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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담소는 지금

성폭력, 미술로 '공개답변': 8회 성폭력생존자말하기대회


121일부터 6, 공간루 정동갤러리에서는
<공개답변: 8회 성폭력생존자말하기대회>가 열렸습니다.

 

 8회 성폭력생존자말하기대회?

올 여름,
 
성폭력 말하기미술이라는 키워드로
 
여섯 명의 말하기대회 참여자가 모였습니다.

성폭력 경험을 말로 이야기하는 것도 쉽지 않은데,
시각예술로 표현하고 소통한다는 것은 무엇일까요?

이러한 질문을 마음 속에 안고,
말하기를 위한 준비의 시간을 가졌습니다.



8월, 9
일상예술창작센터 헛쏘리 드로잉팀과 창작 드로잉 워크숍을,
여성문화기획자 수수 님과 여성+미술 워크숍을 함께 했습니다.


창작 드로잉 워크숍에서는
연필, 펜, 물감 등 여러 도구를 사용해서
감정, 이야기, 사물 등을 다양한 방식으로 그리고
그 그림을 통해 서로 둘러앉아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그림과 친해지고
그림으로 소통하는 방법을 익힌 것이죠.
그리고 시종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서로 조금씩 가까워질 수 있었습니다 :)

 

 


헛쏘리 드로잉 @ 일상예술창작센터 생활창작공간 새끼




여성+미술 워크숍을 통해서는
여성 작가의 작품,
여성과 소수자의 경험을 표현한 작품,

새로운 장르와 형식을 시도한 작품들을
나누었습니다.


현재 나의 위치와 조건 속에서
나의 말하기를 어떻게 시각예술로 구현할지를
고민할 수 있었죠.


멋진 여성 작가들을 한가득 만날 수도 있었고요 :)
              

                                                                            처음 만난 작가는 신디 셔먼.



그리고 매주 한 번씩 공감 넘치는 수다판을 통해
나의 경험부터 작품과 전시의 기획까지, 여러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죠.

공감 넘치는 수다판: 우리의 첫 공감 @ 상담소 지하 모임터
많은 이야기들이 자유롭게 오갔습니다.
서로의 경험에 공감하고, 함께 새로운 대안을 상상해보기도 하고,
때로는 고민과 아픔을 나누기도 했습니다.
공감과 지지, 웃음과 눈물, 기쁨과 위로가 함께 한 시간이었습니다.

참, 말하기 작품을 기획할 때는 몇 시간이고 줄기차게 회의를 하기도 했어요.
상담소 지하 모임터는 그때마다 후끈 달아올랐습니다.



 

9월 중순 이후로는
나의 말하기를 복격적으로 작품으로 빚어내기 위해

페미니즘 미술그룹 빨간뻔데기 분들을 멘토로, 함께 작업을 진행했습니다.

나의 이야기를 풀어내는 것을 넘어
어떻게하면 이를 통해 타인과 소통할 수 있을지를 욕심내기도 했습니다.

말하기 내용은 몇 번이고 뒤집혔고,
조금 더 멋진 작품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에
여러 번의 시행착오를 겪기도 했습니다.

그 와중에도
각자의 말하기 내용과 표현 매체가 다르다는 것에
살짝 놀라기도 하고요.

멘토와 함께 서로 밀고 당기며
말하기 작품의 모양새를 다듬어갔습니다 :)


  

말하기, 手作하기 _ 작품 제작 및 멘토링 작업
 



그리고 드디어
12월.
<공개답변: 8회 성폭력생존자말하기대회>가 열렸습니다.

매년 1회의 공연으로 이루어지던 것이
올해는 처음으로 6일에 걸쳐 전시의 형태로 진행되었습니다.

 

 

 작품 설치 중!

 개관 전에는 작품을 열심히 설치했습니다.
 물론 대부분의 설치 작업은 참여자들 스스로가 했습니다. :)

 처음에는 넓은 갤러리를 어떻게 메울지 막막했지만
 이렇게 하나 둘 자리를 자리를 잡아가기 시작하니 
 묘하기도 하고 안심 되기도 했습니다.

 (사진은, 가장 고생했다고 해도 좋을 천장 설치 작업들.
  부착해야 하는 것들이 많아서 종일 사다리를 오르락 내리락했어요.)



 회화, 영상, 설치 등 다양한 형식과 다양한 말하기들은
 이렇게 관객과 만날 준비를 마쳤습니다.


 그리고 참여자 여섯 명의 말하기가 가득 담긴 전시장은
 12월의 첫 날, 
 세상을 향해 활짝 문을 열었습니다.


 
<공개답변>, 로비와 방명록

모두 함께 한 퀼트 작품
 

 

 
 

 갤러리를 가득 메운 이야기들
 

말하기대회가 진행되는
6일 동안 많은 분들이 다녀가셨습니다.


