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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를 말하다

성폭력피해생존자와 영화를 만들다



성폭력피해생존자와 영화를 만들다

 

 

   : 2009년 2월 5 목요일 오후4-6 

장   소 : 조세영감독 작업실

인터뷰어: 이어진(한국성폭력상담소 활동가)

인터뷰이: 조세영(버라이어티 생존 토크쇼 감독)

 

  처음 세영감독을 만났을 때 느낌은 ‘참 작다’는 것이었다. 비쩍 마른 몸에 손도 작고, 키도 작고, 머리도 작았다. 그런데 등 뒤에는 항상 자신의 키보다 크고, 몸보다 무거운 카메라를 지고 다녔다. 만취한 상태에서도 어느샌가 카메라는 들이대는 감독을 보면서 ‘감독은 감독이군’이라는 생각을 했었다. 세영 감독은 성폭력피해생존자들이 이야기를 나누는 ‘작은말하기’공간 그리고 그들과 함께하는 다수의 ‘참이슬, 처음처럼, OB’모임에서 소식을 들을 수 있었다.

 

  그리고다가오는 4월경 생존자들의 이야기를 카메라로 담은 ‘버라이어티 생존 토크쇼’라는 영화의 개봉을 앞두고 있다. 세영감독은 왜, 어떻게, 이 영화를 만들게 되었을까?

 

   

▲ <버라이어티생존토크쇼> 감독 조세영, 작업실에서

 

 

Q. ‘감독’이라는 멋있는 이름을 달고 있다. 처음부터 감독을 하고싶었나?

조세영 : 감독이 되겠다는 생각을 단 한 번도 한 적이 없다. 그냥 영화를 보는 것이 좋았다. 캄캄한 곳에 박혀서 영화를 보고, 느끼고, 생각하고 그걸로 좋았다. 내가 워낙 게으른 사람이라 영화로 뭘 해보겠다는 생각이 없었다. 그런데 영화동아리가 영화를 보기만 하는 곳이 아니라 ‘영화 만드는 법’을 가르치는 곳이라 의지에 상관없이 영화 만드는 기술에 관해서도 배우게 되었다. 그러면서 편집기사일도 하게 되었고, 중간에 영화와 상관없는 감정평가사 공부도 했고, 틀어박혀서 소설책만 보기도 하고 그러면서 시간을 보냈다. 재미있었다. 그러다 시험을 이틀 앞둔 어느날 ‘내가 이 일을 하는 것이 10년 후에도 행복할까?’ 하는 생각을 하다가 때려치웠다.

 

Q. 그러다 흥행대작 ‘가족이라는 집단이 가진 허구성과 폭력성’을 드러낸 안티가족다큐 ‘쇼킹패밀리’에 출연하게 된 것인가? 출연하면서 어땠나?

조세영 : 너무 상업적 멘트 그대로 읽어오셨다. (웃음) 처음 시작할 때 내가 이렇게 비중 있게 출연하게 될지는 몰랐다. 나는 내 가족에 대한 이야기를 풀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다. 그래서 촬영하면서 고민도 많았다. 언니는 지금도 내가 이렇게 가족 이야기를 영화로 만드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하지만 여기서 중요한건 내가 카메라를 통해서 말을 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나는 원래 말이 없다. 혼자 놀고, 혼자 밥 먹는 것을 좋아한다. 집에서도 별로 엄마랑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나는 원래 그런 사람이지만, 그렇다고 염치없이 카메라를 들 때만 말을 할 수는 없지 않은가? 그래서 자연스럽게 말을 하게 되었고, 그러면서 문득 '우리 관계의 뭐가 문제인가?'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Q. 여과 없이 드러나는 세영감독과 어머니의 싸움을 보면서 설정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과격하고 사실감 있게 느껴졌다.

조세영 : 사람들이 그 이야기를 많이 했다. 각본 아니냐는. 근데 엄마가 사실 카메라를 신경을 별로 안 쓴다. 본인이 흥분하면 카메라의 존재를 잊는 것 같다. 여성영화제에서 첫 상영회 때 엄마도 왔는데 부끄러워하는 듯 했지만 사람들이 박수 쳐주니 썩 좋아하는 듯 했다. 정말 맞아 죽을 줄 알았는데 말이다. 그러면서 엄마를 엄마, 여자 그리고 한 인간으로 이해하게 되었는데 그래서인지 예전보다 훨씬 관계가 좋아졌다. 엄마의 이야기를 ‘들어주기 시작한 것’이 엄마에겐 참 좋았던것 같다. 새벽을 지나 아침까지 엄마와 인터뷰를 했는데 '누가 내 얘기를 이렇게 들어주나'라는 이야기를 하셨었다.

