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 24일, 해군 대령에 의한 성폭력으로 A대위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실이 언론을 통해 보도되었다. 지난 2013년 육군 여성 대위가 성폭력 사건의 법적 절차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목숨을 끊은 것과 같은 일이 또 다시 반복된 것이다.
이에 5월 26일, 전국성폭력상담소협의회(126개소), 한국성폭력상담소, 한국여성단체연합, 한국여성민우회, 한국여성의전화는 군의 성범죄 처리과정에 대한 점검, 성폭력 예방대책에 대한 전면적 재검토가 이루어져 한다는 뜻을 모아 ‘해군 대령에 의한 성폭력 사건 진상 조사 및 대책마련을 촉구하는 공개요구서’를 발표하였다. 그리고 5월 31일까지 군대 내 성폭력 문제에 대한 근본적인 대책 마련에 동의하는 시민 5920명의 서명을 받을 수 있었다.
지난 5월 25일, 해군본부 소속 여성군인 A대위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최근 A대위는 민간인 친구에게 ‘성폭력 피해를 입었다’고 털어놓은 사실이 확인되었다. 이 사건에 대해 해군 관계자는 언론과의 인터뷰를 통해 “그간 성폭력 예방 교육을 강화하고, ‘회식 지킴이’ 제도도 도입하는 등 성폭력 예방에 노력했지만 그런 일은 어디에나 있다. 술 먹고 부대 밖에서 그러는 걸 어떻게 막나”라는 입장을 밝혔다.
수많은 ‘A대위’들이 있다.
해군 내 성폭력으로 인한 A대위 자살 사건은 우연히 발생한 단일 사건으로만 받아들여져서는 안 된다. 2014년 군인권센터의 조사에 따르면 여성군인 100명 중 성희롱 피해는 19%, 성희롱 목격은 28%였으며, 물리적 폭력을 동반하는 경우가 40%에 달했다. 2015년 백군기 국회의원이 국방부로부터 제출받아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2011년부터 2015년 6월까지 여성군인이 피해자인 군 사건은 모두 191건이었으며 그 중에 성범죄 사건은 124건(64.9%)이었다. 최근 여성군인 출신 피우진 예비역 중령이 보훈처장에 임명되면서, 그동안 여성군인으로서 수많은 역경 속에서 얼마나 적극적이고 용감하게 살아남아 왔는지가 회자되었다. 하지만 여성군인이 일상적으로 겪는 성차별과 성폭력의 문제는 개인의 노력으로만 바꿀 수 없다.
‘회식 지킴이’는 성폭력을 해결할 수 없다.
군대 내 성폭력의 원인은 군대 내의 강력한 위계적, 권위적 조직문화와 젠더화된 위계질서 때문이다. 그동안 군대는 성폭력의 원인을 성군기의 해이로 보고, 성폭력 통념에 기댄 행동수칙들을 기계적으로 나열하는 식으로 성폭력 ‘대책’을 마련해왔다.
‘군기 정상화’를 위한 방안은 군대 내 성폭력이 발생하는 역동을 이해하지 못한 결과이다. 성폭력을 ‘성군기’ 관점으로 바라볼 때, 성폭력 문제를 드러낼 경우 모든 관련인은 성군기를 해친 사람이 되고, 오히려 피해자가 문제를 일으킨 장본인이 된다. 그렇기 때문에 사건을 드러내고 신고하는 것이 어렵게 된다. ‘회식 지킴이’, ‘여성군인과의 회식 자제’, ‘1110(한 가지 술로 1차에서 10시까지)’ 등의 미봉책에 불과한 지침들은 군대 내의 문화를 바꾸지도, 피해자가 되기 쉬운 위치에 있는 군인들에게 힘이 되지도 않는다.
‘말하지 못했던’ 피해자의 시간이 밝혀져야 한다.
그동안 육군, 해군, 공군에서 제도적 방안으로 성고충상담관, 양성평등상담관, 병영생활상담관 제도를 도입해왔지만 성범죄 처리 과정에 대한 여성군인의 신뢰도는 현저히 낮다. 2014년 군인권센터 조사에 따르면, 여성군인이 성범죄 처리과정에 대해 신뢰하지 않음과 매우 신뢰하지 않음을 더한 비율이 군검찰 85%, 군사재판 80%, 징계위원회 92%, 헌병대 92%이다. 피해자가 받는 불이익에 대한 조사에서는 집단 따돌림이 35.3%, 가해자 보복이 23.5%, 부대원 보복이 23.5%, 피해자 전출이 17.7%였으며, 피해 시 대응하지 않겠다는 응답이 90%였다. 그렇기 때문에 문제해결이 전혀 이루어질 수 없는 군대 내 시스템에 대한 특단의 조치 없이 수많은 ‘A대위’들은 침묵과 좌절을 반복할 수밖에 없다.
