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7월, 데이트상대에 의한 불법촬영 동반 준강간 사건이 있었습니다. 사건 당시 피해자는 평소 주량에 한참 못 미치는 술을 마시고 기억을 잃었고, 이후 디지털 포렌식으로 복원된 불법 촬영물은 피해자가 의식을 잃은 동안 성폭력 피해가 있었다는 사실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러나 경찰은 단지 피해자의 몸에서 약물 검출이 안 됐다는 이유로 준강간 수사 진행에 난색을 보였고, 포렌식 결과 파일에 촬영물 유포가 의심되는 정황이 발견되었으나 유포 수사 또한 제대로 진행하지 않았습니다.
이에 한국성폭력상담소는 4월 15일(목) 오전 11시, 서초경찰서 앞에서 준강간사건의정의로운판결을위한공동대책위원회, 천주교성폭력상담소,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와 함께 해당 사건의 엄정 수사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개최했습니다.
기자회견의 순서는 아래와 같습니다.
★ 사회 : 노선이 (한국성폭력상담소 여성주의상담팀)
★ 발언 1) 사건 내용 및 쟁점 공유 _유호정 (한국성폭력상담소 여성주의상담팀)
2) 준강간 사건의 성인지 관점을 고려한 적극적 수사를 촉구한다! _김태옥 (천주교성폭력상담소 소장)
3) 유포 여부 확인은 피해회복의 첫 걸음이다 _김여진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 피해지원팀장)
4) 피해자 글 대독 _윤경진 (한국성폭력상담소 여성주의상담팀) |
첫 번째로, 유호정 한국성폭력상담소 여성주의상담팀 활동가가 피해 이후 진행 상황에 대해 간략하게 설명하고 해당 사건의 쟁점을 공유했습니다. 상담소에 접수되는 많은 약물 의심 성폭력 사건들이 의심되는 정황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단지 약물 검출이 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불기소가 됩니다. 이 사건이 다른 사건들과 마찬가지로 불기소가 되지 않도록 여러 약물 의심 및 촬영물 유포 의심 정황을 토대로 엄정한 수사를 촉구하였습니다.
발언1. 사건 내용 및 쟁점 공유
: 유호정 (한국성폭력상담소 여성주의상담팀)
이 사건은 피해자가 데이트상대의 핸드폰에서 우연히 자신의 나체 사진을 발견하고 경찰에 신고하는 것에서 시작합니다. 신고한 날부터 약 2주 전인 2020년 7월, 여느 때와 같이 남자친구와 데이트를 하던 피해자는 평소 주량에 훨씬 미치지 못하는 양의 술을 마시고 갑자기 정신을 잃게 됩니다. 피해자가 발견한 것은 이 날 의식이 완전히 없는 상태에서 찍힌 나체 사진들이었습니다. 이후 가해자의 핸드폰 디지털 포렌식 조사를 통해 추가로 확보된 피해촬영물의 내용은 충격적이었습니다. 영상 속 가해자는 피해자가 의식이 있었다면 절대 동의하지 않았을 성적 가해를 했고 피해자는 철저하게 성적 대상화된 채 인간이 아닌 것처럼 취급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포렌식 조사 이후 피해자는 불법 촬영 피해에 이어 심신상실 상태를 이용한 강간 피해가 있었다는 사실까지 인지하게 됩니다.