 

             Q. 그렇게 영화를 찍고, 어떻게 상담소 활동을 시작하게 되었나?

조세영 : 3회 말하기대회 촬영을 시작으로 상담소를 알게 되었다. 상담소 활동가들을 보면서 문화적 충격을 받기도 했고, '상담소가 좋은 곳이구나'라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뭐 이제는 활동가들과 친해지면서 괜찮아졌지만 처음엔 절대 막 대하면 안되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면서 천천히 '성폭력' 이라는 화두가 나에게 들어왔다. 쇼킹패밀리가 나오고 2006년부터 데이트성폭력에 관심이 갔고, 어이없게 영화찍겠다면서 상담소로 전화해서 피해자 연락처 알려달라고도 했다. 그러다가 선유도공원에서 낮술 마셨던 그날, 5회 말하기대회 영상을 찍으면서 지금의 사람들을 만나게 되었다. 그날 참 통쾌하고 재밌었다.

 

             Q. 자연스럽게 작은말하기 대회에 참여하게 되었을 것 같다. 

조세영 : 그렇다. 나 또한 피해자이고, 카메라를 든 사람이기도 하다. 그런 생각으로 참여했다. 하지만 사람들은 참 많이 다른 것 같다. 그래서 카메라를 들고 선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여러 생각들을 하게 되었다. 거기서 지금 영화의 참여자들을 만나게 되어서 개인적으로 인터뷰를 하게 되었고 영화를 만들게 되었다. 하지만 참 쉽지 않은 것 같다.

 

 

Q.세영감독의 많은 고민이 담긴 영화일 것 같다. '버라이어티 생존 토크쇼'어떤 영화인가?

조세영이 영화의 생명은 모자이크가 없다는 것이다. 이것만으로도 이 영화는 의미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생존자들이 무겁지 않게, 밝은 톤으로, 자기만의 방식으로 지껄이는 것이다. 생존자 각각의 스타일이 너무 다르기 때문에 그 스타일을 따라가고 함께하는 과정이 어렵기도 했다. 그러면서 이 영화에 '내'가 어떻게 드러날지 많이 고민하고 있다. 내가, 내 고민이 드러나지 않으면 방관자이기 때문이다.

 

 

Q.끝으로 인터뷰를 보실 분들께 하고싶은 이야기를 부탁한다.

조세영 : 이렇게 이야기를 하다보니 마치 회고전이라도 하는 노인이 된 기분이다. 돌이켜보니 나는 하루하루 의미 있게 살려고 참 노력했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앞으로도 의미 있게 지냈으면 좋겠다. 그렇게 하다보니 나는 내가 하고 싶은 것을, 내가 생각하던 것을 하면서 살고 있는 것 같다.

 

 

 

 

  세영감독은 카메라와 작은말하기를 통해 말이 늘었다고 했다. 정말 그런 것 같았다. 세영감독은 자신의 결정과 그 결정을 믿고 해왔던 활동에 어떤 의미나 수식을 달지 않았다. 마음이 가는대로 움직였고, 그것이 본인이 바라던 미션이자 삶이었던 것 같다. 그리고 지금처럼 카메라를 지고, 메고 그렇게 상담소 행사 한켠에 조용히 나타났다가, 조용히 사라질지 모르겠다. 세영감독은 밝고 화사한 생존자들의 이야기를 제대로 만들어 내기 위해 음악, 편집에며칠째 밤을 새고 있었다.

 

  나는 무척이나 설렌다. ‘성폭력피해생존자’들의 이야기가 담긴 영화가 모자이크 없는 영상으로 나온다는 것이 말이다. 그것은 출연진에게 온전히 박수를 보냄이 마땅하지만, 그들을 카메라로 옮겨올 수 있었던 세영감독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일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세영감독에게 또한 박수를 보내고 싶다

 

 

 

 

*‘버라이어티 생존 토크쇼’ 제작을 위한 후원금을 부탁합니다!

 

일부 영화제작을 위한 지원금을 받고 있지만 이는 많이 부족합니다. 세영감독이 빚을 내고 아르바이트를 하고있지만 막판 작업이 몰리면서 이마저도 시간이 허락하지 않습니다.

 

이 영화를 응원하신다면 적은 금액이라도 후원금을 부탁드립니다.

 

신한은행 110-255-858936 (예금주: 세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