습니다.
그랬더니 친구는 "맞을까봐 무서웠다"고 말했습니다. 제 친구는 데이트폭력을 당한 경험이 있어, 아마 그 때를 떠올린 건 아닐까 싶습니다.
저는 그 성추행범에게 사과를 받을거냐고 물었으나 친구는 그냥 괜찮다고 하며 별일 없었다는 듯이 지나가길 바라는 것 같았습니다.
이 이야기를 듣고 나서, 앎님은 성추행에 저항하거나 뿌리치지지 못한 피해자를 탓하듯 말하는 것은 좋지 않다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저도 그 얘기를 듣고 제 행동을 반성했습니다.
이예이예님은 남성들이 여성의 동의를 얻지 않고 자기 맘대로 스킨쉽을 하거나 성적인 행위를 하려고 할 때, 여성도 “나는 남자들에게 인기를 얻고 있다. 나를 원하고 있다” 라는 생각을 갖게 하는 사회문화가 있는 것 같다는 지적도 해주셨습니다.
그러자 다운님은 <내게 필요한 NO맨스>라는 네이버 웹툰을 추천해 주었습니다. 그 웹툰에는 남성이 여성에게 동의 없이 스킨쉽을 하자 여성이 (두근거리며 설렘을 느낀다는 기존 클리셰를 깨고) 화를 내는 내용이 나온다고 합니다. 남성이 "왜 싫어해? 나 잘생겼잖아?"라고 묻자 여성이 "내가 동의하지 않았잖아"라고 대답하는 장면이 인상적이었다고 합니다.
내게 필요한 NO맨스 comic.naver.com/webtoon/list.nhn?titleId=753975
저는 피해자임에도 가해자의 관점을 내면화하고 있는 친구에게 답답함을 느꼈던 것 같습니다. 이전에 그 친구가 데이트폭력 피해를 경험했을 때도, 친구는 남성중심적·가부장적 관점 때문에 데이트폭력에서 쉽게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친구는 남자친구가 이미 데이트할 때도 폭력을 행사했음에도 동거를 시작했다고 했습니다. 동거를 하면 남자친구의 데이트폭력이 조금 수그러들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고 합니다.
저는 폭력을 행사하는 남자친구와 데이트하는 단계에서 헤어지지 못하고, 동거를 하기로 결심했던 친구의 판단이 어리석었다고 생각했고, 그런 경험이 있음에도 친구의 인식에 변화가 없는 것 같아서 짜증이 나고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의견을 냈습니다.
다른 참여자 분들은 데이트폭력 피해자가 처한 입장을 이해하고, 쉽게 헤어질 수 없는 이유를 헤아릴 수 있으면 좋겠다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당시 제 친구가 타지에서 너무 외로웠을 수도 있고, 이 남자가 아니면 자신을 사랑해주는 사람을 못 만날 수도 있을것 같다는 두려움을 느꼈을 수도 있고, 평소 사회에서 "남자는 여자하기 나름이다", "같이 살면/결혼하면/자식이 생기면 달라지겠지"라는 말을 듣고 살았다면 그 말을 믿었을 수도 있다고. 혹은 자기자신을 보호하는 방어기제로 데이트폭력의 심각성을 외면하고 싶었을 수도 있다고. 피해자가 살아온 삶과 환경, 맥락이 피해자의 대응 방식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지적해 주셨습니다.
데이트폭력 뿐 아니라 가정폭력 피해자 분들도, 상담소나 쉼터에 오셔서 피해로 인한 고통을 많이 호소하다가도 끝내 헤어지지 않고 다시 가해자가 있는 가정으로 돌아가는 경우가 많다는 사례도 알려주셨습니다.
이와 관련해서 앎님은 <커져버린 사소한 거짓말>이라는 소설을 추천해주셨습니다("빅 리틀 라이즈"라는 미국 드라마로도 제작되어 왓챠에서 볼 수 있다고 해요).
여성이 항상 잘 참고 인내하는 것을 '여성의 미덕'으로 바라보는 이 사회의 압력이란건 무엇일까? 란 문제제기도 함께 이야기나눴습니다.
한 참가자는 요즘 성폭력전문상담원교육을 받고 계신데, 과거 자신이 경험한 성추행 피해를 말씀하시면서, 성폭력이 왜 이렇게 빈번하게 일어나는지 심란해 하셨습니다. 왜 남성들은 여성을 쉽게 성적 대상화하고, 일상적으로 성폭력을 저지르는지 분노하셨습니다. 저도 어렸을 때 누군가가 가슴을 움켜쥐는 성추행을 당한 경험이 있고, 버스 정류장에서 낯선 사람에게 “존나 못생겼네”라는 말을 듣고 뺨을 맞은 경험이 있었기 때문에, 그 분노에 깊이 공감할 수 있었습니다.
