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상담소는 지금/故장자연씨 사건 관련 대응활동

여성연예인들의 성적 문란이 아니라, 남성들의 성접대문화가 문제다!

 

 작년에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장자연 사건은 어느덧 잊혀지는 듯 하였다. 지난 3월7일의 장자연 사망 1주기도 흐지부지 지나가버렸으며, 장자연 사건 1심 판결도 흐지부지 시간만 끌고 있다. 하기야 성접대를 받은 언론인, 감독, 기업가 등 유력인사들은 다 빠져나간 채, 힘없는 매니저와 기획사 대표만을 두고 다투는 재판이니 판결이 난다고 해서 별달리 기대할 것도 없다. 최근 PD수첩에서 절찬리에 방영한 “검사와 스폰서”편을 보면 의문은 더욱 증폭된다. 검사들조차도 모두 성접대를 받았다고 하는데, 과연 그 검사들이 장자연 사건을 제대로 수사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과연 똥 묻은 개가 겨 묻은 개를 나무랄 수 있는 걸까?

 


 



여배우들, 그녀들의 불편한 진실. 드디어 침묵의 카르텔이 열리나?


 <여배우들>이라는 영화에서 고현정은 "아무리 세상이 좋아졌다 해도 우리가 이렇게 이혼 얘기하는 걸 보면 지×하는 사람 많을 걸?"이라며 서러운 울음을 감추지 못한다. 또 다른 여배우인 윤여정은 "그 당시에는 이혼한 사람이 방송에 나오는 것이 좋지 않다는 이유로 2년 정도 방송을 할 수 없었다"는 비화를 털어 놓았다. 당대 톱스타인 고현정마저도 이렇게 서럽게 통곡할 수밖에 없을 정도로, 여배우에 대한 사회적 인식은 매우 싸늘하고 이중적이다.


 여배우들이 성적으로 매혹적이기를 바라지만, 절대로 성적으로 문란해서는 안된다고 주장하는 이중적 잣대가 그것이다. 여배우들은 사생활 유출을 당한 ‘피해자’임에도 ‘공인’으로서 사회적 물의를 일으켰다는 말도 안되는 이유로 방송출연 정지를 당하곤 한다. ‘여배우들이 성관계를 하는 것’ 자체가 죄가 아니라면, 문제는 그녀들이 아니라 자료들을 함부로 유출한 남자들에게 있는데도 말이다.


 이러한 이유들로 그동안 여배우들의 개인적인 고통과 사생활, 인권침해 등은 철저히 베일에 가려져 왔다. 그래서 국가인권위원회의 '여성연예인 인권침해 실태조사'는 더욱 반갑다. 모두가 알고 있지만 침묵하고 있는 기획사, 제작사, 스폰서에 의한 성접대 제의나 성희롱, 사생활 및 인권침해에 대해서 최초로 공식적인 연구결과가 발표되었기 때문이다.
 이번 조사는 국가인권위원회의 용역을 받은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이 지난해 9월부터 12월까지 여성 연기자 111명과 연기자 지망생 240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와 심층 인터뷰를 통해 작성한 것이다. 아무도 쉽게 입을 열지 않아서 백방으로 뛰어다녔던 국가인권위원회 연구팀의 노고를 개인적으로 전해들을 기회가 있었기 때문에 이번 연구결과가 더욱 반가울 수밖에 없다.

 


 


 


 여성연예인들의 성적 침해 사실만을 선정적으로 보도할 것이 아니라, 
성적 침해를 만들어내는 구조를 주목해야 한다.

 

 이번 국가인권위원회의 연구조사결과는 예상을 훨씬 뛰어넘는 것이었다. 설문에 응한 여성 연기자 중 60.2%가 방송 관계자나 사회 유력 인사에 대한 성접대 제의를 받은 경험이 있다고 대답했다. 응답자의 31.5%는 가슴과 엉덩이·다리 등 신체 일부를 만지는 ‘성희롱’을 경험했다고 답했다. 직접 성관계를 요구받은 연기자도 21.5%로 조사됐다. 성폭행과 같은 명백한 범죄로 피해를 본 연기자도 6.5%에 달했다. 성접대를 제의한 상대는 재력가, 감독, 제작사 대표, 광고주, 정·관계 인사 등으로 다양했다. 성접대 제의를 받은 경험이 있는 연기자의 절반가량(48.4%)은 제의를 거부한 뒤 캐스팅이나 광고 출연에서 불이익을 받았다고 답했다. 여성연예인에 대한 성적 침해 이외에도 다이어트 및 성형을 강요하거나 사생활 및 노동권을 침해하는 등 다양한 인권침해가 발생하고 있었다. 63.6%의 연기자가 폭언 및 인격모독과 같은 언어폭력을 경험했다고 응답했으며, 절반 이상은 다이어트(54.6%)와 성형수술(55.6%)을 권유받은 경험이 있었다. 각종 인권침해로 인해 연기자들 중 56.3%는 연예 생활에 회의를 가진 적이 있거나, 31.3%는 연예계를 떠나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있다고 답했다. 신체적ㆍ정신적 스트레스로 인해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한 연기자는 21.9%, 우울증 약을 복용한 연기자는 9.4%,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생각을 해본 연기자도 10.4%에 달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기사들은 여성연예인을 둘러싼 왜곡된 구조 자체를 심도 깊게 조망하기보다는 여성연예인들의 성접대 사실 그 자체만을 선정적으로 보도하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


