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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담소는 지금/생존자와 함께한 대담한 도전: 20주년 특집

스토킹 참으며 군생활했더니 도리어 항명으로 기소 - 피해자가 피의자가 되었던 군 내 스토킹 사건


한국성폭력상담소는 20주년을 맞아, 오마이뉴스와 공동으로 '성폭력에 맞선 20년'이라는 기획기사를 마련하였습니다. 본 기사는 ["성 경험 있냐?" 여군장교 스토킹한 소령님 성희롱 거부하자, 치졸한 보복이 시작됐다]라는 제목으로 7월 15일자 오마이뉴스에 실린 글입니다. 

 
군대 내 남성간 성폭력이 이슈가 된 2003년 당시, 군대 안에서 소수의 구성원을 이루고 있는 '여군'들에 대한 성폭력도 함께 불거져 나왔다. 김 일병이 사망한 후 며칠 뒤, 영관급 남성 군의관이 여성 간호장교를 성추행한 사건이 논란이 된 것이다.

2001년, 국방부가 '성 군기 예방지침'의 이름으로 성희롱 예방계획을 수립한 것은, 사단장의 부하 여군 성추행 사건이 계기가 된 것이었다. 구성원의 대부분이 남성인 군대라는 조직 안에서, 여성 군인들의 삶이 녹록지 않을 것은 쉽계 예상할 수 있는 바이다. 따라서 이와 같은 군대 내 성폭력 사건들은 '군대의 문제'를 넘어, 조직 내 소수자인 여성들의 고민으로써 관심을 가져야 할 이슈라는 것을 말해준다.

지난 2007년 발생하여 공동대책위원회가 구성되고, 다수 매체를 통해 크게 보도되었던 '여군 스토킹 사건'은 이러한 점에서 여성들의 노동권과 생존권에 대해 많은 고민들을 안겨주었다. 

 

성희롱 거부한 것인데, 20여 개 죄목 물어 항명?

2007년 9월, D사단에 발령을 받은 지 1년이 채 되지 않은 여군장교 B가 헌병대의 출석요구서를 받았다. 죄명은 무단이탈, 가혹행위, 도로교통법 위반 등 무려 20여 가지에 달하는 황당한 내용이었다.

그의 직속상관인 A소령은 직접 출석요구서를 전해주며, 자신도 이 사건에 대해 진술서를 써야 한다며 B에게 어떻게 써줄까를 물었다. 그러면서 자신이 이 사건들을 헌병대에 없던 일로 해달라고 요청할 수 있다는 말도 덧붙였다. B는 A소령에게 떳떳하게 조사에 임하겠으니 있는 그대로 진술서를 써달라고 답하고 헌병대에 출석했다.

20개가 넘는 죄명에 대한 조사는 길고도 길었다. 한 번의 조사에서 모든 사건을 다룰 수 없어 여러 차례 조사를 받았다. 부대 내의 많은 사병들이 진술서를 썼고, B는 수차례 반복되는 내용들에 답하고 또 답했다. B는 자신의 일거수일투족을 아는 듯 상세하게 기록된 다수의 죄명에 의아해했고, 만약 잘못했다면 직접 주의를 줄 법한 사소한 사건들이 다수 섞여있는 것이 당혹스러웠다.

게다가 모든 사건들은 시간이 너무 지나 증거도 찾을 수 없거나 거의 조작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불합리하게 죄명에 끼워 맞춰진 내용들뿐이었다. 고발인이 누구인지도 알 수 없었다. 2차, 3차 조사에 이르자 A소령에 대한 항명과 상관면전모욕죄가 새로운 죄명으로 등장했다. 결국 B는 자신의 직속상관인 A소령이 자신을 고발한 사람임을 알게 되었다.

A소령은 B에게 직장 상사 이상의 지나친 관심을 보이는 사람이었다. 2006년 말부터 B와 근무하기 시작한 A소령은, 한 달에 수백 건에 이르는 문자를 보내고, 업무상의 용건이 없어도 B가 있는 사무실을 수시로 방문했다. 월급지출내역과 사생활을 모두 보고하라는 각서를 쓰게 하기도 했다.

뿐만아니라, B가 휴가 내내 누구를 만나는지 무엇을 하는지 휴대폰으로 사진을 찍어 자신에게 전송하라고 집요하게 요구하기도 했다. B는 유부남인 A에게 가정을 생각하시라며 거부 의사를 표시하고 연락에 답하지 않기도 했지만, 업무상의 이유를 대며 끊임없이 찾아오는 직속상관의 연락을 마냥 피할 수는 없었다.

