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월 25일 초겨울의 차가운 비가 부슬부슬 내리다 말다 하던 아침, 광화문 정부 종합청사 정문 앞에 여성단체의 활동가들이 하나 둘 씩 모이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모이자 청사를 지키는 전경 한 분이 사회자(박차옥경 여성연합 사무처장)에게 다가가 물었다.

"집회 신고 하셨습니까?"

사회자는 당연하게 대답했다.

"집회가 아니고 기자회견이니 집회신고는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아~ 저 의연함이라니!!! ♡o♡'


그리고 또 한 전경은 기자회견 플랜카드를 잡고 있는 나에게 다가와 물었다.

"어디 단체에서 오셨습니까?"

'눈 뒀다 뭐하니? 여기(플랑)에 써있잖니~~~ 전국 여성단체들!!!'

 

 

<위 사진 출처: 한국여성단체연합>


"함께 외쳐 봅시다. 진정한 평등이 뭔지도 모르는 여가부느은~ 각성하라!!!!!"

"각성하라! 각성하라!"


"성평등 정책 후퇴시키는 여가부는 각성하라!!!"

"각성하라! 각성하라!"


우리가 구호를 외치기 시작하자 옆에서 경찰은 어깨에 맨 확성기를 통해 경고방송을 했다.

"여성한국단체(읭?? 어디????)에서 오신 분들, 집회신고가 되지 않은 불법집회는.... (잘 안들림)"


바로 열흘 전의 민중 총궐기 이후, 차벽과 물대포, 캡사이신의 이미지로 꽁꽁 싸맨 광화문의 경찰이, 계속 경고방송을 하며 겁을 주는데, 사실 나는 내심 잔뜩 쫄아들어 있었다. 뭐라고 하는지 제대로 들리지도 않았는데 말이다.

'이러다 물대포 맞는건가? 닭장차에 잡혀가나??'

자라보고 놀란 가슴이, 솥뚜껑을 보고 놀란다 하지 않았던가.


그런데, 이 언니들은 어쩜 그리도 가뿐하게 그런 경고방송을 넘겨버리는지, 지레 겁을 집어먹었던 나는 차츰 안정을 되찾았다. "허가받지 못한 집회는 법에 저촉"된다나 어쨌다나~ 두 번째 경고방송을 하자, 사회자는 "구호는 나중에 한꺼번에 외칩시다"하고 경찰과 참가자들을 평화롭게 다독이며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기자회견은 크게 여는 말과 규탄발언, 그리고 퍼포먼스로 구성되었다.


그 중 규탄발언의 순서는 이랬다.


양성평등기본법, 여성정책에서의 양성’, ‘젠더등 개념의 문제 (이미경 한국성폭력상담소 소장)


양성평등 기본 정책의 비전과 방향성 문제 (고미경 한국여성의전화 상임대표)


양성평등기본법, 지역 조례 등 법적 문제와 해석에 대한 문제 (조숙현 변호사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여성인권위원회)


여성 성소수자 차별 : 대전시 성평등조례의 성소수자 관련 조항삭제 관련 (난새 언니네트워크 활동가)  


지역사례 : 지자체의 양성평등기본법에 대한 몰이해 (정문자 여성연합 공동대표)  


후퇴되는 성평등 정책 : 여성가족부의 노동 정책 중심으로 (임윤옥 한국여성노동자회 상임대표)

 

순서만 보아도, 발언자들의 면면과 그 내공이 고스란히 느껴진다면, 당신은 열심히 활동하는 진정한 활/동/가!


(발언문 전문 보려면 클릭!)


 

'총 6명이 5분씩만 발언해도 30분. 이 추운 날씨에 너무 길겠는데;;;'


이런 생각을 했던 나는, 주옥같은 발언들이 시작되자마자 추위도 잊고 이 매력있는 언니들에게 빠져들고 말았다.