2019년, ‘버닝썬’ 클럽 사건이 공론화되며 소위 “데이트 강간 약물”로 불리는 약물이 성폭력 가해를 하기 위한 목적으로 공공연하게 거래되고 있다는 것이 밝혀졌습니다. 이는 졸피뎀, GHB 등의 향정신성의약품을 이르는 말로 술에 타서 먹으면 단 몇 분만에 의식을 잃지만, 24~72시간 이내에 몸 밖으로 배출돼 범죄에 악용되기 쉽다는 특징이 있습니다. 우리는 이 사건의 가해자 역시 이러한 약물을 이용했다는 합리적인 의심을 제기할 수 있었습니다. 우선, 피해자는 평소 주량보다 매우 적은 술을 마시고도 완전히 기억과 의식을 잃었으며 가해자는 유학 생활 중 종종 마약을 하며 피해자에게 약물을 권했던 사람이었습니다. 무엇보다 피해자는 포렌식 결과로 나온 영상을 통해서 약물이 사용되었다는 것을 직감할 수 있었습니다. 영상 속 피해자는 피해자 본인의 일상적인 모습도, 목소리도 전혀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며칠 만에 완전히 몸 밖으로 빠져나가는 성분의 약물을 이용했다면 당연한 사실이지만, 뒤늦게 피해를 인지하고 고소를 진행한 피해자로부터 약물 검출은 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약물이 검출되지 않은 상태에서 영상 감정만으로는 약물 이용에 관한 판정을 할 수 없다는 취지의 답변을 들었습니다. 성폭력 상담소에서 지원하는 수많은 약물 의심 성폭력이 이 사례처럼 약물 검출이 되지 않고, 결국 검출이 되지 않았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불기소 처분되거나 법적 처벌을 피해갑니다. 담당 수사관은 변호사가 소통을 계속 시도했음에도 한동안 연락이 되지 않다가 갑자기 ‘검찰 송치 예정’임을 메시지로 통보(2020. 12)하고 피해자에게 말한 것과 달리 가해자의 노트북을 압수수색하지 않고 임의제출 요청함으로써 결국은 중요한 증거자료를 확보하지 못하였습니다. 이렇게 수사관을 신뢰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피해자에게 약물 검출되지 않았다는 검사 결과는 여느 사건들처럼 가해자에 대한 처벌을 불확실하게 만들 것입니다.
그러나 약물 검출이 되지 않았다는 사실이 가해자의 성폭력 혐의를 부정하는 유일한 증거가 될 수는 없습니다. 이 사건은 피해자의 진술 외에도 가해자의 약물 사용 이력, 피해자의 심신 상실 상태가 의심되는 영상 등을 통해 약물이 사용되었다는 여러 정황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성범죄 약물인 물뽕이 국내에서 처음 확인된 것은 1998년입니다. 이후 20년이 지났지만, 국내에 약물을 이용한 성범죄에 대한 연구는 여전히 부실하고 관련 수사기법은 전혀 발전하지 않았습니다. 약물 의심 성폭력이 불기소가 되고 성범죄자가 처벌받지 않는 현실이 더 이상 되풀이되어서는 안 됩니다. 2019년, 버닝썬 클럽의 성범죄가 공론화된 후 경찰은 약물 성범죄에 대한 수사를 강화하기로 약속하고 수사지침서를 개정했다고 발표했습니다. 2년 전의 약속을 되새겨 이 사건의 여러 약물 의심 정황들과 촬영물을 살펴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약물을 이용한 성범죄 가해자들은 절대 처벌을 피할 수 없다는 선례를 남겨주시기 바랍니다.
추가로 우리 공동주최 단위는 이 사건에서 드러나는 유포 정황에 대한 촬영물 유포 수사를 요구합니다. 피해자는 신고 당일 가해자의 핸드폰에서 본인의 나체 사진뿐 아니라 가해자가 SNS 메시지로 누군가에게 사진을 전송했던 흔적을 봤습니다. 또한, 포렌식 결과로 나온 파일의 경로값에는 kakaotalk, facebook 등의 단어가 포함되어 있어 해당 플랫폼에 촬영물 유포가 있었던 것은 아닌지 의심이 되는 상황입니다. 그러나 경찰은 촬영물 유포에 대한 직접적인 증거가 없다는 이유로 유포 관련 수사를 제대로 진행하지 않고 있습니다. 경찰은 확보된 증거들과 의심 정황을 바탕으로 제대로 된 유포 수사를 진행해주시기 바랍니다.
