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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담소는 지금/국제연대활동

[활동가 해외연수] 아시아위민브릿지 두런두런과 함께 네팔에 다녀와서!

[활동가 해외연수] 아시아위민브릿지 두런두런과 함께 네팔에 다녀와서!



9월 7일부터 일주일간, 한국성폭력상담소 활동가 국제협력 프로그램으로 네팔에 다녀왔다. 아시아 위민브릿지 두런두런에서 네팔에 동행할 수 있는 소중한 기회를 주신 것이다. 

벌써 두 달 전의 일인데, 한국에 돌아오고 나서 정신을 차려보니 이렇게 시간이 훌쩍 가버렸다. 이제서야 후기를 쓰고 있으니 기억이 조금은 흐려져버렸지만, 그 시간 동안 내가 배운 것들은 앞으로도 결코 잊을 수 없을 것 같다.



처음으로 비행기를 타는 것은 긴장됐고, 곧 낯설지만은 않은 네팔에 떨어졌다. 억새와 낮은 벽돌집.

숙소로 이동하면서 현지 프로젝트매니저님 등으로부터 지진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동시에 무너진 벽들이 보였다. 땅이 흔들린다는 것은 땅에 발붙이고 사는 우리가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경험이고 재난이었다. 건물 밖으로 나가려고 부단히 애쓰면서도 한 발자국도 뗄 수 없었던 그 순간의 공포가 내게도 어렴풋이 전해졌다. 그리고 그 이후로 계속 되어온 여진에도, 그 모든 게 마치 웃어넘길 수도 있는 일인 것처럼 웃음을 섞어 우리에게 전해주시고 덤덤히 헤쳐가시는 것. 지진 이후의 무언가를 보고 느끼는 것에서부터 네팔의 일주일은 시작되었다.




둘째날은 봉제교육장과 제빵교육장, 에카타신협을 방문했다. 두런두런은 네팔 현지의 에카타신협과 협력해서 네팔 여성들을 위한 여러 활동들을 만들어가고 있다. 일회성의 일방적인 지원이 아니라 네팔에서 봉제교육장, 제빵교육장을 운영할 수 있도록 돕는데 이는 네팔 여성들의 일자리를 만들어내는 데 기여한다. 

봉제교육장에서 한국의 면생리대를 꺼내놓고 면생리대에 대해 한참 머리를 맞대고 궁리하기도 했는데, 말이 속시원하게 통하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관심과 열의로 즉각즉각 소통이 되는 느낌이었다. 네팔에서 좋은 질의 천을 구할 수 있을지, 어떤 모양이 가장 좋을지…. 에너지가 넘쳤다. 


(왼쪽 사진은 새로 오픈하는 디디까페에서 사용할 앞치마를 둘러본 모습!)



제빵교육장에서도 마음에 깊이 새겨질 경험을 했다. 제빵교육생 분들이 매우 용기 있고 진실되게 자신의 이야기를 꺼내주신 것이다. 지진을 겪은 네팔에 도움의 손을 내민 것에 감사를 표현해주셨고, 여성은 집에서 일하는 경우가 훨씬 많은 네팔에서 이러한 교육의 기회가 소중하다는 이야기를 해주셨다. 무엇보다, 먼 거리에 있는 제빵교육장에 꼬박꼬박 와서 수업을 들을 정도로 이 수업을 좋아하고 있다는 점, 그래서 큰 어려움과 고통을 경험한 후에도 네팔 여성들이 자신의 일과, 일상을 놓지 않고 미래를 꿈꿀 수 있게 하는 힘이 되고 있다는 것이 감동적이었다. 계속할 일과가 있고, 계속하고 싶은 일과가 있다는 것은 사소한 것 같지만 무엇으로도 살 수 없는 소중한 것이다. 그것을 두런두런이 만들어가고 있다는 것이 값지게 여겨졌다. 


