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이 자기 방어를 시작할 때 세상은 달라진다.
- 자기방어훈련 "저항은 가능하다" 참가 후기 -
<세계여성폭력추방주간>을 맞이하여 한국성폭력상담소와 스쿨오브무브먼트에서 공동주최한
자기방어훈련 "저항은 가능하다"가 지난 12월 10일 오후에 스쿨오브무브먼트에서 진행되었습니다.
두 달동안 매주 목요일마다 상담소를 지켜주셨던 자원활동가 경현님이 솔직한 참가후기를 남겨주셨어요.
그날의 생생한 현장감을 느껴보실 수 있는 글이기에, 아쉽게도 함께 하지 못하셨던 분들을 위해 공유합니다.
자, 함께 보실까요? ^ㅡ^
매일 여성을 향한 폭력에 관한 범죄 기사는 쏟아지지만 이를 방지하는 훈련법을 배우는 기회는 사실상 없었다. 지난 12월 10일 오후, 합정동에 위치한 스쿨오브무브먼트에는 여성들이 북적이기 시작했다. 한국성폭력상담소와 스쿨오브무브먼트에서 개최한 자기방어 훈련에 참가하기 위해서다. 지난 12월 6일 『미녀, 야수에 맞서다』의 번역, 출간 기념 북콘서트에 이어, 자기방어훈련 “저항은 가능하다”는 <세계여성폭력추방주간>을 맞이하여 KSVRC 행동시리즈로 기획되었다고 한다.
< 훈련 순서 >
주제 | 내용 |
들어가기 | 크라브마 정식 인사법 “키다” |
워밍업 | 맨손체조, 가벼운 달리기, 전력질주 |
파트너십 | Stance, 어깨치기, 머리치기, 따라잡기 |
방어 훈련 | 얍! 머리위로 날아드는 막대기 쳐내기, 하이파이브 |
영상 보는 시간 | 한국 언론을 통해 본 자기방어, Beauty Bites Beasts trailer, 케냐의 주짓수 할머니들 |
공격 훈련 | 목 치기, 샌드백 치기, 급소 차기 |
마무리 | 수료증 증정 |
추운 날씨임에도 체육관에 들어서자 입구에서의 환한 미소로 맞는 분들로 분위기는 훈훈해졌다. 서로 처음 보는 사이가 대부분임에도 불구하고 반갑게 인사말을 건네는 따뜻한 분위기 속에서 훈련을 위한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두터운 외투를 벗고 운동하기 편한 옷차림을 갖추고 훈련 시 다칠 위험이 있는 귀걸이와 시계 등은 사물함 락커에 넣어두었다. 훈련 스튜디오의 푹신한 바닥을 맨발로 밟으며 몸을 풀면서 준비를 했다.
30여명의 사람들이 서로 손을 잡을 수 있을만한 거리로 옆으로 나란히 한 줄로 섰다. 가르쳐 주시는 지도자님과 마주서게 되었고 또한 훈련 속 ‘나쁜 놈’의 역할을 자처해주신 분들과도 인사를 나누었다. 이스라엘 셀프디펜스 크라브마가의 인사법으로 훈련을 시작했다. 이 인사법은 “키다”라고 했다. 양손을 몸 앞에 두고 씩씩하게 “키다”를 동시에 외쳤다.
첫 번째로 워밍업으로 맨손체조를 하기도 하고 스튜디오 벽 끝에서 끝으로 가볍게 달리기를 했다. 평소처럼 몸을 앞으로 향하여 뛰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과의 간격을 살피며 부딪치지 않는 것이 목표였다. 이런 가벼운 달리기에 이어서 조금 더 속도를 내며 달렸다. 사람이 다가올 때 어깨를 비틀고 좁은 폭을 만드는 훈련을 하였다. 워밍업만 진행했을 뿐인데 땀이 나서 두터운 후드를 벗어두고 가벼운 면 옷으로만 임하기 시작했다.
