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성폭력상담소 기자단 2기의 은유입니다. ‘성폭력생존자말하기대회’ 혹은 생존자자조모임 ‘작은 말하기’에 대해 들어본 적이 있으신가요? 생존자가 누구를 지칭하는 건지, 혹은 생존자들이 무슨 얘기를 하고 싶은 건지 우리 안에 다양한 질문들이 있을 수 있겠습니다.
첫 콘텐츠로 2020년도부터 작은말하기와 함께 하고 있는 한국성폭력상담소의 감이 활동가님을 모시고 인터뷰를 진행했습니다. 감이 활동가님은 2000년대 초반에 처음 한국성폭력상담소에 와서 성폭력생존자말하기대회 기획단으로 참여했고, 자원활동을 하면서 종종 작은말하기에 참여할 기회가 있었다고 해요.
1. 한국성폭력상담소 작은말하기의 역사에 대해 간략히나마 듣고 싶습니다.
작은말하기는 2007년 4월에 처음 시작되었습니다. 한국성폭력상담소에서 2003년부터 진행했던 ‘생존자말하기대회’가 성대하고 오래 준비를 해야 하는 측면이 있다면, 작은말하기는 ‘좀 더 일상적으로 생존자들끼리 안전한 공간에서 말하고 싶다’라는 욕구들이 모여서 생기게 된 자조 모임입니다.
2. 작은말하기는 몇 명으로 구성되나요?
작은말하기 참여에 대한 적절한 인원이 정해져 있지는 않지만, 공간과 상황에 따라 인원을 정하고 있어요. 코로나 이전에는 매월 마지막 주 수요일 저녁 7시부터 9시 공식순서 후에 뒤풀이를 진행하면서 참여자들 간에 더 깊은 이야기들이 오고 갔었기 때문에 좀 더 많은 인원이어도 진행이 가능했었어요.
각종 빵과 수박이 먹음직스럽다
작은말하기에서 특히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먹는 것’이거든요. 작은말하기의 시작 시작이 7시이다 보니, 저녁 식사를 못하고 오시는 분들이 많아요. 음식을 나눠먹으면서 유대감과 일원으로 속해있다는 느낌도 받고 잘 차려져 있는 음식들을 보면 그날 참여한 생존자분들이 환대의 느낌을 받으시기도 해요.
코로나19 이후에는 작은말하기 시간을 오후 7시부터 9시로 정해서 뒷풀이 없이 진행하고 있어요. 그래서 2시간 안에 이야기를 나누려면 최대 10명이 넘어가면 어렵더라고요. 너무 많은 숫자면 모두가 이야기를 충분히 하지 못할 수도 있어요. 공간의 크기나 환경에 따라서도 적정인원이 달라질 수 있는데, 올해는 이런 저런 상황을 고려해서 열 명 정도로 참여인원을 정해서 운영하고 있어요.
3. 어떤 생존자들이 작은말하기에 참여하나요?
작은말하기에 오시는 분들은 첫째로 ‘본인이 말하고 싶어서’도 있지만, ‘다른 생존자분들을 만나고 싶어서’ 오시기도 합니다. 먼저 자기 얘기를 하기보다는 다른 참여자들의 얘기를 들으면서 ‘아, 나와 비슷한 경험들을 하고 있구나.’를 느끼고, 그들의 얘기를 들으면서 생기는 ‘안전감’ ‘신뢰감’이 본인에게 먼저 형성된 다음에 자기 얘기를 하시는 분들이 많다고 느껴요.
성폭력생존자말하기대회 경우 정말 ‘나의 경험을 알리고, 말하고 싶은’ 그 과정에서 많은 것들을 이미 느끼는 분들이 ‘말하기 참여자’로 참여하셨다면, 작은말하기는 말하고 싶은 욕구는 기본적으로 있지만 아직 준비가 되지 않은 분들도 계세요. 간혹 말을 못하고 가시는 분들도 있어요. 그분들은 한번 두 번 작은말하기에 직접 참여하는 과정 속에서 서서히 말할 준비를 하시는 것도 있다고 생각이 들어요.
4. 작은말하기의 진행방식이 있나요?
처음에는 간단히 인사하고 작은말하기 참여자로서의 약속과 한국성폭력상담소 이 공간의 약속을 함께 읽어요. 그 다음 각자 이 공간에서 자기가 불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이름과 오늘 어떤 마음으로 오셨는지 돌아가면서 인사를 하며 바로 시작이 됩니다.
집단상담의 경우 주제별로 또는 각기 계획된 구성과 순서와 계획이 있는데, 작은말하기는 자조모임이기 때문에 누군가가 그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사람이 있지 않아요. 활동가들이 주로 진행을 하지만, 그 활동가가 어떤 주제를 내주고 그 주제에 맞는 말을 하도록 유도하지 않고 그냥 자연스러운 분위기에서 이 타이밍에서 내가 얘기하면 되겠다라고 스스로 판단하셔서 참여하는 방식이에요.
