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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기] 2018 자기방어캠프 <싸우는 우리가 이긴다>

[후기] 2018 자기방어캠프 <싸우는 우리가 이긴다>

 

여성주의 자기방어자들이 9/8 토요일 양평으로 폭력과 차별에 맞서는 1박 2일 자기방어캠프를 떠났다.

 

출발도 하기 전에, 성차별에 맞서다.

 

14명이 함께 떠나는 캠프. 15인승 승합차를 렌트하기로 했다.

떠나기 전날, 차량 인수 장소 등을 확정하기 위해 전화통화를 하는데, “근데 누가 운전하실 거에요?” 라고 묻는 렌터카 업체 관계자에게 제가 할건데요?”라고 답했다. “(이런 큰 차) 운전해본 적 있으세요?”라는 물음이 돌아왔다. 목소리만으로 그 관계자는 무엇을 판단한 것일까? “젊은 여성15인승이라는 큰 차를 운전한다는 것이 의심스러웠던 그는 업체 소유 차량의 안위를 걱정하는 것 같았다. 그는 무엇이 걱정되었을까? 그는 남성 고객에게도 (그런 걱정스런 목소리로) 같은 질문을 던졌을까? 얼마나 큰 차길래 여자가 운전하는 걸 걱정하는걸까?

캠프 날 아침, 약속한 장소에 나가 차량을 인수했다. 2미터, 길이 6미터 가량의 미니버스였다. 예상했던 것보다 작은 크기였다. ‘뭐 엄청나게 큰 버스인 줄 알았네

우리는 거침없이 차에 올랐고, 시동을 걸고, 양평으로 출발했다.

 

우리가 직접 운전도 했던 15인승 대형 승합차

자기방어자답게 서바이벌게임의 생존자가 되다

 

참가자들의 신청곡을 받아 캠프길 BGM이 깔렸다. 페미들의 여행길 플레이리스트를 만들며 첫 번째 프로그램 <싸우는 몸>을 시작하기 위해 서바이벌게임장에 도착했다. 시크한 포스를 뿜뿜하는 사장님과 교관님이 모두 여성들이었다.

한 명을 제외한 모두가 처음해보는 서바이벌게임이라 살짝 긴장감이 감돌았다. 하지만 총알을 맞아도 죽지 않고, 준비해준 총알을 다 쓸 때까지 경기장의 지형지물을 파악하는 좀비게임(연습)을 하면서 본격 게임에 들어갈 준비가 완료되었다. 엄폐물 뒤에 숨어서 적진을 파악하고 공격과 방어를 했다. 각자 역할을 나누어 팀별 작전을 짜고 불꽃튀는 두 번의 실전 게임과 사격게임이 이어졌다. 특히 사격게임이 인상적이었던 것은 여자들만 있는 팀이기 때문에 타겟까지의 거리를 좁혀주겠다고 말한 교관님 덕분에 우리들의 전의(!!)가 활활 불타올라서 끝내는 오히려 사격 거리를 더 멀리하여 교관님을 놀라게 하는 기염을 토해냈다는 것이다. 실제로 총을 보거나 만져보는 경험이 처음인 사람도 있었는데, 총기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을 날려버릴 수 있었던 좋은 기회였다.

 

본격 게임 시작 전.jpg

사격게임.jpg

페미레인저.jpg

어떻게 알았지??.jpg


물에 대한 공포에 직면해보는 시간, 수중전

 

9월달의 실외 수영장 물은 한여름의 시원함과는 달리 얼음장 같이 차갑다. 그래서 덜덜떨리는 아래턱을 꽉 잡기 위해 이를 악물고 수중훈련에 돌입했다. 수중에서 물구나무서서 미션수행을 할 계획이었으나, 난이도가 너무 높아 수중 얼음땡과 튜브 기마전(??)으로 승부를 가르기도 했다. 얼음같이 느껴지는 물속에서도 우리는 너무 즐겁게 몸을 움직였다. 프로그램명은 분명히 수중훈련이라 썼는데, 자꾸 물놀이라 읽었던 이유가 이것이구나! 

