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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를 말하다

당신의 자녀를 공격하는 괴물은 누가 만들어내는가?

 

아동 성폭력, 더 이상 소녀들의 용기에만 기댈 수 없다

지난 14일 김수철 사건의 피해 어린이가 원스톱지원센터에서 용감한 어린이상’을 받고 환하게 웃었다. 김수철 사건의 피해 어린이는 감당하기 힘든 끔찍한 일을 겪었음에도 경찰에게 당시 정황을 차분하게 설명했고, 이로 인해서 김수철을 검거할 수 있었다. ‘나영이’라는 가명으로 잘 알려진 조두순 사건의 피해 어린이도 참혹한 일을 경험하고도 경찰 조사과정에서 일관되게 진술을 했기 때문에, 그나마 조두순을 처벌할 수 있었다.

성인이라도 하더라도 자신의 성폭력 피해를 경찰에게 진술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이 사건의 피해자들은 어른도 감당하기 힘든 일을 겪고도 차분하게 끈질기게 자신의 피해를 진술하고, 범인을 검거하는 데 크게 기여하였다. 이 용감한 소녀들의 용기 앞에 진심으로 뜨거운 박수를 보낸다.

  그러나 우리는 아동성폭력을 예방하는 일을 더 이상 소녀들의 용기에만 기댈 수 없다. 이제는 어른들이 무엇을 할 것인가를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때이다. 세간의 관심이 사라진 이후에도 그 소녀들은 몇 십년을 이 사회 속에서 살아가게 될 것이다. ‘짐승 같은’ 흉악범을 향해 분노를 퍼붓는 일은 사실 쉬운 일이다. 그러나 현 시점에서 필요한 것은 사람들의 분노가 사라진 이후에도 오랜 세월을 이 사회 속에서 살아가야 할 그녀들을 위해 사회가 무엇을 해야할지 장기적인 시각으로 고민하는 것이다.

 

 

‘흉악범’ 내세워 ‘공포통치’ 조장하는 국가의 오랜 눈속임

조두순 사건에 이어 김길태 사건이 준 충격이 채 가시기도 전에, 김수철 사건이라는 끔찍한 아동성폭력 사건이 또 발생하였다. 지난 사건과 비교해 김수철 사건이 달라진 점이라고는 단지 범인 사진이 공개된 것밖에 없다는 탄식이 여기저기서 터져 나온다. 조두순, 김길태 사건 당시만 해도 흉악범에 대한 강력처벌만을 주장하던 여론도 더 이상 강력처벌만으로는 성폭력이 예방되지 않는다는 자성의 목소리가 드높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한나라당 일부의원들은 그 실효성이 입증되지 않은 약물요법(일명 화학적 거세)을 주장하며, 올해 6월 입법을 서두르고 있다. 성폭력범죄자에게 약물요법을 시행하는 미국의 경우 가석방 6일 전부터 다시 재범하지 않으리라는 확신이 들지 않을 때까지 지속적으로 투여하고 있다. 그러나 미국의 경우에도 약물요법의 실효성를 입증하는 연구는 아직 존재하지 않으며, 약물투여 중에도 발기가 가능할 뿐만 아니라, 약물투여를 중단하면 일시적으로 호르몬이 증가하는 부작용도 보고되고 있다.

 그러나 한나라당에서 추진하는 약물요법은 가석방 이후 보호관찰기간 동안만 투여하자는 방안이며, 보호관찰기간이 끝나면 약물요법도 중지된다. 이는 보호관찰이 끝나서 사회로 복귀하는 범죄자에 대해서 아무런 실효성이 없을 뿐만 아니라, 단지 생색내기불과하다.

지난 3월 국회에서 성폭력범죄자에게만 적용되는 전자발찌가 살인범 등 다른 강력범죄자에게 적용되도록 슬그머니 법안이 개정되었다. 지금은 흉악한 성폭력범죄자를 내세워 전자발찌를 합리화하지만, 이 전자발찌는 언제 살인범, 테러범 더 나아가 정치범의 발목에 채워질지 모른다. 정부와 여당이테러 ‘국가 안보’를 내세워 국가 형벌권을 강화하는 것은 오랜 눈속임이었으며, 지금은 ‘빨갱이’가 아니라 ‘흉악범’으로 바뀌었을 뿐이다.

 따라서 우리는 성폭력 범죄의 강력처벌만을 주장할 것이 아니라, 과연 그 강력처벌이 실제로 성폭력을 예방할 수 있는가를 보다 차분하게 따져보아야 할 때이다.

 

학교 성폭력 예방에 투입되는 예산 턱없이 부족해…

 아동성폭력 문제가 지속적으로 사회적 문제가 되어온 것과는 달리, 일선 공공교육현장에서 학교 성폭력 예방에 투입되는 예산은 턱없이 부족하다. 2007년 부처별 성폭력 예산을 총괄 비교한 표를 보면, 정부가 말로만 성폭력 예방에 열을 올릴 뿐 실제로는 그다지 예산을 배정하지 않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변혜정(2008), “성폭력 관련 공공지출에 대한 성인지적 분석”, 한국여성정책연구원).