 여성연예인 60% "성접대 제안 받아봤다" 충격 - 스포츠서울 2010.04.27

 연예계 시스템이 만들어낸 여성 연기자 '몸로비' 문제 - 한국일보 연예 2010.04.28

 화려한 삶 뒤편에선 ‘검은 손길’에 무방비… 여성연예인 60% “性접대 제의 받아- 국민일보 2010.04.27

 흑심에 포위된 女연예인들 - 한국일보 2010.04.28

 여성 연기자에게 뻗치는 ‘악마의 유혹’ - 한겨레 2010.04.27


  이러한 언론의 보도태도는 “여성연예인들은 모두 다 성접대 제의를 받은 적이 있거나, 성접대에 응한 적이 있는 그렇고 그런 여자들이다”라는 잘못된 인식을 확산할 우려가 있다. 뿐만 아니라 여성연예인들 스스로도 “이는 일부 여성연예인들의 문제이지, 자신은 그런 적이 없다”며 이를 일부의 문제로 축소할 우려도 있다.


 여성연예인에 대한 인권침해 실태조사가 단지 가십으로 끝나지 않기 위해서는 성접대 제의를 받은 해당 연예인이 누구인가를 추적하고 선정적인 사실 확인에 열을 올리기보다는, 성적 침해를 만들어내는 연예계의 구조를 주목해야 한다. 여성연예인의 실력이나 경력보다는 비공식적 인맥과 술자리, 권력 등이 배역을 결정하는 주요 요인이 되는 상황에서, 누구라도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나쁜 유혹에 빠질 수밖에 없다. 여성 연기자와 연예인 지망생 중 90%는 공식적 오디션보다 비공식적 미팅이 더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고 보고 있으며, 80%는 공개적으로 이루어지는 오디션조차도 공정하지도 투명하지도 않다고 보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는 성접대 제의를 거절한 여성연예인조차도 스스로에게 자긍심을 가지기보다는 과연 자신이 잘한 일인지, 기회를 차버린 것은 아닌지 후회하도록 만든다.

 


  제 주변에서도 현재 활발하게 활동 중인 모 여자 연예인도 이미 오랜 기간 동안 17살에 데뷔해서 지금까지 올라온 것이 실력도 있지만 재력과 만남 PD와의 만남이 있다고 알고 있습니다. 이처럼 제 친구도 현재 연예 활동과 모델 활동을 하고 있는데 스폰서에 관한 고민과 스트레스가 큽니다. 제 생각은 이러한 관행을 바꾸려면 굉장히 오랜 시간과 막강한 단체를 빨리 만들지 않으면 여전히 고 장자연씨 같은 사례는 얼마든지 일어날 거라고 생각합니다.

- 국가인권위원회 “여성연예인 인권침해 실태조사” 183쪽


 

 

남성권력들 간의 비공식 네트워크, 매개되는 여성연예인들


 힘없는 약자인 여성연예인들의 성적 문란을 비난하고, 도덕적으로 훈계하는 것은 너무나 쉬운 일이다. 그러나 문제는 누가 여성연예인들에게 이런 성 접대를 제안하며, 비공식적인 네트워크와 연줄로서 연예계를 좌지우지 하고 있는가 하는 것이다.


 

  그런데 스타를 데리고 있는 매니지먼트사 같은 경우는 자기네들 스타들에 신인들을 끼워 팔면 되니까 캐스팅을 위한 성상납은 별로 없을 거라 보는데, 다른 권력관계들 오히려 매니지먼트사와 다른 힘 있게 된 사람들? 그런 기업 쪽이나 언론 쪽, 이런 식으로 더 심화될 수도 있겠지. 그러니까 스폰 관계라든가. 성상납까지는 아니어도 술자리에 불려가서 호스테스 역할을 한다든가. 그런 거는 굉장히 많을 거라고 봐요. 장자연 같은 경우도 보면 자기네들 술 마시다가 너 좀 나와라 이런 식으로. 그런 게 되게 미묘한 거지. 아예 대놓고 성상납이 아니라.

(전직 영화잡지 기자)



 제작사, 기획사, 스폰서, 언론, 재벌 등 남성권력자들 간의 술자리에서 어떤 여성연예인을 부를 수 있는가? 어떤 여성연예인들에게 성접대를 받을 수 있는가? 하는 것이 스스로의 능력을 증명하는 것으로 여겨진다. 소위 사회유력인사들에게는 여성연예인의 외모나 성적 매력뿐 아니라 연예인이라는 특별함이 ‘남들과 차별화된 과시적 소비’의 대상이 된다(국가인권위원회 “여성연예인 인권침해 실태조사” 181쪽). 
 개별 남성의 능력을 과시할 뿐만 아니라 남성들 간의 인맥과 네트워크를 공고히 하는 남성연대 속에서
여성연예인들은 ‘상품’으로서 매개되고 있을 뿐이다. 남성들의 왜곡된 과시욕과 성접대문화가 사라지지 않는 한 여성연예인들의 인권침해를 개선하는 것은 요원하다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