봉제교육장에서 훈련하는 여성들은 지진 이후 면생리대와 옷, 담요를, 제빵교육장에서 훈련하는 여성들은 빵을 만들어서 텐트촌 등에 나눠주었다고 한다. 우리도 한 차례 텐트촌에 방문해서 물품 나누기를 돕는 기회가 있었다. 




네팔의 다른 이웃단체, 사회적기업을 몇 곳 방문해서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그 첫번째 방문지는 사회적기업 B&B 미토처. 이곳은 적은 비용을 받고 웨이터나 요리사가 될 수 있는 수업 등을 진행하고 교육생이 취업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연계한다. 그 운영비는 이곳에서 직접 운영하는 B&B, 즉 아침식사를 제공하는 작은 게스트하우스를 통해서 충당한다. 미토처 대표님으로부터 장시간 여러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는데 탁월한 운영감각과 환대가 인상적이었다.   



(사진은 맛있는 곳이라는 의미의 미토처 앞에서 단체사진)

 


다음으로 간 곳은 쎡디 써무허. 인신매매 피해자를 지원하는 다양한 활동을 펴는 단체이다. 쎡디 써무허는 힘 있는 그룹이라는 의미. 그 시초를 1996년으로 본다면 전세계 최초로 인신매매를 지원하는 단체로 출발한 곳이다. 
인도 국경에서 약 500여명의 인신매매된 여성들을 경찰이 발견하는 사건이 발생했는데 그 가운데 312명이 네팔 여성이었다고. 그러나 인신매매된 여성에 대한 낙인찍기는 물론이고 네팔정부는 여성들의 귀환을 원치 않았다고 한다. 이유는 네팔시민권이 있느냐, 네팔인임을 증명할 수 있는 서류가 있느냐 하는 말도 안되는 사유였다고 (어린 나이에 인신매매된 피해여성들이 그런 서류를 제출할 수 있을 리 없는데도). 이때 네팔의 7개 시민단체가 연합해서 그 여성들을 본국으로 데려오기 위한 활동을 펼치게 됐고 128명은 그 결과 네팔로 돌아올 수 있게 되었는데 이는 쎡디 써무허, 힘 있는 그룹이 출발하게 된 계기이다.      


쎡디 써무허는 한국성폭력상담소 동료들과도 더 충분히 이야기할 시간이 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쎡디 써무허는 전국에 여러 지부를 두고 있어서 한국성폭력상담소보다 조직 규모가 컸는데, 성행하는 인신매매를 방지하고 중단시키기 위한 중요한 활동들 뿐만 아니라 당사자 드러내기를 통한 인식전환에도 큰 비중을 두고 있는 것 같았다. 실제로 인신매매 피해자들이 쎡디 써무허에서 상당수 활동하고. 

또 인신매매 피해자를 위한 8개의 쉼터부터(지진 이후 1개를 더 열었다), 흥미를 고려한 다양한 능력개발 프로그램(취업을 위한), 교육사업들, 그리고 현재는 텐트촌에 가서 상담도 하고 있었고 치유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제작된 수공예품을 판매하고 그 수익금을 다시 활동기금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판로를 만들어내는 일까지 적극적이었다. 그리고 치유센터를 통해 6개월에서 1년 여 심리치료, 심리안정프로그램, 개별상담을 하고 있고, 쉼터 퇴소 이후 ‘중간의 집’에 갈 수 있게 하거나 공동생활이 가능하도록 마련해주는 등, 하고 있는 모든 활동을 설명하기도 숨이 가쁜 정도여서 현재 안고 있는 고민들을 더 깊이 나누지 못한 게 아쉬울 뿐이다. 이 모든 것이 역시 쉼터 식료품이나 직업훈련 종잣돈 정도의 매우 적은 정부 지원으로 운영되고 있다는 것도 놀라웠다.  




다음날은 비욘드네팔에 방문하고 박타푸르에서 보냈다. 불과 얼마 전 TV프로그램으로 아름다운 모습을 볼 수 있었는데. 여전히 아름다운 곳이지만 곳곳이 많이 무너지거나 사라져버린 것이 안타까웠다. 작고, 옛건물이 잘 보존되어 있는 한국의 경주 같은 장소. 오래된 건물에 사람들이 많이 기거하고 있어서 피해가 컸던 곳의 하나이고 벽면 전체가 없어져버린 건물들도 눈에 들어왔다. 