모두가 둘러앉을 수 있는 테이블이 정겹다
서로가 서로의 얼굴을 볼 수 있게 둘러 앉아서 진행을 합니다. 테이블 모양 때문에 네모가 되기도 하는데, 가능한 한 원의 느낌을 주려고 하고 있어요. 그리고 두 시간 동안 자유롭게 이야기를 나눈 다음에 9시가 되면 엽서를 한 장씩 나눠주는데, 작은말하기에 대한 소감을 짧게 적는 시간을 갖습니다.
5. 상담과 작은말하기가 다른 점이 있을까요?
상담은 상담자와 내담자가 1:1 또는 1:다수로 역할이 나뉘어지지만 작은말하기는 서로의 역할이 나눠져 있지 않아요. 나는 여기에서 말만 할 사람, 듣기만 할 사람이 아니라 모두가 다 말을 할 수 있고 들을 수 있는 위치에 있어요. 또한 작은말하기는 당월 참여자들에게 나의 경험, 나의 어려움을 이야기 하기도 하지만 다른 사람들이 기대하고 듣고 싶어 하는 말을 하는 장소이기도 합니다.
6. 생존자들이 어떤 얘기를 나누나요?
본인의 피해 얘기를 먼저 말하는 사람도 있구요, 요즘 어떻게 지내는지로 시작하는 경우도 있고, 참여 신청을 할 때나 당일 오시는 길에 이런 얘기를 나눠보고 싶다면서 알려주시기도 해요. 게다가 처음 시작한 한 가지 주제로 쭉 얘기가 흘러가지 않고, 정말 다양한 이야기들이 나와요. 각자 나름대로 어려운 시간을 지나온 방법이나 경험에 대해서 나누기도 하고요. 예를 들어 명상을 한다던지, 좋은 심리상담사를 만난다던지, 그림을 그려본다던지, 부모와 절연을 한다던지, 법적인 절차를 진행한다던지 생존자마다 질문도 다르고 질문에 대한 답도 다 달라요. 생존자의 경험을 이야기한다고 해서 힘든 얘기만 나눌거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정말 다양한 일상을 살고 있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이 근처에 맛있는 밥집 어디예요?” 이런 얘기들도 나눠요.
그리고 법적인 절차를 진행했는데 너무 결과가 좋지 않아서 그것 때문에 힘든 얘기를 하시는 분도 있어요. 하지만, 신고조차 할 수 없는 상황에 있던 생존자는 법적인 절차를 시작했다는 것만으로도 그분을 부러워하기도 해요. 다른 생존자들의 경험을 들음으로써 그 자리에서 이전에 없었던 다른 감정이 생기고, 또 서로 이야기를 나누다보면 시야가 넓어진다고 하는 분도 계세요.
7. 작은말하기에 참여했지만 말하지 못하고 가신 분들도 있다고 하셨는데요, 그런 분들께는 어떻게 하시나요?
아직 때가 안되었다고 생각하셔서 그럴 수도 있고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말하지 못한 분들에게는 다음 번에 다시 꼭 오시라는 얘기를 드려요.
가끔은 한 분이 이야기를 많이 하시기도 하는데 그런 분들은 그만한 이유가 있어서 말씀을 많이 하시는 거거든요. 그런데 처음 오시는 분은 긴장을 하시기도 하고 이런 얘기를 해야지 계획해서 오시기도 하는데, 작은말하기가 적절한 얘기 타이밍에 스스로 이야기를 꺼내야하는 방식이다 보니 충분히 얘기하지 못했다는 느낌이 드는 분들도 있을 수 있죠. 그래서 그런 분들에게도 역시나 “꼭 다시 오셔서 얘기나누자” 그렇게 말씀드려요.
8. 여러 번 모임에 참여하는 분들도 계시나요?
몇 년째 오시는 분들이 많아요. 자기소개 시작할 때 ‘저는 몇 년부터 오기 시작했어요’로 시작하시는 분들도 있어요. 5~6년 되신 분들도 있고, 10년 되신 분들도 있어요.
9. 참여자들의 공감과 지지의 반응은 어떤 것들이 있나요?
자신의 피해와 가해자의 반응을 얘기하면, 같이 화내주는 게 가장 많아요. 피해자분들이 화를 못 내는 분도 있거든요. 그렇게 같이 화를 내다보면 서로 통쾌함을 느껴요. “너무 힘든 시간을 지나왔겠다”라는 얘기를 하시기도 하고요. 그리고 생존자분들이 지금껏 대응했던 반응이 다 다를거잖아요. 어떤 방식이든 간에 “지금까지 잘 버티며 살았고, 앞으로도 잘 살아보자” 이런 얘기들이 오고가요.