"14년 전, 2001년에 여성부가 신설되었을 때의 벅찬 감동을 잊을 수 없다. 우리는 여성부가 가부장제사회에서 구조적 차별을 받아왔던 여성의 권리를 보장하고, 그동안 보이지 않았던 여성들의 경험과 목소리를 담아내는 성평등 정책을 펼쳐가리라는 기대와 응원을 했었습니다. 2008년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면서 인수위에서여가부를 없애겠다고 했을 때, 우리 여성단체들은 인수위 앞에서 한 겨울 칼바람을 맞으며 여성부의 존치를 주장했었습니다"(이미경 한국성폭력상담소 소장 규탄발언 중)

눈물나도록 처연한 말이었다. 여성부에 대한 희망과 기대감으로 가득찬 그 때 그 심정이 고스란히 전해지며, 양성평등 운운하는 여가부의 멍청한 작금의 행태가 더욱 도드라졌다.



고미경 한국여성의전화 상임대표는 양성평등기본법의 문제를 지적하며, 이것이 지방자치단체 등에 미치고 있는 악영향에 대해 역설했다. 경남 지역의 양성평등기금이 폐지되고, 성평등 정책 사업들이 폐기될 위험에 처해있거나 기계적으로 여/남 양적인 균형을 맞추는 것으로 변질되고 있다고 성토했다. 차분하게 시작된 발언은 분노와 결의로 가득차 힘있게 마무리 되었다.


양성평등기본법와 지역 조례 등 법적 문제와 해석에서 조목조목 여가부가 얼마나 잘못 하고 있는지를 짚어주신, 조숙현 변호사(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여성인권위원회)는 명쾌했고, 난새 언니네트워크 활동가는 양성평등의 이름으로 여성성소수자를 차별하는 여가부를 신랄하게 비판해 유쾌했다. 정문자 여성연합 공동대표와 임윤옥 한국여성노동자회 상임대표로 이어진 규탄 발언은여성인권을 책임져야 할 여성가족부가 대체 지금 뭘 하고 있는건지 자각하고, 반성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성평등 조례가 양성평등기본법의 입법취지에 벗어난다니! 이게 말입니까!!!!"

"방굽니다!!!"

"막걸립니다!!!"


"여가부, 그래요. (성평등을) 몰라서 그럴 수 있습니다. 모르는게 죕니까?"

"아닙니다!!!"

"모르면 배우면 됩니다. 배우십시오!!!"


각 발언들이 이어지면서, 발언자들 말고도 함께 참여한 활동가들의 추임새는 마치 하모니 같았다. 어쩌면 그렇게도 적재적소에! 시원~한 추임새를! 그리도 찰지게 넣을 수 있단 말인가.


그 자리에 모인 이들은 모두 한 마음이었다.


'여성가족부야,  너 그러면 안돼~ 너 지금 되게 잘 못 하고 있는거다. 제발 잘 좀 해보자~ 우리가 함께 해줄게.

제발 좀~~'


이런 애정어린 기자회견이 또 어디에 있을까??

하지만 다시 이런 기자회견을 하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이제 정말로 여가부가 "양성평등"에 대한 헛된 미련을 버리고,  Ministry of Gender Equality & Family 로서의 책무를 다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하단 사진 설명>


여성가족부 규탄 기자회견의 백미<여성가족부의 뇌구조> 퍼포먼스


풍선에 붙어있는 현재의 여성가족부의 생각들(여성노동자 등골빼먹기, 여가부 난 누구? 여긴 어디? 거버넌스 반사, 성소수자? 내일 아님, 지자체 성평등 후퇴? 내 알 바 아님, 성평등? 젠더? 그게 뭐임? 등등)을 뿅망치로 터뜨리고, 제대로 된 뇌구조를 만들었어요.






이 글은 성문화운동팀 활동가 감이가 작성하였습니다.




Posted by 한국성폭력상담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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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Icon 이거 왜 써야되죠 ㅠㅠ 2016.02.14 14:0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여성단체에서도 여가부는 까이는군요 까일만 하죠. 보니꺼 여성인권생각은 하나도 안하던데. 옛날인 그랬다는데 요새는 왜이러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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