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월 9일 11시, 경찰청 본청 앞에서 가정폭력피해자보호시설에 침입한 가해자에 무대응으로 일관한 경찰 강력 규탄 기자회견 <가정폭력가해자의 대변인을 자처한 경찰, 누가 가해자이고 누가 경찰인가!>가 진행되었습니다. 가정폭력, 성폭력피해자보호시설 활동가들을 비롯한 여러 여성 단체 활동가들이 100여명 이상 참석하여 가정폭력 가해자의 편에서 오히려 피해자와 활동가를 비난한 경찰의 태도에 대해 함께 분노하고 문제제기 하였습니다. 기자회견 내용을 보고 놀라시는 분들이 많을 것 같은데요. 이번 기자회견이 열리게 된 계기는 다음과 같습니다.
지난 11월 2일 한국여성의전화 가정폭력피해자보호시설에 가해자가 침입하였습니다. 활동가들은 가해자가 피해자와 접촉하지 못하도록 방어하면서 경찰에 신고하여 도움을 요청하였으나 최초 출동한 경찰은 여성청소년계 소속이 아니어서, 한 시간이 지나 출동한 여성청소년계 소속 경찰은 가해자가 위해행위를 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격리조치를 하지 않았습니다. "자녀를 보기 전까지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않겠다"는 가해자의 요구에 활동가들이 직접 가해자를 대면하여 설득하라고 하였습니다.
오히려 경찰관은 "자신도 자녀가 있는 아빠다", "자녀만 보면 돌아갈 사람이다", "저분도 참고 왔다", "여기서 어떤 조치를 하고 보호를 하는지 알려주고 안심을 시키라", "저 사람 원하는 건 그냥 자녀 보고 싶다 이거예요"라며 가해자를 옹호하는 발언을 하기까지 하였습니다. "보호시설 내의 피해자들이 빠져나가야 하니 이동해 달라"라고 가해자에게 부탁하였으나 이마저도 거절하여 활동가들이 현수막 등으로 가해자의 시야를 가려 피해자들을 안전한 곳으로 대피시키게 되었습니다. 가해자의 침입 이후 불안에 떨던 가정폭력 피해자들은 3시간 30분이 지나서야 겨우 피신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가해자가 활동가들의 사진을 직으며 욕설을 하는 동안에도 경찰은 전혀 제지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한국여성의전화 송란희 사무처장은 기자회견을 진행하며 "가정폭력법 제정 30주년이 무색한 사태"라며 "30년 전에 외쳤던 구호를 지금까지 외쳐야 하는 현실에 실소를 금할 수 없다"는 심경을 전했습니다. 이번 사태가 벌어진 시설에 입소한 피해아동이 가해자인 아빠가 찾아올까봐 불안해 하자 활동가가 "여긴 아빠가 찾아올 수 없는 '비밀의 집'이야"라고 설명하며 안심시켰는데 이런 사태가 벌어졌다는 이야기에 무기력감마저 느껴졌습니다.
참가자 자유발언에서는 기자회견 바로 전날, 다른 가정폭력피해자 쉼터에서 일어났던 비슷한 사례가 공유되었습니다. 경찰이 쉼터에 전화하여 "시설명과 주소를 밝혀라", "(피해자가 자녀를 데리고 쉼터에 입소한 것은) 납치에 해당된다", "이혼 소송에서 유리하려고 가정폭력이라고 하는 거 아니냐" 등 가정폭력피해와 피해자보호시설에 대한 무지를 그대로 드러내는 발언을 하였다고 합니다. 이번 기자회견 건이 아니더라도 지속적으로 가정폭력, 성폭력에 대한 경찰의 무지와 대응방식이 문제가 되어왔습니다. 피해자에 대한 '보호'를 위협받고 의심받는 '보호시설'이라니 피해자와 활동가의 안전은 스스로 보장해야 하는 것일까요?
2017년 11월 9일이라고 하기에는 세월이 무색한 요구사항도 함께 외쳤습니다.
1. 경찰청은 철저한 진상조사를 통해 관련 경찰과 책임자 모두를 징계하고, 피해자와 보호시설에 공식사과하라!
2. 가정폭력(여성폭력) 및 여성폭력피해자 지원시설에 대한 경찰의 인식향상교육 계획을 당장 수립하여 실시하라!
3. 제대로 된 가정폭력 사건 초동대응 대책을 마련하고 실시하라!
4. 가정폭력(여성폭력)피해자보호시설 종사자 안전을 위한 대책을 즉시 마련하라!
5. 국가는 가정폭력(여성폭력)에 대한 정책 및 시스템을 전면 보완, 개편하라!
클릭하기 ☞ 기자회견 전문보기
온라인에서도 가정폭력, 성폭력으로 신고했을 때 오히려 가해자를 두둔하거나 사건을 무화시키고 피해자를 비난한 경찰을 대면해야 했던 수많은 피해자분들의 제보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페이스북이나 트위터에 #경찰이라니_가해자인줄 을 검색하시면 볼 수 있습니다. 피해자로서 보호와 지원을 받아야 할 피해자들이 오히려 경찰로부터 재피해(2차 피해)를 받고 있는 실태를 인정하고 이제라도 경찰이 본인들의 역할과 의무을 깨닫고 다르게 행동하기를 바랍니다. 아쉽게도 아직까지 경찰청의 공식답변은 없는 상태입니다.
이번 기자회견과 관련하여 청와대 국민청원도 올라와 있습니다. 기자회견 내용으로 함께 분노하고 있는 여러분들의 참여를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청와대 국민청원 [경찰을 대상으로 한 가정폭력, 성폭력 인식 재교육과 부적절한 대응의 처벌강화를 청원합니다.]
클릭하기 ☞ 청원 내용 확인 및 참여
※ 이 글은 한국성폭력상담소 부설 열림터 활동가 백목련이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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