우리는 군대 내의 성폭력 사건을 더 이상 두고 볼 수 없다. 때문에 다음을 요구한다.
하나. 국가인권위원회를 중심으로 국회, 국방부, 민간인권단체로 구성된 특별조사위원회에서 해군 A대위 사건을 수사하라!
이번 사건을 통해 해군은 자체적으로 성폭력 사건을 해결하는데 한계가 있음을 인정해야한다. 해군은 여성군인에 대한 성적 착취와 차별, 폭력이 매우 고질적인 문제였음에도 불구하고, 폐쇄성과 위계를 기본으로 한 군 문화 쇄신 없이 미봉책만을 제시하였다. 해군 당국은 이러한 제도를 시행해오면서 ‘제도는 충분했다’고 말한다. 해군의 이러한 태도와 피해자가 부재한 상황에서 진실은 밝혀지기 어렵다. 이 죽음이 어떻게 일어나게 된 것인지, 들리지 않는 목소리를 듣고, 보이지 않는 것을 보는 인권의 눈으로 특별진상조사가 진행되어야 한다. 하여 국가인권위원회와 국회, 국방부는 이 사건을 여성 군인에 대한 인권침해 사안으로 규정하고 민간인권단체의 목소리를 반영한 특별조사위원회를 구성하여 철저한 수사를 통해 가해자 처벌을 확실하게 해야 한다.
하나. 군대 내 성폭력을 근절하기 위해 기존대책 및 재판이 종결된 군대 내 성폭력 사건들을 전면 재검토하라!
군대 내에서 발생하는 성폭력 사건이 축소·은폐되는 일은 해군 A대위 사건이 처음이 아니다. 2010년부터 2014년 6월까지 여성군인에게 발생한 범죄 132건 중 83건이 강간, 성추행, 위계에 의한 간음 등 성범죄였고, 이중 3건만이 실형 선고를 받았다. 특히 영관급 이상 피의자 8명중 1명(벌금 400만원)을 제외한 나머지 7명은 전원 불기소 처분되었다. 또한 군대 내 고충상담원 제도가 도입되었으나 고충상담원의 지위는 영관, 장성급에 의한 성차별, 성폭력 사건을 다루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위치에 있다. 군 당국은 군대 내 성폭력을 근절하기 위해 기존 대책을 재검토하고, 근본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2007년 영국 경찰감찰관실과 검찰조사국이 2005년 성폭력 수사자료 752건을 분석한 결과 불기소된 사건 가운데 32%가 수사했어야 할 사건이었음이 밝혀졌으며, 2010년 미국 상원의원 공청회에서도 성폭력 신고 감소 현상이 단지 성폭력 사건이 감소해서가 아니라 성폭력 사건 조사의 구조적 실패에 기인한 것임을 밝혀낸 바 있다. 따라서 국가인권위원회를 주축으로 한 특별조사위원회를 통해 제대로 된 수사와 더불어, 현재까지 군사법원의 성폭력사건 수사·재판 과정에서 어떤 불합리가 작동되었는지, 판결 내려진 군대 내 성폭력 사건에 대한 전면적 재검토가 진행되어야한다.
우리는 해군 성폭력 피해자 A대위의 죽음에 진심으로 애도를 표하며, 또 다른 피해자가 생기지 않도록 연대와 노력을 다 할 것이다.
그리고 오늘 6월 1일, 국회 정론관에서 <해군대령에 의한 성폭력사건 진상조사 및 대책마련을 촉구하는 공개요구서 전달> 기자회견이 열렸다. 기자회견 직후, 여러 여성단체들과 5920명의 서명인들의 요구를 국회 여성가족위원회 소속인 남인순, 정춘숙, 권미혁, 박경미 의원들에게 직접 전달하였다.
바로 뒤 이어, 국가인권위원회와 국방부에 방문하여 <해군대령에 의한 성폭력사건 진상조사 및 대책마련을 촉구하는 공개요구서>와 함께 시민 5920명의 서명을 전달하였다.
군대 내에 만연한 왜곡된 성문화의 변화를 위한 우리 모두의 마음을 모아 공개요구서와 서명지를 전달한 오늘 오후, 국가인권위원회가 언론을 통해 "군대 내 여성 군인들에 대한 성폭력 등의 인권침해 사안을 직권조사하기로 결정"했다고 발표했다. 환영할만한 일이다. 국가인권위원회의 이번 결정이, 지금도 어딘가에서 숨죽이고 있을 또 다른 "A대위"에게 큰 용기로, '군대'라는 상명하복과 굳건한 권위체계에서도 성평등이 실현될 수 있는 초석이 되기를 기대한다. 한국성폭력상담소는 해군대령에 의한 성폭력 사건과 관련된 해군당국과 국방부의 절차들을 주시할 것이며, 군대 내 성폭력을 없애기 위해 함께 노력해나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