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기] 일본의 미투, <블랙박스>의 저자 이토 시오리 방문 간담회

 

지난 108일 한국성폭력상담소에 반가운 손님이 찾아오셨습니다. 일본에서 #미투 운동을 하고 있는 <블랙박스>의 저자 이토 시오리 님입니다. 일본 사회에서 여전히 수면 위로 떠오르지 못하는 생존자들의 목소리를 알리기 위해 노력하고 계시는 이토 시오리님과 한국성폭력상담소 활동가들이 만나 한국과 일본의 반성폭력 운동에 대해 소규모 간담회를 진행했습니다.




    <블랙박스>

  • 저자: 이토 시오리

  • 역자: 김수현

  • 출판: 미메시스

  • 발매: 2018.05.25


<소개글>


저자의 평생 꿈이었던 저널리스트 일자리를 알아봐 준다며 신뢰를 얻은 가해자 야마구치 노리유키는 자신의 지위를 이용하여 준강간을 시도합니다. 강간 당시 피해자가 의식을 차리고 저항하자 "같이 일할 사이인데 이래서 같이 일할 수 있겠냐" 운운하며 가해를 멈추지 않았습니다. 이후 피해자와 메일을 이용하여 소통할 때도 계속 가해 사실을 인정하지 않으면서 일자리를 알아봐주고 있다는 생색만 내는 가해자.

이후 저자는 사건 당시의 여러 정황상 데이트 약물 이용과 불법촬영을 우려하여 경찰에 신고했지만 사안의 심각성을 제대로 인지하지 않는 경찰의 무성의한 태도를 마주했고, 강간죄의 요건인 폭행과 협박을 매우 좁게 해석하는 일본의 사법부의 한계를 실감하게 됩니다.

또한 사건 당시 상호 간에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사실을 피해자가 증명해야 하는 현실에서 피고인의 입장에만 힘을 실어주는 무죄 추정의 원칙에 좌절을 느껴야 했습니다. 은근하게 가해자와의 합의를 권유하면서 피해자 국선변호사가 합의 전문 변호사 연결해주는 등 피해자의 권리를 보장하는 데에 큰 관심을 보이지 않는 경찰 당국의 태도와 화가 나기도 했습니다.

수사 진행 과정에서 피해자에게만 반복되는 진술 조사 중에 저자는 "피해 이전에 성경험 있냐" 묻거나 피해 상황을 직접 재연시키는 등 수사과정에서의 2차 피해를 경험했으며, 공론화 이후에도 "정치적 공작이다. 뒤에 민중당이 있다", "재일 한국인이다" 등 온라인 상에서의 2차 피해를 경험하기도 했습니다. 이처럼 한국의 성폭력 피해자들이 경험하는 현실과 크게 다르지 않은 일본 사회의 면면을 그대로 보여주는 책입니다.


이토 시오리 님의 이번 상담소 방문에는 양징자 님(일본군위안부문제전국행동 공동대표, 사단법인 희망의 씨앗기금대표이사), 기타하라 미노리 님(작가, 사단법인 희망의 씨앗기금이사), 시노다 에미 님(사진작가), 선영리 님(PD)이 함께 해주셨습니다. 특히 이번 방문을 위해 여러모로 애써주시고 직접 통역을 맡아주신 양징자 님은 송신도 할머니 지원모임 등 일본군 위안부 운동 초창기부터 지금까지 꾸준히 헌신해오신, 일본군 위안부 운동에서 빼놓을 수 없는 분입니다. 현재는 희망의 씨앗 기금(希望のたね基金)’의 대표로서 일본의 청년 세대에 일본군 위안부 실상과 진실 규명을 위한 일본 내 시민 운동의 역사를 알리는 활동을 하고 계십니다.

 

일본에서 오신 다섯 분과 환대의 시간을 가진 후, 한국성폭력상담소 이미경 소장의 환영 인사로 간담회가 시작되었습니다. 부설 연구소 <울림>의 장주리 연구활동가가 유창한(!) 일본어 실력으로 한국의 반성폭력운동과 한국성폭력상담소의 역사, 그리고 한국사회에서의 미투운동에 이르기까지, 짧은 시간이었지만 전반적인 한국사회의 성폭력 피해자를 대하는 태도의 변화 과정을 핵심적으로 짚어가며 설명했습니다.

