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한 지상파 TV의 “인생은 아름다워”라는 드라마가 뜨거운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과거 드라마에서 남장여자, 여장남자라는 설정으로 동성애코드를 일부 도입한 것과 달리, 드라마 사상 최초로 동성애를 주제로 본격적으로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에 동성애자인 남성주인공이 가족들에게 커밍아웃을 하면서 이를 둘러싼 찬반논란도 인터넷을 뜨겁게 달구고 있다.
동성애를 반대하는 측은 모 일간지 광고를 통해 “며느리가 남자라니, 동성애가 웬 말이냐”같은 격한 구호를 내세우며, 동성애는 가정과 사회, 국가를 무너뜨린다는 주장을 전개하고 있다.
동성애를 둘러싼 찬반논란에도 동성애자들은 현실에서 존재하고 있다. 따라서 이는 동성애 찬성/반대라는 입장의 문제라기보다는, 일상을 살아가는 그들의 삶과 인생에 대한 실존적 문제이며, 오히려 생존권의 문제가 아닐까. 이렇게 동성애자의 생존권을 둘러싸고 가장 첨예한 문제 중에 하나는 동성애자가 군대에 가면 어떻게 될까? 동성애자들에게 군대는 어떤 공간일까? 하는 질문이다.
군형법, 그 제정부터 동성애에 대한 혐오 담고 있어…
지난 6월10일 헌법재판소에서 구 군형법 제92조에 위헌제청에 대한 변론이 있었다. 이는 2008년 22사단 보통군사법원이 군대 내 동성애 행위를 처벌하도록 규정한 군형법 조항이 위헌 소지가 있다며 헌법재판소에 위헌심판을 제청했기 때문이다. 군사법원은 같은 소대의 병사와 (합의에 의한) 성적 접촉을 한 혐의로 구속기소된 A중사에 대한 재판에서 “국제적 흐름뿐 아니라 국내적으로도 동성애를 소재로 한 영화나 드라마, 소설 등이 사회적 관심을 받고 동성애자의 모임이 늘어남에 따라 국민의 의식도 변화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라며 “강제에 의하지 않은 동성 간 추행을 징역형만으로 처벌하는 것은 과도한 규제”라고 밝혔다. 또한 재판부는 “군형법 제92조는 '계간 기타 추행'이라고만 규정해 비강제에 의한 것인지, 강제에 의한 것인지 여부뿐만 아니라 남성 간의 추행만을 대상으로 하는지, 여성 간 또는 이성 간의 추행도 대상으로 하는지도 분명하지 않다”며 "이성 간의 행위에는 적용되지 않고, 동성 간의 행위에만 적용된다고 본다면 평등권과 성적 자기결정권을 침해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구 군형법 제92조는 “계간 기타 추행을 한 자는 1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문제는 표면상 군대 내 성폭력 처벌을 규정하고 있는 이 조항이 사실상은 군대 내 성폭력이 아니라 군대 내 동성애를 처벌하는 데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는 것이다.
다소 생소하기도 한 ‘계간(鷄姦)’이라는 용어는 국립국어원의 표준국어대사전에 의하면 ‘비역’과 유사어로서 ‘사내끼리 성교하듯이 하는 짓’이라고 설명되어 있는데, 일반적으로는 남성간의 항문성교를 의미하는 것으로 해석되고 있다. ‘계간’이라는 용어는 그 사전적 의미나 어감에서부터 동성애에 대한 비하 및 경멸이 느껴진다.
군형법은 일본의 구 육군형법을 토대로 미국 전시법의 규정을 참고하여 만들어진 것이다. 미국 전시법은 구약성경 창세기에서 언급되고 있는 소돔과 고모라의 이야기에서 유래된 ‘소도미’(sodomy)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어서, 그 용어에서부터 동성애를 비하하는 종교적 색채가 많이 드러난다. 소위 ‘소도미법’이라고 불리는 미국 군사통일재판법(the Uniform Code of Military Justice) 제125조에서는 모든 형태의 ‘동성간 또는 이성간 또는 동물과의 비정상적인 성교행위’를 금지하고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 소도미법의 핵심은 소위 ‘비정상’, ‘변태’라고 불리는 행위들을 군대 내에서 금지시키는 것이며, 그간 주로 동성애자를 군대 내에서 퇴출하는 데 주로 사용되었다. 이는 군형법이 그 태생부터 동성애를 죄악시하며 차별하고 있다는 것을 명백하게 보여준다.
남성 간 성행위는 합의가 있어도 처벌? 동성애 처벌 위해 군형법 92조 악용
군형법은 1962년 처음 제정된 이후에 약 47년 동안 한 번도 개정된 적이 없다가, 작년 11월에 강제추행 등 성폭력을 처벌하는 규정을 신설하면서 같이 개정되었다. 이 과정에서도 여전히 ‘계간’조항은 없어지지 않았는데, 군대 내 성폭력의 경우 다른 조항으로도 충분히 처벌할 수 있음에도, ‘계간’조항을 유지한 이유가 자못 궁금해진다.
뿐만 아니라 일반적인 성폭력의 경우 당사자 간의 동의가 없이 이루어진 행위만 처벌하고 있는 것과 달리, 군형법 상의 추행의 경우 당사자 간의 동의 하에 이루어진 행위도 처벌하고 있다. 만약 군대 내에서 모든 성적 접촉 자체를 금지시키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면 당사자 간의 동의에 의한 성관계를 처벌할 이유는 무엇인가?
