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2월 19일, 시청역 근처의 레이첼 카슨 홀에서 성폭력생존자말하기대회10주년포럼 ‘들어라 세상아 나는 말한다, 이후 10년’이 열렸습니다.
한국성폭력상담소의 활동가들이 기획단을 꾸려 발제문을 준비했구요, 1회 성폭력생존자말하기대회 기획을 맡았던 상담소의 전 활동가이자 여성학자로 활동하고 있는 권김현영 선생님, 계명대 여성학과의 조주현 선생님, 부산성폭력상담소의 이재희 선생님이 토론문을 흔쾌히 써주셨습니다.
당일의 생생한 목소리를 들어보시겠습니다. 아래는 속기록의 내용을 발췌하여 편집한 것입니다.
먼저, 상담소 활동가 란이 발제문 ‘성폭력생존자말하기대회와 반성폭력운동’ 을 발표하였습니다.
성폭력생존자말하기대회의 1회 슬로건 '들어라 세상아 나는 말한다' 는 말하기대회의 취지와 목적을 잘 드러냅니다.
들어야 하는 세상을 특정해서 세상이, 사회가 완전히 다른 듣기를 해야 한다는 요구였지요. 개인의 문제에서 우리의 문제로 옮겨가는 것이 말하기대회라고 볼 수 있습니다. 여성이 가진 내면의 힘을 믿지 않았다면 이 행사는 불가능했을 것입니다.
2003년도에서 지금에 이르기까지, 이전 형식의 고민을 이어가면서 신선한 기획에 대한 고민이 생깁니다. 해마다 다른 형태의 말하기대회를 시도해오면서, 어떤 장치를 활용하는 것이 전달이 용이할지 고민도 많이 해왔습니다. 상담소는 말하기참여자들이 대회를 준비하면서 만나는, 역동을 비롯한 직면의 상황에서 생존자들과 함께 애써왔습니다.
상담소에는 여성주의상담팀과 성문화운동팀이 있는데요, 팀 간의 협력이 말하기대회의 주춧돌이 되어주었습니다. 상담소의 활동가들은 상담소의 모든 활동이 말하기와 듣기라는 말을 합니다.
말하기대회를 통해 여성주의 공동체가 형성되는데, 준비기간 동안 말하기 참여자들과 기획단, 활동가들이 서로 역량을 북돋는 여성주의 공동체를 경험하게 됩니다.
언론에서 다뤘던 수동적인 피해자 상과는 다른, 역동적인 생존자의 모습을 담고 있는 '버라이어티생존토크쇼', '놈에게 복수하는 법' 등의 영상도 만들어졌습니다.
이것이 성과라면 과제는, 말하기대회의 무대나 공연 준비의 일들이 활동가들에게 큰 부담이 되는 부분을 어떻게 소화할 수 있을 것인가입니다. 또한 무대 위 말하기 참여자의 모습이 고정된 생존자상을 만드는 것은 아닐까 하는 고민도 있습니다. 성폭력생존자말하기대회를 통해 생존자들이 피해 경험을 토해내고 자신을 객관화 할 수 있었다는 점은 긍정적인 효과입니다. 지난 10년은 통념에 균열을 만들어낸 시간들이었죠. 동시에 10회의 대회를 진행해오면서 여성주의 문화운동의 성격도 있었습니다.
여러 가지 면에서, 지금까지와는 다른 성폭력생존자말하기대회를 상상해 볼 수는 없을까 하는 고민이 있고, 어떻게 해석되고 변주되어야 할지에 대해서 많은 고민이 나왔으면 좋겠습니다.
권김현영 선생님이 ‘여성주의에서의 Speak Out 의미’ 로 토론을 이어받았습니다.
말하기대회의 힘은 정제되지 않은, 기획되지 않은, 날것의 이야기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동시에 묻혀져 있던 기억이 꺼내지게 될 때, 그 기억을 어떻게 소화할 것인가에 대한 고투와 시도들이 이어지게 됩니다.
준비되지 않은 사람들에게 어떻게 말할 수 있을 것인가, 약자에 공감하는 사회가 만들어지려면 어떤 것이 필요할 것인가. 이것이 말하기대회의 과제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조주현 선생님의 ‘여성주의적 지식 생산: 현장과 연동하는 운동의 가능성’이 발표되었습니다.
