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 기자단 틈 2기의 은유 기자가 성폭력피해생존자 자조모임 '작은말하기'의 담당활동가 감이와 이야기를 나누어 보았는데요(👉보러가기). 이번달에는 수년간 작은말하기에 참여하며 말하기를 이어온 푸른나비를 만났습니다. 친족성폭력 피해생존자 푸른나비에게 작은말하기는 어떤 의미일까요?
안녕하세요. 한국성폭력상담소 기자단 2기의 은유입니다. 2023년 8월도 끝날 무렵, 2015년 7월부터 작은말하기에 참여해오신 푸른나비님을 만나보았습니다. 푸른나비님은 친족성폭력 생존자이자 가정폭력 생존자로써 50년 동안 피해사실에 대한 침묵을 깨고 비로소 자유롭고 싶은 마음에 본 닉네임을 지었다고 소개해주셨습니다. 푸른나비님은 작은말하기에 오래 참여해주신 만큼 다른 생존자들과 연결되어 단행본 『죽고 싶지만 살고 싶어서』와『가해자보다 피해자가 잘 사는 세상을 원해』로 그들의 목소리를 엮었고, 광화문에서 공폐단단 액션까지 생존자로서 ‘말하기’를 이어왔습니다.
1. 작은말하기에 나와야겠다 결심한 어떤 동기가 있으셨나요?
저는 교회를 다녔기 때문에 십계명에 ‘부모를 공경하라’가 있어서 그대로 실천한 바가 있었거든요. 그래서 제가 친족성폭력 아동 성학대 생존자였음에도 그 사실을 매일 잊어야 된다고 생각하며 살아왔어요. 어느 날 여동생과 이야기하다가 제 피해사실을 털어놓게 되었고 여동생은 ‘언니가 반항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라고 말을 하더라고요. 저는 동생을 보호하기 위해 피해 사실을 잊으려 했고 폭력을 참았다고 생각했는데, 동생을 아꼈으므로 그런 말까지 듣기는 좀 힘들었던 모양이에요. 그래서 상담을 받기 시작했고 ‘피해는 결코 내 탓이 아니다’ ‘가해자 부모를 탓해야 하는 일’이라는 얘기를 전해 들었어요. 또, 상담선생님께서 ‘다들 이렇게 힘들게 산다’라고 얘기를 해주셨거든요. 그런데 그 말이 듣기가 너무 힘든 거예요. 첫 번째로 너만 힘든 게 아니라는 뜻으로 들리기도 하고, 정말 말 그대로 ‘나와 같은 피해를 겪은 사람들은 다 힘들게 산다’로 들리는 거예요. 그래서 ‘나 같은 사람은 도대체 어떻게 살까?’라는 순수한 생각에 작은말하기에 한번 나오고 싶었어요. 작은말하기를 알게 된 이후로 한 달에 한 번은 찾아갈 수 있고 저와 같은 생존자들을 만날 수 있다는 사실에 처음은 긴장감을 가지고 찾아갔죠.
2. 작은말하기에 기대한 바가 있었을까요? 처음 참여하게 되었을 때의 마음을 나눠주세요.
‘어떤 분들이 오실까.’ ‘내가 작은말하기에서 말을 할 수 있을까.’ ‘다른 생존자들이 내 말을 들어줄 수 있을까.’ ‘내 말에 누군가 힘들진 않을까.’ 이런 생각을 하며, 정말 두근거리고 긴장했었어요. 그런데 다른 생존자분들이 말씀을 잘하셨고 가끔 웃기도 하시고, 울면서도 음식을 맛있게 드시더라고요.(웃음) 저도 나중에는 그렇게 되었어요. ‘어떻게 울면서 웃지?’ 이러면서. 저 같은 경우는 전형적인 K장녀여서 누구한테 대접받아본 경험이 별로 없거든요. 그런데 활동가들이 작은말하기를 위해 음식을 차린 그 정성이 보이고, 어떻게 늦은 시간까지 연장근무를 하지 그런 염려도 들고. 모든 것들이 환영의 의미로 들렸고, 정갈하게 차려놓은 음식을 보니까 황송하고 그래서 마음이 훨씬 풀렸었어요.
3. 작은말하기 이외의 공간에서 푸른나비님의 경험을 말한 적이 있나요?
저는 언론사 인터뷰나, 연구자들의 인터뷰를 많이 했어요. 작은말하기에서 만난 생존자들의 목소리를 엮은 책으로 인터뷰도 했고, 개인적으로는 2018년 미투 운동을 했을 때 광장에서 연대하자 외치기도 했어요. 공소시효 폐지에 대한 일인시위도 하고, 생존축제를 같이 열기도 하고 이러면서 말하기를 차츰 키워왔었어요. 하지만, 작은말하기에서 말하기에 대한 중요성을 알았기 때문에 이렇게 키워오고 또 할 수 있었던거라 생각해요.
