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폭력 상담소지요? 00일보 000기자입니다. 곧 화학적 거세제도가 시작되는데, 이 제도의 필요성에 대해서 취재하려고 연락드렸습니다."
"저희는 화학적 거세제도를 적극적으로 찬성하는 입장이 아니라서…."
"네? 찬성하지 않는다고요!?"
최근 성폭력상담소에는 이런 취재 요청이 심심치 않게 반복되고 있다. 오는 7월 24일은 최근 제정된 화학적 거세제도(성폭력범죄자의성충동약물치료에관한법률)가 시행되는 날이다. 이에 앞서 기자들이 성범죄 근절에 대한 성폭력상담소의 입장을 듣고 싶어하는 것이다. 경찰에 신고하지 못하는 피해자들까지 가까이서 만나고 있는 성폭력상담소의 활동가가 왜 성폭력 가해자 처벌 정책을 적극적으로 찬성하지 않는 것일까.
2000년대 중·후반은 온 나라의 사람들에게 끔찍한 아동성폭력 사건들의 충격이 지속되는 시기였다. 안양 초등학생 살해사건부터 조두순 사건까지. 이 아이들의 상처와 죽음은 지금 '전자발찌', '신상공개', '화학적 거세'와 같은 제도를 만들어냈다. 그러나 이러한 가해자 처벌 강화정책이 아동성폭력을 근절하리라는 장밋빛 희망은 별로 보이지 않는다. 최근에 벌어진 전자발찌 착용자의 성폭력 가해 사건 때문만은 아니다.
용산 초등생 살해부터 조두순까지, 끊이지 않는 아동성폭력
지난 2006년 용산에서 성폭력 의도로 접근한 이웃 어른에 의해 살해당한 아동의 사건을 모두 기억할 것이다. 같은 해 겨울, 안양 지역에서 실종된 두 어린이는 2007년 사체로 발견되었고, 이후 검거된 범인은 성폭력 가해 후 살해했다고 자백한 바 있다. 2007년 봄, 제주도에서도 유사한 사건이 발생하여 끊이지 않는 어린이 유괴, 성폭력 사건에 국민들이 크게 분노하였다.
2009년도에는 8살 어린이 성폭력 사건(일명 조두순 사건)이 뒤늦게 세상에 알려져 국민들의 분노와 걱정이 이어지는 가운데, 가해자에 대한 처벌이 지나치게 미미하다는 의견이 강하게 대두되었다. 2009년도의 충격과 분노가 채 가시기도 전에 이듬해인 2010년에도 2월 부산에서 여중생이 납치·성폭력·살해되는 일이 발생하였고, 몇 달 후에는 학교 운동장에서 초등학생을 유인하여 성폭력한 사건이 벌어져 "어디 무서워서 애를 키우겠냐!"는 불안과 공포가 우리 삶을 깊이 흔들어 놓았다.
이런 잔학하고 경악을 금할 수 없는 사건이 연이어 발생하면서, 정부와 정치권도 발빠른 대응을 보였다. 성폭력 범죄자의 법정형을 높이고, 형법상 유기징역 상한을 25년에서 30년(가중시 50년)으로 늘렸다. 성인이면 누구나 인터넷에 접속해서 신상공개명령이 내려진 성범죄자 신상정보를 확인할 수 있게 하였고, 미성년자 자녀가 있는 가정에는 우편으로 고지하도록 하였다.
전자발찌는 법률 제정 이전에 범죄를 저지른 사람에게까지 소급적용 할 수 있도록 법률을 개정하여 작년 7월부터 시행에 들어갔다. 일명 화학적 거세라고 불리는 성충동약물치료제도 또한 2010년도에 통과되어 앞서 말한대로 곧 시행을 앞두고 있다. 그러나 정부의 이런 적극적인 실행의지와 여론의 뒷받침에 비해 그 실행의 효과성에 몇 가지 의문들이 남아있다.
동의없는 화학적 거세, 실효성은? 글쎄
2007년, 전자발찌 제도를 처음 시작할 때 정책 입안자들은 성폭력 범죄의 재범률이 높기 때문에 이 제도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주장했지만, 실제 성폭력의 재범률을 살펴보니 약 15%로 강력범죄의 평균 재범률보다도 낮은 수치였다.
전자발찌 제도는 그 이후 2009년에는 미성년자 유괴범죄, 2010년에는 살인범죄로 대상을 확대하여 왔다. 최근에는 법무부가 강도죄로 적용범위를 확대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하면서 이제는 강도죄가 성폭력 범죄보다 재범율이 높다는 통계를 제시하고 있다. 전자발찌의 착용기간도 최대 5년에서 10년, 30년(하한 10년)으로 계속 기간을 늘려왔다. 전자발찌제도 운영과 관련해서 지금까지 투입된 예산은 약 100억원 정도에 달한다고 한다.