그간 여성운동단체에서는 다른 범죄와 달리 피해자가 스스로 성폭력을 고소해야 하는 친고죄 조항이 성폭력 고소율을 낮출 뿐만 아니라 피해자의 인권을 침해하고 있으며, 따라서 친고죄를 폐지해야 한다고 오랫동안 주장해왔다. 그러나 국가는 ‘성폭력은 피해자에게 부끄러운 사생활’이라는 이유로 친고죄 폐지를 완강히 거부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군대에서 남성 간에 발생한 성행위에 대해서는 당사자의 고소가 아닌 타인의 목격 및 신고만으로도 처벌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당사자의 합의에 의한 성적 접촉까지도 ‘계간’조항에 의해 처벌하고 있다.
이는 군대가 성폭력에 대해서 보다 급진적인 태도를 가지고 있다기보다는, 군대 내 동성애를 처벌하기 위한 목적으로 ‘계간’조항을 적극적으로 악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법원과 헌법재판소 판결에 따르면 군형법상의 추행죄는 개인의 성적 자기결정권을 보호하는 것이 아니라 ‘군이라는 공동사회의 건전한 생활과 군기’를 보호하고 있다는 것이다. (대법원 2008도2222 판결; 헌법재판소 2001헌바70 전원재판부 결정 등). 따라서 동성애는 "일반인에게 혐오감을 일으키고 선량한 성적 도덕관념에 반하기 때문에" 군이라는 공동 사회의 건전한 생활과 군기를 침해하고 있기 때문에 금지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국방부는 의견서를 통해 열악한 근무환경에서 집단적 숙식을 하는 현 징병제 하에서 동성애를 허용한다면 군의 기강과 전투력을 약화시킬 뿐만 아니라, 군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강화하여 군복무 기피 풍조가 만연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동성애는 사회 일반정서상 부정적으로 인식되기 때문에 군의 건전한 기강을 침해할 가능성이 이성애보다 높아서 처벌하는 것이지 동성과 이성을 차별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나 국방부의 이러한 주장은 ‘동성애가 사회 정서상 부정적’이라는 잘못된 사회통념에 근거하여 동성애 차별을 정당화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동성애자라는 이유만으로 ‘군의 건전한 기강을 침해할 가능성이 높다’는 차별적 인식을 보여준다. 동성애에 대한 이러한 차별적인 태도는 군대가 성소수자들에게 얼마나 차별적인 공간이며, 군대에서 그들의 삶이 얼마나 고달플 것인가를 쉽게 짐작하게 해준다.
군대 내 동성애문제를 다룬 이스라엘 영화 "요시와 자거"
외국의 경우에도 군대 내 동성애 차별 철폐하고 있는 추세
동성애자의 군대 복무를 두고 미국 내에서도 많은 논란이 있어왔으나, 최근 오바마 대통령은 동성애자의 군 복무에서의 차별 폐지를 공약으로 내걸었으며, 미 국방장관 또한 이를 긍정적으로 검토하고 있는 추세이다. 유럽의 경우 미국에 비해 일찍부터 동성애를 차별하는 법률을 폐지하여 왔다. 프랑스와 독일의 경우 동성애자의 군복무를 허용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군 복무의 적합성을 판단할 때 성적 지향을 문제 삼는 것이 아니라 군대라는 특수한 집단생활에 동참할 수 있는지를 여부를 따져서 판정하고 있다. 또한 캐나다와 호주의 경우에도 1992년에 각각 동성애자 복무금지정책을 폐지하였다. 영국의 경우에는 군대 내에서 동성애를 금지하고 있긴 하지만, 동성애 행위를 형사처벌하지는 않고 있다.
2007년 차별금지법을 제정하려고 했을 때, 성적 지향을 차별사유에 포함시키는 것에 대한 격렬한 반대에 부딪혔던 한국의 경험에서 볼 때, 군대에서 동성애자 차별에 대한 이슈는 자신과는 거리가 먼 문제라고 여겨질 수도 있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에도 동성애자를 비롯한 많은 성소수자들이 군대에서 고통 받고 있다. 동성애자에 대한 차별적 시선 때문에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지 못하고 끙끙 속앓이를 하며, 원치 않는 상황에서 자신의 성정체성을 아웃팅 당할까봐 전전긍긍하기도 한다. 게다가 성정체성이 알려질 경우 주변 동료들의 따돌림이나 폭언ㆍ폭행을 경험하기도 하며 심각한 경우에는 성폭력과 같은 상황에 노출될 수도 있다. 심지어는 자살에 이르기까지 하는 심각한 고립감과 우울증은 그들이 살고 있는 현재이며, 이는 허용되거나/허용되지 않거나 하는 성질의 문제가 아니다. 이미 살아가고 있는 삶들, 존재하고 있는 인생들을 허용하지 않을 권한은 대체 누가 어떻게 부여한다는 말인가? 자신의 존재 자체가 송두리째 부정당할 때 이것이야말로 논쟁의 대상이 아니라 인간의 존엄성의 문제이다.
군형법 제92조의 위헌성을 두고 헌법재판소에서 내려지는 판결들이 헌법이 보장하고 있는 인간의 존엄성이라는 정신에 부끄럽지 않도록, 군대를 비롯하여 한국 사회 전체 동성애자 차별에 경종을 울릴 수 있는 판결이 되기를 기대해본다.
성문화운동팀 보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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