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5일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된 군형법 일부 개정안에는 '계간 조항'이라 불렸던 군형법 92조 5항 개정 내용도 포함되어있었습니다(개정 후 92조 6항으로 변경). 그러나 '계간'이라는 문구를 '항문성교'로 변경하는 것에 불과했던 이번 법 개정은 군대 내 동성애자병사 인권침해 논란을 더욱 가중시키는 결과를 만들었습니다(군 관련 성소수자 인권침해 · 차별신고 및 지원을 위한 네트워크 발표 성명서 보러가기). 지난 3월 14일 국회에서 열린 '군형법 92조의 6 이대로 좋은가' 토론회에서는 군형법 92조 개정의 문제점을 점검하고 향후 대안을 모색하는 토론회가 열렸습니다. 군형법 92조의 6 논란을 통해 들여다본 군대 내 인권 문제를 블로그에서 공유합니다.
합리적 근거 없는 군대의 불안
- 동성 병사 간 성적 관계에 대한 우려
그동안 군형법 92조의 5 추행죄(계간이나 그 밖의 추행을 한 사람은 2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는 동성애자를 비하하는 용어인 ‘계간’이라는 단어를 사용한 법조항의 존재와, 합의에 의한 동성 간 성적 접촉조차 범죄와 처벌의 대상으로 규정한 점에서 국내외의 폐지 요구를 받아왔다.
이 조항은 그동안 군대내 성폭력 범죄의 친고죄 규정으로 인한 처벌의 공백을 막기 위해 적용되어 형법의 강제추행죄를 비친고죄화하는 기능을 주로 수행하였다. 그렇다면 성범죄 친고죄 폐지 이후 군형법상 추행죄의 주요 기능은 합의에 의한 동성간 성적 행위 처벌에 집중될 가능성이 크다.
군형법 92조의 5가 이와 같은 기능을 해왔다는 것은 군대내 성폭력 근절에 대한 단호한 의지라기보다, 군대내에서 남성 군인간 발생하는 어떤 과정의 성행위도 벌하겠다는 군대의 의지였다고 보아야 한다. 이제 군형법상 추행죄는 동성 병사 간 합의에 의한 성관계를 포함한 성적 접촉을 처벌하는 조항으로서 군대내 호모포비아를 더욱 가중시키는 반인권적 결과를 가져올 것이 우려된다. 이러한 지점에서 국회 법제사법위원회가 군형법 92조의 5 개정 후 예상되는 문제점에 대한 구체적인 논의 없이, 국방부의 제안이었던 ‘계간’을 ‘항문성교’로 수정하는 안을 대안으로 반영하여 본회의에서 통과시킨 이번 법개정 과정은 엄격히 평가되어야 한다. 군대가 외부 사회의 변화보다 더욱 경직될 수 밖에 없는 조직이라 하더라도, 인권사안을 비롯한 불합리한구조들을 변화시켜야하는 책임마저 외면할 수 없다. 2012년 UPR의 군형법 92조의 5 폐지 권고도 군대의 변화를 촉구하는 외부 사회의 목소리였다.
이번 군형법 92조 개정의 취지는 ‘항문성교’라는 (주체의 성별 등의 지점에서 모호성이 있으나) 구체적인 행위를 명시하여 처벌하려 했다기보다 ‘계간’이라는 문구를 대체하기 위한 다른 용어를 선택한 결과이다. 결국 군대내 ‘남성’ 병사간 성적행위를 처벌할 목적으로 법조항을 유지하기 위하여 이와 같은 더욱 모호한 조항으로 남게 된 것이다.
