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여름 국회의장배 전국 대학생 토론회에 참석한 강용석 국회의원은 학생들과 저녁을 먹는 자리에서 "다 줄 생각 해야 하는데 그래도 아나운서 할래? 00여대 이상은 자존심 때문에 그렇게 못 하더라", "여성 로비스트의 최후 무기는 몸이다", "남자는 다 똑같다. 그날 대통령도 너만 쳐다보더라. 옆에 사모님만 없었으면 네 번호 따갔을 것", "(토론 패널은) 못생긴 애 둘, 예쁜 애 하나 구성이 최고다. 못 생긴 애 하나에 예쁜 애 둘은 오히려 역효과. 사실 심사위원들이 내용 안 듣는다. 얼굴을 본다" 등의 망언을 늘어놓아 크게 세상을 시끄럽게 하였다.
성희롱 발언 사실이 알려지자마자 시민단체 등은 성희롱 행위를 규탄하고 사퇴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고, 한국여성단체연합 등은 국회 윤리위원회를 압박하고 전국적인 서명운동을 벌이는 등의 활동을 펼쳤다. 그 뒤 1년의 시간이 지나는 동안 한나라당의 이례적인 출당조치에서부터 국회 윤리위원회의 제명 의결에 이르기까지 언론에 '강용석' 의원 이름이 자주 오르내렸다.
국회 윤리위원회에서 자주 오르내린 덕에 어떤 이들은 강 의원이 이미 제명된 것이 아니냐고 생각할 정도이지만, 사실 그는 여전히 우리나라의 국민을 대표하는 국회의원으로 남아있다. 국회 윤리특별위원회를 통과한 제명안을 이제 본회의에 상정해야 하는데 한나라당 의원들이 본회의 연기를 요청하는 바람에 제명안을 가결시키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궁색한 변명의 끝, 음식점 주인은 성희롱 해도 된다?
"그런 말은 누구나 하는데, 강용석 의원이 재수없이 걸려들었다"고 말하는 이들을 그동안 많이 보았다. 강 의원에 대한 온정적인 태도에 화가 나지만, 이러한 말이 사실 틀린 것도 아니었다.
2006년도에 기자들과 함께한 술자리에서 여기자를 성추행한 최연희 의원은 이후 사건 경위를 따지는 해당 언론사 기자들에게 "술에 취해 음식점 주인으로 착각해 실수를 저질렀다"고 말했다. 기자한테 재수없이 걸려들었다고 생각한 최 의원이 생각해낸 변명에 세상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그간의 정치인 성폭력 사건들을 보면 피해자와 단 둘이 있거나 동석한 자들이 적절히 증언하기 어려운 경우에는 끝까지 부인하면서 시간 벌기 전략으로 대처하는 경우도 많았다.
우근민 제주도지사의 경우 피해자가 성희롱으로 우 지사를 신고하자 피해자 측을 명예훼손으로 즉각 고소했고, 여성가족부의 성희롱 결정이 내려지자 곧바로 이의신청 및 재심신청에 나섰다가, 그것이 뜻대로 되지 않자 '남녀차별개선위원회 의결 취소'를 청구하는 행정소송을 벌였다. 3심까지 끌고 가면서 그가 번 시간은 4년이 넘는 시간이고, 도지사로서 정치활동도 무사히 지속하였다.
최연희 의원도 지속적으로 사퇴 압박을 받았으나 '법의 판단을 따르겠다'며 끝끝내 의원직을 유지했고, 법원의 선고유예라는 결정에 힘입어 다음 선거에 무소속으로 출마하는 대범한 행동까지 보였다. 이처럼 성폭력을 저지른 정치인이 시간을 끌면서 사건을 호도하고 성난 여론이 잠잠해지기를 기다렸다가 적절한 틈을 타서 정치 활동을 재개하는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성폭력 그까이꺼! 쇠심줄보다 질긴 정치인의 생명력
어떻게 이들이 정치 활동을 재개하는 것일까? 그건 당연히 유권자의 심판 덕분이다. 유권자들이 이들이 정치 활동을 계속하는 것이 적합하다며 표를 던져주었기 때문이다. 우근민 현 제주도지사는 작년 6·2 지방선거에서 당선되면서 화려하게 복귀했다.
2010년 초 민주당 김민석 최고의원이 제주를 방문하여 우 전 지사를 면담하고 다음 달 그의 복당 결정이 이루어졌을 때, 여성단체들은 그가 공천되는 것만은 막아야 한다며 힘을 모았다. 공천심사위원회가 열리던 2010년 3월 14일, 제주도에서 서울까지 찾아온 활동가들과 함께 한 기자회견이 힘을 발휘했던 것인지, 민주당은 우근민을 공천하지 않기로 최종 결정했다. 그러나 그는 무소속으로 출마하여 제주도민들의 표를 얻고 당당히 도지사가 되었다.
2003년 12월 이경재 의원이 한 여성의원에게 "남의 집 여자가 느닷없이 우리 집 안방에 와서 드러누워 있으면 주물러 달라는 얘기"라고 한 발언은 여성부로부터 성희롱 행위라는 결정을 받았고 국회의장은 재발방지 대책을 세우도록 시정권고를 받았다.
이 결정은 국회의원의 성희롱 행위에 대한 첫 번째 결정사례로 세간의 주목을 받았지만, 이경재 의원은 17대 국회활동을 무사히 마무리했을 뿐만 아니라 18대 국회의원에도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최연희 의원은 사건이 발생하자마자 발빠르게 한나라당에 탈당계를 제출하여 징계 논의를 무마시키고, 2007년 법원으로부터 선고유예 판결을 받자 이듬해에 무소속으로 출마하여 당선되었으며 지금까지도 활발한 의정활동을 펼치고 있다.
