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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성평등한 사회를 위한 성폭력 판례 뒤집기 2차 좌담회] '업무상 위력 개념과 성폭력피해자에 대한 불이익(보복행위)을 피해자의 관점에서 다시보기' 후기


 

발표 중이신 모구 님(가운데), 이경환 변호사 님(왼쪽)과 진행을 맡아주신 상담소 활동가 감이 님(오른쪽).


2015820, 한국성폭력상담소 B1 이안젤라홀에서 성폭력 판례 뒤집기 2차 좌담회가 열렸습니다. 이번 좌담회는 우월적 지위를 이용한 권력형 성폭력·성희롱에 대한 문제의식을 공유하기 위해 르노 삼성자동차 성희롱 사건을 중심으로 업무상 위력의 개념을 살펴보고, 보복 행위의 폐해 및 관련 현행법의 한계와 앞으로 고려할 점 등에 대해 이야기하는 시간이었습니다. 발제는 한국여성민우회 여성노동팀 모구님과 한국성폭력상담소 자문위원 이경환 변호사님 두 분께서 맡아주셨습니다.

 

<르노삼성 성희롱 사건 피해자 및 조력자에 대한 불이익 조치에 대한 사건 지원 경과 보고>

모구님의 발표를 첫 순서로 좌담회를 시작하였습니다. 먼저 성희롱 행위가 발생한 20123월부터 서울고등법원에 항소심 준비서면을 제출한 20152월까지 르노삼성자동차 성희롱 사건의 타임라인을 주욱 짚어주셨습니다. 이어 사업주의 권한이 막강하고, 이들이 가해자일 때 제재장치가 없는 소규모 영세사업장에서의 문제를 지적하셨는데요, 이러한 소규모 영세사업장의 경우 문제를 제기한 피해자에 대해 일방적인 해고가 반복되는 것을 여러 사례를 통해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나아가 비정규직 노동자의 경우 이러한 불이익 조치의 무게는 가중된다는 점을 지적하셨습니다. 이들은 재계약이 불투명하기 때문에 문제제기를 하지 못한 채 침묵하기도 하고, 문제제기를 하더라도 싸움 과정 중 계약기간이 만료되어 회사에 실질적인 조치를 요구할 수 없게 되기도 합니다. 문제제기를 이유로 즉각적으로 계약이 만료되는 사례는 너무나 비일비재 합니다. 그런데 이렇게 문제를 일으킨 가해자가 아닌 피해자가 문제 유발자로 낙인직혀 퇴출되는 현실은 피해자에 대한 직접적인 보복행위일 뿐 아니라, 앞으로의 직장 내 성희롱에 대한 문제제기 및 가해자 처벌 조치를 원천봉쇄하는 기제로 작용한다는 점에서 문제가 심각합니다.


이뿐만이 아닙니다. 많은 경우, 직장 내 성희롱 사건에 문제제기 시 사측은 정식절차 처리 과정 중 피해자에게 기본적인 사안조차 알려주지 않거나, 정정 요구를 묵살한 채 실제 진술 내용과 다른 보고서로 징계 절차를 강행하고, 또는 지켜야 할 기본적인 절차조차 실행하지 않음으로써 문제 당사자의 정당한 권리를 박탈하고 있습니다. 사건 당사자는 사건 진행의 흐름을 파악하고 상황에 대한 통제력을 구축하면서 성희롱 경험, 즉 몸, 관계, 삶에 대한 일시적 통제 상실을 회복하는 힘을 기를 수 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당사자의 주체성을 박탈하는 사측의 태도는 피해자에 대한 불이익을 가중시키고, 문제 해결을 위한 공거인 움직임에 걸림돌이 됩니다. 나아가 르노삼성자동차 성희롱 사건에서도 나타난 조력자에 대한 부당한 불이익 조치도 심각한 문제입니다. 문제의식을 공유하고 피해자에게 심정적 지지를 보내며, 법적 대응에 필요한 증거자료를 전달하였다는 이유로 주홍글씨 낙인을 찍는다면 부당한 권력 관계는 앞으로 더욱 공고해져만 갈 뿐일 것입니다.


발표중이신 이경환 변호사 님.


 

<권력과 성폭력의 결합>

두 번째로 발표를 맡아주신 이경환 변호사 님께서는 업무상 위력과 보복행위에 초점을 맞춰 보다 더 자세한 설명을 전해주셨습니다. 업무상 위력 등에 의한 간음죄업무상 위력 등에 의한 추행죄에 사용된 위력이라는 단어는 폭행이나 협박이 전제되는 강제추행의 강제와는 조금 다른 의미로 사용되었는데요, 위력에 의했다는 것은 폭행이나 협박 뿐 아니라 사회적, 정치적, 경제적인 지위나 권세를 이용하여 피해자의 자유의사를 제압하기에 충분한 세력을 이용했다는 것을 말합니다. 예를 들어, 권력 관계가 명확한 상황에서 강자가 약자에게 거절하기 힘든 명시적 혹은 암묵적 요구를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위력에 의한 성추행과 성폭력 사건은 많이 일어나지만, 이를 해석하기 위한 구체적인 규정 기준은 없습니다. 이에 따라 현재 논리보다는 피해자 진술의 신빙성이나, 피해자다움에 대한 편견에 기반하여 판단이 이루어지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하지만 위력을 인정하는 것은 강제 추행보다 낮은 단계에서 피해 사실을 인정받을 수 있는 제도라는 점에서 적극적으로 확대할 필요가 있다고 이경환 변호사님께서 말씀해주셨습니다.



