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폭력에 맞서다: 사례, 담론, 전망
사단법인 한국성폭력상담소 기획
날씬한 몸은 자기 만족이고, 운동은 남성들만을 위한 것이며, 여성들은 언제나 ‘여자다워야’하며, 원래 약하기 때문에 남성들에게 보호 받아야 한다는 고정관념이 바로 그것입니다. 그래서인지 성폭력에 대해 분노하며(!) 이야기할 때도 부끄럽지만 “여자는 약하니깐 힘으로는 못 이겨. 여자가 조심할 수 밖에 없어.”라는 논리를 들먹이던 기억이 나서 얼굴이 화끈거립니다.
여성의 생물학적인 남성과의 차이를 생각하기 이전에, 여성스럽다고 여겨지는 몸과 몸가짐을 원하기 이전에, 사회에 이미 매커니즘화 되어 있는 불평등이 성폭력을 조장하는 것은 아닐까에 대한 고민이 우리에게 필요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가지고 있는 욕망은 사회로부터 구성된다는 것을 알고, 여성들의 ‘몸’이 진정으로 자유로워지기 위해서는 여성들 스스로 틀을 깨고 나와 욕망을 재구성할 필요성이 존재합니다.
제 2부에서는 보호와 평등의 딜레마가 나오는데, 이것은 저에게 가장 흥미를 끈 용어 중 하나였습니다. 여성을 분석 범주로 해체하면서도 저항의 주체로 만드는 것에 대한 논의입니다.
최근 멕시코 국경 지대에서 여성들이 연쇄적으로 실종되는 사건이 벌어졌고, 1970년대에도 텍사스에서도 여성을 대상으로 한 연쇄 살인이 일어납니다. 이 때 멕시코에서는 남성들에게만 총기가 지급되고, 텍사스에서는 여성단체에서 여성들에게 총기 사용법을 가르칩니다. 이 때 텍사스에서는 여성들에게 총이 지급되면 여성스러움이 사라질 것이라는 등의 반대가 거세지만, 여성들이 총기를 지니게 된 이후 텍사스에서는 연쇄 살인이 멈추지만 그렇지 않은 멕시코에서는 여전히 만연하고 있습니다.
이 사례를 보며 우리는 의문을 가질 수 있습니다. 왜 여성들은 여성스러움을 위해 무기 소지가 사회적으로 금기시될까요? 왜 사회는 수동적이고 보호되어야 하는 여성상을 원하는 것일까요? 이렇게 실제 사례들이 그것이 올바르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는데도 말입니다.
이런 부조리를 타파하기 위해서 한국성폭력상담소에서는 자기방어훈련, 춤 세라피, 꿈 세라피, 욕망초, 밤길 되찾기 시위, 생존자 말하기 대회 등 많은 사업들을 벌이고 있습니다. 이런 사업들을 알고는 있었지만, 그 밑바탕에 어떤 사상적 기반을 두고 있는지, 진정으로 지향하는 목표가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이 책을 읽음으로써 어렴풋이나마 느낄 수 있었습니다. 여성들의 욕망을 찾고, 다양한 활동을 통해 몸을 해방시키고, 몸에 내재되어 있는 규범과 위계 질서를 타파하는 것은 진정으로 여성을 자유롭게 만들기 위한 작지만 의미 있는 시도입니다.
성폭력 없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사회 구성원 모두가 성폭력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반성폭력에 대한 인식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노력 끝에 여성들은 드디어 자유로운 ‘몸’이 되어 밤길을 되찾게 될 것이라고 간절히 기다려 봅니다.
보미 / 경희citiNGO 인턴십 한국성폭력상담소 인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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