화학적 거세의 경우, 약물치료의 특징상 본인의 동의가 있을 때 치료효과가 높아지는 데에도 불구하고 우리 법에서는 본인 동의와 관계없이 법원의 명령 선고로 실행되도록 하고 있다. 본래 이 법안을 제안했던 의원의 법안에는 가해자의 동의를 전제로 하고 있었으나, 국회 상임위에 법률안이 상정되기 하루 전 법무부가 '동의를 요하지 않는 것'으로 내용을 변경하여 제안하였고 그대로 통과된 것이다.
현재 약물치료를 시행하는 유럽이나 미국의 경우 가해자의 동의를 요하지 않는 경우는 없다. 한국의 화학적 거세 대상은 모든 성폭력 범죄자가 아니라 16세 미만 아동 대상 성범죄를 저지른 사람 중 성도착증을 가진 환자로서 현재 법무부에서는 1년에 20명 정도가 대상이 될 것이며, 이를 위해 첫 해에 필요한 예산은 9억원 정도로 추정된다고 한다.
그러나 경찰에 신고되는 13세 미만 아동성폭력 사건이 1년에 약 1천건 정도라는 점에서 '화학적 거세'와 같은 강력범죄로 처벌되지 않는 더 많은 성폭력 사건들에 대한 처벌과 예방 방법에 의문점이 남는다. 이런 감시와 강경 처벌책들이 과연 어린이 성폭력을 효과적으로 예방할 수 있을까? 이를 위해서는 우선 어린이 성폭력의 실태를 제대로 아는 것이 중요하다.
장기간, 은밀하게 이뤄지는 '어른권력'에 의한 성폭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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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성폭력상담소의 2010년도 상담통계(연간 총 1312건 중 아동·유아성폭력 사건 178건 분석)를 잠깐 인용해보자. 2010년도 성폭력 피해 상담 중 모르는 사람에 의한 피해상담은 전체 상담 중 약 12%를 차지했으며, 아는 사람에 의한 피해가 약 85%를 차지했다. 연령별로 나누어 보았을 때, 13세 미만 어린이 피해 중 절반 정도가 가족이나 친인척에 의한 피해로 가장 많은 수를 차지하고 있다. 그 다음으로 많은 경우는 유치원이나 학교에서 일어난 피해(교사나 친구에 의한 피해), 동네사람에 의한 피해다. 모르는 사람에 의한 피해는 5% 내외였다.
어린이 성폭력 피해가 일상적으로 늘 만나는 가까운 사람에 의해 많이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물론 한 상담소의 통계가 실태를 그대로 보여준다고 할 수는 없지만, 지난 20년간 이어져 온 7만여 건의 상담에서 일관되게 나타나는 특징이라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가해자의 거의 반을 차지하고 있는 친족은 아버지, 오빠, 할아버지, 고모부 등 피해 어린이와 가까이 지내면서 피해자에게 큰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사람들이다. 가장의 권력으로, 협박, 구타 등으로 어린이를 궁지에 몰아넣고 가해를 일삼으로면서도 겉으로 드러나지 않게 은폐할 수 있어 그 어떤 피해보다도 큰 상처를 남길 수 있다.
학교 교사나 아이들을 함께 돌보는 동네사람도 어린이들에게는 믿고 따라야 할 '어른' 권력을 가지고 있는 경우다. 이렇게 가까이서 막대한 권력을 휘두를 수 있는 사람에 의한 피해는 외부로 노출되지 않은 채 오랜 기간 반복된다는 특징이 있다. 고소, 고발이 적극적으로 이루어지기 어려운 이유다.
이런 실태를 보면 가해자에 대한 감시를 강화하고 처벌수위를 높이는 것에 전적으로 공감하기가 어렵다. 집안에서 일상적으로 어린 아이를 추행하고 강간하는 가족에게 전자발찌를 채워 어떤 효과를 기대할 수 있을까? 그 가해자가 어디에 있다는 것을 알려주는 전자발찌가 피해 어린이를 어떻게 보호할 수 있을까? 그 사람을 집에 있지 못하게 해야 할까, 아니면 집에 있게 해야할까?
전자발찌, 성충동약물치료와 같은 방법은 어둡고 으슥한 곳에서 생면부지의 괴한에 의해 발생하는 성폭력 범죄를 예방하는 데에는 효과가 있을지 모르나, 어린이 성폭력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가까이에 있는 사람에 의한 성폭력 범죄에는 잘 맞지 않는다는 근본적인 한계가 있다.