계약직 여직원에게 누드사진을 찍자는 등 성희롱 발언을 하여 물의를 일으켰던 이강수 고창군수의 경우도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강용석 의원의 성희롱 발언으로 온 나라가 시끄러운데도 민주당은 이강수 후보에게 구두로 주의 조치를 주는 등 미온적으로 대응하였고, 작년 6·2 지방선거에서 이 후보는 군수로 당선되었다.
이후 국가인권위원회에서 이 군수의 언행을 성희롱으로 결정하고 나서 2주 이상의 시간이 흐른 뒤에서야 민주당은 이 군수를 제명처리했다. 이것도 이 군수가 탈당계를 제출한 지 하루가 지난 조치라는 점에서 세상의 빈축을 샀다.
국가인권위원회에서 성희롱 결정과 함께 피해자 손해배상, 인권교육, 성희롱재발방지대책수립 등 권고를 내린 지 1년 가까이 되었지만, 이강수 군수는 성희롱 사실을 인정하지 않으며 일부 인권위원회 권고 사항을 이행하지 않고 행정소송까지 준비하고 있다.
강간은 성폭력, 성희롱은 성폭력이 아니다?
지난 몇 년간 연이어 안타까운 아동 성폭력 사건이 발생했을 때, 바로 이들이 성폭력 범죄자를 엄벌해야 한다며 앞다투어 아동 성폭력 범죄자의 형량을 높이고 각종 재발방지정책들을 시급하게 도입한 정치인들이라는 사실에 마음이 복잡하다.
이들의 성폭력 범죄에 대한 강력한 처벌 의지를 의심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언론에 회자되는 성폭력 사건과 자신들의 성희롱·성추행이 전혀 다른 일인 것처럼 행동하는 것은 정말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제 식구의 성추행을 징계하는 것에는 소극적인 정당에서 내놓는 성폭력 근절 대책에 크게 신뢰가 가지 않는 것도 비슷한 심정이다.
성폭력은 성기를 훼손했기 때문에, 또는 정조나 순결을 농락했기 때문에 성립되는 범죄가 아니다. 성폭력은 인간이 기본권을 행사하기 위한 가장 기본적인 조건, 바로 몸(과 성)에 대한 자기 결정권을 침해하고 박탈하는 가장 비열한 행위이기 때문에 폭력이며 범죄인 것이다. 이것이 신체적인 방법으로 이루어졌든, 언어적으로 이루어졌든 바로 사회적 약자인 상대방을 제재하고 통제하는 더러운 힘이 작동되도록 하고 있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가진다.
'성희롱'이 사회 이슈가 된 것은 1993년도로 거슬러 올라간다. '서울대 조교 성희롱 사건'으로 우리 사회에 성희롱 이슈가 전면적으로 제기되었고, 1심 판결에서 피해자의 손을 들어준 법정의 판결이 세상에 알려졌을 때 수많은 반발과 논란이 있었다.
6년간의 긴 법정 투쟁 끝에 우리 법원이 처음으로 성희롱 피해를 인정하였고, 바로 그 해에 남녀고용평등법과 남녀차별금지및구제에관한법률에 각각 직장내 성희롱을 규정하고 이의 예방 및 적법한 해결절차를 제도화한 지 벌써 12년이 지났다.
그동안 성희롱이 '문제'라는 점에 동의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여전히 반복되는 일상화된 성희롱과 여전히 무딘 문제의식에 마음이 답답하다.
'여성 비하 발언'이 국민을 섬기는 국회의원의 언어습관?
최근 김문수 경기도지사가 모 협회에서 주관한 최고경영자조찬회에서 나쁜 공직자의 비유를 들며 "춘향전이 뭡니까? 변사또가 춘향이 따 먹으려고 하는 거 아닙니까"라고 말해 다시 한 번 세상을 시끄럽게 했다.
이 발언에 분노하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겠지만, 무엇보다도 남성이 여성의 몸과 성을 정복의 대상으로 보는 인식의 발로에서 나온 용어를 공식 석상에서 사용했다는 점에서 가장 문제가 아닌가 생각한다.
김 지사는 이전에도 '소녀시대'를 언급하며 "쭉쭉빵빵"이라고 표현해서 논란이 되었던 적이 있다. 왜 문제인지 일일이 설명하는 것조차 구차할 정도로 저급하고 부적절한 발언이 자꾸 반복되는 것은, 아마도 당사자가 무엇이 문제인지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은 아닐까.
얼마 전 한나라당 홍준표 대표의원이 자신에게 곤란한 질문을 던지는 여성 기자에게 "그걸 왜 물어봐? 너 진짜 맞는 수가 있어"라고 반말과 폭언을 하여 문제가 되었다. 어떻게 사회적으로 고위직에 있는 사람이 공식석상에서 이런 망발을 하나 이해가 안 되기도 했지만, 자신보다 나이가 어리거나 사회적 힘이 약한 이들에게 때와 장소에 관계없이 반말과 욕지거리를 하는 것은 식당에서도, 학교에서도, 또 집안에서도 자주 보는 풍경이기도 하다.
성희롱도 이러한 언어폭력도, 사회적 약자의 문제를 보살펴야 하는 정치인이 저지른 일이었기에, 당사자가 사과하는 것으로 국민들의 기억에서 쉽게 잊히게 할 수는 없다.
SNS 등 다양한 방법으로 시민들의 다채롭고 세련된 의견들이 적극적으로 표현되고 소통되는 시대에, 정치인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의식도 같이 고양되었으면 하는 간절한 바람이 있다.
2012년도는 총선과 대선이 치러지는 중요한 해다. 성희롱 시비로 세상을 시끄럽게 했던 이들의 행방이 자못 궁금하다. 더불어 이들에 대한 유권자들의 심판 결과는 더욱 궁금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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