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이 자리는 최김희정분의 사건에 대해 자세히 알지 못한 채 열림터 선생님의 권유로 참석하게 된 자리였다. 최김희정분의 교수 성추행 사건이 터졌던 때의 나는 초등학생이었는데, 17년 전의 여성인권은 지금보다 얼마나 더 상황이 안 좋았을지 상상조차 되지 않아 저절로 한숨이 나왔다. 솔직히 나는 그 자리에서 조금 위축되어 있었다. 후원자의 입장에 서있는 사람들과 함께 있을 때면, 이상하게 내 자신이 작게 느껴지곤 했다. 전혀 그럴 필요가 없는데도 말이다. 생존자를 불행하고 연약한 피해자로 보는 사회 분위기 속에서 그들이 원하는 생존자의 모습을 연기해야 하나 고민되는 마음과 내가 성폭력 생존자임이 드러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 공존했다. 하지만 그 자리엔 날 제외하고도 많은 생존자분들이 참석하고 계셨고, 오래전에 이미 미투를 시작하신 최김희정분을 보며 용기를 얻고 자신이 생존자임을 밝히며 지지를 보내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때서야 진정한 의미의 미투’, 연대의 힘을 이해했다.

 

  많은 사람들의 마음이 모였고, 그만큼 많은 아픔이 모였던 자리였기에 진행되는 내내 훌쩍이는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가장 기억에 남았던 건, 어떤 분의 새벽마다 죽고 싶고 끝이 없는 고통의 시간이 찾아오는데, 이런 순간이 선생님께도 있으셨는지, 그 순간을 어떻게 견디셨는지..” 라는 질문이었다. 울음 섞인 간절한 질문을 듣는 순간 숨이 막혔다. 그 고통이 뭔지 매우 잘 알기 때문이다. 끝이 없는 고통의 시간, 죽음만이 유일한 구원이라는 믿음을 가졌던 때가 내게도 있었다. 나는 10년이 넘는 시간을 아버지로부터 성폭행을 당해온 친족성폭력 생존자이다. 내 삶은 나의 존엄과 권리, 자유가 없는 말 그대로 죽음 자체였고, 자연스럽게 매일 죽는 것만 생각했었다. 가족 중 누구도 나를 존중하지 않았다. 특히 어릴 때 집을 나간 어머니 대신에 살림을 맡으신 할머니와는 사이가 매우 좋지 않아 객식구처럼 먹는 것 하나도 눈치를 봐야 했다. 나는 계란으로 만든 요리를 좋아하는데, 계란후라이 하나도 할머니 몰래 숨어서 먹어야 할 때면 살고 싶지 않았다. 먹는 걸로 눈치 보는 게 맞는 것보다 더 서러웠다. 차라리 죽는 게 나았다. 간절하게 죽고 싶었으나, 살고 싶었다. 살고 싶어서 죽지 못하는 내가 밉고 원망스러웠다. 어쩌면 나를 포함한 많은 생존자들이 사실은 죽고 싶은 게 아니라, 가해자를 피해서, 잊히지 않는 지옥과도 같았던 기억이 주는 고통과 절망을 피해 평온함을 얻고 싶은 게 아닐까? 살아있는 한 계속 마주해야 하는 고통으로부터 가장 안전한 곳으로 도망치고 싶은 게 아닐까?

 

  그러나 삶보다 죽음이 더 가까운 우리는 그럼에도 살아야 한다. 내가 일단 살자고 결심하게 된 계기는, 심리치료상담선생님께서 언젠가 열림터에서 지내는 다른 생활인들을 비롯한 많은 생존자들에게 하나의 예시와 선택지가 되어 줄 수 있다고 해 주신 말씀 때문이었다. 그 말을 듣고 무조건 살아내자고 다짐했다. 나는 나를 잘 안다. 나는 끊임없이 넘어지고, 좌절하고, 쓰러질 것이다. 그래도 꼭 살고 싶은 이유는, 나보다 어린 생존자들의 미래가 꼭 자살이라는 선택지만 있는 게 아니라고 보여주고 싶기 때문이었다. 열심히 잘 살고 싶다. 지금보다 더 잘하고 싶다. 더 높은 곳에 가고 싶다. 미래가 막연하고 막막해서 아무것도 흥미를 가지지 못했던 과거가 믿기지 않을 정도로 처음으로 욕심이 났다. 그날 이후 일단 살아내자. 근데 어떻게?” 라는 질문을 가지고 있었던 내게 최김희정분은 답을 찾을 수 있게 해 주셨다. <피해자 리더십>이라는 조금은 생소한 단어와 함께 생존자들에게 보다 다양한 선택지가 존재해야 하며, 그러기 위해선 더 많은 롤모델이 필요하다는 말씀을 오래오래 곱씹었다. 미래가 전보다 뚜렷하고 확실하게 보이는 기분이었다. 최김희정분이 가신 길이 앞으로 내가 가야 할 길이며, 지금의 나는 스스로 생존자임을 밝히는 것조차 두려운 사람이지만, 그 분이 서 계신 지금 이 자리가 미래의 내가 서 있는 자리일 수 있도록 단단하고 강한 사람이 되고 싶다. 스스로 한계에 부딪힐 때면 뿌리 뽑힌 나무를 떠올린다. 뿌리를 내릴 땅이 없음에도 말라죽지 않고 기어코 살아서 풍성하게 잎이 가득한 나무를 떠올린다. 하고 싶은 것에 비해 할 수 있는 일은 아주 작아서, 남들보다 더딘 속도에 한계에 부딪히더라도,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 성실하게 해야 할 일을 하다 보면, 내가 그리는 미래의 내 모습에 조금씩 가까워지리라 믿는다. 이 믿음이 나를 강하게 만들 것이라는 것도.



< 이 글은 한국성폭력상담소 부설 열림터 생활인 보라가 작성하였습니다. >


Posted by 한국성폭력상담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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