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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를 말하다

'비키니 시위'를 통해 본 <나는 꼼수다>의 한계


<나는 꼼수다>의 ‘성희롱 발언’ 논란이 거셉니다.
정봉주 의원 구명을 위해 ‘비키니사진’을 올린
한 여성 청취자를 거론한 <나는 꼼수다> 팀의 발언과 태도가
문제가 되었는데요.

그런데 이 논란에 몇 몇 언론사들이
‘나꼼수의 성희롱에 대응하지 않는 여성단체’,
‘여성단체의 자기편 감싸기’주장을 제기하면서
<나는 꼼수다>의 성희롱 논란이 ‘여성단체’로 옮겨가고 있습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졸지에 ‘제 편 감싸기’에 급급하여
‘성희롱 사건을 외면한’ 성폭력상담소가 된 것 같아
황당할 지경입니다.

상담소는 이번 논란을 계기로
‘성폭력상담소’ 입장의 복잡한 고민들을
이번 논란에 주목하고 있는 많은 분들과 나눠보고자 합니다.


‘성평등, 성차별, 여성혐오, 성적 대상화’는 우리와 상관없다?

‘진보’와 ‘보수’의 경계에 상관없이 일관되게 나타나는 문제가 있다면,
공동체 내부의 남성우월주의에 대한 성찰 없음과,
성평등과 성차별을 자신과는 거리가 먼 일로 생각하는 태도일 것입니다.

우리는 ‘진보’를 이유로, ‘보수와의 싸움’을 이유로,
수많은 문제들을 ‘부차적’인 것으로 사소화시키는
사람들을 만났던 경험을 갖고 있습니다.

매 년 소위 진보라고 불리는 집단들 안에서는
지속적으로 성폭력 사건으로 제소하고 징계하는 사건들이 발생하고 있습니다.
반성폭력 운동 단체들은 이러한 상황들을 접할 때 마다 
다른 성폭력 사건들보다 더욱 답답함을 느낄 정도입니다.


성인지 감수성 없는 발언은 싫지만 마초성은 좋다?

<사진 출처-오마이뉴스>

<나는 꼼수다>의 이번 논란은
사실 방송 초기부터 예견되어 있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남성들만 모인 자리의 술자리 농담’ 같은
진행자들의 태도는
구체적인 성적농담만 슬쩍 피했을 뿐,
욕설 섞인 발언, 정보를 접근하는 권력을 피력함,
‘찌질한 남성’에 대한 희화화 등,
‘남성간의 공감대’ 또는
‘남성성의 언어적 재현이 주는 쾌감’을 적절히 활용하여
(그것이 의도되었든 아니든)
방송의 인기를 더해 왔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나는 꼼수다> 팀에게
‘성인지 감수성’은 ‘가져도 그만 갖지 않아도 그만’일 뿐,
그들의 ‘진보적 정체성’을
전혀 위협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물론 언론을 통해 드러나지 않고 감춰지는
정치권의 ‘진실’들을 알려내는 이들의 활동에
많은 시민들이 열광해 온 것은 사실입니다.

이들이 정부와 ‘각하’의 불편한 심기에 굴하지 않고
언론을 통해 나타나지 않는 ‘진실’들을 이야기하는 점,
그리고 그 점에서
시민들에게 새로운 의미의 ‘행동’을 제시했다는 점은
높게 평가하고 싶습니다.


<나는 꼼수다>가 ‘여성단체’와 ‘같은편’?

<나는 꼼수다>의 발언이 이렇게까지 논란을 가져온 것은
바로, 그들이 받고 있는 그 기대감과
그에 따른 책임 때문일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제 이들이 <나는 꼼수다>에 관련된 논란에 대하여
대답하지 않거나 외면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내가 하고 싶어서 하는 방송, 사소한 것에 딴지걸지 마시길’ 과 같은
태도를 가져도 안 될 것입니다.

