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월 19일 차별금지법제정촉구 평등행진 <평등을 말하라>가 진행되었습니다.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은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는 이유로, 혐오와 잘못된 정보와 믿음을 근거로, 10년이 넘도록 '나중'으로 미뤄지고 있습니다. 작년에 국회로 향했던 행진대오는 올해 청와대를 향했습니다. 상담소는 참가자로, 행진 스텝으로, 사전대회 사회로 함께 하며 차별금지법 제정의 목소리를 더했습니다. 이날의 후기를 전합니다.
2019년 10월 19일, 차별금지법 제정을 위한 평등행진이 열렸습니다. 각자의 권리를 위한 투쟁에 가까운 이 집회는 청와대 사랑채까지 행진하며, 장애인, 이주노동자, 청소년, 비정규직, 성평등, 성폭력 카르텔 등의 차별을 금지하는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을 위해 열린 행사입니다. 각 단체에서 많은 분들이 깃발을 들고 모여주셨습니다.
사전집회는 2시부터로 예정되어 있었지만 저는 인파를 예상해 12시 50분 쯤 현장인 파이낸스 센터 앞에 도착했습니다. 시청역에는 이미 애국 보수 집회에 온 사람들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두려움을 느끼기도 했으나, 조금만 더 가면 현장이 보일 거라는 생각에 무거운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파이낸스 센터 앞에 도착하자 저를 반겨 준 것은 행동하는 성소수자 인권연대의 부스였습니다. 클리퍼와 집회안내서를 나누어주시며 평등행진 참가하러 오셨죠? 라며 웃어주시는 모습에 맞게 찾아왔구나, 안심이 되었습니다. 사전 행사용 무대가 세워지기 전 까지 파이낸스 센터 앞은 애국보수 집회를 하는 인원들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하지만 부분부분 무지개 옷을 입고 피켓을 들고, 깃발을 꺼내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며 저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습니다.
저는 행사 중반까지 기수 역할을 맡았습니다. 처음 해 보는 기수라 긴장이 되면서도, 예전의 저처럼 깃발을 보고 반가워 할 사람이 있을 거라는 생각에 깃발을 맡았습니다. 하나 둘 올라오는 반가운 깃발과 단체의 이름에 설레는 마음이었습니다. 그렇게 2시가 되어, 사전 집회가 시작되었습니다.
사전 집회때 모이면서는 노래를 따라 부르며 춤을 추는 사람들 사이에서 즐겁게 자리에 앉았습니다. 사전집회가 시작되고 구호를 따라 외치고, 문득 뒤를 돌아보았을 때 수많은 깃발이 제일 먼저 눈에 들어왔습니다. 울컥하는 마음에 조금 울었습니다. 이 집회에 모인 사람들은 모두 차별에 반대하는 사람들이고, 우리의 존재가 지워지지 않겠구나 하는 마음에서였습니다. 저는 집회 내내 소리없이 눈물을 흘렸습니다. 조금 주책맞아 보일 지도 모르겠지만, 저는 퀴어행사에 갈 때마다 매번 울컥하는 마음을 숨길 수 없는 사람이기 때문에 연대발언을 들으면서도 많이 울고, 또 웃었습니다.
행진이 시작되어 거리에 나섰을 때는 두려운 마음도 있었습니다. 주변의 애국보수 집회인원들은 동성애 반대를 외쳐댔고, 무엇을 반대하는 지도 모르는 사람들이 무조건 반대한다며 소리를 지르거나 비난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때마다 저와 주변 사람들은 내가 여기 있다는 마음으로 소리를 지르거나 환호를 하며 그 소리가 들리지 않게끔 외쳤습니다. 저 말에 상처받는 사람이 없기를 바라면서요. 중간 중간 멈춰서서 앞과 뒤를 바라보았고, 노래와 구호를 크게 따라부르며 광화문까지 행진을 이어나가갔습니다.
광화문 앞에서는 좋지 않은 소식을 듣기도 했습니다. 동성애를 반대한다며 혐오세력들이 청와대 사랑채 앞 무대를 점거했다는 소식이었습니다. 광화문 앞에서 청와대로 향하는 혐오세력을 바라보기만 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들이 먼저 청와대 앞으로 향하는 것에 마음이 상했으나, 그래도 행진은 끝까지 할 거라는 마음으로 기다렸습니다. 광화문 앞에서 기다리는 동안 연대발언이 있었습니다. 청소년 활동가 분의 이야기를 듣기도 했고, 저도 꼭 하고싶은 말이 있어서 연대 발언을 하고자 트럭으로 갔습니다. 하고싶었던 말이 참 많았음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마음속에 늘 담아놓았던 말을 꺼내 놓을 수 있어 행복했습니다.