두 번째로 자기방어훈련이 여러 사람들의 상호작용이 필요한 훈련이기에 서로 간의 파트너십을 갖기 위한 시간을 가졌다. 가까이 있는 참여자 분과 둘씩 짝이 되어 마주서게 되었다. 가볍게 인사를 나눈 후 적당한 거리에서 서로의 어깨를 손으로 가볍게 쳐보는 게임을 했다. 상대방이 치는 것을 막는 동시에 나도 상대방을 쳐야하는 것이기에 이내 집중하게 되었다. 같은 방식으로 이마를 가볍게 치는 게임을 했는데 이때 ‘팔 위치의 중요성’을 절실히 느끼게 된 것 같다. 방어를 할 때 팔이 바로 몸 옆에 있는 것보다 살짝 들어 올려서 설명하는 듯 하는 자세를 취하다가 머리를 방어하는 것이 훨씬 수월했기 때문이다. 이어서 둘씩 짝짓는 것을 지나서 다 같이 자리를 옮겨가면서 하는 “1대 30으로 싸웠어”의 전설 놀이를 하였다. 서로의 어깨를 쳐보기도 하고 배를 가볍게 치기도 하는 게임에 다 같이 신이 났다. 이 때 지도자 분이 “Stance"라는 상대방과의 적절한 거리를 유지하는 것을 우리가 자신도 모르게 행하고 있는 것을 설명해 주셨다. 실제로 파트너십 게임을 하며 자연스럽게 그러고 있었기에 소름이 끼쳤다. 본격적인 "Stance" 훈련을 하기 위해서 다시 둘 씩 같은 방향으로 등을 두드리는 게임을 했는데 단체로 너무 열성적으로 하다 보니 서로 충돌해서 잠시 쉬시는 분도 생겼다. 가벼운 훈련인 것 같지만 일상생활에서는 이렇게 여러 사람이 모여서 게임처럼 즐기는 몸 쓰는 훈련이 없었기에 흥분하며 시간 가는 줄도 몰랐다. 땀도 많이 나고 숨도 가빠지기에 휴식 시간을 가졌다.
이후 세 번째 시간인 본격적인 방어 훈련에 도입했다. 사람들은 가만히 있는 것보다 “얍”이라는 기합을 지르면서 힘이 더 세지고 상대방에게도 심리적인 위압감을 줄 수도 있다고 한다. ‘나쁜 놈’ 역할의 분들을 지나치면서 “얍” 소리를 내면서 손바닥을 치는 훈련을 했다. 이 때 “하지 마!”, “가!” 등의 말로 일종의 ‘길거리괴롭힘 치한’을 퇴치하는 연습을 했다. 오른 손으로도 연습을 하고 반대 방향으로 돌면서 왼손으로도 연습을 했는데 오른손잡이인 나는 평소 쓰는 손이 아니라서 처음에 매우 어색했다. 큰 원으로 훈련하기도 하고 작은 그룹으로 나뉘어서 훈련을 하기도 했다. 조금씩 힘을 주기 시작하면서 방어적으로 쳐내는 연습을 했다.
네 번째 순서로 잠시 쉬는 의미에서 다 같이 영상 화면을 보고 앉았다. 최근 뉴스 중 여성을 타깃으로 한 폭력 화면들, 특히나 ‘묻지마 범죄’의 폭력 타깃이 되었던 여성의 영상을 보았다. 그 실제 화면 속 여성들, 이를테면 한 도서관에서 무차별적으로 때리는 남성으로부터 방어하려는 여성, 엘리베이터에서 벽돌을 내리치려는 남성을 만난 여성 등이 가방 등으로 필사적으로 막는 사건의 장면이 CCTV에 증거로 남아있던 것이 보도되었던 것이었다. 실제로 그 범죄를 내가 겪은 상황은 아니었지만 실제로도 위협을 받게 되는 약자로서의 여성으로 큰 공감대를 형성했다.
상담소 부설연구소 울림에서 최근에 번역출간한『미녀, 야수에 맞서다』의 원제 <Beauty Bites Beasts>와 동명의 영화 트레일러에서는 여성들이 실제로 자기방어를 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젠더의 사회적 구성론에 따르면 여성은 여성의 역할을 수행하면서 행동마저 규정이 된다. 특히나 여성은 공격성을 띄지 않고 심지어 몸을 움직이는 것에 익숙하지 않는 것을 학습하면서 자란다. 하지만 실제로 여성은 훈련을 통해서 자신의 몸을 효율적으로 방어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내용의 영상을 보았을 때 인상적이었던 것이 케냐 지역의 할머니들이 강간을 피하기 위해서 주짓수를 단체로 배운 내용이었다. 케냐 지역에서는 HIV 감염이 되지 않은 할머니들을 타깃으로 한 강간이 많았다고 한다. 이 때 이 할머니들은 적극적으로 대항하기 위해서 주짓수를 배웠다. 할머니들은 고령임에도 힘차게 발차기를 하는 모습을 보여 줬다. 심지어 가장 나이가 많은 할머니는 80세라고 해서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이러한 할머니들의 자기방어훈련으로 실제로 강간 범죄는 거의 없는 수준에 달했다고 한다. 그러한 나이가 든 분들도 충분히 배울 수 있는 것이 바로 이러한 자기방어훈련이었던 것이다.