처벌은 예방의 아주 일부... 믿고 말할 수 있는 사회 되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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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알려진 일부 성폭력 사건 중에서도 언론의 조명을 받는 성폭력은 나름의 특징이 있다. 사건이 잔인하고 사회적 공분을 쉽게 일으키며 국민들을 불안과 공포에 떨게 한다. 이렇게 선별적으로 보도된 성폭력 사건이 마치 성폭력의 전형인양 대책을 마련하다 보니, 실태와 대책이 서로 어긋나는 안타까운 결과만 불러온 것이다.
따라서 가해자 처벌이 강화되었다는 요란스러운 언론 보도를 보면서 크게 안심이 되지 않는다. 사회에서 관심을 갖는 성폭력 사건들이 자신의 피해와는 너무 차이가 있고, 새롭게 만들어지는 이런 대책은 자신에게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피해자들이 많을까봐 걱정된다. 어린이 성폭력의 실태 및 잔혹성에 우리 사회가 한껏 공분하고 있을 때, 가정이나 학교에서 가까운 사람에게 입는 피해가 더욱 더 깊숙이 숨어들면 어쩌나 염려가 된다.
피해가 은폐돼 있다는 것은 피해를 입고도 회복을 위해 어떤 노력도 하지 못한다는 뜻이다. 지금까지 자신의 가족이나 교사, 가까운 이웃을 처벌하지 못한 것은 전자발찌나 성충동 약물치료제도가 도입되지 않았기 때문은 아니다. 가장 가까운 사람으로부터 피해를 입은 어린이가 누구를 믿고 도움을 요청할 수 있을까? 자신의 피해를 어디에도 말하지 못한 채 고통받고 있는 어린이 피해자들에게 이런 가해자 처벌정책들은 어떤 해답을 주고 있을까?
시민들은 엄청난 예산을 들여서 시작한 제도들이 제대로 운영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전자발찌가 꼭 필요한 경우에 잘 활용되고, 필요한 대상을 선별하여 성충동 약물치료제가 좋은 효과를 나타내야만 한다. 그러나 이런 대책들이 어린이 성폭력 예방을 위해 아주 일부의 역할만 할 수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가정과 학교에서 일상적으로 발생하는 어린이 피해를 어떻게 찾아내고 반복되는 피해로부터 보호할 수 있을까? 사실 지역주민들이 모두 내 아이, 옆집 아이 가릴 것 없이 이들이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관심을 기울이고 살피지 않는 한 방법이 없다. 그런 피해를 감지했을 때 바로 믿고 도움을 청할 수 있는 제도가 촘촘하게 마련되어 있지 않으면 어느 누구도 그 문제를 책임있게 해결하기 어렵다.
남편의 가해행위를 알면서도 묵인할 수밖에 없는 부인의 사연은 너무나 안타깝다. 물리적 안전이 보장되지 않아서, 살림을 영위할 경제력이 없어서 선택의 여지가 없다는 사실에 대해 우리 사회는 깊은 책임감을 통감해야만 한다. 더 급히, 더 광범위하게 도입되어야 할 대책들이 많이 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아버지에게 성폭력당하는 학생이 있는데..."
오늘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학교 교사라고 밝힌 이는, "우리반 아이인데, 면담을 하면서 아버지로부터 성폭력 피해를 입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교사가 이런 사실을 알았을 때 신고의 의무가 있어서 알리지 않으면 처벌을 받는다고 하던데 사실인가? 그런데 이 학생은 정말 알리고 싶어하지 않는데 어떻게 해야 하나?"라고 물었다.
전화를 건 선생님의 고민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사실 피해로부터 벗어나면 오랜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 것이 상식이다. 하지만 수사기관에 신고하고 나서 이 학생이 큰 걱정없이 학교생활과 일상생활을 지속할 수 있다고 약속하지 못하기 때문에 선생님의 고민과 갈등이 깊어질 수밖에 없다. 새롭게 마련된 여러 가지 가해자 처벌제도가 이 학생에게 약속해주는 것이 별로 없는 것이다.
생색내기 정책, 선심성·일회성 대책으로는 뿌리깊은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정부와 정치권은, 사회는 이 문제를 책임지고 해결하겠다는 의지와 결단을 가지고 장기적인 안목의 대책을 강구하고 뚝심있게 집행해야 한다. 그것이 설사 성난 여론을 당장 잠재우는 것이 아니더라고, 그것이 당장 유권자의 한 표를 손쉽게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더라도 진정성이 있는 대책이라면 믿고 기다리며 함께 노력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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