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서울퀴어문화축제 참가기
스웨덴의 작은 도시에서 잠시 살 때 퀴어퍼레이드 행진을 하면서 ‘이 나라는 이렇게 작은 도시에서도 퀴어퍼레이드가 열려서 정말 좋구나.’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그로부터 3년이 지난 지금, 저는 한국의 여러 도시에서도 무지개 깃발이 펄럭이는 것을 보고 있습니다. 작년의 부산, 제주를 시작으로 2018년 올해에는 전주 한옥마을이 무지갯빛으로 물들었고, 광주와 대구, 인천에서도 퀴어문화축제 조직위원회가 활동 중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올해 “퀴어문화축제”는 “서울퀴어문화축제”로 공식명칭을 변경했습니다. 점점 전국의 여러 도시에도 퀴어들이 존재한다는 것이 알려지는 것 같아 설레고 기쁩니다.
<군형법 제92조의 6 폐지하라!>
비가 내렸던 작년과는 달리 올해 서울퀴어문화축제는 찜통 무더위 속에서 진행되었습니다. 올해 퀴어문화축제는 저에게 조금 특별했습니다. 처음으로 퀴어문화축제 무대에 올라갔기 때문입니다. 저는 오후 3시 30분에 차별금지법 제정연대의 미류님이 발언할 때 뒤에서 피켓을 드는 역할을 했습니다. 무대에서는 발언자가 세게 쥔 마이크에서 느껴지는 진심, 차별금지법 제정을 원하는 사람들의 환호성이 좀 더 생생하게 느껴졌습니다. 정부에서는 자꾸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고 하지만 차별금지법제정연대는 평등에 과연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냐고 되묻습니다.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면, 바로 지금이 사회적 합의를 만들어나가는 과정입니다. 올해도 역시 시청광장을 둘러싼 외벽 밖에서는 혐오세력들이 자극적인 말이 쓰여 있는 피켓을 들고 전환치료에 대한 전단지를 뿌리고 “저들”을 구원하라며 큰 소리를 내며 축제를 방해하고 있었습니다. 청와대 국민청원에서는 난민법을 개정하고 난민신청허가를 폐지하라는 고상한 말로 난민혐오를 하는 게시글에 무려 7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동의했습니다. 사람의 존재를 부정하는 혐오가 ‘사회적 합의’일 수 있을까요? 차별금지법은 나중이 아니라 바로 지금 제정되어야 할 법입니다.
<차별금지법 제정하라!>
올해 퀴어문화축제가 특별했던 한가지 이유가 더 있습니다. 이날은 제가 처음으로 퀴어퍼레이드를 완주한 날이었습니다. 가슴 두근거리며 처음으로 퀴어퍼레이드를 행진했던 2014년에는 혐오세력들이 찻길 한가운데 누워 행진을 막았기 때문에 행진이 저녁 8시까지 지체되었습니다. 할 일도 있고 지친 저는 중간에 행진을 나왔는데 그 날의 행진은 밤 9시가 넘어서야 끝났다고 들었습니다. 그리고 다른 날들은 축제에서 만난 친구들과 빨리 놀고 싶어 퍼레이드를 안 갔지요. 사실 이번에도 퍼레이드가 시작할 때 혐오세력이 길을 막았다고 들었는데 다행히 금세 해결되었나 봅니다. 긴 행렬을 이어가는 수많은 사람과 깃발을 보고 설레는 마음은 예전이나 지금이나 똑같았습니다. 오전부터 하루 종일 서울광장에 있었더니 너무 덥고 다리가 아파 행진이 힘들었지만, 한국성폭력상담소 활동가들과 함께였기 때문에 열심히 춤추고 떠들고 걸었습니다. 행진하며 세상에서 가장 신난 표정을 짓는 우리를 길가의 사람들이 호기심 어린 눈으로 쳐다보면 묘한 쾌감이 느껴지기도 합니다. 그럴 때마다 “이렇게 웃고 즐거워하며 숨 쉬는 우리가 어디에나 있다!”를 알리기 위해 더 신나는 몸짓과 표정과 목소리로 행진하게 되지요.
3일이 지난 지금까지도 제 몸에는 서울퀴어문화축제의 후유증이 남아 있습니다. ‘Queer Pride’가 아니라 ‘Queer Fried’였다는 말이 그저 우스갯소리로 들리지 않을 만큼 제 등이 벌겋게 익었고 가렵기까지 합니다. 짐 여러 개를 들고 간 탓에 어깨는 아직도 뻐근하고요. 하지만 예전부터 갖고 싶었던 무지개 고양이 뱃지와 무지개 대형깃발을 드디어 샀고, 열정적이었던 무대 위에서의 기억과 한국성폭력상담소 활동가들과 함께 처음으로 퍼레이드를 완주했던 추억이 남아 있으니 그 이상의 보상이라고 생각합니다 :)
<이 글은 본 상담소 여성주의상담팀 활동가 유랑이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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