군대내에서 동성애를 허용하면 많은 문제가 발생할 것이라는 군대의 입장은 합리적 근거가 없다. 대법원과 헌법재판소는 군형법 92조 위헌소송에서 합헌결정을 내리며 군형법상 추행죄의 주된 보호법익을 ‘개인의 성적 자유’가 아닌 ’군이라는 공동사회의 건전한 생활과 군기‘라는 사회적 법익이라고 설명하였다. 만약 군대내 기강문제로 이와 같은 법조항 마련이 불가피하다면, 그 전에 군대라는 다수의 사람이 모여서 생활하는 공간 안에서 성문제를 어떻게 다룰 것인가에 대한 깊은 고민이 우선하였는지 군대 스스로 되물어야 한다. 남성들이 대다수로 함께 모이는 공간인 군대에서 남성간 성적접촉을 경계하여 강한 법적 처벌을 마련한 것은 호모포비아적 발상에 다름 아니다. 물론 (행위자의 성별과 무관하게) 합의에 의한 성적 접촉이라도 공공 공간에서는 일종의 환경형 성희롱을 유발하거나, 군인 개개인의 관점에 따라 불쾌한 성적 환경 조성으로 인식될 수 있다. 그러나 이와 같은 상황도 군대라는 서열과 위계 질서가 강하게 형성되어 개인의 자유가 제한된 공간에서 빈번히 발생할 것이라는 예상은 비합리적이다.
군대내 성문제는
잘못된 사회 통념적 성의식을 유지하는 군대문화에서 비롯된다
한국 군대와 다른 조직의 사례이나, 미국의 경우 직장에서 섹슈얼리티를 활용하는 방법에 대한 서적과 연구물이 발간되고 있다. 그만큼 다수의 사람이 모인 공간에서 성적인 이슈를 만나는 것은 필연적이다. 개인 간 성적인 관계들을 법제도로 모두 규율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렇기 때문에 성폭력이나 특정 섹슈얼리티와 젠더에 대한 혐오가 발생하지 않는 건강한 조직 내 성문화를 만들기 위해서는 많은 고민과 토론이 필요하며 제도는 최소화 되어야 한다. 따라서 한국의 군대와 같이, 공동주거공간에서 물리적으로 사적 영역이 적은 조직이라면 성을 어떻게 다룰 것인가는 매우 중요한 문제이다. 군형법 92조의 5와 같은 인권 침해적 법조항을 유지하여 군인들의 성적인 역동이나 관계들을 모두 통제하는 것을 바람직한 방식으로 볼 수 없다.
현재 군인들의 성의식을 보여줄 수 있는 대표적인 사례들은 군대 내 성폭력과 군부대 인근 지역을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성구매, 그리고 호모포비아라고 생각한다. 군대내 성폭력은 가혹행위의 형태로도 나타나지만 당사자들의 가치관이나 계급차에 따라 장난이나 친밀감의 표현 등으로 사소화되기도 한다. 또한 군인들이 군복무중 불법적으로 운영되는 성매매업소를 이용하여 성구매를 하는 경우도 존재한다.
지난 2011년 5월에 드러난 해병대 성폭력 사건 당시 군 관계자는 한 언론을 통해, 안타깝다는 의견을 내보이며 "성추행 사건은 개인 성향의 문제여서 뚜렷한 대책 마련이 쉽지 않은 게 현실(<세계일보> 2011년 5월 24일자)"이라고 밝혔다. 만약 이와 같은 발언처럼 군인간 성폭력 가해의 이유를 개인의 성향(섹슈얼리티 즉, '동성애') 때문으로만 인식한다면, 그것은 성폭력의 모든 원인을 성욕으로 귀인시키는 잘못된 분석이며, 무엇보다 호모포비아(동성애 혐오)적 발언이자 군대 내 성폭력의 발생 원인을 흐리는 말이다.