저는 친족성폭력에 대해 말하지 못하는 사실 그 자체만으로 힘들었거든요. 게다가 저는 해리장애가 있고 50년 동안 피해 사실을 꽁꽁 묶어놨기 때문에 그 피해 기억이 지금에서야 풀려나고 있어요. 여전히 그 기억 속에 살고 있기 때문에 혼자서도 참 힘든 상태죠. 하지만, 오히려 ‘내가 왜 이걸 말하지 못했고, 왜 이걸 해결하지 못하지?’ 이런 생각이 드니까 ‘더 말해야 겠다’ 그런 마음이 들었어요. 말하는 경험의 중요성을 알고 그 경험이 쌓이다 보니까 인터뷰를 하면서도 ‘우리 이야기를 제대로 써주세요’라고 요구하게 되었어요. 그리고 상담선생님이 피해자의 양상을 얘기할 때 “피해자의 양상뿐만이 아니라 성폭력피해자들이 왜 말을 못하는 것인지도 얘기해주세요. 그리고 왜 말하기가 어려운 것인지 사회구조적인 문제를 해결해나갈 수 있도록 그 구조를 낱낱이 좀 얘기해주세요.”라고 얘기하고 있어요. 언론사 인터뷰할 때도 생존자들이 힘들고 아픈 것만 비추지 말고, 생존을 말하는 모습을 비춰달라고 지속적으로 얘기하고 있어요.
4. 푸른나비님의 이야기를 하게 되기까지 어떤 시간이 걸리셨나요?
제가 기억을 억누르는 편이라 정말 반백년 만에 얘기를 하게 되었어요. 저는 성인이 되어서도 성추행을 겪었었는데, 그런 것들을 하나씩 말하기 시작하니 기억을 거슬러 어릴 적 폭력의 기억을 기억해내기도 하고 그렇게 연수가 늘어나더라고요. 정말 50년 만에 얘기하게 되었어요.
5. 작은말하기 외에 자신의 경험에 쓴 일기, 메모 등 다른 기록도 있을까요?
말을 하지 못하는 동안 틈틈이 간단한 메모식으로 제 글을 남겨놓았어요. 하지만, 50년 동안 함구했기 때문에 제 고통을 묘사할 능력이 없어요. ‘그런 일이 있었다’라고만 적고, 책 『죽고 싶지만 살고 싶어서』에도 사실을 서술만 하지 문장에 감정이 별로 없을 거예요. 예를 들어, ‘아프다’ 뭐 이렇게만 쓰고. 고통을 묘사하고 자세히 표현하자니 감정을 만나고 그 아픔 안으로 들어가야 하는데 그게 아직까지는 잘 안 돼요. 기억이 자꾸 떠오르지만 그 기억을 잘 못 믿어요. ‘이 정도까지 힘들었는데도 어떻게 살았어?’라는 질문이 저한테 자꾸 생기거든요.
혹시 글에 대한 요청이 오면 그때그때 쓰긴 하는데, 정말 힘들고 많이 울면서 써요. 쓰다 보면 어떻게 이런 일이 있었는지 저 자신을 탓하거든요. 그런데 제가 겪은 일과 감정을 드러내고 나면 ‘모든 게 내 탓은 아니야. 이것은 그동안 내가 말 하지 못하게 만든 사회적 분위기와 가족의 분위기 때문이야.’ 이렇게 생각이 바뀌고 확장이 되어요. 이 변화는 제 이야기를 듣고 공감해주셨던 분들이 있었기 때문이에요.
6. 생존자로서 내 경험을 다른 사람에게 말할 수 있는 건 어떤 힘으로 가능할까요? 또는 어떤 것이 갖춰져야 가능할까요?
피해사실을 말할 수 있는 용기를 ‘내야 하는 게’ 꼭 필요하더라고요. 피해자는 생존하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 부분이 굉장히 많이 있어요. 약도 먹어야 하고, 가해자처럼 살지 않으려는 노력도 해야 하고, 성장도 해야 하고. 사실 그 자체만으로 너무 힘들지만 말할 수 있는 용기를 내면 훨씬 좋아질거라 생각해요. 제가 당한 폭력 중에 말을 하지 못하게끔 한 폭력이 있었거든요. 제 말을 할 수 있는 것이 차단된 상태였지만, 그걸 뚫으려면 ‘용기’를 내서 말을 해야 된다고 생각했고 용기를 내니 변화가 있었어요. 너무 많이 맞아서 세포까지 폭력을 기억하고 있는데, 그 세포사이를 갈라서 말할 수 있는 용기가 있으면 되지 않을까. 그 말을 누구 한 사람이라도 듣는 사람이 있다면 말을 해보자, 그리고 단 한 사람이라도 내 말을 들어준다면 난 말할래. 그렇게 비로소 용기를 내게 되었어요.