우리를 가장 즐겁게 함과 동시에 긴장시켰던 것은 다름 아닌 워터슬라이드였다. 아이들용이라 얕잡아보고 타면 큰 코 다치는, 무시무시한 물미끄럼틀. 물을 두려워하는 사람들에게는 "자신의 한계를 뛰어넘어야 하는 시도"였다고 한다. 워터 슬라이드를 타고 내려오면 물속으로 매다 꽂혀 중심을 잃고, 어느 방향으로 가야 수면 위로 떠오르는지도 모르고 허우적거리는 0.01초의 순간. 물을 두려워하는 사람들은 그 순간에 몸이 굳고 머릿속이 새하얘지는 경험을 한다. 예기치 않았던 성폭력의 순간도 이와 비슷한 경우들이 있다. 뭘 해야하지? 어디로 나가야 하지? 나는 지금 어디에 있는거지물에 대한 공포의 수위는 사람마다 다르고, 그 공포에 맞서는 경험 역시도 사람마다 다 다르다. 성/폭력의 경험도 이와 비슷하지 않을까 싶은 순간이었다.

 

모두가 함께 즐기는 평화식단


이번 캠프 식단의 모토는 모두가 함께 즐기는 평화식단이었다. 맨 처음 캠프를 준비하면서 식사 준비에 할애할 에너지를 프로그램에 쏟고 싶다는 생각에 전체 식사를 외주(식당 혹은 숙소 제공)로 해결하려 했었다. 그래서 오가는 동안의 점심식사는 이동 경로에 있는 식당을 알아보았고, 저녁식사는 숙소에서 패키지로 제공되는 바비큐로 예약했다. 그런데 참가자 중에서 육식을 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알고 고민이 시작되었다. 채식인이 소외되지 않는 식단을 마련하기 위한 구상이 시작되었다.

이왕 비건인들을 포함한 채식인들과도 즐겁게 함께 할 수 있는 식사를 준비하면서 부딪힌 것은 웬만한 식당에서는 모두 육식이나 해산물 메뉴가 있다는 것이었다. 비건인들은 정치적으로 채식을 선택하면서 동물권에 대한 고민을 하는 사람들이다. 공장식 축산과 동물 등 생명체들에 대한 착취에 반대하는 이들이다. 때문에 육식이 당연하게 포함되어 있는 식당에서는 편안하게 식사를 하기 어려울 수 있다는 판단이 있었다. 기획단이 함께 숙소 주변이나 이동경로에 있는 식당 중에서 비건이 함께할 수 있는 식당들을 찾아보았다. 점심으로는 메밀 한식집이나 두부요리를 제공하는 식당들을 예약했고, 저녁식사는 기획단과 식사팀이 준비하기로 했다.

미리 생토마토를 직접 조려서 소스를 준비했고, 갖가지 신선한 채소와 육/물고기 등이 들어가지 않은 식물성 재료들을 구입했다. (그 과정에서도 알지 못해 잘못 구입한 식재료들도 있었다.) 좌충우돌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토마토 파스타와 오일파스타(알리오올리오), 구운채소샐러드, 아보카도가 들어간 채식마요네즈사라다, 라볶이 등의 메뉴로 구성된 저녁식사가 완성되었다.


평화식단메뉴.jpg


마지막 점심식사도 채식인들에 맞춘 요리가 가능한 망원역의 중식집으로 마무리했다.

이번 캠프의 평화식단을 준비하면서 비건인들이 식사메뉴를 선택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알게 되었고, 우리가 평소에 아무렇지 않게 선택하는 다양한 메뉴가 온통 동물성 혹은 해산물로 가득하다는 것도 배웠다. 아직은 국내에서 채식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지 않은 상황이라 채식에 대한 고정관념이나 개인의 식성에 대한 세심한 고려가 더 많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점이나 평화식단의 의미와 의도에 대해 참가자들과 세심하게 공유되지 못했던 점 등은 이번 식사 준비 과정에서의 한계로 남는다. 하지만 이후에 상담소에서 준비하는 행사에서 제공하는 다과나 식사 메뉴에 더 많은 고민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는 소중한 기회가 되었다.

 

여성들의 힘과 용기를 일깨워주는 <당갈>과 공포에 맞서는 힘


인도의 여성레슬러 자매의 실화를 다룬 영화 <당갈>은 가부장적인 아버지의 독재 아래에서 두 자매가 겪은 억압의 스토리이기도 하지만, (인도) 여성들이 내면의 힘을 각성하여 자신의 한계를 실험하고, 끝내는 삶의 주체로서 홀로서기에 성공하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자기방어훈련을 함께 했던 캠프 참가자들과 <당갈>을 함께 보면서 야유를 보내기도 하고, 비아냥거리기도 하고, 함께 소리지르고 박수를 치기도 하면서 여성으로서의 다양한 경험을 나누었다. 영화의 단순한 재미를 넘어서 여성의 힘과 기술, 삶의 의미를 재해석하는 이야기들이 함께 했다.


