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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를 말하다

화학적 거세로 성폭력 범죄를 예방한다고?

오늘 사무실에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습니다. 
한국성폭력상담소의 이미경 이사가 뉴스 인터뷰에서 화학적 거세에 대하여 부정적인 입장을 밝히신 것에 대해서
항의하는 내용이었습니다.
실효성 논란이 많은 화학적 거세보다는 가해자 교정교육을 통해 재범을 예방하는 것이 근본적인 해결책이라는
요지에 대해 항의하는 분은
"그 사람들이 교정이 되는거냐? 도대체 그 쪽 단체에서 생각하는 근본적인 대책이 무엇이냐?"고 질문하셨습니다.

가해자는 마땅히 처벌을 받아야 합니다. 


우리 상담소는 <성폭력을 조장하는 대법원 판례바꾸기 운동>을 통해 재판부가 피해자를 의심하고 가해자에게 관대한 태도를 보이는 잘못된 판결문에 대해서 조목조목 따지는 글을 써서 법조인들에게 보내는 일을 하였습니다.
이 일을 하면서 어이없는 판결에 분노한 날이 하루이틀이 아닙니다.

지난 2006년 성폭력범죄의 공소시효를 대폭 연장하거나 아예 없애야 한다는 주장을 처음 하였을 때,
많은 이들은 형평성에 어긋난다며 부정적인 의견을 내놓았습니다.
(물론 지금은 미성년자인 경우 성인이 될 때까지 공소시효가 정지되는 법안이 통과되어 매우 다행스럽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러나 "가해자가 교정이 되는 사람이냐?"는 항변 뒤에는
성폭력범죄 가해자가 정신이상자, 사람이기를 포기한 자라는 생각이 뿌리깊게 박혀 있습니다.
화학적 거세는 일시적으로 호르몬을 투여하여 가해자의 성욕을 조절하겠다는 것이 취지입니다.
어린이, 여성, 부하직원, 학생 등 자기보다 약한 사람을 대상으로 폭력행위를 하는 사람들은
나와는 달리 성욕을 통제하지 못하는 사람이라는 생각이지요. 

하지만 저는 이런 생각이 듭니다. 
강한 성충동을 해결하기 위해 반드시 폭력적인 방법을 선택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무엇때문에 이렇게 폭력이 난무하는 걸까요?

강자와 약자가 뚜렷이 나뉘고, 약자에 대한 배려와 책임의식이 없는 사회는 더할 수 없이 폭력적인 사회입니다.
지하철에서 어린이나 젊은 사람에게 함부로 말하는 사람들,
다른 사람에게 함부로 물건을 집어던지고 욕을 하는 사람들,

분노에 차서 아이들을 때리는 부모나 교사,
유전무죄라고 밖에는 얘기할 수 없는 법원의 어이없는 판결들,
이 사회의 폭력은 여기저기서 나타납니다.

흔히 '인면수심'이라고 손가락질 받는 가해자들은
어디서 갑자기 나타난 이상한 사람이라기 보다는
바로 이 폭력을 용인하고 묵인하는 우리 사회에서 함께 살고 있던 이들입니다.

성폭력이 단순히 '성충동 조절'의 문제라면 화학적 거세는 참 좋은 해결방법입니다.
진작에 그 방법을 도입하자고 주장했을 겁니다.
하지만 폭력은 그것보다 훨씬 더 복잡한 문제를 안고 있기 때문에 
대책에 대한 더욱 깊은 고민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고민의 출발은 나를 포함한 우리 사회에 대한 성찰입니다.
폭력이 폭력을 낳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기 위해
우리가 당장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