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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를 말하다

교수성폭력, 어떻게 근절할 수 있을까


교수성폭력, 어떻게 근절할 수 있을까

 

최근 서울중앙지법 형사8단독(이정권 판사)은 제자인 J씨(39세)를 자신의 숙소로 데려가 성폭행한 혐의(피감독자간음)로 기소된 K교수(62세)에 대한 선고공판에서 무죄를 선고했다.

이번판결은 자신의 학업이나 진로에 치명적인 결과를 가져올지도 모르는 위험을 감수하며 피해사실을 밝히고 대학 조직 내 잘못된 성문화에 이의를 제기하고자했던 피해자의 용기와 의지에 찬물을 끼얹은 판결이었다.

 

교수성폭력의 원인: 교수와 제자 사이의 권력관계

 

교수성폭력은 어떻게 발생할 수 있을까? 스승을 존경해야 할 성품과 인격을 가진 존재로 여기는 한국사회의 정서를 고려해볼 때, 교수에 의한 성폭력 사건은 일어날법하지 않은 일이다. 그러나 이러한 사회적 인식과는 달리 제자에 대한 교수의 성폭력은 빈번히 발생하고 있다.

 

교수성폭력은 기본적으로 ‘스승과 제자’라는 위계적 권력관계에 기반한다. 교수성폭력 사건의 경우 대부분의 피해자가 논문을 지도받는 대학원생이나 조교, 학생이라는 점은 대학 내에서 빈번히 발생하는 교수성폭력이 스승과 제자사이에 존재하는 위계적 권력관계와 긴밀히 연관되어 있다는 것을 시사한다.

                                                

 ⓒ 연합뉴스                                                             실제로 상담소에서 교수성폭력사건을 지원하다보면 피해자들이 가해교수의 언행에 대해 불쾌감을 느끼면서도 가해자가 평소 따르던 ‘스승’ 이기때문에, 그리고 자신의 미래와 학업에 절대적인 권력을 행사할 수 있는 교수이기 때문에 가해자의 언행에 즉각적으로 저항하거나 구조요청하지 못하는 경우들을 자주 접할 수 있다. 피해자들은 당혹감과 혼란 속에서 쉽게 무방비 상태에 놓이는 경우가 많으며 이러한 상황에서 폭력에 더 많이 노출되곤 한다. 또한 많은 피해자들이 가해교수에 대해 적극적으로 문제제기하지 못하는데, 이는 학생인 피해자가 자신의 학점과 졸업논문심사, 졸업 후 진로까지 좌지우지할 수 있는 교수를 문제제기 했을 경우, 이에 따르는 결과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교수성폭력 근절을 위해 필요한 것

 

피해자중심의 학내 반성폭력 내규 확립과 집행

 

교수성폭력사건을 지원하면서 안타까운 것은 피해자가 자신의 학업이나 진로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지도 모르는 위험을 감수하며 피해사실을 밝히고 문제제기를 하더라도 가해자를 징계하거나 피해보상을 받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이번 K교수성폭력사건 해결과정에서 학교 측이 피해자의 진술을 의심하고, 형사고소 중이라는 이유로 사건해결과 관련된 모든 활동을 중단하는 등 무책임한 태도를 보였던 것과 같이, 학내에서 교수성폭력사건이 발생할 경우 학교 측은 사건의 진상을 명확히 파악하고 해결하려는 의지와 태도를 보이는 경우는 드물다. 이보다는 사건을 은폐, 축소하려하거나 피해학생보다 교수의 편을 들어주는 경우가 많다. 피해자의 인권이 침해된 것 보다는 가해자인 교수의 지위나 명예 실추에 유감을 표시하는 것이 대학사회의 일반적인 인식이다. 학교의 이러한 태도가 더 문제인 것은 어렵게 피해사실을 밝히고 문제제기한 피해자에게 고통을 가하기 때문이다. 많은 피해자들이 문제제기 이후 사건처리과정에서 겪는 2차 3차 피해로 인해 더 큰 고통을 겪는다

 

그렇다면 교수성폭력이 또다시 반복되지 않기 위해 대학이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 우선 형법이나 형사적인 절차와는 별도로 교수와 제자간의 권력관계를 고려하여 피해자 중심의 관련내규를 확립해야하며 이에 따른 철저한 집행도 뒤따라야 한다. 이번 K교수성폭력사건 해결과정에서처럼 형사고소중이라는 이유로 학교가 사건해결과 관련된 모든 활동을 중단하는 일이 있어서는 안된다. 학

ⓒ 연합뉴스                                                                  내의 반성폭력 내규는 국가의 형벌권이 가동되는 형법의 엄격함과 정밀성 대신 좀 더 적극적이고 현실적으로 피해자에 대한 보호와 성폭력 사건의 예방을 도모하기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와 더불어 교수들에 대한 성폭력 예방교육 실시하고 강의평가에 교수의 성인지도 평가항목을 추가하는 등 교수성폭력 근절을 위한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실천 방안도 강구해야한다.