술, 약물 등으로 인해 의식이 없었던 피해자는 자신도 모르게 어떤 피해가 더 있었을지 모르기 때문에 크게 불안해합니다. 경찰은 이 사건을 포함하여 불안해하는 많은 피해자들이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카메라이용촬영과 약물 의심 성폭력에 대한 엄정한 수사를 시행해주시기 바랍니다. 약물 검출이 되지 않더라도 다른 합당한 정황과 증거로 가해자를 처벌할 수 있을 때 약물을 이용한 성폭력은 근절될 수 있을 것입니다.
두 번째로, 준강간 공대위 활동을 하고 있는 김태옥 천주교성폭력상담소 소장이 “준강간 사건의 성인지 관점을 고려한 적극적 수사를 촉구한다”를 주제로 발언하며 성폭력에 대한 왜곡된 통념이 준강간 대응과 기소를 어렵게 하는 현실을 짚었습니다. 지난 2월, 준강간의 구성요건인 “심신상실 또는 항거불능 상태”를 폭넓게 해석한 판례를 예로 들며 성인지 감수성을 고려한 수사가 진행되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발언2. 준강간 사건의 성인지 관점을 고려한 적극적 수사를 촉구한다!
: 김태옥 (천주교성폭력상담소 소장)
지난 몇 년간 우리사회는 각계각층에서 발생하는 성폭력사건에 대한 문제의식을 공유하고 연대하며 피해자들을 지지해 왔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술이나 약물에 의한 준강간사건이나, 연인관계에서 발생하는 성범죄에 대해서는 피해자에 대한 편견과 통념이 여전히 만연하여 기소조차 되지 않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현재 대법원에 계류중인 준강간사건을 공동대응하고 있는 ‘준강간사건의 정의로운 판결을 위한 공동대책위원회(이하 준강간공대위)’에서 전국성폭력상담소협의회를 통해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준강간사건의 피해자 769명 중 67%인 512명만이 수사기관에 신고를 하였고, 그중 기소되어 공판까지 간 피해자는 229명(44%)뿐이었습니다.
피해자들이 성폭력피해에도 불구하고 신고하지 못 한 가장 큰 이유는 수사 및 재판과정에서 오히려 비난의 대상이 되고, 성폭력피해를 입증할 증거가 부족하거나, 가해자 처벌을 위해 지나치게 반복된 진술이 요구되는 반면 실제 가해자가 처벌은 받게 되지 않을까봐(42%)가 가장 큰 비율을 차지하였습니다. 실제 사건이 불기소되거나 무죄가 나오는 이유 또한 피해자의 상태를 심신상실 혹은 항거불능 상태로 보기 힘들어서(43%), 가해자의 고의성이 합리적 의심없이 증명되지 않아서(24%), 피해자의 진술의 신빙성이 낮아서(20%), 피해자가 피해자답지 않아서(8%) 등이었습니다.
준강간 사건의 피해자는 범죄 피해를 당하게 된 심신상실 또는 항거불능의 상태로 인해 자신의 피해사실과 그 피해 전후의 상황에 대해 명확하게 진술 또는 입증을 하기가 어렵고, 수사 및 재판기관은 합리적 의심없이 증명되었다고 보기 힘들다며 불기소 혹은 무죄로 판단합니다. 혹여 피해자가 만취상태인 것이 확인되더라도 ‘만취한 줄 몰랐다’, ‘합의하여 성관계를 한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가해자가 주장하면 다시 범죄의 책임을 규명하는 일을 피해자에게로 돌리며, 이때 피해자에게는 “피해자다운 피해자인가” 라는 왜곡된 통념 기준으로 피해자 진술의 신빙성은 물론 피해상황에서의 심신상실 여부, 가해자의 고의성 등도 함께 의심의 잣대로 판단되는 것이 현 수사․재판과정의 현실입니다.
