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말하는 피해자란 없다!
- 성폭력피해에 대한 인식전환과 피해자다움 극복을 위한 연구 후기
한국성폭력상담소 부설연구소는 1997년부터 ‘부설 성폭력문제연구소’로 연구 활동을 진행하다가 2009년 잠시 해소하였고, 2014년부터 부설연구소 울림이라는 이름으로 새롭게 개소하였습니다. 2013년, 울림의 개소를 준비하면서 권인숙 선생님의 연구 책임 하에 공동연구자들은 2013년 9월부터 2017년 8월까지 “성폭력피해에 대한 인식전환과 피해자다움 극복을 위한 연구”(한국연구재단 지원사업)를 진행하였습니다.
지난 30여 년 간 여성운동 단체들에서는 여성에 대한 폭력으로서 성폭력의 심각성을 강조하였고, 이로 인해 많은 법, 제도의 변화가 있어 왔지만, 여전히 성폭력은 ‘정조나 순결을 잃은’, ‘치명적이고 영원히 씻을 수 없는 상처’로 인식되어 왔습니다. 이로 인해 피해자들은 수사/재판 과정에서, 그리고 주변인들로부터 고정적인 피해자다움의 상, ‘피해자다움’이라는 통념을 강요받게 됩니다. 그것은 ‘피해사실’ 자체를 의심받거나, 피해자의 책임을 묻는 2차 피해의 형태로 나타나기도 합니다. 피해자의 경험과 치유의 과정은 매우 복잡한 맥락들이 있음에도 단일한 것으로 이해되어 온 것입니다. 이는 성폭력 피해자의 정체성, 치유 과정의 복잡한 맥락들을 사장시켜 회복을 어렵게 할 뿐 아니라, 일상생활에서 보호와 두려움, 공포 정치를 유지하여 젠더화된 서열을 강화시키는 방식으로 작동되기도 합니다.
이에 연구소는 성폭력 피해자들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 1차, 2차 피해의 구성과정, 피해 이후 통념이 미치는 영향, 삶 속에서 피해 경험의 재의미화 과정을 통해 전형적인 ‘피해자다움’이라는 통념에 저항하기 위한 연구를 진행하였습니다. 2014년부터 2015년까지 피해자 235명으로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진행하였고, 총 29명의 피해자를 심층면접하였습니다.
그리고 2015년 4월 23일 “우리가 말하는 피해자란 없다 - 성폭력 통념 비판과 피해 의미의 재구성”이라는 제목으로 연구 초안 발표 형식의 대중 포럼을 개최하였고, 당시 100여명이 넘는 많은 분들이 큰 기대와 관심을 갖고 포럼에 참여해주셨습니다. 그리고 연구자들은 당시 발표된 원고를 중심으로 2017년까지 연구를 발전시켜 총 7편의 논문을 학회지에 게재하여, 연구소의 연구결과가 학계에, 그리고 대중적으로 외화될 수 있도록 애써주셨습니다.