 

발표를 들은 이토 시오리(이하 시오리)와 방문단의 여러 질문이 이어졌습니다. 아래는 일본 방문단과 상담소 활동가들(이하 상담소)의 일문일답을 정리했습니다.

 

시오리: 명예훼손이나 무고죄와 관련하여 성폭력 피해사실을 말하는 것도 죄가 되는 상황이 사실인가?

상담소: 형법 307(사실적시 명예훼손)에 의거하여 형법상 책임을 피해자에게 묻는 상황이 발생하기도 한다. 한국사회에서는 성폭력 피해자들의 호소나 경험 드러내기가 역고소 등으로 위축되는 경향이 큰 것이 사실이다. 일본에도 비슷한 죄명이 있지만 거의 사문화되어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시오리: 일본에는 허위고소죄라는 것이 있다. 성폭력 신고를 허위로 하는 경우도 여기에 해당할 수 있다. 하지만 일본은 성폭력 피해 신고가 접수조차 되지 않는 경우들이 너무 많기 때문에 성폭력 피해를 허위로 신고했다는 이유로 허위고소죄로 기소되는 경우는 없다. 피해를 신고하고자 해도 경찰들은 너무 흔한 일이고, “남녀관계에서 일어나는 일에 (공권력이) 개입하는 것이 어렵다거나, “목격자가 없어 어렵다는 이유를 댄다. 또한 피해를 신고하는 즉시 가해자에게 통보가 되는 시스템이라 바로 합의를 종용한다. 이러한 이유로 피해신고 자체를 하지 않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작년에 친고죄가 폐지되었지만 신고나 처벌이 갑자기 늘어나지 않는 현실이다. 또한 일본은 형사 재판에 있어서 99.9%에 달하는 유죄율을 보인다. 이는 검찰이나 경찰이 보기에도 유죄임이 명확한 사안들만 사건화하고, /무죄 다툼의 여지가 있는 경우 기소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하며, 이 또한 성폭력 피해 신고를 받아주지 않는 배경이 된다


시오리: <성폭력생존자말하기대회>에 대해 관심이 있다. 참여는 어떻게 하는지? 규모는 어느 정도인가? 생존자들의 개인 신상이나 얼굴 등을 공개하는 것인가?

상담소: <성폭력생존자말하기대회>2003년부터 매년 1회씩 개최하여 올해 14회째를 맞이했다. 적게는 100명에서 많게는 200명 정도의 듣기참여자가 있는 강당이나 홀에서 4~8명의 말하기참여자가 자신의 경험을 말한다. 언론에 공개하는 행사이기는 하지만 말하기참여자 개인의 신상이나 피해를 상세하게 보도하는 것은 지양한다. 성폭력이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 구조적인 문제라는 것을 밝히고 공론화해나가기 위한 자리이기 때문이다.

 

시오리: <작은말하기>에 대해 설명을 부탁한다. 거기에 참여한 생존자들의 체감하는 변화들에는 어떤 것들이 있나?

상담소: <작은말하기>는 집단상담이라기보다는 생존자 자조모임의 성격이 강하다. 작은말하기 참여자들은 이전까지 주변에 자신의 경험을 이야기해도 공감받지 못했던 경우들이 많은데, 자신의 경험을 가감없이 드러내는 과정에서 공감받고, 그를 통한 치유의 경험을 하게 되는 경우들을 보게된다. 생존자들 상호간에 임파워(역량강화)를 통해 자신을 당당하게 드러내는데 힘을 받을 수 있는 기회가 되기도 한다.

시오리: 생존자 상호 간의 공감과 치유는 어떻게 이루어지나?