다섯 번째로 본격적인 공격 훈련을 시행했다. 위급한 상황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상대방의 약점을 노려서 공격을 시행하는 것이라고 했다. 남성 가해자의 경우 여성을 신체적 약자라고 규정하고 공격을 하기 때문에 상대방이 예상할 수 없도록 재빠르게 행동하는 것은 그들의 허점을 노릴 수 있다는 것이다. 손의 측면이나 손바닥 아랫부분(palm heel)을 이용하여 상대방의 목을 치는 것이었다. 소그룹으로 줄을 서서 한 사람씩 목표물을 세게 치는 훈련을 했는데 뒤에 줄을 선 사람들은 한 사람씩 하는 것을 마음 깊이 환호로 응원하면서 사기를 복 돋았다. 이 다음으로 샌드백을 발로 차기도 했다. 특히나 급소는 발로 세게 찰 경우 상대방에 굉장히 고통스럽기 때문에 함부로 연습하기 힘든 것이었다. 우리는 험악하게 생긴 남성 모형인 ‘Bob'을 한 사람씩 가격했다. 모형이라도 조금 미안하긴 했지만 다들 열심히 했다. 특히나 훈련이 끝나갈 때 하이파이브를 하면서 서로를 응원하는 모습에 감동을 받았다.
본 훈련을 마무리하며, 스쿨오브무브먼트와 한국성폭력상담소에서 이러한 훈련에 참여했다는 것을 증명하는 수료증을 받았다. 두 시간 반이라는 시간이 빠르게 지나갈 정도로 직접 움직이면서 훈련이 아닌 하나의 즐거운 운동으로 여겨졌다. 간단한 동작들을 바탕으로 처음 만난 사람일지라도 편안한 느낌으로 참여할 수 있는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진행되어서 행복했다.
난 이런 자기방어훈련을 우연한 계기로 참여하게 되었는데 이름만 들었을 때는 매우 생소한 활동이라고 느껴졌다. 이 자기방어훈련은 여성이 실제로 공격받는 상황에서 어떻게 효율적으로 대처할 지를 배우는데 최적화된 훈련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단기적인 행사로 개최되어서 나는 처음으로 참여하게 되었지만 이전 개최 시기 이후 두 번 이상으로 참여하게 되는 분들도 많았다. 나도 이번 참여를 통한 적극적이고 실질적인 훈련을 경험하게 되었고 즐거운 분위기 속에서 하나의 축제처럼 진행 되는 것이 매우 좋았다.
살면서 이렇게 적극적인 예방의 방법으로 폭력에 대응할 수 있는 실질적인 훈련 경험은 처음이었다. 이런 훈련들을 더 많은 사람들이 억압적이고 폭력적인 길거리에서 벗어나서 많은 사람들이 안전한 사회를 만드는데 큰 일조를 할 것이다. 물론 누군가를 향한 폭력의 화살이 사라져야 하는 것이 먼저이겠지만 이러한 훈련을 통해서라도 보다 많은 여성들이 자신감을 얻고 본격적으로 폭력에 실질적으로 맞설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본 글은 본 상담소 자원활동가 노경현님이 작성해주셨습니다.>
'시끌시끌 상담소' 카테고리의 다른 글
상담소 26번째 생일맞이 떡나눔 (4/12) (0) | 2017.04.11 |
---|---|
여성신문 기자단 간담회 ‘현장 속 여성학 - 한국성폭력상담소를 찾아서’ (0) | 2017.03.10 |
[인턴활동후기] 척의 ‘꼬리잡기’ 인턴 이야기 (0) | 2016.10.31 |
새롭고 다양한 경험을 했던 8주간의 인턴 후기 (0) | 2016.08.25 |
싸우는 여자가 이긴다! 자기방어특강-싸우는여자 3주 프로그램 후기 (0) | 2016.07.1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