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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끌시끌 상담소

[후기] 책 소모임 (아직도 이름 미정) 두 번째 만남

* 일시 : 2023921일 목요일 19:00~20:40

* 참여자 : 민지, 감이, 희진, 승아

* 이달의 주제 : 친족성폭력

* 이달의 책 : <<죽고 싶지만 살고 싶어서>>

 

아직 이름이 정해지지 않았으나 2번째 책 모임이 저번 주 목요일에 진행되었다.

참여자는 민지, 감이, 희진, 승아.

승아는 첫번째 참여였다.

 

먼저 모임에 처음 참여하는 승아를 위해 우리는 돌아가면서 인사하고, 서로 간단하게 자기소개를 했다. 그리고 이어진 근황 토크. 다들 바쁘고 정신없게 보낸 지난날의 근황을 나눴다. 그런 바쁜 와중에도 모임을 위해 책을 읽고 온 우리가 승리자였다.

 

근황 토크를 하면서

최근 새로 일을 구한 희진이 중간중간 일을 하다가 쉬는 시간에 사장과 직원들이 성차별적인 이야기를 너무 많이 한다며, 그동안 페미니즘 수혈이 필요했다고 포효(?)했는데 승아가 이를 받아 모임 이름을 월간 페미 수혈로 하는 게 어떻겠냐고 했던 게 기억에 남는다.

 

그리고 본격적으로 독서 나눔 시작.

2023년 9월, 이달의 책 <죽고 싶지만 살고 싶어서>

가을이 시작되는 이달,

친족 성폭력을 주제로 한 9월의 책은 내가 저자로 참여한 <<죽고 싶지만 살고 싶어서>>였다. 이날 모임지기도 나였다.

우리는 느낀 점이나 기억에 남는 부분, 그리고 참여자들과 나누고 싶은 부분을 한 명씩 돌아가면서 나눠보기로 했다. 나는 각자 책에 밑줄을 치거나 메모를 남긴 부분을 하나씩 이야기하고, 그 이유도 나누며 한 바퀴씩 도는 방식은 어떻겠냐 제안했고, 다들 흔쾌히 동의하였다.

 

부득이하게 책을 읽지 못하고 모임에 처음 참여하는 승아를 제외하고, 우리는 총 세 바퀴를 돌았는데, 후기가 너무 길면 읽기 힘드니 부득이하게 한 명당 가장 기억에 남는 나눔 한 가지씩을 꼽아 적어보겠다.

 

* 민지의 밑줄 쫙 :

이 책은 친족 성폭력에 대한 가시화 및 보고가 그 자체로 사회운동이자 여성주의 지식 생산임을 보여준다. (9p)

최근에 내가 반성폭력 운동을 하고 있고, ‘공폐단단(친족 성폭력을 말하고 공소시효 폐지를 외치는 단단한 사람들의 모임)’에서 활동하는 것을 알게 된 지인이 화들짝 놀라며 관심을 보였다. 지인은 내 얘기를 듣고 따로 검색까지 해봤는지 이것저것 궁금한 점에 대해 요목조목 짚으며 물어보았다. 그런데 그가 한 질문 중 하나가 계속 내 머릿속에서 맴돌았다.

 

"친족 성폭력의 공소시효 폐지를 주장하는 거면 정치활동도 하냐. 입법이나 법 개정을 담당하는 건 국회의원인데 그들과도 연결되어 어떤 액션을 취한 적이 있냐."

대충 떠올려보자면 이런 내용이었다.

 

그런데.. 이 질문에 대해 할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왜냐하면 실제 공폐단단은 국회의원이나 정치권과 딱히 연결되려고 하지는 않았기 때문이다.(작년 선거 시즌에 정의당 간담회를 한 차례 진행하기는 했지만. 또 이번에 한국성폭력상담소에서 감사하게도 국회 토론회를 목표로 여러 차례 내부 간담회를 기획 및 주최해주셨지만, 국회 토론회는 불발되었다.)

그러니까 내 말은, 연결된 적은 있어도 연결되려 억지로 노력한 적은 없다는 것이다. 어쨌든 입법이나 법 개정을 담당하는 건 국회의원이지만 생존자 중에서는 정치권과 연결되기 꺼려하는 사람도 있고(공폐단단이 특정 정치색을 띨까봐에 대한 우려), 우리가 매달 한 자리에 모여 한 목소리를 내는 이유는 그 활동 자체만으로도 그 다음 달을 힘차게 살아나갈 수 있는 에너지를 얻어가기 때문이다.