당갈당갈당갈_jpg


영화를 보고나서 우리는 밖으로 나가, 어둠 속에 숨겨져 있는 페미니스트 에너지를 찾아왔다. 어둠이라는 장막을 2~3명이 함께 뚫고 나가서 찾아온 우리의 에너지로 밤 시간에 몸을 움직이고, 시원하게 떠들며 페미니스트 에너지를 충전하는 시간을 가졌다.

 


우루루 몰려다니지 않는 전략 축구 맛보기


아침에 천근만근인 몸을 일으켜 요가로 몸을 깨웠다. 그리고 숙소 바로 앞의 축구장으로 향했다. 7명씩 회색팀과 보라팀으로 나누어 경기를 시작했다. 전 후반 10분씩 20분을 전력을 다해 뛰고 부딪히고 소리를 지르고 공을 찼다. 학창시절 커다란 운동장을 장악하고 공을 차던 아이들은 온통 남자아이들 뿐이었던 기억이 떠올랐다. 우리는 그 시절을 설욕하기라도 하듯

수비!”

공격! 이쪽으로!”

왜 이 쪽 아무도 없어!!”

나이스! 그렇지 여기여기!!”

!! 공을 차고, 서로를 응원하고, 공을 뺏기지 않기 위해 몸을 밀치기도 했다. 10분이라는 시간이 이리도 길었던가?

가만히 앉아있어도 뜨거운 태양빛 아래에서 우리는 쉴새없이 달리고, 구르는 공을 향해 발길질을 해댔다. 몸은 금세 뜨거워졌고, 땀이 흘렀다. 자기방어훈련에서 고재경선생님이 말했던 애써 움직이고 달려서 땀 흘리는 즐거움을 만끽했던 시간이었다.

 

vs.

작전타임.jpg


공을 가진 자.jpg

뛰는 자.jpg

가로 막힌 자.jpg

사진찍는 자.jpg

차려는 자.jpg


기술 습득이 아닌, 땀 흘리며 움직이는 몸을 경험하는 자기방어캠프


이번 자기방어캠프는 자기방어'기술'훈련이 포함되어 있지 않은, 붕어없는 붕어빵 컨셉으로 그 기획을 시작했다. 성폭력생존자를 위한 <일상을 바꾸는 여성주의 자기방어훈련>에 함께 했던 참가자들 중에서 기획단을 모집하여 세 명의 기획단과 같이 캠프를 준비했다.


이번 자기방어캠프의 목표는 명확했다. 자유자재로 몸을 쓸 수 있는 재미와 필요를 느끼기 위해 몸을 움직이는 다채로운 경험을 살 수 있도록 하는 것이었다. 최근 상담소의 자기방어훈련은 여성과 소수자 등 다양한 대상에 따른 맞춤형 프로그램으로 운영해왔고, 올해는 성폭력생존자를 대상으로 6월부터 8주간의 자기방어훈련에 이어 캠프까지 함께 하는 것으로 기획되었다. 그간 여성의 신체능력과 담력을 과소평가하는 성별규범을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몸-체험 훈련을 통해 성폭력피해생존자를 무기력한 존재로 여기는 사회적 고정관념을 깨고, 부당한 폭력 상황에 도전하며, 성차별적 사회문화를 변화시키는 적극적 주체로서 자리매김 하기 위함이었다. 8주동안의 자기방어훈련은 고재경 선생님의 몸 훈련과 김혜정(오매) 활동가의 워크숍을 교차하며 진행되었기 때문에, 캠프에서는 별도로 기술훈련을 프로그램에 넣지 않고, '땀 흘리고 놀면서 깨닫는 즐거움과 나의 가능성 찾기'를 큰 목표에 둔 것이었다. 


서바이벌 게임을 시작으로, 수중훈련, 영화<당갈> 시청, 담력훈련에 더하여 단체 축구까지. 여성에게 권장되지 않았던 운동과 움직임을 해보면서 우리는 해방감과 자유로움 그리고 재미를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미니버스 운전부터 음식까지 모든 것을 우리가 스스로 만들어 더 의미있었던 캠프였다. 그리고 이번 캠프에서 빠뜨릴 수 없었던, '페미또(페미는 페미의 든든한 빽이야~~)'. 서로가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 페미또로서 서로를 돌보고 챙겨주면서 페미니스트 연대감과 친밀함을 확인하는 기회를 가질 수도 있었다.


다음에도 이어질지 아직 미지수지만, 언젠가 또 자기방어캠프를 가게 된다면, 그때는 꼭 "상탈(상의탈의)하고, 수영이나 등산을 해보자" 다짐을 하며 1박 2일의 여정을 마쳤다. 


<본 글은 한국성폭력상담소 활동가 감이가 작성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