여러 사람이 내 말을 들어주고 공감하는 것을 바라진 않아요. 그것은 너무 힘든 일임을 알기 때문에 소수나 한 사람만이라도 내 얘기를 들어준다면 난 말할 수 있어요. 아직 말하지 못한 생존자분들께도 상담 장소에서 말하든지, 딱 한 사람이 당신의 얘기를 들어준다면 저는 그들에게 ‘말해보세요.’라고 얘기하고 싶어요.
7. 작은 말하기에 나와서 푸른나비님이 얻은 것들이 무엇인가요?
작은말하기에 나온 생존자들에게는 힘이 있어요. 그분들의 힘을 보면서 제가 오히려 힘을 얻거든요. 처음에 울면서 얘기하시는 분들이 어느 날 웃으면서 자신의 감정을 일상에서 어떻게 처리했는지를 얘기하실 때 정말 기쁘구요. 그 모습이 꼭 제 모습 같기도 해요. 이거 무슨 ‘이 자리에 오게 되기까지 힘이 필요했습니다’ ‘상담할 용기가 있고 힘이 있으세요’ 이런 말들 다 힘들었는데, 하지만 분명히 그것은 힘이라고 생각해요. 늘 비밀로 안고 갈 성폭력이고 나만 감당해야 할 것으로써 숨기면서 살았는데, 작은말하기에서 서로 얘기하며 힘을 얻었어요. 저는 생존자들이 다른 생존자에게 말을 하면서 힘을 준다고 생각해요. 저 또한 생존자들의 말을 들으면서 힘을 얻었고요.
제가 작은말하기에서 저의 경험을 얘기할 때 ‘그것은 해리예요’ ‘그것은 강간이예요’ 라고 말씀해주시는 분이 있었거든요. 정확하게 딱딱 얘기해주시는 것들이 제 마음에 꽂혔었어요. 상담할 때 제 경험을 얘기할 때는 선생님이 날 위로해주시고 힘을 얘기해주시려고 한다고 생각하기도 했고, ‘이 분이 뭘 알까?’라는 거리감이 있기도 했거든요. 그렇지만 같은 생존자로서 얘기하는 것은 ‘이 사람은 나를 알지’라는 믿음이 있어요. 그래서 같은 생존자의 언어에 대해 훨씬 더 가깝게 들렸고 들을 수 있었어요. 생존자가 주는 언어의 힘은 따로 있어요.
8. 푸른나비님이 다른 생존자들의 얘기를 들었을 때의 이야기를 좀 더 듣고 싶어요.
사실 작은말하기에서 다른 생존자들의 이야기 들으면서 울기도 많이 울었어요. 눈물도 어쩌면 하나의 감정표현이잖아요. 제가 피해를 입고 그 피해 상황 속에서 폭력에 노출되었음에도 저는 울지도 말하지도 못하게 심히 억압되었었어요. 그랬던 제가 작은말하기 장소에서 생존자들과 같이 울었어요. 어렸을 때와는 완연히 다르게 제가 울 수 있었던 것은, 울음은 저만의 감정표현이었고, 그 눈물만큼 공감했던 것 같아요. 그리고 제 나름대로 억압되었던 그 감정을 작은말하기에서 표현한 게 바로 눈물이었기 때문에 제 모습을 지켜보면서 저 또한 함께 성장했어요.
9. 지속적으로 작은말하기에 나오게 된 동기가 무엇인가요?
그렇게 처음에는 많이 울기도 했지만, 계속 작은말하기에 참여하다 보니 작은말하기의 분위기가 바뀌고 있음을 느끼고 있어요. 요즘에는 액션을 하고 싶어 하고, 고발도 하고 싶어하고,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누군가를 돕고 싶어 하기도 하고. 미투운동이 성폭력에 대한 고발이자 말하기라는 행동으로 연결된 것처럼 생존자들도 ‘가만히 있지 않겠다’라는 말을 해요. 사법처리 하겠다라고도 하시며 그렇게 아주 단호한 입장이예요. 그렇게 사회적으로 행동하려고 많이 하세요.
10. 작은말하기에 대해서 한번 정의해본다면?