이 사건은 준강간사건의 잘못된 통념과 인식 뿐 아니라 ‘지극히 개인적인 일’, ‘두 사람간의 사소한 일’로 치부되는 연인관계에서 발생한 성폭력사건입니다. 데이트 중 자신의 명백한 동의가 없는 상태에서 일방적인 강요에 의해 일어나기도 하고 약물이나 술 등을 이용해 성적인 행동에 대한 자기의사를 표현할 수 없는 상태로 만든 후 성범죄가 발생하지만 수사 및 재판기관의 지극히 낮은 성인지 감수성으로 처벌은커녕 신고조차 어렵고, 신고를 하더라도 2차 가해의 상황에 놓이곤 합니다.
본 사건 피해자는 가해자와 술을 마신 후 기억을 잃어 자신에게 어떤 일이 있었는지 알지 못하고 있었으며, 이후 핸드폰에서 나온 불법촬영물을 보고 자신에게 성폭력피해가 있었음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늘상 약물을 소지하고 흡입하며 피해자에게 지속적으로 약물을 강권한 가해자의 행동으로 미루어, 가해자가 자신에게 약물을 사용하였다고 의심하였습니다. 더구나 불법으로 촬영된 영상의 피해자는 정상적인 모습이 아니었고, 일상적인 관계에서는 절대로 동의하지 않았을 성폭력상황이었습니다.
지난 2월 대법원 형사3부는 피해자가 음주 후 스스로 한 행동을 기억하지 못한 준강제추행사건에 대해 ‘술에 취해 정상적인 판단능력 및 신체적 대응능력을 행사할 수 없었다면 심신상실상태에 있었다고 보아야 한다’며 심신상실 또는 항거불능의 상태를 폭넓게 해석하여 음주 후 기억상실 일명 블랙아웃을 유죄취지로 파기 환송하는 판단을 하였습니다.
본 사건 또한 피해자가 성적자기결정권을 행사할 수 있는 상태였는가, 만취하여 혹은 약물에 취하여 정상적인 판단이나 대응이 가능한 상태였는가, 라는 성인지적 관점으로 사건의 실체를 들여다봐야 합니다. 준강간사건의 피해자를 천편일률적인 피해자의 모습으로 정형화하여 외면한다면, 추후 술과 약물에 의한 준강간사건은 범죄자들에 의해 계속 악용될 것입니다.
이제 수사기관은 변화해야 합니다.
술이나 약물에 의한 성폭력사건이 잘못된 사회통념이나 피해자다움을 강요하지 않고, 사건의 전후 맥락, 피.가해자의 평소 성행동, 가해자의 약물습관, 상대방의 의사결정을 명확히 확인할 수 있는지, 피해자의 적극적인 합의를 구하였는지 성인지적인 관점을 고려한 수사가 진행되어야 합니다. 피해자가 성폭력으로 인한 고통을 더 이상 받지 않도록 피해여성의 목소리를 외면하지 말고 가해자의 범죄에 대한 철저한 수사를 촉구합니다.
세 번째로 김여진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 피해지원팀장이 “유포 여부 확인은 피해회복의 첫 걸음이다”를 주제로 발언하였습니다. 센터에 접수된 상담 중 7.4%는 촬영이나 유포가 있었던 것은 아닌지 불안해하는 불안피해임을 밝히며 유포 정황이 있는 이 사건에서 적극적으로 유포 수사가 이루어져야 함을 역설했습니다. 사이버 성폭력의 특성상 사건 대응 과정에서 피해자가 쉽게 소외되기 때문에 더더욱 국가와 수사기관이 폭력의 현장에 뛰어들어야 한다는 말이 인상 깊었습니다.