2월 1일자로 올라온 <나는 꼼수다>의 내용에도
그간의 논란에 대한 해명이나 사과가 전혀 없다고 하니,
‘성폭력과 젠더 문제를 사소화시키는’
태도를 반복하여 보여준 것이라 생각합니다.

<나는 꼼수다> 팀은
이번 논란에 대해 사과하는 액션을 취해야 함은 물론,
왜 어떤 이유로 이러한 논란이 초래되었을지 생각해보아야 합니다.
‘농담’, ‘실언’, ‘무의식’ 등등 어떤 이유로도
이번 논란은 그냥 넘어갈 수 없는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여성단체의 같은 편 감싸기’ 논란을 만들고 있는 언론들에게

이러한 <나는 꼼수다>의 성희롱 논란에 몇 몇 언론사들은
‘소위 진보라는 여성단체들이 제 편 감싸기를 하느라
나꼼수의 성희롱에 대응하지 않고 있다’는 보도를 내 놓고 있습니다.

<나는 꼼수다>를 비판하던 언론도,
‘옹호’하던 언론도 모두 함께
‘여성단체들 왜 가만히 있느냐’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상담소는 이 언론사들의 보도과정을 접하면서
여러 가지 고민과 답답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언론에서 지적한 바대로,
상담소에 문제가 있었다면
조금 더 민첩하게 다양한 성폭력 이슈를 포착하여
상담소의 입장을 말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바로 이 지점에서 언론의 문제제기는 달게 받아 고민하겠습니다.

그리고 어느 샌가 사회적 파급 효과가 커져버린,
그래서 ‘강용석 의원’이나 ‘최연희 의원’의 성희롱 사건과
동일선상의 대응이 필요해져 버린
<나는 꼼수다> 팀의 발언들에 철저한 감시를 시작해보겠습니다.


언론이 ‘여성단체의 이슈화’에 바라는 것은 무엇입니까?

하지만 ‘같은 편을 감싸고 있다’는 문제제기는 매우 부적절합니다.
되려 이러한 지적은 언론들이 여성단체의 활동에 대한 몰이해를 갖고,
<나는 꼼수다>가 상징하는 집단에 대해
과도한 넘겨짚기를 하고 있기 때문은 아닌가 싶습니다.

이번 지적을 해온 언론들에게 묻고 싶습니다.
‘언론이 생각하는 ’여성단체‘의 행동은 무엇입니까?’
‘<나는 꼼수다>와 ’여성단체‘가 어떤 관계가 있어야 한다고 보십니까?‘
‘여성단체’에 바라는 역할에 어떤 다른 의도가 있는 것은 아닙니까?'

대부분의 성폭력 사건에서 언론들은,
현장의 경험을 바탕으로 제시하는
각 단체들의 핵심적인 반성폭력 담론을 기사에 반영하기보다,

‘사건의 선정성’과 ‘피해자의 괴로움’, ‘가해자 비난’에만 몰두했던 것이 사실입니다.
같은 성폭력 사안이어도, 언론사의 정치색에 따라 선택적으로 보도하였던 것도 사실입니다.

여성단체에 말 걸기를 놓지 않고 있는 언론들이라면
저희와 같은 여성인권단체와 반성폭력운동단체가 말하는
‘반성폭력 담론’에 보다 주목해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진보’라고 자처하는 사람들의 성찰을 촉구합니다.

언론과 함께 만들어갈 성폭력 없는 사회를 기대합니다.

따라서 이번 논란이
‘<나는 꼼수다>에 대한 불쾌감’에 대한
문제제기로 끝나서는 안 된다는 것에
모두 함께 주목해야 할 것입니다.

‘진보 언론’이라고 자처하는 언론도
‘정통 보수’를 외치는 언론도,

성폭력 사안에 대한,
성인지 감수성없는 인사들의 발언과 행동에 대한 감시를
지속해야 할 것입니다.

한국성폭력상담소는 예전과 변함 없이,
날카로운 시선으로
성폭력 이슈에 대한 대응을 멈추지 않을 것입니다.

성문화운동팀  토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