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트성폭력에 대한 번역서 <그것은 썸도 데이트도 섹스도 아니다>가 나왔습니다!

데이트성폭력에 대한 번역서

<그것은 썸도 데이트도 섹스도 아니다>가 나왔습니다!

 

'아는 사람에 의한 성폭력'은 가장 빈번하게 발생하고 은밀하게 숨겨지는 성폭력입니다. 

성폭력이라고 하면 흔히 어두컴컴한 밤에 낯선 이를 가해자로 떠올리지만, 사실 성폭력 피해의 대다수는 '아는 사람'에 의한 피해입니다. 2014년 한국성폭력상담소의 상담통계자료에 의하면 '아는 사람에 의한 피해'가 81%로 집계되었습니다.

'아는 사람에 의한 성폭력'은 특수하고 밀접한 관계에서 발생하기 때문에 범죄가 아닌 피해자와 가해자 간의 '사랑싸움'으로 치부되고, 피해 당사자는 빌미를 제공했다는 식의 비난을 받거나 수치심과 두려움으로 사실을 숨기거나 외면하게 됩니다. 이러한 잘못된 남성 중심적인 가치관과 관습이 근본적으로 바뀌지 않는 한, 아는 사람에 의한 성폭력 문제는 그대로 남아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한국성폭력상담소 부설연구소 울림에서는 데이트성폭력의 고통과 치유, 예방책에 관한 책 <그것은 썸도 데이트도 섹스도 아니다>를 발간합니다. 1988년 미국의 대표적인 페미니스트 잡지인 <<미즈>>에 의해 발간된 I never called it rape 을 번역했습니다. 26년 전 그들의 이야기가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 '현재'에도 똑같은 사회 문제로 등장하고 있습니다. 이 책을 통해 아는 사람에 의한 성폭력을 어떻게 예방하고 피해를 줄일 것인지에 관한 정보를 얻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것은 ‘강간’일 뿐이다

* 이 글은 2015년 하계인턴 정고은 님이 작성했습니다.

  

   섹스를 통한 이성애적 사랑이 ‘정답’으로 그려지는 세상이다. 현대 사회의 연애가 ‘포옹-키스-섹스’라는 구조화 된 프로젝트가 된 현실에서 섹스는 빼놓을 수 없는 하나의 필수단계이자 통과단계로써 여겨지고 있다. 그 단계를 지나야만 사랑이 궁극적으로 ‘완성’된 것처럼 말이다. 낭만적 이성애에 기초한 현대의 억압적 이성애는 데이트 강간이라는 사회적 문제를 ‘낭만’이라는 이름으로 꼭꼭 감추어 버렸다.

   “섹스를 하지 않는다면 자기를 사랑하지 않는 거래요”, “남자친구는 섹스를 너무 원하는데 저는 아직 마음의 준비가 안되었어요.” 라는 질문이 여전히 사회 도처에서 목소리를 높이는 것은 데이트라는 이름으로 여성에게 가해지는 섹스를 반증하는 것이다.

   남성은 ‘지배’, 여성은 ‘복종’이라는 성애화 된 지배형태를 띄는 젠더 권력관계와 가부장적 남성 중심 문화는 ‘성 문화의 개방’과 결합되어 더욱 은밀하고 공고화 된 지배형식으로 변모 하였다. ‘사랑’의 완성단계에는 섹스가 포함된 것처럼, 연인 사이에는 섹스가 당연한 것처럼 여겨지는 이러한 통념들은 현대 여성들에게 가해지는 억압이자 구속으로 작용한다.

 

   약 20년 전 미국에서 진행된 ‘미즈 프로젝트’가 <그것은 썸도 데이트도 섹스도 아니다>라는 이름으로 한국에 발간되는 것은 20여 년 전 미국의 성(性) 인식과 현대가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을 반증한다.

  최근에 이르러서야 한국 사회에서 대두된 ‘데이트 폭력’은 여전히 우리에게 잔존하는 기존의 통념에 경종을 울린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크다. 그러나 성폭력이 ‘모르는 사람에 의해, 병리학적인 문제를 지닌 사람에 의해, 여성의 잘못에 의해’ 발생한다는 굳건한 인식들은 이 책이 한국에 등장해야 하는 당위를 부여한다.

   가해자들은 여성의 성이 남성이 소유물이라는 오랜 가부장적 가치관을 답습하며, 생물학적 본능에 의거한 행동으로 자신들의 행동을 정당화한다. 따라서 가해자 대부분은 본인의 행위를 강간으로 인식하지 못하며, 자연스러운 성욕의 표출로 이를 해석한다. 강간 후 피해 여성들을 집까지 에스코트하거나, 그 후 다시 데이트 신청을 하는 그들의 모습은 가해자들이 ‘괴물’로 각인된 우리의 통념과는 반대되는 모습이다.

   이런 문화는 절대로 본능에 의거한 생물학적 특성이 아니다. 하나의 사회적 구성물로서 남성과 여성에게 다르게 기대되는 젠더가 사회화되는 과정이 공고하게 굳어진 하나의 결과물로서 작용한다.

 

  아는 사람에 의한 강간은 책의 제목처럼 ‘썸’도, ‘데이트’도, ‘섹스’도 아니다. 다만 억압적 이성애를 통해 형성된 젠더 권력관계가 반영된 ‘성폭력’일 뿐이다. 피해자 대다수를 차지하는 여성의 ‘성적 자기결정권’을 침해한 범죄일 뿐이다.

   공고화 된 연애 구조 속에서 여전히 자리 잡은 기존의 통념은 이제 대두되는 데이트 폭력의 문제 속에서 끊임없이 충돌할 것이다. 이 흐름 속에서 과연 우리는 무엇을 고찰해야 하는지 책을 통해 살펴보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