10. 아직 작은말하기에 참여하지 않은 생존자가 있다면 건네주고 싶은 말?
제가 메시지 드리고 싶은 분들은 작은말하기라는 공간이 있는 것을 아는데, 용기 내기 어려운 분들이에요. 그 분들에게 “말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아도 와보시면 좋겠다”고 전해드리고 싶어요. 그리고 여기는 꼭 본인의 피해경험을 이야기하러 오는 자리가 아닐 수 있다. 그런 부담을 내려놓으시고 나와 비슷한 사람을 만나고 싶다는 마음이 있다면 한번 꼭 오시라고요. 다양한 생존자들을 만날 수 있고, 예상하지 못한 좋은 에너지를 받아가실 수 있어요.
자기소개 할 때 “드디어 작은말하기에 왔다”라고 말하는 분들이 있어요. 그게 얼마나 반갑고 좋았던지 몰라요.
11. 작은말하기에서 이루어지는 성폭력 생존자들의 발화가 이들의 말을 들어보지 못한 이들이나 2차 가해를 아무렇지 않게 하는 이들에게 어떤 의미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의도적으로 생존자를 비난하고 공격하는 일도 있고, 자기가 무슨 말 하는지도 모르고 위로와 응원의 표현이랍시고 한 말이 2차 피해가 되는 경우가 많아요. 그리고 특히 가장 가까운 관계나 주변 사람들이 상처를 주는 말과 행동을 해요. 그런 사람들에게는 생존자가 그 순간 “그 말 너무 상처된다.” 라고 말하기 어려워요. 설사 솔직하게 말한다고 해도 자기 잘못이라 생각하지 못하고, 오히려 2차피해라고 생각하는 사람을 예민하다고 비난하는 경우가 왕왕 있어요. 그 사람들이 쉽게 자기 잘못을 인정하거나 심지어 잘못이라 생각하지도 않거든요. 오히려 2차 가해라고 생각하고 지적하는 사람을 예민하다고 비난하는 경우가 왕왕 있어요. 그 사람들에게 작은말하기의 말들을 속기록처럼 보여줄 수 있다면, 정말 부끄러워지지 않을까요? 그 사람들이 부끄러움을 알게 될 수 있을거라고 생각해요. 하지만 그 말들이 그들에게 가닿지 않겠죠. 그들은 들으려고 하는 사람들이 아니기 때문에 생존자들에 대한 비난도 아무렇지 않게 했을거니까요.
12. 마지막으로, 작은말하기가 가진 힘에 대해 말씀해주세요.
작은말하기는 생존자의 말이 가진 힘을 느낄 수 있게 하는 공간.
작은말하기를 설명하는 문구 중에 ‘작은 공간 큰 울림’이라는 문구를 많이 쓰거든요. 그 문구를 참 좋아하는데, 생존자들의 말이 그 공간 안에서 서로 큰 울림을 줘요. 각자가 지나온 시간들을 나누면서 그 안에 엄청나게 많은 감정들이 있을거잖아요. 분노, 억울함, 슬픔, 고통 그러다가 기쁠수도 있고 환희의 순간도 있을 건데 이를 가감없이 나눌 수 있는 공간이기에 그 자유로움이 매력적이라고 생각해요. 그 자유로움이 낯선 분들도 있어요. 구조화되어 있지 않고, 효율적으로 빨리 끌어주는 사람이 있는 것도 아니고. 어떤 때는 누가 먼저 말할지 모르니까 정적이 있을 때도 있고, 거기에서 느끼는 당혹감과 답답함을 호소하는 분들도 있거든요. 그런데 저는 그게 작은말하기의 진짜 매력이라고 생각해요. 누군가 강요하지 않고, 강요되지도 않고 ‘이 이야기 해야 돼!’가 아니라, 내가 하고 싶은 말을 하게 만드는 공간이라고 생각해요.
한 시간 남짓한 인터뷰 속에서 감이 활동가의 작은말하기에 대한 애정은 물론 그 공간이 주었던 힘을 전달받을 수 있었습니다. 생존자들의 발화는 사실 #ME TOO 이전에도 존재해왔습니다. 그들은 ‘살아가고 있으므로’ 매월 마지막 주 수요일 7시에 만나 서로 상호작용하며 그 안에서 열렬히 자신의 삶을 이야기하고 있었습니다. 자신이 살아있음을 알리는 공간, 또는 살아있음을 확인하는 공간에서 그들의 말은 다양하게 공명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서로의 존재를 확인하며 역시나 ‘살아 있기 때문에’ 작은말하기는 계속 진행 중일 것입니다.
<이 글은 한국성폭력상담소 자원활동가 기자단 틈의 은유 님이 작성해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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