매년 말하기대회를 찾아주시는
듣기 참여자 분들 늘 든든한 지지자 분들, 반가운 얼굴들도 많았습니다.

덕수궁 돌담길을 지나는 길에 우연한 만남을 가지게 된 분들도 계셨고,
두꺼운 나무문을 여는 손길조차 조심스러워 보이는,
많은 고민을 하고 오셨을 분들도 뵈었습니다.


얼른 자리를 떠나는 분들,
한 시간이 넘도록 작품 하나하나와 이야기를 나누고 계시는 분들,
모두에게 궁금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갤러리를 나서는 발걸음을 붙잡는 것은
어떠셨나요,라는 짧은 질문이지만
사실은
여러분은 어떤 이야기를 나누셨나요,라는 의미이기도 했습니다.

우리가 작품을 감상한다는 것은
무언가를 구경이나 관찰, 분석한다는 것과 비슷한 의미로 느껴지기도 하지만,
사실은 자신의 감정과 경험이 얽혀있기 마련일 겁니다.

말하기 작품을 통해 느껴지는 나의 감정-아픔, 기쁨, 분노, 평온함 등-이나
어쩌면 조금 더 구체적인 경험들을 마주하는 것이
바로 작품들과, 말하기들과, 생존자들과의 소통이라 믿습니다.

실제로 여러 분들에게 작품에 대한 일종의 소감을 나누었을 때
각자가 가장 마음이 가는 작품, 느낀 감정들은 달랐습니다.

모두 나름의 방법으로 이야기를 나누었다는 것이겠죠.



전시 후 첫 주말인 12월 3일 토요일, 전시 마지막 날인 12월 6일 화요일에는
소규모의 말하기 행사가 각 한 차례씩, 총 두 번에 걸쳐 진행되었습니다.


각 5~60명 가량의 듣기 참여자들이 참여했고
공간이 작은 만큼, 말하기대회로서는 실로 오랜만에
서로의 눈을 마주하며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습니다.

말하기 자리에는 근사한 조명도, 멋진 음향효과도 없었습니다.
마이크와 의자, 간단한 영상과 배경 정도가 있었죠.

 
모두와 눈을 맞출 수 있을 정도로 작은 공간.

말하기 작품을 통해 수 개월 간 깊이 깊이 나를 만나고 경험을 빚어냈다면
말하기 자리를 통해서는 조금 더 생생한, 살아있는 자신을 이야기했습니다.

마이크를 타고 울리는 목소리와 이야기는
공기 중을 떠다니며 좌중의 한 사람, 한 사람을 쓰다듬는 듯 했습니다.
듣기 참여자 분들의 볼에 나타난 미소나 눈가에 맺힌 눈물은
말하기 참여자의 이야기가 가닿았기 때문이겠죠.

행사를 진행한 갤러리 안에는
고요하지만 결코 무겁지만은 않은,
그야말로 지지와 공감의 따뜻한 기운이 가득했습니다.

한 사람 한 사람의 이야기를 모두 나눈 후에는
<공개답변>이라는 타이틀에 걸맞게
듣기 참여자들에게 질문을 받아 대답하는 시간도 있었습니다.

참여자 여섯 분이 모두 함께 나와서인지
앞 시간보다는 좀 더 많이 웃고,
더 가볍게 진행되었습니다 :)
번쩍! 손을 들어 즉석질문을 하는
적극적인 분들도 계셨죠. 


한 시간 반에서 두 시간 남짓되는 시간 동안
눈물과 웃음, 위로와 환호가 함께했고,
마지막에 함께 힘찬 박수를 나누며, 서로 힘을 얻어갔습니다.

공감 가득 반성폭력 메시지가 담긴 다과 봉지.



12월 6일의 말하기 행사를 끝으로 <공개답변>은 끝을 맺었고,
다음 날에는 말하기 참여자 분들과 상담소 활동가들이
갤러리에 놓여있던 각자의 작품을 정리했습니다.
지금은 아마 다른 전시가 진행중이겠지요.


올해의 말하기 참여자 분들의 앞으로를 꼭 기대해주세요.
어딘가 다른 곳에서 불현듯, 만나게 될 지도 모릅니다.

말씀 드렸듯이 우리는 말하기와 '미술'로 만난 사이이기도 하니까요.
성폭력 경험이 삶의 많은 특별한 경험 중 하나이듯
또 다른 많은 경험과 이야기들을 어디선가 만나게 될 지도 모릅니다.

아무쪼록 앞으로의 여정에도 지지의 마음을 보내주세요.


그리고, 내년 말하기대회를 통해 만나게 될
또 다른 반짝이는 이야기들도 기다려주세요.


 더불어,
언젠가는 '성폭력을 말한다는 것'의 무게를 모두와 함께 조금씩 덜어내어
성폭력을 둘러싼 다양한 이야기들이
생존자말하기의 무대에서 내려와 다른 경험들과 함께 이야기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