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성폭력상담소는 가부장적 사회 구조가 성폭력을 용인하고 폭력이 아닌 애정으로 둔갑시키는 역할을 해왔다고 생각합니다. 누구의 욕망이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누구의 욕망이 판타지로 비하되고 더 많은 비판의 잣대를 받는지는 구조적 이해 없이 알기 어려울 것입니다. 이에 상담소는 그동안 <섹슈얼리티 강의>와 같은 도서 발간이나 '욕망찾기 캠프' 등을 통해 일상의 섹슈얼리티에 대한 여성주의적 경험과 분석의 필요성을 강조해 왔습니다.
올해 9월 20일과 25일 저녁 이화여자대학교 생활도서관에서 있었던 섹슈얼리티 간담회 역시 이러한 활동의 일환으로 열렸습니다. 20일에 있었던 첫번째 간담회의 제목은 "수면위로 떠오른 브로맨스! 로맨스 소설부터 BL(야오이)까지 얘기해보자!" 였습니다.
브로맨스란 브라더(brother)와 로맨스(romance)의 합성어로 '이성애자인 남자 간의 우정을 넘어선 친밀한 관계'를 말합니다. 이 단어는 2010년 영국 옥스포드 영어 사전이 새로이 추가한 단어 2000개중에 포함되기도 했다는데요, 예를 들어 셜록과 왓슨 같은 관계가 그러합니다.
BBC 드라마 셜록 (출처: http://www.bbc.co.uk/programmes/b018ttws)
위키백과에 따르면 BL(Boys Love)은 남성의 동성애를 소재로 한 여성향 만화, 소설, 게임 등의 장르입니다.
일반적으로 브로맨스와 BL은 소비와 생산 계층이 절대적으로 여성이 다수입니다.
그 내용의 성적 수위나 인정되지 않는 동성애물이란 점 등으로 그 시장이 넓고도 깊은데 비하여 판타지로 비난 받는 부분이 있어 수면 위로 드러나지 않고 있기는 한데요, 이성애 사회를 건들이지 않는 브로맨스란 방식을 통해 요즘 많은 드라마나 영화에서 부분 차용되고 있습니다.
간담회에서는 BL이 끌리는 이유와 조심스럽게 다루어지는 이유, 그리고 BL 소비자로서 경험을 주되게 나누었습니다.
성적 자극제, 현실 이성애 로맨스물이 더 이상 자극적이지 않은 상태에서 남-남의 사랑이 극적 장치가 되고 더욱 애틋해지는 점, 여성 캐릭터가 없어 불편한 동일시 과정에서 벗어나 전지적 시점에서 즐길 수 있는 점 등이 BL이 끌리는 이유로 얘기되었습니다.
터부시 되는 이유로는 여성들이 성적 욕망을 얘기하는 것 자체가 받아들여지지 않는 분위기와 남성들이 BL을 극도로 비난하는 부분 등의 얘기가 나왔습니다.
소비자층의 대다수가 여성이고 남성에 대한 욕망이라는 점에서 BL에 대한 열광은 로맨스 소설이나 아이돌 또는 배용준에 열광한 아줌마 팬클럽등과 이어져 있다고 볼 수 있을 것 입니다. 그동안 로맨스 소설을 비난할 때 가부장제 성역할의 반복이라는 이유를 많이 듭니다. 그러나 실제 반복이라기에는 가부장적 사회에 존재하지 않는/못하는 캐릭터에 대한 열광이기에 그러한 비판은 옳지 않으며 우리가 좀 더 살펴봐야 할 내용은 그 plot을 소비하는 자가 어디에서 쾌락을 얻는지가 아닐까 합니다.
브로맨스나 BL은 '연애'가 정형화 되고 높은 가치로 인정되는 현대 사회에 대한 반영이기도 합니다. 현대 사회에서는 다정함, 아끼는 행동 등을 '연애'관계에서의 독점적이고 올바른 행동으로 이해되기에 이러한 행동을 서로 하는 사람들에 대해 '연애'관계라는 타이틀을 붙이게 되는 것 입니다. 그러나 실제 현실의 사람을 가지고 커플링을 하는 경우(RPS = Real Person Slash)에 대해서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왔습니다.
25일 있었던 두번째 간담회의 제목은 "연애와 thㅏ랑, 이 시대의 최고의 가치? 스펙으로서의 연애와 솔로를 바라보는 세상의 시선!"으로, 연애 또는 사랑이 이 시대에서 독점적 지위를 차지하고 있는 상황에 대한 분석과 그러한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반응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어 보았습니다.
연애와 사랑은 어떤 에너지이기도 하고, 자존감에 영향을 미치고 독립과 의존 사이의 균형을 깨우치는 아동기의 애착관계와 비슷하기도 하며, 독점적인 욕망을 드러낼 수 있는 장소이기도 합니다. 연애는 자신의 특별함을 증명할 수 있는 방식이기도 하며, 학벌에 비해 접근성이 좋다고 여겨지기도 하기에 자원으로서 경험되기도 합니다.
현재 연애는 특별한 가치체계로 위치되어 있다고 보이는데요, 남사친, 심남, 썸남과 같은 용어들, 여성성과 남성성에 대한 기술을 주로 강조하는 연애 관련 조언 책들, 솔로에 대한 조롱 또는 자조적인 멘트들, 연애에 대한 압박, 이성애 중심적인 연애 시각, 각종 SNS를 통해 전시하게 되는 '보이는' 연애들.... 등등 넘처나는 용어들과 문화 재현물들, 패러디 물등이 언급될 때 마다 공감의 웃음이 터졌습니다. 특히 "정부는 모든 국민의 연애 기본권을 보장하라!"와 같은 멘트(물론 농담이지만)는 연애가 권력화되어 있고 특정 계층과 방식을 소외하고 있는 점을 반영하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다양한 책 제목들 (출처: http://kyobobook.co.kr)
그러면 우리는 연애나 사랑 그 너머를 상상할 수 있을까요? 참여자 분들은 다양한 의견을 내놓았습니다. 감정을 나눌 수 있는 유대관계가 '연애'라는 것 뿐 아니라 다른 관계에서도 인정받아야 한다는 의견, 연애 각본이 더 이상 뻔하지 않기를 바란다는 의견, 그래도 세밀한 감정도 공유하는 '파트너십'에 대한 열망은 누구에게나 있는 것 같다는 의견, 현재의 이성애 중심적 '연애'가 아닌 다양한 형태의 연애가 가능하여야 하다는 의견 등이 나왔습니다.
이렇게 두 번의 섹슈얼리티 간담회는 모두 끝이 났습니다. 평일 늦은 저녁시간임에도 불구하고 많은 분들이 참여해주셨고 패널이셨던 여성학자 박세정, 김은아님, 서강대 여성학과 백목련님, 이화여자대학교 생활도서관 희은님, 차별없는 사회를 실현하는 대학생 네트워크 결의 도담님, 관악여성주의자치모임 공간의 수지 및 홍차님의 도움으로 깊이있고 흥미로운 논의가 가능하였던 것 같습니다.
관심 가져주신 분들께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그럼 다음에 또 만나요~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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