상담소: 본인의 힘든 경험을 말하는 것 자체가 쉬운 일은 아니다. <작은말하기>에 대한 신뢰를 만들기 위해 참가자들 사이에 지킬 수 있는 약속을 공유하기도 한다. 성폭력 피해자에 대한 통념은 생존자들에게도 있을 수밖에 없기 때문에 성폭력 상황에서의 피해자의 행동을 통념에 기반해서 판단하고 재단하지 않으며 듣기 위해 주제별 강의를 진행하여 공감의 영역을 확장하기도 한다.

열림터: 성폭력 상황에 대한 판단은 언제나 그 상황을 직면해있는 피해자가 하는 것이다. “왜 거기에 갔어?”, “왜 그런 행동을 했어?”와 같이 피해자에 대해 판단하거나 이를 탓하는 것이 아니라, “당신은 그게 최선이었다”, “당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한 것이다라고 말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시오리: 책을 쓰고 나서 생존자들의 경험에 공감하는 방법과 주변인으로서 어떤 말을 해주어야 하는지에 대해 질문을 많이 받는다. 그럴 때 나는 당사자가 자신의 상처를 가장 잘 알고 있다. 그러니 당신을 믿는다라고 말해주세요.”라고 답한다. 지금 하신 말씀을 듣고 내 경험을 쓰다듬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당신은 그것이 최선이었다라고 그렇게 행동해서 살아남을 수 있었다.”라는 말로 전해진다.

 

미노리: 모의법정은 어땠나? 모의법정 개최가 제도적 변화로 이어졌나?

상담소: 상담소에서 진행해온 <성폭력 판례바꾸기> 운동의 일환으로 모의법정을 진행했다. 40대인 연예기획사대표에 의한 중학생 성폭력 사건을 모티브로 하여 첫 번째 모의법정이 2016년에 열렸고, 해당 사건의 제대로 된 판결을 위해 대안을 제시했던 모의법정의 대본과 핵심 내용을 담은 영상을 재판부에 직접 제출했었다. 3(대법원)에서 파기환송된 것을 포함하여 5(재상고)까지 거쳤지만 결국 그 사건은 가해자의 무죄가 확정되었다. 한국사회에서 큰 문제가 되고 있는 무고죄를 다루었던 두 번째 모의법정은 그 당시 진행되고 있던 유명연예인 박00에 의한 성폭력 사건의 피해자가 무고 피의자가 되었던 사건을 모티브로 하여 진행되었다. 이후 해당 사건은 피고인이 되어버린 성폭력 피해자의 무죄가 결정되었다.

 

시오리: 일본의 법정에서는 아직도 성폭력 사건을 다룰 때, 가해자와 아내 즉 부부간 성생활에 대한 질문이 많이 나온다. 이것은 결국 성폭력 가해의 원인을 남성의 성욕 문제로 보는 시각을 그대로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한국의 경우는 어떤가?

상담소: 예전에는 그런 질문들이 법정에서 많이 나왔는데, 지금은 대놓고 그렇게 질문하는 경우는 많지 않다. 만약 그런 질문을 법정에서 한다면 우리가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다. 그렇지만 성폭력을 남성의 성욕 문제로 자연화하거나 개인의 성적 일탈행위 쯤으로 축소/치환해버리는 기본적인 시각은 아주 크게 달라진 것 같지는 않다.

 

시오리: 제가 성폭력 사건을 공론화 한 이후 관련 기사의 댓글에 이런 글들이 있었다. “피해자와 같은 이름을 가진 사람들이 불쌍하다”, “시오리는 모두 거짓말쟁이들이다이런 댓글들을 보면 참 마음이 아프다.

상담소: 이번 안희정 전 충남지사에 의한 성폭력 사건이 중요 방송사를 통해 공론화되면서 피해자에 대한 지지자들도 많았지만, 피해자를 비난하는 사람들이 여전히 많다. 얼마 전 안희정성폭력사건의 피해자를 지지하는 사람들의 모임에서 지은이가 지은이에게라는 제목의 포스터를 제작했다. 같은 이름을 가진 지지자들이 보내는 지지와 응원, 연대의 메시지를 담은 포스터였는데 시오리에게도 꼭 드리고 싶다. 한국에서 #미투는 일상적으로 일어나는 성폭력을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알렸고, “더 이상 침묵하지 않겠다라는 연대자로서의 선언인 #위드유를 이끌어 낸 중요한 운동이다. 더 많은 이들이 이 흐름에 함께 하고 있고, 변화는 반드시 올 것이라 믿는다.