B는 스트레스로 인해 건강이 악화되기 시작했다. A소령을 피하기 위해 일찍 출근하고 밤늦게 숙소로 돌아왔지만 소용이 없었다. 강요에 의해 A소령의 집에서 볼 수 있는 곳에 차를 주차시켜야 했고, 숙소 앞에서 자신을 기다리는 A소령과 갑자기 마주치곤 했다. 퇴근 후 업무에 대해 의논할 것이 있다면서 자신의 차에 타라고 한 뒤 남자친구가 있는지, 성경험이 있는지 등을 집요하게 물으며 숙소 주변을 도는 일도 다반사였다.


성희롱 간신히 참으며 버텼는데... 군도 '묵살'

 

  
▲ 군대내 스토킹 피해자 무죄 판결 촉구 기자회견 2008년 6월, 국방부 앞에서 벌어진 군대 내 스토킹 피해자의 항명죄 무죄 판결을 촉구하는 기자회견과 퍼포먼스 모습
ⓒ 한국성폭력상담소

B는 자신이 군인임을 자랑스럽게 여기는 가족들을 사랑하는 마음과, 그동안 성실히 해온 군 생활을 이어가고자 하는 마음으로 이러한 일들을 참으며 군생활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A소령이 자신을 내부 고발했다는 사실을 알고, 그동안 참아왔던 성희롱을 상관에게 알렸다. 자신에게 끈질기게 구애하고 괴롭히다 못해 거부당하자 헌병대에 허위죄명으로 고발한 A소령의 행동을 더 이상 지켜만 볼 수는 없었다. 가만히 있다가는 이대로 억울하게 전역할 가능성이 높은 상황이었다.  

 

B의 보고에도 A소령의 성희롱 사실은 대부분 혐의없음으로 종결되었고, 일부 사안에서 대해서만 가장 경미한 경고 조치가 내려졌다. B의 20여 가지 죄명들 역시 혐의없음으로 종결되었다.

 





그러나 A소령은 자신의 성희롱 사실이 보고되었다는 것을 알고 B를 상관면전모욕죄와 항명으로 추가 고발하였으며, 그 중 2건에 대해 사단재판부는 B에게 징역 6월에 집행유예 1년을 선고하였다.

B는 자신의 결백을 믿어주지 않는 재판부 앞에서 자신의 소속 사단에 10년 가까이 근무한 상관인 A소령과 싸워야했다.

2008년 초, B의 안타까운 상황을 알게 된 한국성폭력상담소는 한국여성의전화 부설 서울성폭력상담센터, 한국여성민우회 성폭력상담소 등 13개 시민단체와 함께 군내스토킹피해자 지원을 위한 공동대책위원회를 구성했다.

공동대책위가 구성될 당시 이 사건은 상관으로부터 스토킹 피해를 입은 피해자가 도리어 피의자가 되어 1심에서 유죄 선고까지 받은 긴급한 상황이었다. 공동대책위원회는 B의 무죄와 A소령의 스토킹 행위를 입증할 공동변호인단을 구성하고, 폐쇄적인 군 조직 내에서 발생하여 전혀 알려지지 않았던 이 사건을 사회에 알리려 노력했다.

그동안 군 내에서 발생한 여군 성폭력 사건은 군 바깥으로 나오기가 거의 불가능했다. 피해를 입은 여군들은 피해를 숨긴 채 전역하거나 피해사실을 보고한 이후에 오히려 가해자와 함께 성군기문란으로 인한 징계를 받곤 했다. 강한 수직적 위계를 가진 군 조직에서 피해자는 가해자보다 계급이 낮은 경우가 대부분이고, 피해자가 피해를 유발했다는 성폭력에 대한 편견이 조사 절차에 그대로 반영되기도 했기 때문이다.

 

'부하의 바른 군생활 촉구' 위해 스토킹은 해도 된다?

