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을 바꾸는 섹슈얼리티 강의] 2강 '여성의 몸, 다양한 선택지 갖기' 후기
우리는 다양한 질문을 주고받으며 살아갑니다. “잘 지내?”, “밥 먹었어?” 와 같은 일상적인 안부 인사부터 “머리가 왜 그래?”, “너는 여자처럼 언제 할 거야?”와 같이 자신의 기준에 따라 판단하고 규정하는 질문까지 타인과 마주하는 곳곳에서 여러 모습으로 등장합니다. 질문이 부재한 한국 사회이기에 어떤 질문이든 장려하는 분위기이지만, 때로는 안 하는 것만 못할 때도 많습니다. 그러한 질문이 당연하고 자연스럽게 여겨지는 사회에서 그 질문을 받는 대상은 자신의 존재를 부정하고 검열할 수밖에 없는 환경에 놓이게 됩니다. 질문이 폭력으로 바뀌는 지점입니다.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그간의 질문들의 민낯을 들여다봐야 할 시기가 온 게 아닐까요?
<질문을 바꾸는 섹슈얼리티 강의>는 ‘문제적’ 질문들에 대해 사유하고 좋은 질문, 다른 질문으로 이끌어내기 위해 마련되었습니다. ‘질문이 배제하는 사람들은 누구인가?’, ‘왜 그러한 질문을 했는가?’, ‘질문이 누구에게 유리한가?’ 등 우리의 불편함이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인식하고, 더 나아가 당연시했던 질문들을 재구성할 수 있는 장으로서의 역할을 기대했습니다. 보편적 인식의 한계에서 벗어나 우리 각자의 입장을 살펴보는 질문. 서로 소통하는 질문은 공생하고 더 나은 삶으로 가기 위해 필수적입니다. 좋은 질문이란 질문을 받는 위치에 놓인 상대를 배려하며 자신의 인식을 점검하고 성찰할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이러한 기획 의도에 맞춰, 지난 강의에 이어 7월 5일 (목) 저녁 7시, 두 번째 강의&워크숍이 열렸습니다. 이번에는 ‘여성의 몸, 다양한 선택지 갖기’라는 주제로 김백애라님께서 강의해 주셨습니다. 여성의 몸을 어떻게 생각할 것인가부터 다른 몸을 상상할 수 있는 가능성에 대한 이야기까지 여성의 몸을 둘러싼 여러 논의에 대해 균형 잡힌 시각을 가질 수 있도록 말씀해주셨습니다.
유튜브에서 <여자답게>라는 위스퍼 광고를 보신 적이 있으신가요? 여자답게 뛰어보라는 주문에 우리의 인식이 어떻게 작용하는지 보여주는 영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철학자 아이리스 영은 소녀의 움직임이 어떻게 소년과 다른지, 소녀의 몸을 어떻게 다른 방식으로 만드는지에 대해 관찰했는데요. 소녀들은 소년들만큼 전신을 움직이거나 자유롭게 열어두지 않는다는 특이점이 있었습니다. 아이리스는 소녀들의 움직임에 주목해 이를 ‘억제된 의도성’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여성들은 원래 잘 못 움직이고 연약하고 스포츠 능력이 떨어진다고 여겨지는 사회적 인식 속에서 누적된 ‘억제된 의도성’에 의하여 만들어진 결과인 것이라는 점이죠.