다시 생각해도 가슴이 아픈 하루. 비욘드네팔의 어린이도서관에 그림책을 보내드리자고 마음먹은 것을 꼭 잊지 말고 실행해야겠다. 고단한 생활에 푹 스며들어서 그 안에서 변화를 만들어간다는 것은 정말 힘든 일이고, 응원 받아야 하는 일이다. 



(여전히 아름답지만, 건물마다 받침대를 세웠고 불상 등은 무너졌다. 발디딜 틈 없었던 곳이 한산해진 것도 큰 변화.)



(불을 쪼아먹는 까마귀들이 꼭 기도를 하는 것처럼 보였다.)




드디어 디디까페 오픈식. 디디는 언니에 가까운 말. 네팔에서는 여성들을 흔히 디디로 지칭하는 것을 들을 수 있다. 디디까페는 제빵교육장 바로 맞은편에 개업하는 작은 베이커리까페. 그리고 제빵교육을 수료한 교육생들이 빵을 계속해서 만들고 훈련할 수 있는 장소이며, 수익을 내게 된다면 앞으로 제빵교육장을 유지해갈 수 있는 수단도 될 수 있을 중요한 장소. 

순간 50명 이상의 손님이 가게를 가득 채웠는데 너나 할 것 없이 정신없이 계산을 하고 빵을 담아줘야 했을 정도였다. 대단히 맛있어서 평가도 좋았다. 상대적으로 좋은 품질의 밀가루를 구하기 힘든 상황인데도 제빵강사님이 휴일 없이 무척이나 연구하고 애써주신 결과이다. 개나리색의 사랑스러운 가게가 앞으로도 번창했으면 좋겠다. 



(오픈식을 마치고 행복하게 단체사진! 디디 화이팅!)


일주일간, 내가 잘 몰랐던 분야를 그 어느 때보다 속속들이 보고 듣고 느낄 수 있었다. 여러 목표를 실현해내기 위해 얼마나 많은 조율과 세심한 고민이 요구되는지, 지켜보지 못한 사람들은 잘 알기가 어렵다. 잠깐이었지만 그 시간을 허락해주시고 이끌어주신 분들께 감사하다. 또 두런두런은 심지어 이 방면에 무지한 나에게도 논의에 참여하고 의견을 낼 수 있게 해주시고 열린 마음으로 들어주셨다. 그렇게 해주시는 것이 나에게 큰 배움이 되었다. 

네팔에 도착하기 전에는 예상하지 못했던 일인데, 나는 두런두런이 하는 일을 배우고 그것을 통해 한국성폭력상담소의 활동을 비춰보는 것을 넘어서서 활동가가 어떤 마음가짐으로 길게 적절히 해나갈 수 있는지 그 지혜들을 더 많이 배운 것 같다. 배운 만큼 실행이 안되는 것은 나의 부족함이지만, 생각해보고 기억하게 된 것은 분명하다. 매일매일 풍부한 활동경험에서 우러나오는 지혜를 편안하게 기꺼이 들려주신 데 감사하다. 영어를 못하는 나를 위해 너무나 꼼꼼하게 통역해주시기도 했다. 감사한 마음은 여러 번 강조해도 못 미칠 것이다. 



왜 먼 나라의 여성들과 교류하고 우정을 만들어가는가? 제빵교육장에서 훈련받는 한 여성이 던진 질문이었다. ‘나’와 ‘남’이 언제까지나 구분되어 별개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관계맺기에 따라 가까운 친구도 동료도 될 수 있다는 당연한 지점을 다시 한번 생각해본다. 나의 네팔에서의 일주일은 ‘나’의 반경을 넓히고 낯선 것들도 섣부른 판단 없이 받아들일 수 있는 드문 시간이었다.


안녕, 네팔!

  

성문화운동팀 잇을 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