작은말하기는 말 그대로 ‘작은’ 말하기로부터 시작되는 ‘큰’ 울림이라고 생각해요. 전 그 울림이 좋더라고요. 울림으로 인해 타인의 사상과 감정 그리고 행동에 대해 공감하고 따르고자 하거든요. 그리고 저는 친족성폭력이 왜 드러나지 못하는지 의문을 가지고, 이를 사회문제로 이슈화시켜야 된다고 생각해요. 가해자가 가족이어도 말해야 하고, 가정폭력을 받고 자란 나에 대해서도 이야기해도 된다고 믿고 있어요. 하지만 이 모든 것들이 저 혼자 되진 않고, 작은 말하기 안에서 공감해주시는 분들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어요. 이것은 저의 에피소드인데, 제가 “일인시위를 하고 싶어요.” 그랬더니. 다른 생존자가 제 말에 함께 손들어주셨어요. 저는 그 분이 손을 들어 공감해주신 것만으로도 힘이 됐었어요. 나는 가정폭력 생존자이자 내가 친족성폭력을 당한 사실을 사회에 말해도 되겠구나, 그리고 나는 행동하고 싶어하는구나. 저 사람이 날 공감해줬는데 왜 일인시위 못해? 그래, 해보자! 전 피해사실을 말할 수 있기 때문에 이것으로 행동하기 위해 액션플랜도 짰어요. 동의하는 사람을 만나고 싶어서 작은말하기에 나가게 된 것도 있어요.
11. 푸른나비님이 이 글을 보고 있을 생존자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을까요?
어렸을 때나 지금이나 전 하루살이거든요. 가족의 지원이 없이는 실질적으로 집을 구하기도 힘들고, 아이를 키우고 결혼생활도 그렇고 가족의 지지가 필요한데, 그게 없는 상황에서는 힘들 수밖에 없고, 스트레스도 정말 많아요. 그런데 이런 생존자들이 많다는 거예요. 특히 친족 성폭력 생존자에게는 집이 감옥이자 범행 장소예요. 저는 지금 집이 있지만 가끔 감옥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힘들고, 집에서조차 안절부절하고 힘들어요. 하지만, 제 말을 들어주고 공감해줄 단 한 사람을 만나기 위해 작은 말하기에 나갔듯이, 하루만 잘 견디고 살아가면 난 또 살아갈 수 있다고 생각해요.
저는 어렸을 때 힘이 훨씬 더 있었다고 생각해요. 지금 어른이 되니까 어린 나를 회상할 때 그게 참 힘들더라고요. 그래도 그 어렸던 내가 힘듦을 견뎠는데, 지금 어른인 내가 그 하루를 못 견디겠어? 라는 심정으로 견뎌요. 저는 자원이 없어서 단 하루도 쉬면 안 돼요. 하지만, 제가 가진 해리장애 때문에 피해 사실이 기억으로 떠오르면서 몸이 절로 아파지거든요. 그렇게 아파서 쉬기도 하지만, 어른으로서 감당해야 할 시간이 있어요. 그래서 지금이나 예전이나 하루만 잘 살자. 그렇게 다짐해요.
저와 같은 젊은 생존자들을 만날 때가 있어요. 그분들도 저처럼 지금 당장 생활해야 하는 현실도, 기억도 사건도 모두 힘들어요. 그래서 그분들에게 단 하루만이라도 잘살아보시고, 어느 날 우리 만나자. ‘잘 살아왔다.’ 고 서로 칭찬해주고 그러자 딱 그 마음이에요. 그러던 어느 날 생존자들을 만나게 되면, ‘잘살고 있었구나’ 그게 참 고맙고, ‘고맙다’ 이 말이 저절로 나와요.
인터뷰는 한 시간 반이 훌쩍 넘겨있었고, 푸른나비님은 인터뷰를 한 지 어느덧 5년이 넘었음에도 늘 눈물이 나는 것 보면 이게 참 힘들고 어려운 일이라며 눈물을 보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녀는 저와 함께 한 인터뷰 동안 얘기하면서 웃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작은말하기를 하면서 ‘자신의 말’을 했기 때문에 행복했으며, 어느 날 더욱더 당당하게 말할 날을 기다린다고 덧붙여주셨습니다.
끈끈하게 삶을 이어오며 자신의 이야기로 또 다른 생존자들과 연결되고자 하는 그녀의 ‘생존’은 작은말하기로 시작된 울림에서 시작될 수 있었습니다. 어딘가에 있을 또 다른 생존자들은 어떤 곳에서 어떤 얘기를 하고 싶어 할까요?
한국성폭력상담소의 작은말하기는 매월 마지막 주 수요일 저녁 7시. 그리고 지금 여기, 당신의 생존 이야기를 들어주는 사람이 있다고 손을 들어봅니다.
<이 글은 한국성폭력상담소 자원활동가 기자단 틈의 은유 님이 작성해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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