혹자는 ‘여성들이 잘 던질 수 없는 게 문제인가?’라는 의문을 제기할 수도 있을 겁니다. 잘 던지는 사람이 잘 던지면 되는 것이고, 잘 못 던지면 안 던지면 되는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겁니다. 그러나 여성의 몸이 어떻게 성적대상화가 이루어지고, 특정한 노동의 영역에서 배제되거나 차별을 받는지 또는 적합하다고 여겨지는지의 문제 등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음을 두루 살펴봐야 할 것입니다. 흑인 여성 인권운동가 소저너 트루스는 자신의 몸에 대해 사회에게 질문을 던집니다. “저는 여자가 아니란 말입니까?” 당시 여성이라는 존재는 백인 중산층 계급의 여성을 대표하고 있었기 때문에, 피부가 검고 키가 180cm가 넘는 장신에 두껍고 큰 몸을 가지고 있는 그녀는 차별을 받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이처럼 우리 사회가 이야기하는 ‘여자란 누구인가?’라는 의제는 몸의 모양, 몸이 갖고 있는 의미망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이 몸에 가장 많은 관심을 가진 페미니스트들은 래디컬 페미니스트라고 할 수 있는데요. 제 2물결 페미니즘의 구호는 ‘개인적인 것이 정치적인 것이다’입니다. 오랫동안 정치, 사회라는 공적 영역은 남성이 차지하고 있었고, 가사, 소비라는 사적 영역은 여성이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남성과 여성은 각기 하는 일이 다르다고 여겨져 왔습니다. 이러한 분리된 인식은 성폭력 문제에서도 드러났습니다. 여성들은 성폭력을 당했을 때 자신이 조심하지 않아서, 무언가 잘못을 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온 것입니다. 그러나 이는 단순한 개인적인 문제가 아니라 사회구조적인 문제라고 주장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샬롯 번치는 ‘정치적이지 않은 사적 영역도 없고 궁극적으로 사적이지 않은 정치적인 이슈도 없다’라고 말했습니다. 몸은 더 이상 사적 영역이 아니라 정치, 문화, 경제가 완벽하게 체화된 몸이라는 것이죠.
바로 이 ‘체화된 몸(embodied body)'이라는 다른 관점이 다른 몸을 상상하기 위한 출발점이 돼줄 수 있을 것 같은데요. 우리는 단독자가 아니고 세계 속의 존재라는 것, 어떤 국가에 속해 있고, 어떤 사람과 관계를 맺고, 어떤 직장을 다니고, 어떤 음식을 먹고 등 어떤 특정한 상황 속에 놓여 있다는 겁니다. 그렇다면 여성은 어떤 상황에 맞추기 위해 노력해 왔는가, 여성의 몸을 둘러싼 상황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해볼 수 있을 겁니다. 그리고 이러한 상황을 바꾸거나 다른 곳에 가야한다는 점인데요, 이에 관한 노력의 일환으로 반성폭력 운동, 가정폭력 반대운동, 낙태합법화, 안티미스코리아대회, 월경페스티벌, 밤길되찾기시위, 탈코르셋 운동 등을 들 수 있습니다.
강의 후에는 <나의 몸, 다르게 바라보기>라는 주제로 내 몸에 대해 자랑해보거나 긍정해주고 싶은 부분에 대해 이야기해보는 활동과 가부장적 사회에서 지친 나의 몸을 부둥부둥해주며 위로해보는 활동을 통해 워크숍을 진행했습니다. 각자의 몸을 억압해온 다양한 부정적인 시선, 기제들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자연스레 탈코르셋 운동에 대한 고민, 문제의식을 갖고 의견을 나눌 수 있었습니다.
어떤 분은 가슴이 크셔서 불편한 점이 있다고 하셨는데, 그러면 사람들이 그게 뭐가 싫다는 둥, 부럽다는 시선으로만 봐서 힘들었다고 토로하셨습니다. 그리고 자신은 브래지어가 가슴을 억압시키는 게 아니라 오히려 지지대 역할을 해주어서 착용하는 것이 편하다는 의견도 나누어 주셨어요. 어떤 분은 머리길이에 따라 사회적으로 강요받는 왜곡된 여성성으로부터 해방된다는 인식에 대한 문제의식을 이야기해 주셨어요. 숏컷으로 잘랐는데 마음에 들지 않았다고. 이게 무엇을 위한 탈코르셋인가, 보이기 위한 실천이라면 또 다른 억압은 아닌가 생각했던 경험을 나눠주셨습니다.
강사님께서 말씀해주신 바와 같이 사회가 요구하는 여성의 몸에 대한 모델이 분명히 있고 자각하지 못하는 사이 그것이 우리의 일상에 편편히 침투해 있음을 부정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그런 점에서 불평등을 유지시키는 기제들을 계속 소비하는 것에는 분명 비판받아야 할 지점이 있을 겁니다. 그러나 각자의 상황과 조건이 다르기 때문에 억압의 요소도 다를 것이고 맥락에 따라서 살펴봐야 한다는 점에는 이견이 없으리라 봅니다. 또한 단순히 머리를 자르는 행위를 넘어서 여성의 몸이 어떤 식으로 해석되고 있는지 그 의미를 알아가는 게 필요할 것입니다.
<이 글은 워크숍 기획단(페미니스트 퍼실리테이터) '은희'님이 작성해 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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