국가인권위원회의 용역을 받아 본 단체에서 실시한 군대 내 성폭력 실태조사(2004)에서 나타난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 당시 응답에 참여한 671명 중 성폭력 피해가 있다고 응답한 사람은 15.4%였으며, 성폭력 발생을 듣거나 본 사람은 24.7%였다. 가해경험이 있다고 응답한 사람도 7.2%였다. 또한 성폭력 경험을 가진 81.7%의 사람들이 가해와 피해 경험을 동시에 갖고 있었다. 이것은 군대 내 남성간 성폭력이 군 계급의 위계질서를 유지하는 수단으로 사용되고 있다는 것을 말해준다. 친밀감을 형성하는 성적 농담이라도 강한 계급사회에서는 강제성을 동반할 수 있으며, 이는 성희롱이 된다. 그렇다면 군대 내에서 성폭력이 발생할 가능성이 다른 조직보다 높거나, 성폭력이 발생하더라도 피해자나 주변인들이 문제제기하지 못할 가능성이 더 클 수 있다.
당시 조사에서 밝혀진 군대 내 남성간 성폭력의 지속적인 발생 맥락은 다음과 같다. 남성성의 과시와 획득을 위한 가해행위, 일상적인 성폭력을 성폭력이라고 하기보다 가해자들의 논리인 '친밀감과 장난'으로 표현하여 자신을 성폭력 피해자로 명명하지 않겠다는 피해자들의 다짐이다. 더불어 사실을 신고할 경우 수 년 간 한 공간에서 지내야 하는 군대 생활이 수월치 않아질 것이라는 예측, 그리고 사실이 알려질 경우 동성애자로 낙인찍힐 것이라는 불안감 등도 군대에서 남성간 성폭력이 계속 발생하는 원인으로 꼽혔다. 이처럼 군대 내 동성간 성폭력은 호모포비아와 위계에 의한 폭력의 사이에서 피해 당사자와 가해자, 군대 모두에게 복잡하고 피하고 싶은 문제로 읽혀 온 것이다.
일부에서는 군대 내 남성간 성폭력 사건을 '동성애자들의 폭력적인 행위'로 치부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것은 사실이 아니며 군대 내 성폭력 사건의 발생과 해결과정은 앞서 조사에서도 나타난 바, 직·간접적으로 동성애 혐오를 동반하여 나타난 추측일 뿐이다. 동성간 성행위를 경험하는 것과 자신의 성정체성을 규정하는 것은 다른 문제이다. 이러한 지점 역시 군대내에서 발생하는 동성간 성폭력 및 성과 관련된 이슈들을 다루고 해결하는데 군대가 더 깊은 고민과 논의가 부재해 있었음을 말해준다.
군대내 성의식 문제를 점검해야할 또 다른 사안은 군인들의 성구매에 대한 군대의 태도이다. 실제 군부대 주변 지역은 성산업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한국 군대는 미군들의 사기진작을 위하여 정부 주도하에 ‘기지촌’이라고 불리는 성매매집결지를 마련한 바 있으며 한국군 군대 주변 지역에 성매매 밀집지역이 존재하기도 한다. 이와 같이 군대가 군인들에 대한 보상 또는 복지의 의미로 성구매를 방조한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남성의 성욕은 조절 불가능하며 (국가가) 관리하고 다뤄주어야 한다는 발상은 성매매와 성폭력이 존재하는 사회의 공통점이자 추상적이고 비합리적인 관점이다. 이러한 관점은 남성들이 여성을 성적대상화하거나 타인의 성적 권리를 침해하는 것에 죄책감을 느끼지 못하는 이유가 되기도 한다. 성산업을 이용하는 것이 불가피하게 여겨지고, 계급을 권력으로 이용하여 성폭력을 장난으로 명명할 수 있는 상황에서 타인의 성적자기결정권을 존중하는 태도가 형성될리 없다.