직접적인 성폭력뿐 아니라 여성에 대한 성적 대상화와 성차별적 조직문화로 인한 여성 배제 문제도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어느 참여자가 예전에 다니던 직장에서는 여성에게만 복장 검사를 심하게 했다고 합니다. 그 참여자는 옛 직장에서 우연히 상사의 메일함을 볼 기회가 있었는데, 알고 보니 회사 내 남성 사원에게만 전체메일로 섹스 동영상이 돌고 있어 충격을 받으셨다고 합니다. 섹스 동영상을 굳이 전체메일로 돌려보는 회사 내 남성문화도 충격이었지만, 그렇게 만들어진 남성 사원들의 유대관계를 여성 사원들은 전혀 몰랐고 철저히 배제되어 있었다는 사실도 충격이었다고 합니다. 그 이야기를 듣고 모임 참여자들도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제 기준 오늘의 하이라이트라고 할수 있는 이야기는, '픽업 아티스트'라는 직업이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여자를 후려치는 기술이나 명품으로 옷 잘 입는 법을 돈 주고 공부하는 남성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남성들의 목적은 예쁜 여자를 많이 꼬셔서 많이 섹스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그걸 위한 기술 등을 돈 받고 가르치는 강사가 자칭 '픽업 아티스트'라고 합니다.
이 세상은 성매매를 하는 남자와 성매매를 안 하는 남자로 나뉜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라 성매매를 하는 남자, 픽업 아티스트 강의를 듣고 여자를 꼬시는 남자, 그리고 아직 우리가 모르는 수법으로 여성을 성적 도구 취급하는 남자가 있는게 아닐까 의심이 들었습니다.
어느새 이야기 주제는 성매매로 이어졌습니다. 일본과 독일의 성매매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성매매를 어떻게 볼 것인가 각자의 의견을 나누었습니다. 독일은 성매매가 합법이고, 일본은 삽입을 하는 성매매만 불법이고 그 이외(유사 성행위 포함)에는 법적 규제를 받지 않는다고 합니다.
어떤 참여자는 권력 관계나 폭력이 없다는 전제 하에, 아주 깔끔하게 계약서대로 합의한 행위만 이행하는 성매매라면 괜찮지 않을까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렇지만 누군가는 성을 사기 위해 돈을 주고 누군가는 돈을 받기 위해 성을 판다는 계약 관계에 이미 권력 관계가 밑바탕으로 깔려 있으므로, 이 권력 관계를 빼놓고 성매매를 논하는건 어렵지 않을까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한 참여자는 남성이 여성을 사듯이, 자신도 호스트바 같은 곳에 가서 남성을 사볼까 생각해 보았다고 합니다. 만약 남성을 돈으로 사면 자신도 상대를 제대로 인간으로 대접하지 못할 것 같다고 솔직하게 말씀해 주셨습니다.
또다른 참여자는 성매매 문제를 이야기할 때 주로 성판매 여성들만 부각이 되는데, 사실은 이 성산업을 통해 성판매 여성들을 착취하고 돈을 벌고 있는 업주/포주들을 더 드러나게 해야 한다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렇다면 리얼돌은 어떨까요? 차라리 인형으로 대체해서 남성들이 뭘 하든 상관하지 않는 것이 나을까란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저는 리얼돌을 보면 너무 소름끼치게 징그럽다는 생각이 계속 듭니다. 그리고 많은 여성 혐오 범죄자들이 잔인하고 악랄하게 여성을 괴롭히는 포르노를 많이 시청하고 살인이나 성범죄를 저지른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습니다. 리얼돌로 자신의 성욕을 해소하는 남성은 여성을 성적 도구로 바라보는 왜곡된 성인식이 강화되고 결국은 여성에게 직·간접적으로 성차별과 성폭력을 하지 않을까란 생각도 들었습니다.
남성의 성문화를 어떻게 볼것인가, 어떻게 바꿔나갈 수 있는가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절망이 너무 커서, 사실 그냥 다 없애 버리고 싶다는 말도 안 되는 생각도 해 보았습니다.
마지막에 어떤 참여자 분이 “여성들이 남성 권력에 착취당하고 모욕당하고 평생 희생당하는 삶을 어떻게 끊어낼 것인가” 이런 질문을 계속 하게 된다고 말씀해 주셨는데, 저도 매우 공감이 되었습니다.
다른 참여자가 말씀하신 소감처럼 저도 '오늘도 잘 왔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4월에 뵐 날도 매우 기대가 됩니다!
다음 모임은 4월 15일(목) 오후 7시 온라인 화상회의(ZOOM)으로 진행될 예정입니다. 아래 참여 안내에 따라 이메일로 참여 신청을 해주시면 담당자가 확인하여 연락드리도록 하겠습니다.
◆ 페미니스트 아무 말 대잔치에 참여하고 싶다면? 올해 "페미니스트 아무 말 대잔치"는 월1회 여성주의 수다모임으로 매월 셋째 주 목요일에 진행하되, 부득이한 경우에는 사전 협의하여 다른 주 목요일로 일정을 조정하는 것을 원칙으로 운영될 예정입니다.
한국성폭력상담소 회원 및 지지자는 누구나 참여 가능하오니 관심 있는 분들은 아래 내용을 참고하셔서 신청해 주세요~
◆ 일정 : 매월 셋째 주 목요일 오후 7시(상담소 사정이 있을 경우 협의 하에 일정 변경) ◆ 장소 : 신청자에게 별도 공지(*코로나19로 인해 당분간 온라인 ZOOM을 통해 진행) ◆ 문의 : 한국성폭력상담소 앎 (02-338-2890, f.culture@sisters.or.kr) ◆ 신청방법 : 성문화운동팀 이메일(f.culture@sisters.or.kr)로 다음과 같이 참여 신청서를 작성하여 보내주세요!
제목 : [페미말대잔치] 회원소모임 참여 신청 내용 : 이름/별칭, 연락처, 참여 동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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