발언3. 유포 여부 확인은 피해회복의 첫 걸음이다
: 김여진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 피해지원팀장)
2020년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에 접수된 전체 피해 유형 중 약 56.8%는 촬영물을 이용한 성폭력입니다. 불법촬영, 비동의유포, 유포협박, 촬영물을 성착취 하는 과정이 있었던 온라인그루밍의 유형을 합한 값입니다. 촬영물을 이용한 성폭력 사건의 피해경험자가 경찰에 신고를 하고 싶다고 말하면 활동가들은 더 깊은 대화를 나누어봅니다. 피해경험자가 신고를 하고 싶은 이유를 탐색해보면 많은 경우 첫 번째 이유로 피해의 중단을 꼽습니다. 여기서 피해의 중단은 유포의 중단 뿐만이 닙니다. 가해자가 갖고 있는 촬영물의 완전한 삭제와 유포 가능성의 차단까지를 포함합니다. 당연한 일입니다. ‘수사기관에 요청하면, 나의 피해를 열심히 진술하고 증거자료를 제출하면, 이제는 안전해지지 않을까’라는 기대는 전혀 과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현실은 어떻습니까. 가해자가 핸드폰을 잃어버렸다고 말하여 수사가 종결되는 경우가 너무 많습니다. 가해자가 피해경험자가 알고 있는 가해자의 핸드폰 말고 또 다른 핸드폰만 제출하는 경우가 너무 많습니다. 또 즉각적인 압수수색이 이루어지지 않아 가해자가 충분히 증거 인멸을 시도하고 핸드폰이나 노트북과 같은 전자기기를 제출할 수 있기도 합니다. 수사기관이 구글 드라이브 등 온라인 저장공간까지는 들여다보지 않는 경우도 너무 많습니다.
사이버성폭력은 피해경험자의 신체와 분리된 채로 발생합니다. 피해경험자의 신체가 재현된 이미지로 이루어지는 폭력은 피해경험자가 알 수 없는 곳에서 알 수 없는 방식으로 완성됩니다. 그래서 분명 피해경험자 본인의 사건인데도 피해경험자는 사건의 대응 과정에서도 소외되기 십상입니다. 그렇다면 국가는 무엇을 해야합니까. 피해경험자가 스스로 닿을 수 없는 폭력의 현장에 뛰어들어야 합니다. 피해경험자가 닿을 수 없는 곳을 수사해야 합니다.
혹자는 사이버성폭력의 경우 기록이 남기 때문에 더 수월히 진상 규명을 할 수 있다고 합니다. 사이버 공간이 성범죄를 숨기기 쉬운 가해자의 공간이 되는 것이 아니라 결국 성범죄 기록이 남기 때문에 끝끝내 잡힐 수 밖에 없는 우리의 공간이 되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 수사를 누가 할 수 있습니까. 권력과 기술을 가진 수사기관은 사이버공간을 누구의 공간으로 만들어야 하겠습니까.
이런 상황에서 유포가 되지 않았을 것이라고 어떻게 장담할 수 있을까요. 가해자 핸드폰 포렌식 결과 피해경험자가 정신을 잃은 상태에서 강간 및 불법촬영 피해를 입고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는 시간에 갤러리 폴더와 페이스북, 카카오톡 폴더에서 파일을 업로드 하거나 보관한, 또 재생한 것으로 추정되는 값이 발견되었습니다. 또 가해자의 핸드폰에선 지메일을 통해 파일을 다운로드 받고, 삭제하고, 다시 지메일을 통해 다운로드 받은 값이 나왔습니다. 경찰 수사 과정에서 드러난 불법촬영물 중 일부는 피해경험자가 불법촬영 피해를 인지하기 최소 3개월 즈음 이전부터 촬영한 것이 명백합니다. 해당 파일들은 카카오톡 등 어플리케이션 폴더 내에 존재하거나 유사한 캐시 정보로 복원되었습니다.
피해경험자가 디지털포렌식의 전 절차에 참여하지 못해 위의 정보들이 정확하지 않을 수는 있지만 우리가 어렵지 않게 추정할 수 있는 내용들입니다. 불법촬영이 피해경험자가 인지하기 전부터 있어왔고, 이 촬영물들을 페이스북, 카카오톡, 지메일 등 외부 저장공간에 업로드하였고, 이 촬영물들은 다른 사람에게도 노출될 수 있었으며, 가해자 본인 핸드폰에서는 파일을 삭제하고 다운로드 받는 과정이 여러 차례 있어왔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말입니다.
