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 24일, 해병대에서 강제추행 사건이 발생하여 가해자가 보직해임된 사실이 알려졌다. 현역 중대장인 가해자가 부대원들을 상대로 깨물거나 쓰다듬는 추행을 저지른 사건이었고, 드러난 피해자만 5명이었다. 작년 7월에 발생한 해병대 성폭력 사건이 아직도 많은 사람들의 기억에 남아 있던 터라, 해병대를 비롯한 군대 내 성폭력 문제가 재조명되었다.
군대는 다수의 남성들이 성인이 되어 머무르는 공간이자, 한국 남성들의 연대를 상징하는 '아이콘'이다. 그러나 심심치 않게 등장하는 성폭력을 비롯한 폭력 사건, 사병들의 자살 사건은 군대라는 위계적인 공간의 이면을 보여준다. 이러한 사건들은 당사자의 지인들뿐만 아니라 군대와 밀접한 관련을 맺고 살아가는 국민 모두에게 안타까움을 안겨주고 있다.
김아무개 일병의 자살, 군대 내 남성간 성폭력의 심각성을 드러내다
군대 내 남성간 성폭력 사건이 크게 이슈가 된 것은 2003년 발생한 '김 일병 자살사건'이 대표적이다. 지금도 의문사로 남아 있는 1998년 발생한 김훈 중위 사망 사건 이후, 군 복무 중인 군인의 사망에 한층 더 이목이 쏠리던 시절이었다. 당시 김 일병은 포상휴가를 마치고 부대 복귀일에 거주하던 아파트에서 투신 자살하였다. 이후 밝혀진 사망 원인은 군대에서 겪은 반복된 성폭력이었다. 군대의 담을 넘어 밖으로 나온 성폭력 사건, 그리고 안타까운 그의 선택은 시민들의 공분을 살 만한 것이었다.
당시 보도에 따르면 김 일병은 점호 이후 두 명 이상의 고참들이 자신의 성기를 만지는 등 여러 차례 성추행을 경험했으며, 군대생활이 힘들다는 이야기를 친구들에게 사망 전에 털어놓았다고 한다. 가해자로 추정된 고참들은 김 일병이 진급한 이후에도 내무반 안에서 자리를 바꿔주지 않는 등 다른 가혹행위도 가했다고 한다.
사건의 단서가 될 수 있는 김 일병의 일기장이 발견되고 사건의 진실 규명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군 수사기관은 성추행 사실을 인정했다. 그러나 가해자로 처벌받은 사람은 '장난이었다'고 성추행 사실을 시인했던 같은 내무반의 상병 1명뿐이었다.
사건 이후 봇물 터지듯 군대 내 성폭력 사건이 보도되기 시작했다. 육군 참모총장 명의의 성폭력 대처 방안 지시도 내려졌다. 그러나 군대를 다녀왔고, 군대를 다니고 있는 사람들은 이 사건을 '있을 법한 이야기'라고 받아들이며 암묵적으로 공감했고, 그 공감대는 계속되고 있다. 이처럼 군대 내 남성간 성폭력은 계속 존재해왔지만 '장난'이나 '친밀감의 표현' 혹은 '군 기강 잡기'로 합리화되기 일쑤였다. 왜 이같은 성폭력이 군대에서 계속 발생하고 있는 것일까.
군대 내 성폭력 가해자는 모두 동성애자?
일부 시민들은 이러한 군대 내 남성간 성폭력 사건을 '동성애자들의 폭력적인 행위'로 치부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것은 사실이 아니며 군대 내 성폭력 사건의 발생과 해결과정은 직, 간접적으로 동성애 혐오를 동반하는 것이 대부분이다.
이번 5월에 드러난 해병대 사건 당시 군 관계자는 한 언론을 통해, 이번 사건이 안타깝다는 의견을 내보이며 "성추행 사건은 개인 성향의 문제여서 뚜렷한 대책 마련이 쉽지 않은 게 현실(<세계일보> 2011년 5월 24일자)"이라고 밝혔다.
군 관계자의 이와 같은 해석은, 군대 내 남성간 성폭력을 바라보는 군의 입장을 대변해주는 표현이다. 남성 군인간 성폭력 가해의 이유를 개인의 섹슈얼리티 즉, '동성애' 때문이라고 한다면, 그것은 성폭력의 모든 원인을 성욕으로 귀인시키는 잘못된 분석이며, 무엇보다 호모포비아(동성애 혐오)적 발언이자 군대 내 성폭력의 발생 원인을 흐리는 말이다.
한국의 군대는 동성애자의 군대 내 성행위를 '추행'으로 처벌하고 있으며, 동성애자라는 사실을 인지하면 '치료 대상'으로 분류하기도 한다. 따라서 호모포비아적 태도와 시민의식이 이제 막 논의 되기 시작한 한국사회에서, 군대라는 공간은 더욱더 동성애 혐오의 사각지대일 수밖에 없다.
군대 내 성폭력 실태조사 "친밀감의 표시라고 생각하며 참았어요"
2003년 사건 이후 한국성폭력상담소는 국가인권위원회의 용역을 받아 군대 내 성폭력 실태를 조사하였다. 군대에 다녀온 사람들의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는 소문이 아닌 실태 조사 결과로 군대 내 남성간 성폭력 사건들이 드러났다.
당시 응답에 참여한 671명 중 성폭력 피해가 있다고 응답한 사람은 15.4%였으며, 성폭력 발생을 듣거나 본 사람은 24.7%였다. 가해경험이 있다고 응답한 사람도 7.2%였다. 이 연구에서 인터뷰에 응한 군인들은 다음과 같은 경험들을 이야기하였다.