호모포비아의 경우 대표적으로 군대내에서 근절되어야할 성의식이다. 군대가 군인간에 부정적인 성인식이 확산되지 않도록 해야 하는 의무가 있다면 호모포비아 역시 마땅히 근절되고 ‘교정’되어야할 성의식이다. 앞서 언급한 성폭력과 성매매에 대한 군인들의 ‘가벼운’ 인식은 군대내 호모포비아의 확산과도 밀접한 연관이 있다. 군대내에서 성폭력의 대상이 되는 군인들은 대부분 ‘여성화된’ 존재들이며 이 때 가해자 대다수는 이성애자 남성이다. 군대내 성소수자들이 괴롭힘과 폭력에 노출되기 쉬운 것도, 여성 혹은 성소수자는 군대라는 남성조직에서 남성성이 결핍된 존재로 인식되는 남성-군대문화에서 비롯된다. 군대내에서 규제해야할 것은 군인 개인들의 섹슈얼리티가 아닌, 바로 한국사회의 잘못된 성적 통념에 근거하여 타인에 대한 폭력으로 표출되는 행위들이다.
‘항문성교’ 개정,
군대 내 인권문제에 대한 성찰과
군형법 92조의 6 폐지가 필요한 시점이다
군대는 다수의 남성들이 성인이 되어 머무르는 공간이자, 한국 남성들의 연대를 상징하는 '아이콘'이다. 그러나 심심치 않게 등장하는 성폭력을 비롯한 폭력 사건, 사병들의 자살 사건은 군대라는 위계적인 공간의 부정적인 결과를 보여준다. 지난 몇 년간 진행되어온 군형법 92조의 5 개정 논란 역시 군대의 부족한 인권의식을 보여주는 중요한 사건이었다. 이러한 사건들은 군인들뿐만 아니라 군대와 밀접한 관련을 맺고 살아가는 국민 모두에게 안타까움을 안겨주고 있다.
개정된 군형법 92조의 6은 군의 기강과 전투력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군대 내 구성원들의 호모포비아를 더욱 가중시킬 뿐이라는 의견에 동의한다. 이와 같은 조항의 유지는 군대내 인권침해 요소를 유지하고 강화시킬 것이다.
군형법상 추행죄는 군대내 기강이나 성폭력의 문제가 아닌 군대의 인권 관점의 문제이다. 군 기강을 이유로 군인 개개인의 어떤 행동을 제재하는 방식은 가장 손쉽지만, 또 다른 문제들을 만들어낼 수 있다. 군대는 군인들의 성행동과 성적 가치관 등에 대하여 암묵적인 용인과 군형법상 처벌을 모두 사용하고 있다. 군대내 성폭력은 당연히 처벌대상으로 분류하고 있으나 군인들의 성구매는 불법적인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암묵적으로 용인되고 동성 병사간 합의에 의한 성관계는 ‘성적 기강’의 문제로 별도의 법 규정을 두어 처벌하고 있다. 관리되어야할 섹슈얼리티와 처벌받아야할 섹슈얼리티가 이성애중심적인 사고로 분명하게 나뉘어져 있는 상황이다. 군대가 군인들의 성의식을 점검하고 변화시키려는 태도에서 ‘군대의 특성’을 이유로 인권의 관점을 배제하는 태도를 변화시키지 않거나 자의적으로 해석하는 것은 심각한 문제이다. 무엇보다 호모포비아와 같은 잘못된 사회통념을 군형법으로 불법화했다는 지점을 가장 큰 문제로 보아야 한다.
군형법 92조의6 폐지는 국제사회의 염원이자 군대내 인권 증진을 위하여 필연적으로 완수해야할 모두의 과제이다. 이번 법개정의 과오가 또 다른 군대내 인권문제로 이어지지 않도록 국회가 발빠른 움직임을 보여줄 것을 기대한다.
(* 본 글은 2013년 3월 14일에 개최된 국회 긴급토론회 '군형법 제 92조의 6 이대로 좋은가' 에서 이경환 변호사의 '2013년 군형법상 추행죄(제92조의5) 개정의 문제점' 발제문에 대한 한국성폭력상담소 토리 활동가의 토론문 '군형법 92조는 군대내 성인식 관리가 아닌 동성애자 병사 인권침해 조항이다'를 수정 보완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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