 

피해자의 경험을 반영한 성폭력 판단 기준의 정립

 

대학 내 제도들뿐 아니라 사법적 절차를 통한 피해자의 권리 구제 과정 또한 피해자에게 많은 어려움을 주고 있다. 대학의 무책임하고 소극적인 태도에 지친 피해자는 사법적 절차를 통해 가해자에게 책임을 묻고자한다. 그러나 여전히 피해자에게는 부당한 폭력의 피해자임에도 불구하고 피해를 스스로 입증해 내야하는 어려움이 남는다. 그렇지 못할 경우, 아무리 부당한 폭력의 피해자라 하더라도 자신의 권리를 보호받기 어렵다.

 

이번 K교수성폭력사건에서 피해자는 자신의 피해사실을 입증하지 못했다. 재판부가 ‘가해자에 대한 평가와 사건 당시 마신 술의 양, 사건의 구체적 과정 등에 대한 피해자의 진술이 일관되지 않았다’ 며 피해자 진술의 신빙성을 문제 삼았기 때문이다.

이와같이 부수적인 정황에 대한 피해자의 진술 일부가 일관되지 못했다는 점이 성폭력 판단의 기준이 되기에 충분한가? 상담소에서 성폭력 사건 지원을 하다보면 피해에       (사진출처: 대법원 홈페이지 www.scourt.go.kr)

의한 충격으로 혼란스러운 상황에 놓인 피해자들이 구체적인 피해정황을 분명하게 기억하지 못하는 경우를 자주 볼 수 있다. 특히 이번 K교수성폭력 사건의 경우와 같이 평소 깍듯이 예의를 지키며 지내왔던 교수로부터 생각지도 못한 성폭력 피해를 입었을 경우, 피해를 입은 학생은 심리적 물리적으로 심한 충격을 받을 뿐 아니라, 스승이자 동시에 가해자인 교수에 대해 당혹감과 혼란스러움을 느끼고 매우 불안한 상태에 놓이게 된다. 이런 상태에서 피해정황을 정확히 기억한다는 것은 쉽지 않으며, 때문에 피해자의 진술이 조금씩 달라지는 경우가 발생할 수 있다.

이는 교수와 제자간 권력관계와 그 안에서 구성되는 피해자의 경험을 고려해볼 때, 부수적 정황에 대한 피해자 진술 일부가 일관되지 않았다는 점이 성폭력판단의 주요 기준이 되는데 충분치 않다는 것을 보여준다. 즉, 피해자의 경험을 고려해 볼 때, 피해자의 부수적인 정황에 대한 진술이 조금씩 다르더라도 피해자가 가해자와의 성관계를 동의하지 않았고 위계에 의한 강제력이 행사되었다는 점과 같은 구성요건적 사실에 대해 일관된 진술을 하고 있다면, 전체진술의 신빙성을 불신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이번 K교수성폭력사건의 판결과는 달리 학생이라는 피해자의 위치와 경험을 반영한 판결도 있다. 지난 2005년 제자에 대한 성폭행 혐의로 기소된 H교수에게 ‘교수와 제자의 관계 역시 피해자로 하여금 적절한 대응을 하지 못하게 하는 데 영향을 끼친 것으로 판단된다(일다 2005-01-31 ‘서강대 H교수에 8개월 실형선고’)‘며 실형을 선고한 서울서부지법(이용운판사)의 판결이 그것이다. 이 판결은 교수성폭력사건에서 교수와 제자 간 권력관계와 그 안에서 구성되는 피해자의 경험이 중요한 성폭력 판단의 근거가 됨을 보여준 좋은 사례이다.

 

교수와 제자간 권력관계와 피해자의 경험을 간과한 채 피해자 진술 일부의 일관성을 문제삼아 K교수에게 무죄를 선고한 재판부는 이러한 판례를 거울삼아 판결을 재고해야한다. 피해자의 경험과 현실, 고통에 근거하여 사건의 정황을 이해하고, 피해자의 진술이 일부 일관되지 못했던 맥락을 이해해야하며 이를 통해 판단의 기준을 구체화하고 현실화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고 이러한 기준에 근거한 책임 있는 판결로 교수성폭력 근절에 기여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