<그림과 사진 : 2015년 4월 23일 “우리가 말하는 피해자란 없다 : 성폭력 통념 비판과 피해 의미의 재구성”, 포럼 웹포스터 및 발표회>
[학회지 게재 논문 표]
게재시기 | 이름 | 제목 | 게재지 |
2015 | 김민정 | 지각된 성폭력 고정관념이 성폭력 후유증에 미치는 영향 - 피해자 자기비하의 매개 효과를 중심으로 - | 피해자학연구, 23(3) |
2016 | 권인숙․이건정․김선영 | 성폭력 피해자에 대한 피해통념의 2차 피해적 영향 연구 | 젠더와 문화, 9(2) |
유현미 | 사회적 고통으로서 성폭력피해의 의미구성과 젠더효과 | 페미니즘 연구, 16(2) | |
추지현 | 성/폭력의 중층피해와 젠더 | 한국여성학, 32(4) | |
2017 | 추지현․권인숙 | 가해자와의 관계가 피해자의 성폭력후유증에 미치는 영향 - 성폭력 통념경험의 매개효과를 중심으로 - | 교정복지연구, 48 |
김보화․추지현․이미경 | 성폭력 피해의 특성에 따른 피해자의 성폭력 통념 경험 | 피해자학연구, 25(2) | |
김민정․권인숙․김선영 | 성폭력피해의 치명성 낙인이 피해자다움 수행에 미치는 영향 | 피해자학연구, 25(3) |
학회지에 게재된 논문들을 몇 가지로 유형화해보면 먼저, 성폭력 피해자에 대한 통념이 피해자에게 미치는 영향을 파악한 연구들이 있습니다. 통념에 따른 피해자의 자기비하가 후유증에 미치는 영향이 높으며(김민정, 2015), 성폭력 피해가 치명적인 것이라는 사회적 통념이 피해자를 피해자다움의 틀에 맞추는 효과가 있음을 실증적 연구를 통해 드러내었습니다(김민정 ․권인숙․김선영, 2017).
다음으로 구체적 성폭력의 유형과 특징에 따른 통념의 효과를 파악하는 연구들이 진행되었습니다. 친밀한 관계에서의 성폭력일수록 후유증이 심하고, 피해 사실을 의심, 비난하는 통념을 많이 경험한다는 것(추지현․권인숙, 2017), 가해자와의 관계, 피해 시기, 강간 여부 등에 따라 어떻게 다른 통념들을 경험하며, 그것들이 피해 규정과 혼란에 미치는 과정을 밝히기도 했습니다(김보화․추지현․이미경, 2017). 또한 기존의 ‘강간 통념’이 성기삽입중심의 특정 성폭력을 중심으로 설명하고 있으나, 그것은 피해자들이 경험하는 통념경험의 차이를 설명하지 못하고 있으며, 이에 새로운 척도 구성을 제안하기도 하였습니다(권인숙․이건정․김선영, 2016).
마지막으로 질적인 방법을 통해 성폭력 피해는 생애사적 맥락, 주변 관계, 모성에 대한 의미화 등을 통해 개인적 고통이 아니라 젠더화된 삶의 사회적 고통으로서 해석되어야 함을 드러내거나(유현미, 2016), 여성의 중층폭력 경험이 성폭력 피해의 의미화, 젠더 수행, 젠더 질서, 저항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하면서 젠더 체계에 대한 재고찰을 주장하기도 하였습니다(추지현, 2016).
이 연구들은 한국사회에 깊이 박혀 있는 성폭력 통념이 피해자의 경험, 맥락, 치유의 과정을 설명하지 못할 뿐 아니라, 오히려 2차 피해를 유발시킬 수 있는 것으로 보았고, 그럼에도 피해자들은 피해의 경험을 본인의 삶의 맥락 속에서 재구성하면서 ‘씻을 수 없는 피해’가 아니라 주체적으로, 전략적으로 사유해 나가는 힘을 함께 드러내려 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 연구들은 향후 반성폭력 연구에서 진행해야 할 과제들을 짚어주었습니다.
연구소는 늘 현장의 언어를 담은 연구, 이론과 실천의 소통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고민하고 있습니다. 이 고민의 문을 다시 열어주신 연구자분들께 감사를 전합니다. 그 어느 때보다 성폭력 피해자들의 말하기가 적극적으로 펼쳐지고 있는 요즘, 우리가 말하는 피해자, 통념에 가득찬 피해자는 없다는 것을 온 마음으로 드러내주신 300여명의 성폭력 피해생존자이자이자 연구참여자 분들께 다시 한 번 깊은 감사를 드리고 싶습니다. 연구소는 또 다른 연구 활동으로 찾아뵙겠습니다!
* 이 글은 한국성폭력상담소 부설연구소 울림 책임연구원 김보화(파이)가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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