첫째 생존자의 자존감 회복이라는 면이 있습니다.
자존감을 회복하려면 생존자 자신의 주체성이 바뀌어야 하고, 주체성이 바뀌기 위한 방법은 생존자가 스스로 다른 담론을 가지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담론이 자기 안에 내재되는 것을 통한 다른 해석과 자존감의 회복이 필요하고, 현실적인 공동체가 필요해요.
둘째, 사회의 인식 변화와 공감입니다.
과거에 비해 자율권이 커진 상태에서, 개인이 고통을 받고 해결해가는 방식이 변하고 있습니다. 토크쇼, 힐링. 이런 것들이 사회 전체의 문제로 화하고 집단적 해결의 방식으로 가는 게 아니라 개인적 차원으로 재편되고 있습니다.
이 시대 개인의 내밀한 경험을 공론장에서 말하게 되는 풍토의 끝에 성폭력생존자말하기대회가 연결되어 있게 되면서 초기의 효과가 반감되고 있습니다. 이것은 신자유주의의 지구화로 연동시킨다면, 개인이 경험을 말한다는 것은 개인의 선택권을 확장하지만, 사회 전체 집단의 차원에서 해결하겠다는 노력은 잘 모여지지 않고 있는 상황입니다. 말할 수 없는 것 자체를 찾아서 말하는 것보다 말하는 것을 어떻게 사회적 의제로 전환시킬 수 있을 것인가로 바뀌어야, 재조정되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셋째, 젠더 관계 속에 놓인 일상성의 공론화라는 면이 있습니다.
성폭력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형식적 실천과 비 형식적 실천, 일상적인 삶에서의 상호작용과 사회규범에 대한 사회적 실천, 혹은 비형식적 실천, 이것이 반복됨으로서 성문제에 대한 사람들의 변화가 필요합니다.
사회적 실천의 변화, 비형식적 실천의 변화는 어디서 시작할까요? 이것은 몇 명의 의문에서 시작됩니다. 문제는, 그 시작이 과연 변화를 유도하는가, 성공하는가는 좀 다른 문제라는 것이죠. 이 시대의 비형식적 실천들, 이에 대한 상호작용이 결코 과거에 비해 영향력이 적지 않다는 것에 확신을 갖고 즐겁게 갔으면 좋겠습니다.
덧붙이자면, 법제도 개선과 비형식적 실천, 사회규범을 변화시켜야 한다는 게 어떻게 엮여 있는가를 말하고 싶습니다. 법이 개선됐다면 그 법이 어떻게 실천되는가를 봐야 합니다. 사회적 규범이 현실적으로 어떤 상호작용을 갖고 어떻게 실천되는가의 과정을 보는 것이 굉장히 중요합니다.
듣기참여자의 범위를 넓히는 것에 대해, 직접적으로 관련있는 공무원 중에 의식 있는 사람들을 참여시키는 것은 불가능할까요? 이 사람들이 직접 들을 기회가 된다면 상당히 효과적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다른 소수자들하고의 폭넓은 경험을 연결시켜보는 방법, 다른 집단과의 연대를 접합시켜보는 방법은 어떤 게 있을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부산성폭력상담소의 이재희 소장님이 ‘부산성폭력상담소 성폭력생존자말하기대회’를 이야기해주셨습니다.
사실 말하는 것이 생존자에게 부담이 되기도 합니다. 사회가 말을 못하게 하기 때문에 말을 더욱 해야 한다는 취지를 생각했는데, 이런 위험 또한 있는 것이지요. 생존자에게 어떤 치유를 할 것인가라는 고민이 많습니다. 사회에 대한 저항의 일종으로 말하기대회를 시작하게 됐는데, 시작은 역동적이었는데 갈수록 프로젝트화되어가는 것에 대한 고민을 하고 있습니다. 확장된 집단 상담의 의미도 있지만, 어떻게 해야만 더 나아갈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을 늘 가지고 있습니다.
성폭력생존자말하기대회10주년포럼이 좋았다는 평을 많이 들었는데요, 그만큼 성폭력생존자말하기대회의 10주년 역사를 축하하고 미래 전망을 모색하는 즐겁고 희망찬 자리였답니다. 더 자세한 내용이 궁금하시다면, 성폭력생존자말하기대회10주년포럼 자료집을 구입하여 살펴보는 것도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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