 

시오리: 일본에서는 강간을 판단하는 기준인 폭행과 협박”(최협의설)을 입증하는 책임을 피해자에게 떠넘기고 있다. 한국은 어떤지?

상담소: 한국의 강간 구성요건도 폭행과 협박이 포함된다. 그 외에 장애인이나 미성년자일 경우”, “위력등이 있다. 하지만 동의의 여부에 따라 성폭력을 판단해야한다고 하는 비동의간음죄신설의 필요성이 제기되어 현재 국회에 발의되어 있는 상태이다. 하지만 판단기준을 바꾸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판단을 누가, 어떻게 할 것인가도 중요한 문제이다.

 

시오리: 한국과 일본은 법적으로 성관계에 동의할 수 있는 연령이 13세로 동일하다. 이는 세계적 기준으로도 굉장히 낮은 수준이다. 해당 연령인 13세에 동의에 대한 교육이 시행되고 있나?

상담소: 공교육에서는 아주 형식적인 성교육이 진행되고 있고, 해당 연령에 심화된 교육 내용 중 성적 관계에서의 동의를 넣고 있지는 않다. 각 연령대에 적절한 성교육은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하지만, 사회적인 권리(노동권 등)가 동등하게 보장되지 않는 상황에서 성적 권리만을 강조하는 것은 부적절하지 않나 생각한다.

 

시오리: 성폭력 생존자에 대한 지원뿐 아니라, 성문화를 바꾸기 위한 활동도 하고 있다고 들었다. 어떤 방식으로 활동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상담소: 여성에 대한 성폭력이 성폭력으로 인지되지 않는 경우가 많은데, 특히 술, 약물에 취하거나 수면 상태에 있는 사람에 대한 강간은 성폭력이 아니라 성관계의 한 형태로 이해되기도 한다. 2016년에는 이것이 명백히 성폭력임을 알려내는 <#그건_강간입니다> 캠페인을 진행하기도 했다. 이 캠페인에서는 명확한 동의가 없는 성관계는 강간이고, ·약물에 취하거나 수면 상태에 있는 사람은 동의할 수 없음을 알려내는 것을 목표로 했으며, ·약물을 이용한 성폭력에 협조하거나 이를 방관해서는 안된다는 것을 알리기도 했다.

 

시오리: 한국의 미투운동에 대해 설명하면서 사람들이 모여 집회하는 장면도 보여주셨는데 최대로 많은 인원이 모인 것은 언제인가.

상담소: 미투시민행동에서 주최하는 집회는 현재까지 총 5번 열렸다. 이 중에서 제일 최근의 5차 집회에 2만명 가량이 모였는데, 안희정에 무죄가 선고된 것에 이의를 제기하고 사법부에 항의하기 위한 것이었다.

시오리: 사법부에 이의를 제기하는 것이 놀랍다. 일본에서 사법부의 권위에 도전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간담회를 마치고 이토 시오리 님께 지은이가 지은이에게포스터를 선물로 드렸습니다.

 



함께 식사를 하면서 올해 한국을 뜨겁게 달군 #미투 운동에 대해서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습니다. 생존자로서 강단있게 사회 변화를 만들어가는 이토 시오리님을 응원합니다.

 

이토 시오리님은 한국에 오셔서 상담소 뿐만 아니라 해바라기 센터 등에도 방문하고,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과도 만남을 가졌습니다. 자세한 이야기는 아래 기사에서도 살펴보실 수 있습니다.




<이 글은 한국성폭력상담소 성문화운동팀 활동가 감이와 
부설 연구소 울림의 장주리 연구원이 함께 작성하였습니다.>


Posted by 한국성폭력상담소

댓글을 달아 주세요