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기] <안희정 판결, 무엇이 문제인가?> 정책 토론회
지난 2018년 9월 4일 화요일 오후 2시에 국회의원회관 제9간담회실에서 진행된 <안희정 판결, 무엇이 문제인가?> 정책 토론회에 다녀왔습니다. 안희정 성폭력 사건 무죄 판결의 문제점을 논하고 이에 대한 초당적 대처 방안을 모색하기 위해 바른미래당, 민주평화당, 정의당 등 세 당의 여성위원회에서 본 토론회를 주최하였습니다.
안희정 성폭력 사건의 1심 판결은 자신의 성폭력 경험을 용기 있게 공론화하는 미투 운동이 사법부의 판결로 이어진 첫 번째 사례입니다. 하지만 사법부는 시민들의 목소리와 공명하는 대신, 위력의 존재는 있었으나 위력이 행사되지 않았다는 것, 피해자는 성적 자기결정권을 충분히 행사할 수 있었다는 것, 피해자가 사건 이후에도 피고인에게 호의적인 태도를 보였다는 것 등을 근거로 1심에서 무죄 판결을 내렸습니다. 이 판결의 내용은 ‘피해자다움’에 대한 편협한 편견을 전제로 피해자를 의심하는 가해자 중심적인 판결이라는 점에서 문제적입니다. 본 토론회 역시 이러한 문제 의식을 바탕으로 3당의 국회의원, 변호사, 시민 단체가 모여 안희정 사건의 쟁점과 국회의 과제에 대해 토론하였습니다. 민주평화당 천정배 국회의원과 바른미래당 권은희 국회의원의 축사를 시작으로 이미경 님의 발제, 그리고 박인숙 님, 박태순 님, 장현정 님, 서혜진 님, 국선희 님 총 다섯 분의 토론이 이어졌습니다. 토론 이후 간단한 질의응답이 있었습니다.
사회 양미강 전국여성의원장 (민주평화당)
발제: 이미경 소장 (한국성폭력상담소)
이미경 님은 <성폭력 ‘피해자다움’의 강요와 2차 피해에 맞서기>라는 제목의 발제를 진행해주셨습니다. 안희정 사건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사건의 개요와 안희정성폭력사건공대위 활동을 먼저 소개한 뒤, 본 사건에서 전형적인 ‘피해자다움’이 강요되었음을 지적했습니다. 피해자가 가해자에게 강하게 저항했어야 하며, 피해자는 정상적인 일상을 꾸려가기 어려울 정도로 고통을 받았을 것이라는 편견이 존재했다는 것입니다. 안희정 사건의 피해자는 판결 과정에서 전형적인 피해자답지 못함을 이유로 진술의 신빙성을 의심받아왔음을 밝혔습니다. 또한, 기존의 성범죄에서 문제가 되었던 2차 가해, 좁은 성폭력 판단 기준, 무고죄, 시장화된 성범죄 등의 문제를 지적하며 성범죄에 대한 사회적 변화가 시급함을 강조하였습니다. 마지막으로 지금까지 이루어졌던 성폭력 끝장 집회를 소개하고 향후 사건 지원 계획을 발표하며 발제를 마무리하였습니다.
토론 1: 박인숙 여성위원장 (정의당)
박인숙 님은 안희정 사건에 항소심에서 정의로운 판결을 이끌어내기 위해서는 국회 측에서 재판부에 문제를 적극적으로 제기해야 한다고 강조하였습니다. 또한, 130개 이상의 법안이 발의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적극적으로 입법에 나서고 있지 않은 국회에 자성의 목소리를 촉구하였습니다. 나아가 바른미래당, 민주평화당, 정의당 세 당이 합심하여 비동의 간음죄 법제화를 위해서 앞장서야 하며, 입법의 토대는 시민들의 여론이므로 여성 단체에서 시민들의 목소리를 모아줄 것을 요청하였습니다.
토론 2: 박태순 소장 (사회갈등연구소)
박태순 님은 미투 운동을 통해 남성 및 청년이 여성 운동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는 점에서 미투가 가진 사회적 의미를 강조하였습니다. 낡은 제도와 관행의 배후에 있는 남성중심주의 문화를 직면하게 한 미투 운동은 남성 스스로가 남성주의적 문화에 대해 반성하게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한편, 시대의 목소리에 부응하지 못한 안희정 사건의 판결에 안타까움을 표현하며 시민들의 적극적인 참여, 시민 단체의 노력, 입법을 위한 국회의 노력이 함께 이루어져야 함을 강조하며 토론을 마무리했습니다.