 

고로, 우리가 친족 성폭력 공소시효 폐지라는 주제로 한 자리에 모였고, 이를 사회에 요구하고 있지만, 이 운동을 하는 것 자체로 참여자들 개개인이 힘을 얻고 있고, 연대감을 얻고 있다는 것이다. 어찌 보면 주객전도(主客顚倒)라는 사자성어가 들어맞기도 하는 것 같다.(?)

 

물론 앞으로 더 넓은 시야를 갖고 운동을 전개해나가야겠지만, 우선, 우리 참여자 개개인은 나와 비슷한 피해 경험을 한 사람들과 또는 피해 경험을 공유하지는 않더라도 같은 생각을 공유하는 연대자들과 함께 목소리를 내는 경험을 통해 충만한 힘과 긍정적인 에너지를 얻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운동을 한다.

 

왜 운동을 하느냐고, 운동을 하는 목적이 무엇이냐고 질문을 받는다면 다음 번에는 위와 같이 자신 있게 대답해줘야겠다.

 

* 희진의 밑줄 쫙 :

내가 용서해야 할 것은 나 자신이다.
나는 나를 용서한다. 내게 한 생각과 행동 모두를 용서한다. 제대로 대처하지 못했다고 채찍질했던 나를 용서한다. 아니라고 왜 말하지 못 했냐고 비난하던 나를 용서한다. (60p)

나와 같은 책의 저자 정인은 이렇게 썼다.

 

피해 사실을 밝히면 누군가는 상처 주는 말을 할 텐데, 어떤 말이 가장 힘들까?

잘은 모르겠지만 내가 나 자신에게 상처 준 것만큼 힘든 건 없을 것이다.

나는 피해자이면서 가해자다.’ (59p)

 

그리고 그 아래에는 도대체 왜 제대로 대처하지 못했는지, 왜 그렇게밖에 할 수 없었던 건지 자신을 탓하고, 자책하는 말들이 적혀 있다.

 

그러나 정인은 60p부터 62p에 이르기까지 나 자신에게 용서를 구하고, 용서한다. 결국 나 자신에게 용서를 구하는 것도, 나 자신을 용서하는 것도 정인 자신이기 때문이다.

 

희진은 이를 두고 혹여나 나의 한 마디가 누군가에게 상처가 되면 어떡하지?, 그동안 그랬던 적이 있었다면 어떡하지?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이 공간에서도 자칫 말실수를 할까봐 말 한 마디, 한 마디 꺼내는 것조차 조심스러워진다고. 하고 싶은 말은 많은데 점점 말이 없어진다고.

 

그러자 감이가 말했다. 페미니스트들이 말을 고르고, 조심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을 뱉고 나서도 성찰의 과정을 많이 거친다고. 희진이 혹여나 자신의 한 마디가 누군가에게 상처가 될까봐 조심하는 모습이 자신은 오히려 반갑다고. 분명 상대방에게 그 마음이 전달될 거라고.

 

감이의 진심 어린 한 마디가 희진에게 전달되었는지 희진이 가볍게 미소를 지었다.

 

* 감이의 밑줄 쫙 :

경계 희미

감이는 정인의 글이 가장 읽기 힘들었다고 했다.

 

경계 희미.’ 정인의 글에서 많이 나오는 단어다. 정인은 틈만 나면 잠을 잤다. 깨어 있는 것이 고통스러웠기 때문이다. 그렇게 잠에 깊이 빠지는 자신을, 정인은 오랫동안 원망했다고 한다. 그러나 지금은 그것에 감사하다고 말한다. 아마도 미치지 않은 것은 그 잠 때문이었을 거라고.

 

감이는 어린 두 딸을 키우고 있는데, 정인의 글을 보며 정인의 피해 당시 나이가 딸들의 현재 나이와 비슷해 더욱 이입이 되어 읽기 힘들었다고 한다. 그러나 아무리 읽기 힘들어도, 앞으로 이와 같은 책들이 더 나와야만 한다고 덧붙였다. 우리 책이 피해 사실을 숨김없이 낱낱이 드러내고 있어 어린 아이들이 보기엔 어려울 수 있기에 어린이용·청소년용·성인용으로 나뉘어 나왔으면 좋겠다고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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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 같이 후기에는 내가 기억에 남는 부분만 적어 올려본다.