청와대 사랑채 앞에 도착했을 때 수많은 혐오세력들이 소리를 지르고 화를 내며 반대를 외쳐대는 모습을 제일 먼저 보게 되었습니다. 여기까지 오시느라 고생했다는 말은 귀에 들어오지 않을 정도의 인파였습니다. 저희를 향해 뛰어들다 제지당하는 사람도 보았습니다. 그러나 행사가 진행되고 연대공연을 해 주신 키라라님의 무대가 끝났을 때, 모두가 춤을 추고 소리를 지르며 여기 있음을 외칠 수 있어서, 괜찮다고 스스로를 다독였습니다. 연대 발언과 구호를 더 크게 외치고 무지개 퍼포먼스를 하며 행사는 무사히 마무리 되었습니다. 앞으로 펼쳐진 무지개 천을 보며 앞으로도 이렇게 함께하는 일이 많았으면 좋겠다, 모두가 이렇게 차별에 반대하고 있다는 목소리가 더 커져서 꼭 포괄적 차별금지법은 제정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멈출 수 없었습니다.
저에게는 이번 행사가 참 큰 의미로 다가왔습니다. 모두에게 필요한, 기본적인 권리를 되찾고자 하는 목소리를 더 가까이에서 들을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행진을 하는 동안에는 안심하고 내가 나로 존재해도 괜찮은 순간들을 겪었고, 그래서 더 행복했습니다. 목소리를 내고자 하는 사람이 이렇게나 많음에도 정부는 사회적 합의라는 변명만 하고 있습니다. 사회적 합의가 문제가 아니라, 기본적인 인권과 권리가 우선시 되는 포괄적 차별금지법이 제정되어야 합니다. 법이 제정되기까지, 계속 연대하고 함께하겠다는 생각을 하며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이 글은 상담소 회원 캐시가 작성하였습니다.>
[공유] 혐오에 지지 않을 우리 모두에게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함께 평등을 외쳤던 '2019평등행진:평등을 말하라'가 많은 분들의 성원과 참여로 잘 마무리되었습니다.
하지만 마무리집회를 하는 동안 집회 장소 옆 인도에서는 혐오선동세력의 방해가 끊이지 않았습니다. 널리 알리지는 않았지만 행진 도착 전에는 마무리집회를 위해 일찍 세웠던 무대 앞이 혐오선동세력에 의해 점거되기도 했습니다. 무대 현수막에서 '평등', '국가인권위원회' 같은 단어를 본 이들이 '이 자리에서 동성애 찬성집회가 열린다'며 당장이라도 무대를 부술듯 달려들기도 했습니다. 이때문에 마무리집회 시작이 늦어지기도 했습니다.
이런 이유로 돌아가시는 길 마음이 평화롭지만은 않았을 듯합니다. 우리가 함께 만든 무지개 물결 안에서 혐오에 굴하지 않는 자유와 평등의 기운을 만끽했지만 혐오선동세력이 존재하는 것 또한 현실이라는 점이 지워지지는 않습니다. 각자의 자리로 돌아가 마주하는 현실이 더욱 버겁게 느껴지는 분도 있었을 테고 누군가의 존재를 면전에서 부정하는 혐오선동세력의 모습에 분노를 가눌 수 없는 분도 있을 듯합니다.
각자의 용기가 서로에게 힘을 주었듯 우리 모두가 치유와 회복의 시간을 통해 더욱 힘을 키울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직면한 현실을 외면하지 않되, 각자의 마음과 몸을 돌보는 시간도 충분히 가지시길 바랍니다. 각자에게 소중한 기억으로 남은 시간들을 돌아보며 더욱 강해진 우리가 되어 다시 만날 수 있기를 바랍니다.
행진에서부터 마무리집회까지 우리는 우리의 존엄을 그들에게 똑똑히 보여주었습니다. '동성애 결사반대'를 내걸고 있는 이들앞에서 당당하게 내가 성소수자임을, 성소수자와 함께 하고 있음을 드러냈습니다. 내가 누구든 우리는 혐오에 맞서 함께 평등을 이룰 것임을 이야기했습니다. 그들이 쫓아내고 싶어하는 난민을 환영한다고 이야기했고 '정상가족'을 거부하며 다양한 우리 삶을 사랑한다고 이야기했습니다.
우리의 존재를 부정하려는 이들 앞에서 당당하게 우리를 드러낸 10월19일을 기억합니다.
"우리가 모이고 말하기를 멈추지 않는다면 세상이 평등해지지 않을 도리가 없습니다."
2019년10월22일
2019평등행진 조직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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