'휴가 후 복귀하면 선임들이 성관계를 하고 왔는지를 묻는다. 말해주면 소문이 되기도 하고 기분이 나쁘지만 선임과의 사이가 좋아진다.(피해 경험 인터뷰)'
'친하다고 생각되는 후임병과 장난 좀 친다는 게 도가 지나쳐가지고…(가해 경험 인터뷰)'
성경험 공개 강요, 신체비하 등 군대 내 성희롱적 언어문화는 여성을 성적 대상으로만 보는 여성비하적 문화도 함께 포함하는 것이다. 친밀감을 형성하는 성적 농담이라도 강한 계급사회에서는 강제성을 동반할 수 있으며, 이는 성희롱이 된다. 군대 밖 사회에서는 성희롱, 성추행으로 문제될 사안들이 군대 내에서는 일상적으로 발생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당시 연구에서 밝혀진 군대 내 남성간 성폭력의 지속적인 발생 맥락은 다음과 같다. 남성성의 과시와 획득을 위한 가해행위, 일상적인 성폭력을 성폭력이라고 하기보다 가해자들의 논리인 '친밀감과 장난'으로 표현함으로써 자신을 성폭력 피해자로 명명하지 않겠다는 피해자들의 다짐이다.
더불어 사실을 신고할 경우 수년간 한 공간에서 지내야 하는 군대 생활이 수월치 않아질 것이라는 예측, 그리고 사실이 알려질 경우 동성애자로 낙인찍힐 것이라는 불안감 등도 군대에서 남성간 성폭력이 계속 발생하는 원인으로 꼽혔다.
이처럼 군대 내 동성간 성폭력은 호모포비아와 위계에 의한 폭력의 사이에서 피해 당사자와 가해자, 군대 모두에게 복잡하고 피하고 싶은 문제로 읽혀 온 것이다.
또 한 가지 밝혀진 놀라운 사실은 81.7%에 달하는 사람들이 신체성폭력의 가해와 피해 경험을 동시에 갖고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군대 내 남성간 성폭력이 군 계급의 위계질서를 유지하는 수단으로 사용되고 있다는 것을 말해주는 결과였다.
군인 인권 문제는 군대 안팎의 이슈가 되어야
최근 다시 군대 내 남성간 성폭력이 주목받게 것은 2010년 7월 발생한 해병대 대령에 의한 성폭력 사건이었다. 사건 발생 당시 상담소는 군인권센터, 한국여성민우회와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해병대 측이 사건을 은폐 조작하려 했다고 문제제기 하였다.
군대에서 성폭력이 발생했다는 사실보다, 이 사실을 상부에 보고한 피해자에게 '똥 밟았다 생각하라'며 회유했다는 군대의 태도가 더욱 문제가 되었다. 인권위원회에 사건을 진정한 이후 가해자 측과 군대는 피해 사병의 가족들에게 수십 통의 합의 요구 전화를 해왔다. 사건의 당사자는 현재 성폭력 후유증으로 시달리고 있으며, 재판 결과 1심에서 추행사실에 대해 일부 무죄 판결이 났고, 항소심이 진행 중이다.
현재 군대는 군 기강 문란의 문제로 성폭력 문제를 다루고 있다. 그러나 아이러니한 것은, 군대가 폭력을 통한 기강 확립과 사병 훈육을 어느 정도 용인하는 조직이기에, 이와 같은 성폭력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을 항상 내포하고 있다는 것이다. 2010년 해병대 대령 성폭력 사건을 통해 시민사회단체들이 제시한 성폭력 사건 해결책은 다음과 같다.
첫째, 군대는 군복무 중인 군인들에게 성폭력 사건이 발생할 경우, 그 사실을 상부에 보고한 피해 군인의 신변을 적극 보호해야 한다. 둘째, 비록 군대 외부의 시설일지라도, 피해 군인이 본인 상황에 맞는 기관을 찾아 도움을 요청할 수 있도록, 군인복무규율을 개정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2004년 9월, 서울행정법원은 김 일병의 유가족이 국가를 상대로 낸 소송에서 "국가는 3천만원을 배상하라"며 일부 승소 판결을 내렸다. 당시 재판부는 "부대에서 성추행 범죄가 발생하지 않도록 교육을 강화하고 병사들의 애로 사항을 귀담아 들어 문제점을 고쳤어야 했는데도 그렇지 못한 과실이 인정된다"며 이와 같이 판결하였다. '
2003년의 김 일병 사건과 2010년의 해병대 대령 성폭력 사건 모두, 사건의 내용뿐만 아니라 해결 과정에서 보여준 군의 미흡한 대책이 시민들의 분노를 낳았었다. 군대가 군인들의 인권을 위하는 길이 무엇인지 다시 한 번 고민해보도록 하는 대목이다.
군대는 시대의 흐름에 따라 계속 변화를 꾀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사건들을 겪으면서 시민들은 군인 개개인들의 인권문제에는 아직도 군이 소홀한 것 아닌지 염려할 수밖에 없다. 최근 헌법재판소에서 군형법 92조 '계간' 조항 합헌 의견을 낸 사례도 마찬가지이다. 군대는 일정 학력 이상의 비장애인이며 신체조건을 갖춘 한국 국적의 남성이면 대부분이 한 번 쯤 거쳐가는 곳이다. 그들에게 군대에서의 생활이 행복하도록, 군대는 성폭력 문제를 예방하고 대처하는데 보다 적극적인 자세를 취해야 할 것이다.
출처 : 휴가 후 복귀하면 "성관계 하고 왔냐" 제2의 김일병들, 군대는 여전히 슬프다 - 오마이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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