피해경험자는 본인의 역할을 다 하기 위해서 노력했습니다. 경찰에서 진술을 하고, 성폭력상담소를 찾고, 디지털포렌식 과정에서 본인 확인 등의 필요한 일들을 어렵지만 해냈습니다. 이제 수사기관이 응답할 차례입니다.
2020년 본 단체에 접수된 피해 유형 중 7.4%는 불안피해입니다. 촬영이나 유포가 되었는지 확인하지는 못했지만, 촬영이나 유포가 발생했을 것 같아 불안감을 느끼는 피해를 말합니다. 수사기관은 불법촬영 피해경험자가 재유포나 불안피해와 같은 또 다른 피해는 최대한 겪지 않을 수 있도록 노력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수사와 재판이 끝났는데도 가해자의 전자기기가, 온라인 저장공간이 제대로 수사되지 않아 ‘촬영물이 또 유포되면 어떻게 해야 하나’‘라는 불안을 갖고 오시는 분들을 만나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 사건은 아직 수사 단계입니다. 피해경험자에게 수사과정이 재유포를 막고 불안피해를 해소하는 과정이 될지, 그렇지 않을지는 아직 만들어나갈 수 있습니다.
유포 정황에 대한 적극적인 수사를 촉구합니다. 가해자의 모든 전자기기와 온라인 계정 및 온라인 저장공간에 대한 수사를 강력히 촉구합니다. 경찰은 피해경험자가 이미 내딛고 있는 피해회복의 발걸음에 함께 하십시오.
마지막 순서로 윤경진 한국성폭력상담소 여성주의상담팀 활동가가 피해자 글 “하루하루를 최선을 다해 살아가고 계시는 선량한 시민 여러분께 올립니다.”를 대독하였습니다. 피해자는 사건 이후의 심정과 어려움을 이야기하는 한편, 변화에 대한 의지, 포기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밝혔습니다. 마지막으로 2019년, 버닝썬 사건으로 약물 성폭력이 공론화되었음에도 아직도 수사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현실을 비판하며 이 사건을 외면하지 말 것을 호소했습니다.
발언4. 피해자 글 – 하루하루를 최선을 다해 살아가고 계시는 선량한 시민 여러분께 올립니다.
대독 : 윤경진 (한국성폭력상담소 여성주의상담팀)
머릿속에 셀 수 없는 수많은 실타래들이 얽히고 설켜 도대체 무엇을 어디서부터 바로잡아야 할지 모르겠는 심정으로, 저는 하루하루를 정신과 약에 의존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저는 꿈도 많았고 정말 열심히 하루하루 최선을 다해 살아왔습니다. 알고 보니 범죄자였던 당시 남자친구도 제가 누구보다 신뢰하며 서로 진심으로 사랑했다고 믿었던 사람이었습니다. 제가 마주해야 했던 단순히 끔찍하다는 표현으로는 형용할 수 없는 불법촬영물들, 수사관이 저에게 2차 가해를 하며 했던 말들과 말투, 표정 하나하나가 머릿속에 마치 비디오플레이어가 자동재생 되듯이 매일 매일 저에게 찾아옵니다. 이미 일어난 일이고 앞으로 제 삶을 위해 몸과 마음을 추슬러야 한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지만 수사과정에서 제 머리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부조리한 현실을 직접 마주하며 저는 산산조각이 나버렸습니다. 피해자가 피해를 겪고도, 또한 그것을 입증할 명백한 증거물이 존재함에도, 피해사실을 사회가 정한 사법제도 시스템 안에서 인정받는 것이 이토록 힘든 일일 줄 꿈에도 몰랐습니다. 수사과정에서 제가 믿어왔던 사회 정의는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고 사방이 막혀있는 컴컴한 방에 홀로 갇혀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가해자 노트북을 임의제출 받으려다 멸실되었다는 소식을 들은 날, 분노와 절망에 빠져 모든 이성을 잃고 창밖으로 몸을 던지려던 저를 부모님이 잡아주시지 않았다면 저는 지금 이 자리에서 이 글을 쓰고 있지 못했을 것입니다...