토론 3: 장현정 변호사 (한국여성변호사회 이사)
장현정 님은 안희정 사건에 대한 1심의 판결이 권력형 성폭력범죄의 특징에 대한 무지에서 비롯되었음을 지적하였습니다. 구체적으로, 기존 대법원의 판례(97도 2506)에 따르면 현실적으로 위력이 피해자의 자유의사가 제압될 것을 요하지 않으며, 권력형 성폭력범죄에서 위력의 존재와 위력의 행사는 실질적으로 분리할 수 없는 성질을 가지고 있음을 간과했다고 지적했습니다. 또한, 재판부는 피해자가 부적응적인 심리 상태에 빠져 있지 않더라도 권력형 성범죄의 특성상 거부 의사를 표현하기 어렵다는 것을 감안하지 못했다고 말했습니다. 결국, 1심 재판부는 위력의 범위를 지나치게 좁게 해석했을 뿐만 아니라 피해자의 진술의 증명력을 배제하는 데에만 집중할 뿐 정작 피고인에 대해서는 검토 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권력형 성범죄를 사회에서 추방하기 위해서는 개인적 노력 이상의 사회적 연대가 필수적임을 강조하며 발언을 마무리하였습니다.
토론 4: 서혜진 변호사 (더라이트하우스법률사무소 대표)
서혜진 님은 안희정 판결의 법리 해석에서 문제가 되는 부분들을 지적하였습니다. 첫 번째로 본 재판부는 ”위력으로써“라는 본 범죄의 행위수단에 대한 법리해석을 위력의 존재와 행사로 구분하고, 위력의 존재 역시 일반적 위력과 개별 상황에서의 위력을 구분하고 있는데, 이는 법문의 문리적 해석을 벗어난 재판부의 자의적 해석에 불과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만약 위력의 행사를 구성요건으로 포함한다면 강간죄의 수단인 폭행 또는 협박과의 구분이 어려워진다는 점에서 위력에 의한 간음죄의 입법취지를 희석시키는 해석이라고 덧붙였습니다. 또한, 법원은 ”성적자기결정권의 침해“를 결과로서 요구하고 있는데, 본 사건과 관련된 형법 제 303조는 간음 행위가 있으면 성립하는 범죄이지 성적자기결정권의 침해를 추가로 요구하고 있지 않다는 점에서 이는 마찬가지로 재판부의 자의적 해석임을 지적했습니다. 덧붙여 본 판결은 피고인에 대한 판단은 간과한 채 피해자에게 ‘피해자다움’ 만을 요구하고 있으며, 결국 권력형 성범죄에 대한 현실적 이해가 여전히 부족하다는 점을 강조했습니다. 사법부는 입법이 미비해 처벌 근거가 부족하다는 등의 말로 책임을 회피했지만, 입법의 여부보다는 피해자에 대한 인식과 권력형 성범죄에 대한 이해가 선행되어야만 함을 역설하며 발언을 마무리하였습니다.
토론 5: 국선희 부실장 (민주평화당 정책실)
국선희 님은 피해자 중심주의적 관점을 내면화할 수 있도록 사법부의 인식을 개선하는 교육이 시급하며, 국회는 입법을 위해 연대하고 성폭력 범죄와 관련된 입법을 집중 안건으로 삼아야 함을 주장하며 발언을 마무리하였습니다.
이후 질의 응답 시간에는 성범죄 사건에 대한 공감대가 나이 및 성별에 따른 집단 별로 다 다르며, 따라서 집단 별 인식 차이에 따른 차별적 전략이 필요하다는 발언, 초중고 교육에서부터 성범죄 사실을 공론화해도 쉽게 수용하는 분위기를 만들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는 발언, 시민 단체의 적극적 퍼포먼스 및 노력을 통해 법원에게 시민의 여론을 전달해야 한다는 발언, 문제 해결을 위해 입법, 인식차이 개선, 2심 판결 전 준비 등에 대한 사안들 중 우선순위를 정해야 한다는 발언, 성범죄에 대한 담론이 성별 갈등으로 이어지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는 발언 등이 나왔습니다.
토론회에서 쟁점이 되었던 사안 중 하나는 비동의 강간죄 입법의 실효성이었습니다. 사법부가 단순히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입법부에게 그 책임을 돌린 것이지, 성범죄 및 피해자에 대한 인식 전환 없이 입법이 이루어진다고 해서 큰 변화를 기대하기는 어렵다는 입장이 있었습니다. 한편, 입법이 이루어져야 현행 법으로는 처벌할 수 없는 성범죄까지 포획할 수 있다는 입장도 있었습니다. 물리적 폭력 및 협박이 동행되어야만 강간으로 처벌 가능한 현행법에서 나아가 “No Means No” 또는 “Yes Means Yes” 등의 법안을 입법하는 것은 필수적이나, 제도화와 동시에 인식 개선도 이루어져야 할 것으로 보입니다. 입법 문제 뿐만 아니라, 곧 다가올 2심 공판에서 정의로운 판결을 촉구할 수 있도록 시민들의 노력과 이 노력을 가시화할 수 있는 시민 단체의 활동, 국회의원 및 각 분야의 전문가들의 지속적인 지지가 함께 이루어져야 할 것입니다.
<이 글은 본 상담소 자원활동가 박서영님이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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