보복행위에 대해서는 어떤 사람이 법적으로 보호되는 행위를 하였음에도, 오히려 그러한 행위를 하였다는 이유로 그 행위자의 사용자 또는 소속된 조직의 장 등이 행위자에 대해 불이익한 처분을 하는 것이라고 정의하셨습니다. 변호사 님께서는 모든 법 집행의 시작은 신고, 즉 공론화인데 보복행위는 이후 일어날 피해에 대해 침묵하게 한다는 점에서 부조리한 기존의 기득권 질서가 유지되게 할 뿐 아니라, 불법행위의 수적 증가를 야기한다고 지적하셨습니다. 이를 위축효과(chilling effect)라는 용어로 설명하셨는데, 이러한 부정적 파급 효과가 심각하기에 강력한 대처가 필요하다는 말씀에 크게 공감이 갔습니다.


그런데 어떤 행위가 법률적으로 금지된 보복행위인지 그 요건과 판단기준이 현재는 모호합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피해자 측은 보복행위 금지 규정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본인이 법적 보호 대상에 포함되는지 예측할 수 없기 때문에 문제제기가 위축될 수 있습니다. 따라서 불이익조치의 내용을 자세하고 다양하게 열거하여 피해자가 법률에서 확인할 수 있고, 문제제기를 확실히 할 수 있도록 법률이 개정될 필요가 있습니다.


보복행위를 판단하는 기준으로 크게 보호행위, 불이익처분, 인과관계 세가지를 들어주셨습니다. 이 중 인과관계에 관한 것이 특히 흥미로워 간략하게 소개해드리려고 합니다. 우성 서울중앙지방법원 제 16민사부는 삼성 르노자동차 성희롱 사건에 대해 보복행위르 전혀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피해자의 상사가 피해자에게 퇴직을 권유한 것은 원고의 입장에서 오해의 소지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조직의 관리자, 책임자로서 원만하게 문제를 해결하련는 시도로 불법성이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조력자에 대한 징계는 피해자에 대한 조력 여부와 무관하며 근태불량이 실제로 문제되었기 때문이니 정당하다고 봤습니다. 이 외에도 모든 혐의에 대해 사측이 보복행위 금지의무를 위반하지 않았다고 판단했습니다. 우리 법원은 보복행위 자체를 부정하는 아주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는 것이지요. 이에 대해 이경환 변호사 님께서는 미국 판례와 함께 상당인과 관계로 but-for causation 기준을 소개하시며, 이 사건을 포함하여, 고용평등법과 성폭력피해자보호법에서 보복행위를 좀 더 넓게 인정해야 한다는 입장을 보이셨습니다. But-for causation은 투박하게 직역하자면 아니었더라면 인과입니다다시말해, 이는 근로자가 보호행위(법적으로 보호되는 행위로, 이 경우에는 사용자에 대한 정당한 문제제기)를 하지 않았더라면, 그래도 사용자가 불이익처분을 했을지를 판단하게 합니다. , 이것을 르노삼성자동차 사건에 대입하면, 피해자와 조력자를 징계하기에 실제 적법한 사유가 있는지 여부와는 관계없이. “만약 이들이 문제제기를 하지 않았더라면 불이익처분은 가해지지 않았을 것이라고 판단할 수 있다면 이들에 대한 사측의 태도는 법적으로 부당하다고 해석될 수 있는 것입니다. 이에 비하면 인사조치 사유가 존재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조치를 했는지 여부를 보복행위의 인관관계 판단기준으로 제시한 사건의 판결은 너무나 소극적이고 피해자에게 불리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발제 후 자유로운 의견나눔.


이는 판례가 적극적으로 바뀌어야만 해결될 수 있는 문제입니다.

법률 해석의 문제이기 때문에 이에 대한 법원의 태도가 바뀌어야 합니다.

 

사내 성희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가해자의 책임 인정과 피해자에 대한 사과, 보상 등은 논의하지 않고 피해자와 조력자의 퇴직만 종용한 것을 원만한 해결을 위한 시도라고 해석해도 되는 걸까요? 회사 측에서는 눈엣가시가 되어버린 피해자를 당장 제거하는 것이 해결처럼 보였을지도 모릅니다. 피해자가 눈엣가시 취급받는 문제는 차치하고라도, 이는 철저하게 이기적인 기득권 중심의 관점입니다. 뚜렷한 권력 관계 안에서 위력에 의해 희생자가 될 수 밖에 없었던 피해자에 대한 일련의 불이익처분은 결코 정당화되어서는 안됩니다. 실제로 근무가 태만했기 때문에 조력자에 대한 징계조치는 보복적인 처분이 아니라고 합니다. 그러나 단순히 징계사유가 존재한다는 이유로 보복행위를 부정하기 시작하면, 권력자인 사용자가 털어서 먼지 안나오는 사람 없다식의 태도로 집요하게 감시하고 조사할 경우 당해낼 사람이 몇이나 될까요? 이것도 정당한 인사권 행사일까요?

보복행위를 금지하는 법률은 존재하지만 그 내용과 적용에는 아직 많은 허점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더욱 열심히 상황을 알리고, 함께 의견을 나누고, 고민해야 할 것입니다.

 

발제를 밭아주신 모구 님과, 이경환 변호사님, 또 좌담회에 참여해주신 모든 분들게 감사를 전하며 후기를 마칩니다^^


* 이 글은 한국성폭력상담소 인턴 송윤정 님이 작성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