아무런 힘도 없는 제가 지금 마주하고 있는 절망적인 현실을 조금이라도 바꾸기 위해서 도대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정말 아무것도 모르겠습니다. 모든 것을 다 포기해버리고 싶은 마음이 하루에도 수백 번 저를 찾아옵니다. 하지만 이렇게 두 다리에 다시 힘을 주고 제 목소리가 세상에 조금이라도 들릴 수 있게 도움을 청할 수 있었던 것은 제가 사랑하는 사람들과 과거부터 현재까지 계속되고 있는 부조리로 고통받고 있는 피해자들, 그리고 아무 관계도 없음에도 저를 위해 도움의 손길을 내밀어 주신 사회봉사단체 선생님들, 또 저와 같은 형편의 약자들에 대한 생각 때문이었습니다. 이 세상에서 제가 사라진다면 매일매일 마주해야 하는 고통에서 저 자신은 해방되겠지만, 제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계속해서 살아갈 이 상식이 통하지 않는 세상은 조금도 바뀌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무너지는 저에게 그러지 말라고 다독입니다. 저는 경제적으로 사회적으로 가진 자이던, 혹은 못가진 자이던 상관없이, 범죄 피해자가 정당한 수사에 기반하여 정의로운 판결을 받을 수 있는 세상에서 살고 싶습니다. 성폭력피해자들이 피해를 당하고도 2차 가해로 인해 자책하거나, 피해사실을 부끄러워하거나, 잘못된 수사관행으로 인해 피해사실조차 인정받지 못하는 나라에서, 제가 사랑하는 가족과 친구들이 살아가도록 내버려 둘 수는 없습니다. 제가 피해자가 되어 불합리한 현실을 직접 마주하기 전까지, 저는 세상에서 일어나고 있는 말도 안 되는 일들에 분노하기보다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라 여기며 무관심하였던 것에 부끄러움을 느낍니다. 하지만 이제는 압니다. 직접 피해를 겪은 저조차 목소리를 내지 않는다면 이 암담한 현실은 절대 바뀌지 않을 것이란 것을 말입니다. 제 목소리는 허공에 공허한 외침이 될 수도 있겠지만 이렇게 주변 분들의 도움을 받아 하나 둘 씩 목소리를 합해간다면 완벽하진 않더라도 작은 변화들이 시작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오늘 저는 이 글을 씁니다. 지금까지 보이지 않는 곳에서 정의를 위해 싸워 오신 감사한 분들이 계셨기에, 그래서 많은 것들이 변화해 올 수 있었다는 것을 이제야 깨닫고 저는 지금 이 글을 씁니다.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고, 또 매순간 나쁜 생각들이 저를 찾아오지만 저는 끝까지 포기하지 않을 것입니다. 진실이 밝혀질 때까지, 우리 모두가 보다 더 나은 세상에서 살 수 있을 때까지, 먼저 행하고 계시는 존경하는 사회단체 선생님들을 따라 결코 무너지지 않고, 세워 놓으신 길을 걸어갈 것입니다. 시민여러분, 약물에 의한 성범죄가 20년 넘게 근절되지 못하고 판을 칠 수 있는 우리 사회가, 이제는 상식이 통하는 사회로 돌아갈 수 있도록 함께 목소리 내어 주십시오, 약물이 검출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기소조차하지 않는 수사기관의 알면서도 모르는 척 방관하는 관행을 이제는 끊어 내어 주십시오...