 

<표 29> 2007년 부처별 성폭력 예산 총괄 비교표

분류

여성가족부

교육인적자원부

법무부

2007년

전체 예산

1조 1400억원

156조 5177억원

1조 9694억원

2007년

성폭력 관련 예산

213억 7천만원

1억원

10억 4천만원

비율(%)

1.9

0.00007

0.05

출처: 변혜정(2008), “성폭력 관련 공공지출에 대한 성인지적 분석”, 한국여성정책연구원

 

따라서 오늘날 아동성폭력 대처위기상황은 어느 날 갑자기 흉악범죄가 연이어 터졌기 때문이 아니라, 지금까지 정부와 국회가 아동성폭력 예방에 대해 무심했던 결과의 반영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2008년 발생한 아동 성폭력 사건 이후에 교육과학기술부는 부랴부랴 ‘성폭력 없는 안전한 학교’ 사업 등을 펼치며 학교 성폭력 예방 관련예산을 배정하였다. 그러나 예산집행항목을 보면 인터넷 사용제한, 유해인터넷 사이트 차단, CCTV 설치, 배움터 지킴이 등 감시형 사업에만 집중하고 있을 뿐, 성폭력 예방을 어떻게 실시할 것인가? 학교 성교육을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근본적인 고민은 다소 부재하다고 볼 수 있다.

 

<표27> 교육과학기술부 ‘성폭력 없는 안전한 학교’ 사업 3년간 소요예산

(단위: 백만원)

사업명

소요액(백만 원)

비고

2008

2009

2010

1)유해인터넷사이트 차단 S/W

2,000

3,000

5,000

10,000

’08~’10특교

2) 인터넷 사용시간 제한 S/W

1,000

-

-

1,000

’08특교

3) 학생 성폭력 실태조사 및 평가

200

200

200

600

’08특교

’09~’10일반

4) 성폭력 예방 매뉴얼 보급

1,000

-

-

1,000

’08특교

5) 성폭력 예방 공익광고

50

-

-

50

’08특교

6) 돌볼 학생 통합지원센터 구축

18,000

18,000

18,000

54,000

’08특교

’09~’10교특

7) 대안교육 위탁기관 운영

850

-

-

850

’08특교

8) 학교 내 CCTV 설치(6,438교)

21,290

21,300

21,790

64,380

’08특교

’09~’10교특

9)배움터 지킴이 운영(6,811교)

9,467

81,217

99,828

234,902

08~’10교특

합계

53,857

81,217

99,828

234,902

 

출처: 변혜정(2008), “성폭력 관련 공공지출에 대한 성인지적 분석”, 한국여성정책연구원

 

물론 초등학교에서 CCTV를 설치하거나, 아동지킴이를 운영하는 등 최소한의 안전장치를 마련하는 것은 어느 정도 필요한 일이라고 보여진다. 그렇지만 어떤 CCTV도 학교 전체를 완벽하게 감시할 수는 없다. 아무리 학교 담벼락을 높게 쌓고 CCTV를 많이 설치한다고 해도, 소위 ‘우범지역’을 제거할 수는 없다.

학교는 그 자체로 동떨어져서 존재하는 공간이 아니며, 사회와 담을 맞대고 함께 숨 쉬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단지 학교 안에서 성폭력을 당하지 않는다고 해도 귀가길 골목에서, 학원 옆 공터에서 성폭력에 노출될 수 있다. 학교를 무엇으로부터 지킬 것인지? 학교가 어떤 공간이 되어야 하는지에 대한 교육철학이 없이, 단지 무차별적인 감시만으로 학교가 안전한 공간이 될 리 만무하다. 이것이야말로 우리가 ‘학교’라는 특정 공간에 한정되지 않는 사회 전체의 안전에 대해서 관심을 가져야 되는 이유이다.

 

당신의 자녀를 공격하는 괴물은 누가 만들어내는가?

 연일 발생하는 참혹한 아동성폭력은 한국 사회 전체를 공포로 몰아넣고 있다. 얼굴도 실체도 없는 ‘흉악범’이라는 괴물은 유령처럼 떠돌고 있다. 아버지들이 순찰대를 만들어 학교 주변을 순찰하고, 어머니들은 하교길 문 앞에서 아이들을 기다린다. 난데없이 끔찍한 ‘괴물’이 등장하여 소중한 아이들을 잡아가지 않을까 온 사회가 패닉에 빠져있다.

이 시점에서 던져야 할 질문은 이것이다.

당신의 자녀를 공격하는 괴물은 누가 만들어내는가?

끊임없이 사이코패스라고 치부하려고 해도, 비정상, 변태, 괴물이라고 분리하려고 해도, 그들은 당신이, 이 사회가 만들어낸 괴물이다. 소위 ‘우범지역’이라고 분류되어 조만간 CCTV로 감시당하게 될, 재개발구역에 버려진 인생들을 당신이 돌아보지 않는 한, 괴물들은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어릴 때 친부모에게 버림받고 입양되었다는 김길태나 어린 시절 고아원을 전전하며 성적 학대를 당했다는 김수철의 변명이 자신들이 저지른 끔찍한 범죄를 정당화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어린 시절을 어렵게 보낸 모든 사람들이 성폭력범죄를 저지르는 것은 아니며, 이는 ‘가난한 사람들은 다 범죄자’라는 식의 사회적 편견만을 강화시킬 뿐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회와 아무런 끈도 닿아있지 않은 그들이 사회적 책임감을 가질 수 있을 리 만무하며, 자신의 인생을 소중하게 여기지 않는 그들이 남의 인생인들 소중하게 여길 리 만무하다.

한국 사회가 지속적으로 ‘괴물’을 키워내고 있다면, 아무리 조두순을 잡아가두고, 김길태를 사형시킨다고 해도, 제2, 제3의 김수철이 등장할 수밖에 없다. 이제는 이런 괴물들은 만들어내고 있는 이 사회의 시스템 자체를 진지하게 성찰해야 할 때이다. 그렇지 않으면 그 괴물들은 언제라도 당신이 세운 허술한 담장 밖을 튀어나와서 당신의 자녀를 공격할 것이므로.

 

              

                                                                                                       성문화운동팀 보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