설령 저자들과 같은 경험을 공유하지는 않더라도, 저자 개개인이 꾹꾹 눌러 쓴 문장을 보며 우리는 각자 자신의 경험을 함께 드러내고 공유했다. 사실 이 책 모임이 있기 전 나는 내가 이 책의 저자로 참여했는데도 불구하고 다른 저자의 글을 다 읽어보진 못했었다. 몇 번을 꿋꿋이 읽어보려 노력했지만, 이 책이 나올 때까지만 해도 한 문장, 한 문장이 날카롭게 내 가슴을 할퀴어 도저히 끝까지 책장을 펼치지 못하고 덮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책을 낸 지 4년이라는 시간이 흘렀고, 그 사이에도 나에게는 많은 변화가 있었다. 현재 나는 성폭력이라는 폭력이 남긴 후유증에서 거의 완전히 회복되고 치유되었다고 스스로 느낀다. 그래서일까. 다시 책장을 펼칠 수 있었다. 나와 같은 사람들의, 내가 아끼는 사람들의 이야기 하나하나를 눈에 담고, 마음에 담고, 형형색색의 형광펜으로 열심히 밑줄을 그으며 읽었다. 4년 전만 해도 너무나 힘들었던 과정이, 아직도 내 이야기보다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더 마음이 아리지만, 그래도 끝까지 읽어낼 수 있었다. 마지막 페이지를 덮고 든 생각은 이렇다.

 

저자로 참여하기 참 잘했어.’

 

ps. 감이가 정인의 글을 제일 읽기 힘들었다는 이야기를 1년만에 매마토(친족 성폭력 공소시효 폐지 1인 시위의 준말)에서 만난 정인에게 건넸더니 매우 좋아했다는 후문이..(?)

 

<죽고 싶지만 살고 싶어서>의 원작(?)쯤 되는, 텀블벅으로 처음 출간했던 <아무도 알고 싶어하지 않는 이야기>


<9월의 책 추천 리스트 (주제 : 친족 성폭력)>

 

  • 김영서 <<눈물도 빛을 만나면 반짝인다>>

- 친족 성폭력 생존자이자 현재 상담가, 성폭력 예방 강사로 현장에서 뛰고 계시는 공폐단단의 일원 영서님의 생존기록.

 

  • 푸른나비 외 <<가해자보다 피해자가 잘 사는 세상을 원해>>

- 열 명의 젠더폭력 생존자들이 여성주의 저널 '일다'에 기고했던 글들을 엮어낸 책. <<죽고 싶지만 살고 싶어서>>의 저자 중 한 명인 푸른나비가 또 한 번 저자로 참여함. 푸른나비 역시 공폐단단 일원.

 

  •  심이경 <<나는 안전합니다>>

- 분명 '작은 말하기'(한국성폭력상담소에서 진행하는 성폭력 생존자 자조 모임)3번째 나왔는데..?!?! 이미 저자. 준비된 활동가 심이경님의 친족 성폭력 생존기. 이경님 역시 공폐단단 일원.(공폐단단 홍보 아닙니다..)

 

  •  이슬비 외 <<여자를 일으키는 여자들>>

- 공폐단단이 올해 진행한 친족 성폭력 생존자 신체심리치유 프로그램인 <생존자랑댄스>의 참여자 중 한 분이 저자로 참여하신 책. ‘-여자의 착지술이라는 프로그램을 통해 성폭력 생존자들이 잃어버린 신체 주권을 다시 찾아가는 과정과 섬세한 존중을 통해 안전망을 확보하고, 일상으로 천천히 착륙하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 엘렌 베스, 로라 데이비스 <<아주 특별한 용기>>

- 아동 친족 성폭력 바이블! 다양한 사례의 아동 친족 성폭력 피해 치유과정을 담은 책.

 

  • AJS <<27-10>>

- 친족 성폭력을 겪은 작가가 자신의 상처를 마주하여 담담하게 자신의 이야기를 기록한 웹툰.

 

 

<10월 예고>10월의 주제는 만화!

함께 읽을 책: <마이 브로큰 마리코> 

10월 모임지기: 지니

성/폭력 관련 혹은 페미니즘 관련 만화 추천리스트 챙겨오세요.

 

책모임의 추천리스트는 계속 업데이트 될 예정입니다!

 

<이 글은 9월의 모임지기 민지 님이 작성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