2019년 버닝썬사건이 우리 사회를 크게 뒤흔들어 약물관련 성범죄 수사지침서까지 개정한 이후에도, 우리 경찰은 아직도 약물이 의심되는 ‘준강간’ 성폭력 사건에 대해 가해자를 기소조차하지 않는 수사태도를 견지하고 있습니다. 준강간의 도구가 되는 약물은 마약이나 향정신성의약품 등 종류가 매우 다양합니다. 한 예로 GHB,일명 ‘물뽕’ 약물에 대한 사회적 폐해는 이미 너무 많이 알려져 있습니다. 2019년에 MBC 뉴스데스크는 독일기자가 실제로 물뽕을 투약 받고 보이는 증상을 방송에 송출하기도 했으며, 그러한 결과로 2019년 8월에는 경찰청차원에서 약물관련 수사지침서를 개정하기도 했습니다. 개정된 수사지침서는 GHB증상으로
1.주변 사람과 정상적으로 대화하지만 잠든 후 깨어나면 전혀 기억을 하지 못함,
2.자유의지를 상실한 채 지시에 맹목적으로 따름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수사지침서를 개정까지 하고서는 약물이 인체에서 검출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가해자를 기소조차하지 않는 악습을 2021년 오늘까지 이어오고 있습니다. 언론보도로 확인된 내용을 보면 GHB약물은 6시간이면 인체에서 대부분 빠져나가 피해자에게서 약물이 검출된 사례는 2015년부터 2018년까지 4년 동안 한 건도 없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명백히 관찰 가능한 15분 분량 동영상이 발견되었으니 이제는 악한 관습을 끊어 낼 작은 계기라도 마련된 것이 아닌지요? 약물이 검출되지 않더라도 피해자가 정상적이지 않은 동영상이 발견된다면, 약물수사지침서에 준하여 기소를 하도록 관련 수사지침서를 개정한다든지 뭔가 변화가 있어야하지 않겠는지요? 수사의 단서가 될 유일한 동영상이 발견되었는데도 여성가족부에서 지원한 대학병원 전문의를 비롯한 여타 전문가들에게 보여줄 수 없다는, 저의 사건을 담당한 서초경찰서 여성청소년과 과장님의 결정이 대한민국 경찰청의 공식적인 의견인지 묻고 싶습니다. 언제까지 이렇게 여성사회의 고통과 외침에 침묵을 넘어 방관자로 일관하실 것인지요?
지난 20년 동안 고통 받고 있는 이 약물에 의한 성폭력이 의심되는 준강간 성폭력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법무부를 위시하여 경찰청, 여성가족부, 보건복지부 등 범정부 차원의, 더하여 시민사회단체가 협력하는 범국가 차원의 협의체를 구성해 주시기를 탄원 드립니다. 대한민국 국민 절반이 수십 년 동안 고통 받아 온 이 일을 이제는 더는 외면하지 말아주시기를, 그리고 가능한 해결책을 강구하여 시민사회에 대답해 주시기를 대통령님을 비롯한 고위 공직자 여러분들께 간곡히 탄원 드립니다. 피해자가 보호받고 범죄자는 합당한 죄의 댓가를 치르는 공정한 사회....... 이것이 우리 선량한 시민사회 모든 구성원이 바라는 대한민국의 2021년 오늘임을 기억해 주십시오...
발언을 마친 이후 서초경찰서 민원실에 기자회견문을 제출하였습니다.
더 이상 불법촬영이 동반된 준강간 사건이 불기소로 이어지는 일은 없어야 할 것입니다.
상담소는 앞으로도 이 사건을 포함한 다른 약물 의심 사건들의 수사 진행 상황을 날카롭게 지켜보고 엄정 수사를 촉구하겠습니다.
경찰서에 기자회견 참여자들의 진심과 외침이 전해졌기를 바라며 후기를 마칩니다.
↓↓↓생생한 기자회견 현장이 궁금하신 분들은 기자회견 라이브 중계를 시청해주세요!
www.youtube.com/watch?v=tpLDxfC1YT0
<이 글은 여성주의상담팀 유랑 활동가가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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