 

  
▲ 억울하게 고소당한 피해자의 무죄 판결 2008년 7월, 긴 싸움 끝에 피해자는 군사고등법원 항소심에서 최종 무죄 판결을 받아냈다. 재판 이후 공대위사람들과 함께 한 B의 모습.
ⓒ 한겨레21




본 사건은 여군 성폭력 중에서도 군 안에서 성폭력 피해가 발생했을 때 피해자의 위치가 얼마나 취약할 수 있는지를 보여준 사례라고 볼 수 있다. A소령의 스토킹 행위는 '부하의 바른 군생활 촉구' 행동이라는 변명 아래 무마되었으며, A소령의 업무 관련성 없는 지시를 B가 거부하면 '항명'죄가 되었다.


공동변호인단이 2심 재판을 준비하며 열람한 1심 서류에는, 부대 내에 떠도는 B에 대한 근거 없는 소문과 함께 B가 재판에서 증언하는 태도에 대한 부정적인 평가, 본 사건이 언론에 알려졌다는 내용들이 기재된 공판카드가 있었다. B가 사단 재판부에서 재판을 받으면서 어떠한 대우를 받았는지 짐작할 수 있는 내용들이었다.

2008년 6월 고등군사법원에서 열린 2심 공판에는 30여 명의 방청객이 함께 하였다. 공동대책위 소속 단체의 활동가들과, 언론에서 본 사건을 접하고 지지를 표하고자 방문한 사람들이었다. 재판은 4시간 가까이 진행되었다.

B는 긴 시간 동안 A소령의 스토킹 행위를 용기 있게 설명하였다. B가 긴 증언 끝에 건강이 악화될 만큼의 극심한 스트레스 아래서도 가족에게 걱정을 끼치지 않고 군 생활을 명예롭게 유지하고자 했던 심정을 토로하자, 방청석에서는 안타까움의 한숨이 끊이지 않았다.

장시간의 재판과 그보다 더욱 지난했던 이전의 조사 과정들을 꿋꿋이 견딘 B의 노력과, 공동대책위의 지원은 결실을 거두었다. 2008년 7월, 고등군사법원은 B가 고발당한 항명과 상관면전모욕죄에 대하여 무죄 판결을 내렸고, 군 검찰은 이에 상고했다.

2008년 11월, 대법원 판결로 B의 무죄가 최종 확정되었다. 안타깝게도 무죄 확정 후 B와의 상의 하에 공동대책위의 활동은 어느 정도 마무리 되었으며, A소령의 성희롱과 무고죄에 대한 형사적 조치는 취해지지 않았다.

 

유사 피해 일어나지 않는, 그런 나라를 꿈꾼다

 

 
  
▲ 군내 인권피해자 권리보장 토론회 2009년 2월, 군대내 스토킹 사건 피해자의 항명죄 무죄 판결 이후 열린 토론회 모습.
ⓒ 한국성폭력상담소
 





본 사건은 군 내 성폭력문제의 개선을 위한 많은 시사점을 남겼다. 피해자를 실질적으로 보호할 수 있는 조치가 부족함에도 외부 상담창구에 부정적 시각을 가진 군 조직의 폐쇄성이 사건을 더욱 심각하게 만들 수 있음을 알게 되었다.

공동대책위원회는 2009년 2월 그간의 활동을 정리하는 토론회를 열었다. 공대위는 토론회를 통해 군대 내 성폭력 사건에서 공정한 조사에 의한 사실관계보다 지휘관들의 의견을 더 중시하는 사단 재판부의 현실을 밝히며 군 사법체계의 개선을 주장했다. 또한 군 안에서 인권침해가 있을 경우 내부 고충처리상담으로는 피해를 중단시키기 쉽지 않으므로, 외부기관에 대한 홍보와 더불어 성폭력예방교육에 힘쓸 것을 제언했다.

군 내 성폭력 문제는 아직도 개선점이 뚜렷이 보이지 않는 사회 문제 중 하나이다. 군 내부의 '위계관계'에 의하여 인권침해가 발생하고 있다는 것은 공공연하게 알려져 있지만, 이를 예방할 수 있는 해결책은 묘연해 보인다.

2007년, 본 사건을 지원하면서 피해자인 B와 공동대책위원회 모두의 소원은 하나였다. '이 일을 잊지 않고, 두 번 다시 또 다른 유사한 피해자가 발생하지 않게 하는 것.' 언젠가는 아무도 이런 소원을 갖지 않도록, 군 조직 내부의 변화와 사회의 관심이 지속되기를 바랄 뿐이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 이산은 본 사건의 공동대책위에서 활동했던 한국성폭력상담소의 전 활동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